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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6.4  통권 286호  필자 : 석은혜  |  조회 : 1224   프린트   이메일 
[신조어로 보는 중국 사회]
회복탄력성, ‘런싱(韌性)’

중국의 권위 있는 문예월간지〈야오원자오쯔(咬文嚼字)〉가 2025년 12월에 발표한 ‘올해의 10대 유행어’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국가언어자원모니터링연구센터(國家語言資源監測與研究中心)와 신화망(新華網)이 공동 주최한 “한위판뎬(漢語盤點) 2025” 행사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글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질길 인(韌)’ 자와 ‘성품 성(性) ’자가 합해진 ‘인성(韌性)’인데, 이 단어를 중국어로는 ‘런싱(韌性, rènxìng)’이라고 부른다. ‘런싱’은 원래 ‘회복탄력성’이라는 물리적, 심리학적 개념에서 비롯된 말로, “외부의 충격을 받아도 쉽게 부러지지 않고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청년층과 온라인 공간을 지배하던 지배적 정서는 무한 경쟁에 치여 상처뿐인 승리를 좇는 ‘네이쥐안(內卷, 성장 없는 소모적인 경쟁)’이나, 아예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드러눕는 ‘탕평(躺平)’이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분투와 포기를 모두 경험한 중국 사회는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부러지지 않고 버티며 다시 튀어 오르는(회복탄력성)’이라는 뜻을 가진 런싱이다. 먼저 런싱의 본래 의미를 짚어보고,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된 중국 사회의 변화와 현재 중국이 당면한 사회 문제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아울러 삶의 고단함 속에서 중국인들이 구축해 가는 실제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이들이 직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런싱의 참된 방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런싱(韌性)’의 본래 의미와 유행어로의 진화
런싱의 본래 의미는 물리학 용어로 ‘물체가 외력이나 충격을 받았을 때, 부러지거나 깨지지 않고 변형되면서 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 즉 ‘회복탄력성’ 혹은 ‘복원력’을 뜻한다. 단단하기만 한 물질(강성)은 강한 충격을 받으면 단번에 깨져버리지만, 질긴 물질(인성)은 휘어질지언정 끊어지지 않고 충격이 사라지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물리학 용어가 사회학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현재 중국에서는 ‘외부의 거대한 압력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유연하게 버텨내어, 결국에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정신적 바탕과 행동의 힘’으로 재정의 되었다.

이 단어가 중국 사회에서 급부상한 이유는 국가적 차원의 거시경제 담론과 개인 차원의 미시적 생존 정서가 완벽하게 맞물렸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은 전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과의 기술 패러다임 갈등,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 등 대내외적 위기를 겪으면서 공식 석상마다 ‘중국 경제의 런싱(경제의 회복력)’과 ‘공급망의 런싱(공급망의 회복력)’을 강조해 왔다. 국가가 대외적 충격에 버티는 힘을 런싱이라 부르자,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 역시 이 단어를 자신들의 삶에 투사하기 시작했다. 대중에게 런싱은 더 이상 딱딱한 국가 정책의 용어가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나를 짓눌러도 나는 질긴 고무줄처럼 버텨내어 살아남겠다”라는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 즉 강력한 서바이벌 선언으로 진화한 것이다.


‘런싱’을 촉발한 중국 사회의 변화와 당면 과제
런싱이라는 유행어의 이면에는 현재 중국 사회가 통과하고 있는 깊은 전환기적 진통과 복합적인 사회 문제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고속 성장기가 끝나고 저성장, 고도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국인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구조적 한파를 마주하고 있다.

첫째, 청년 실업으로 인해 청년층 삶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2025년 중국 청년(16~24세) 실업률은 15~20%에 이르렀으며, 매년 1,100만 명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들을 흡수할 좋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청년은 “정규직→비정규직,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으로 이직하면서 불안정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은 중소기업이나 창업 대신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考公, 카오궁)이나 국유기업 입사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수백 대 일의 경쟁률 속에서 극심한 취업난과 고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고 있다.

