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이후이(邵藝輝, 1991〜)가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2024년 11월 중국에서 상영됐다. 2025년 제38회 중국영화제 진지장(金雞獎)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여우주연상 그리고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사오이후이가 베이징영화대학을 졸업하고 각색하고 연출한 영화 《애정신화(愛情神話)》는 2022년 제35회 진지장에서 최우수 각본상과 편집상을 수상하여 주목받았다. 《허스토리》는 감독의 세계관을 잇는 《애정신화》의 연작이다. 더우반(豆瓣) 평점 8.1점을 기록한 《애정신화》(2021)는 쉬정(徐崢)이 연기한 ‘라오바이(老白)’를 중심으로 상하이 중년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허스토리》는 더우반 평점 9점대의 호평을 받았다.
이혼한 왕톄메이(王鐵梅, 宋佳 분)는 딸 왕모리(王茉莉, 曾慕梅 분)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이웃 샤오예(小葉, 鍾楚曦 분)를 알게 된다. 왕톄메이는 오랜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뉴미디어 회사의 편집장으로서 라이브 스트리밍 영업까지 맡고 있다. 팝(Pub)에서 밴드 보컬인 샤오예의 소개로 드러머 샤오마(小馬, 章宇 분)를 알게 된다. 전 남편(자오유팅, 趙又廷 분)은 일본의 여성주의 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의 신서를 읽었다며 샤오마와 경쟁하며 재결합 의사를 밝혔다. 샤오예는 이혼한 안과 의사 샤오후(小胡, 任彬 분)와 사랑에 빠지지만 샤오후는 만남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왕모리는 ‘더 이상 환상을 갖지 않겠다’라는 제목의 글을 제출해서 초등학교 선생님과 엄마를 놀라게 한다.
영화는 싱글맘 왕톄메이가 딸 왕모리를 데리고 새로 이사한 집 베란다에서 술병 채 마시는 이웃 샤오예를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왕톄메이는 두 직장에서 기자 생활을 했지만 그만두고 반년 동안 실업 상태로 있다가 예전 직장 동료의 소개로 이커머스 플랫폼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취재, 기사 작성, 라이브 방송 진행은 물론 도서 판매 영업도 맡게 된다.
뉴미디어 회사의 편집장으로서, 싱글맘은 왜 늘 고통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비참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왕톄메이는 샤오마와의 개인적인 밀회 이야기를 인터넷에 게재하여 악평에 시달린다.
전남편과 새 남자 샤오마, 두 남성은 왕톄메이에게 호감을 사려고 서로 경쟁한다. 전남편은 먼저 이혼을 제기하였지만, 결혼 생활 중 워킹맘인 아내를 대신해서 자신이 가정주부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변명하였다.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유형의 전남편은 생활에서 무능력함을 드러내고 이혼 후 호출 기사로 일한다. 전남편은 아내 앞에서 샤오마와 경쟁하고 딸을 설득해서 재결합을 시도한다. 일본의 여성주의 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작가 유야마 레이코(湯山玲子)의 대화집 《쾌락상등(快楽上等!)》을 읽었다고 자랑한다. 두 남성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남성은 원죄가 있고, 젠더 문제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받은 자이며 남녀 문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샤오마는 왕톄메이의 모든 기사를 챙겨보았고, 자신이 도구로 쓰여도 함께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샤오예는 이혼남 샤오후와 사랑에 빠지는데, 샤오후는 그가 사귀는 다른 여성들처럼 샤오예를 생각한다. 샤오예는 사랑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과 대가를 치르는 스타일을 가리키는 유행어 ‘연애뇌(戀愛腦)’의 소유자이다. 샤오후도 남녀관계에서 자신의 불안정한 심리적인 상황을 인정하였다. 나중엔 샤오후는 샤오예의 진심을 알고 다른 여성과 관계를 청산하고 샤오예와 교제에 전념하겠다고 말한다.
