7월입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7월이 되었습니다. 7월이 되면 생각나는 시(詩)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독립운동하다가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교도소에서 순국한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입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되는 시인데요, 4연은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손님은 ‘중국의 복음화’입니다. 이를 맞이하기 위해서 식탁에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하는 마음으로 <중주> 7월호를 엮어서 보내드립니다.
한동안 이라크 사태에 대한 보도가 뉴스 시간의 앞자리를 길게 차지하더니 어느새 월드컵의 열기가 그것을 대신하는 가운데 2026년의 상반기가 저물고 하반기가 열렸습니다. 한국팀의 32강 진출 실패로 김이 빠질 대로 빠졌지만 그래도 월드컵 중계는 방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월드컵은 이달 19일(주일)에 결승전이 열린다니까 7월도 경기들과 그 후일담 가운데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참, 월드컵 이야기를 하니까 중국에서는 월드컵 열기가 어떤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 본선에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나라의 대표팀들도 진출해서 잘 싸우고 있는데 중국이 진출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록을 보니까 중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은 2002년에 열린 한일 월드컵 때뿐이라고 하네요.
“딩광쉰 주교와의 가상 인터뷰” 어땠나요?
▲딩광쉰 주교
지난달에 발행된 <중국을주께로>의 기사들 가운데 저는 “삼자교회의 산증인 고(故) 딩광쉰 주교와의 가상 인터뷰”를 여러 번 읽었습니다. ‘딩광쉰(丁光訓) 주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하는 것은 저의 마음속에 있는 숙제 가운데 하나인데 이 글이 그 숙제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딩광쉰 주교에 대해 ‘그를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6월호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라고 할까, 전반적인 이해라고 할까 하는 것이 조금 넓어졌습니다. 그 글을 읽으며 ‘아, 필자가 딩광쉰의 생애에 대한 정확하고 치밀한 고찰을 바탕으로 하고 집필하였구나!’ 하면서 그 노고에 대해 깊은 경의를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문화대혁명 당시 딩광쉰도 많은 고초와 굴욕을 겪은 일을 대하면서 문화대혁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지금 중국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선교사 추방은 물론이고 십자가, 나가서는 교회당 철거, 인터넷 사용 제한, 교회 내의 부착물 문제, 가정교회 지도자들 체포, 이런 소식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딩광쉰의 의견을 묻는 말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이 글에는 부인 궈슈메이(郭秀梅)를 추모하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그 부부의 후손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글은 중국교회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중국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를 시작으로 사도 바울 그리고 중국 가정교회의 영적 아버지로 불리는 왕밍다오(王明道) 목사님과의 가상 인터뷰도 <중국을주께로>에 실었습니다. 앞으로도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실으려고 힘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 가운데 ‘다음 기회에 우야오쭝(吳耀宗)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해 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야오쭝뿐만 아니라 조선족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였던 오애은(吳愛恩) 목사님과의 가상 인터뷰도 기대하고 싶습니다. 아예 ‘가상 인터뷰’라는 연재 코너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강량욱(康良煜)이 생각납니다 중국뿐 아니라 히틀러 당시의 독일, 러시아 등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거나 독재가 행해질 때 정부 쪽에 서는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딩광쉰과의 가상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인 북한의 강량욱 목사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강량욱(康良煜) 목사는 김일성의 외종조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강량욱을 김일성의 외숙부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고 각종 매체에도 그렇게 나오는 일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김일성의 외조부인 강돈욱 장로의 육촌동생이라고 합니다. 강량욱은 장로교회의 목사로서 해방 전후 평양 고정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할 때 그는 서기장이라는 중직을 맡아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개편하는 실무 작업을 끌어나갑니다. 북한이 1946년 3월 5일에 실시한 토지개혁과 관련된 공고는 대부분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1948년 9월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던 때 그는 부주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북한을 대표하여 해외 국가들을 순방하는 일을 자주 했습니다.
북한은 교회를 통제할 필요가 강해지자 1946년 11월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이라는 기구를 출범시켰습니다. 중국의 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대조해서 분석하고 싶어지는 기구이지요. 이 연맹은 그 뒤 이름을 조선기독교도연맹으로 바꿨다가 지금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에서 기독교의 공식 이름은 ‘그리스도교’, 천주교는 ‘카톨릭’인데 이에 대해서 그 두 종교는 외래 종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강량욱 목사는 북조선기독교도연맹의 초대 위원장을 맡아 1983년에 사망할 때까지 37년을 그 직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조그련’의 3대 위원장은 그의 차남인 강영섭 목사가, 4대(현) 위원장은 그의 손자인 강명철 목사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권과 나란히 교회의 3대 세습이 수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강량욱 목사에 대해 알아보다가 남한에 그의 인척 벌인 사람들이 의외로 여럿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 가운데는 북한 선교사역을 열심히 하는 분도 있는 것을 알고는 더 놀랐습니다. 앞에서 딩광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넓어졌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은 강량욱과 비교를 통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는 “여성 선교사의 사역과 미래 선교전략”이라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6월 2일부터 4일까지 제1회 미스 싱글 선교사 여성 리더십 워크숍이 서울 명동 이비스스타일엠버서더호텔에서 열렸는데. 발표된 글들 가운데 세 편을 실었습니다. 전재(轉載)를 허락해 주신 발표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여름 즐겁게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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