둘째, 기술 패러다임 격변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 생성형 AI 인프라를 바탕으로 ‘수즈화(數智化, 디지털·스마트화)’와 ‘쥐선즈넝(具身智能, 체화된 지능·로봇 공학)’ 기술을 산업 전반에 무서운 속도로 이식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기술 혁신은 전통 제조업과 화이트칼라 사무직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풍요로 이어지기 전에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당장 내일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기술적 실업’의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셋째, 소비생활 양식의 변화와 부동산 시장이 침체이다. 중국인들의 개인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약 70%)을 차지하는 것이 부동산이다. 그러나 수년간 지속된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도산 위기와 거래 절벽 그리고 주택 가격 하락은 중산층의 자산 가치를 폭락시켰다. 자산 가치 하락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져 가게들이 지갑을 닫게 했고, 사회 전체가 ‘소비 위축의 악순환’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중국인들의 소비생활이 ‘저소비’ 기조로 전환되면서 과시성 소비보다는 ‘버티기와 축소 소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서비스 방면의 소비는 조금 늘어났지만, 고가 상품과 부동산 그리고 결혼 관련 지출은 줄어들었다. 특히 청년층에서 결혼과 주택 구매를 지연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고단한 현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처럼 사방이 막힌 듯한 현실 속에서 중국인들은 마냥 절망만 하고 있거나 포기하고 드러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런싱은 ‘개인의 회복탄력성’뿐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정책 그리고 문화와 정체성 전반을 함께 바꿔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단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정책과 제도적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청년 실업 해소와 안정적 고용 확대가 이루어 져야 한다. 과학기술, 인공지능(AI), 그린 산업 같은 분야에 투자하되 동시에 청년층에게 안정적 고용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예: 공공 부문 확대, 중소기업 인센티브, 비정규직 보호 법제 강화)가 필요하다. 또한 주거, 교육, 의료 등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교육비와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런싱의 기초가 되는 안정적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여 실업수당, 심리상담, 취업 알선 재교육 프로그램 등은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경제와 노동 구조의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노동자 중심의 ‘탄력적 고용’이 도입되어야 한다. 단순한 ‘버티기’가 아니라 휴직, 교육, 전환 지원이 가능한 ‘탄력적 전환’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실직·노동자에게 기술 재교육, 직업 재배치, 약간의 급여 지원을 제공해 단순히 버티기가 아니라 ‘성장과 회복’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또한 플랫폼과 디지털 노동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우버, 배달, 콘텐츠 플랫폼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노동시간 규제 등을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버티는 플랫폼 노동’을 ‘안정적 노동’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심리적·문화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먼저 회복탄력성 교육과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으로 학교, 직장, 커뮤니티에서 ‘스트레스 대처 전략’, ‘자기 효능감 회복’,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 구축’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버티기’에 대한 긍정적 재정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견디면서 자신을 회복, 성장시키는 과정’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언론, 교육, 문화 콘텐츠에서 런싱을 더 긍정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권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개인적으로 바른 현실 인식과 목표 재설정이 필요하다. 한꺼번에 ‘완벽한 성공’을 이루도록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버티면서 전환할 수 있는 단계적 목표’를 세우는 것이 회복탄력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1년 안에 1등급 직장이 아니라 안정적 생활, 기본적 건강, 최소한의 여유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친구나 동료, 가족과의 공유를 통해 지지기반을 만들 수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커뮤니티 참여는 ‘혼자 버티는 것’을 ‘함께 버티는 것’으로 바꾸어 주며, 이는 심리적 회복탄력성을 크게 높인다. 자기 회복을 위해서 규칙적인 수면, 운동, 휴식을 가져야 하고, 간단한 취미 생활과 문화 활동(예: 음악, 독서, 산책)은 런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참된 ‘런싱’의 방향성
중국 사회를 휩쓴 이 런싱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를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온몸으로 써 내려간 ‘생존의 철학’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진정한 삶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 런싱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먼저 맹목적 버팀을 넘어선 ‘유연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무조건 대도시의 고연봉 일자리나 공무원이라는 하나의 정답만을 고집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버팀은 런싱이 아니라 고집일 뿐이다. 눈높이를 낮추고 지방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거나, 자신만의 고유한 틈새 스킬을 개발하는 유연성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개인적 고립’을 극복하고 ‘연대의 런싱’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 청년들의 생존법은 자칫 각자도생과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진정한 회복탄력성은 혼자만의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휴식하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과 소박하게 소통하고, 서로의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느슨하지만 단단한 공동체적 연대’가 형성될 때 현실의 벽을 넘을 힘이 생긴다.
 
그리고 사회적 차원의 ‘안전망 구축’이 동반되어야 한다. 개인이 아무리 인내력을 발휘해서 버틴다 한들, 구조적인 압박이 한계를 넘어서면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국가와 사회는 청년들에게 ‘알아서 버티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과학과 기술 변화에 따른 재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하며, 중산층의 주거 안정을 돕는 구체적인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런싱’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일 뿐 아니라 그러한 힘을 어떤 사회 구조 속에서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건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회인지, 아니면 구성원을 과도하게 ‘억지로 버티게’ 만드는 사회인지가 갈라지는 지표가 된다. 런싱은 척박한 비바람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재목이 꺾이지 않고 자라나듯,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시대의 파도 앞에서 ‘유연하게 휘어지되 절대 부러지지 않는 인간 존엄의 힘’을 뜻한다. 비록 지금의 중국 사회가 고단하고 힘들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내실을 다지면서 마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질긴 생존력은 머지않아 그들의 삶을 다시 온전하고 성숙하게 일으켜 세우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 ♣

* 이 글은 퍼블릭시티, 제미나이, 바이두의 자료들을 참고하였다.







♣ 사진 출처 | (위) 픽사베이 합성 

♣석은혜 | 본웹진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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