샤오예는 경비에게 자신은 샤오후의 새엄마라고 거짓말하고 샤오후의 아파트를 들락거렸다. 하지만 샤오후는 샤오예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한다. 샤오후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샤오예는 자기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이 있다고 거짓말하며, 남녀 교제에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을 비하하거나 불리한 태도를 드러냈다.
청소년기에 찾아온 초경으로 바지와 소파에 자국을 남긴 사오예는 엄마에게 욕을 먹고 난 뒤부터 약을 먹는 습관이 생겼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불규칙한 달거리 때문에 고생하였다. 왕모리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피를 흘리는 것을 모르냐고 화를 냈다.
왕모리는 샤오예의 엄마가 샤오예의 눈이 예쁘다고 칭찬하지 않았냐고 묻자, 샤오예는 엄마에게 자신을 왜 자꾸 쳐다보냐고 오히려 욕을 먹었다고 대답했다. 샤오예의 엄마가 아버지를 그냥 물끄러미 쳐다본다고 해서 아버지는 엄마를 때리고 딸인 자기도 맞았다고 고백했다. 왕모리는 샤오예에게 눈이 너무 예쁘다고 자신을 계속 바라봐 달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샤오예는 눈물을 흘렸다. 치유의 눈물이었다.
샤오예는 소리를 통해 왕모리에게 엄마 톄메이의 일상을 상상하고 체험하게 하였다. 사오이후이 감독은 온갖 세상의 소리는 어머니의 소리라고 해석했다.
샤오예가 녹음하여 왕모리에게 들려준 소리는 그릇을 씻는 소리 등 일상의 장면들이다. 왕모리가 폭우가 내리는 소리라 여긴 것은 실은 엄마 톄메이의 달걀프라이를 만드는 소리이고, 사막에 비가 내리는 소리는 엄마가 딸의 신발을 솔로 닦는 소리, 회오리바람은 엄마가 청소기로 청소하는 소리, 번개 치는 소리는 엄마가 물기를 털어 옷을 빨랫줄에 말리는 소리, 판다가 대나무를 먹는 소리는 엄마가 주방에서 채소를 정리하는 소리, 방귀 소리는 엄마가 직장에서 물품 상자에 테이프를 붙이는 소리, 나무를 톱으로 자르는 소리는 엄마가 믹서기로 과즙을 만드는 소리, 드럼 소리는 엄마가 망치질하는 소리, 물소가 호흡하는 소리는 엄마가 일에 지쳐서 소파에 누워 코를 고는 소리, 돌고래가 바다에서 점프하는 소리는 엄마가 주방에서 토마토 등 채소를 물에 담그는 소리, 마그마 소리는 국을 끓이는 소리, 물수제비를 만드는 소리는 다오샤오몐(刀削面, 산시성 손칼국수)을 만드는 소리, 굴착기의 소리는 딸이 어질러 놓은 색연필들을 담아 넣어 정리하는 소리, 비행선 시동 소리는 직장에서 빔프로젝터를 작동하는 소리, 산사태 소리는 엄마가 직장에서 귀가하면서 사 온 과일이 담긴 종이봉투가 터져 과일들이 계단 아래로 마구 구르는 소리이다. 엄마의 일상은 세계의 일부이며, 그 소리는 아름답고 장엄하다고 해석했다. 엄마는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자연처럼 쉬지 않는다.
왕모리는 샤오예에게 이끌려 소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샤오마의 지도로 드럼을 배우게 된다. 샤오예와 샤오마의 밴드 공연에 왕모리는 드럼 연주로 참여한다. 왕모리는 연주를 마치고 나서 연주자보다 관객이 되는 게 편하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왕모리는 성인의 세계, 미래의 꿈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며 그다지 동경하지도 않는다. 때론 힘들어하는 어른을 위로하는 그의 모습은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워 안타깝게 보인다.
중국 감독들은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영화에 삽입하기를 좋아한다. 사오이후이 감독은 18세 이전까지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에서 생활했다. 영화에서 산시성의 면(麵)이 108종이나 된다고 말하고, 핑야오(平遙) 국제영화제(PYIFF)에 가 본 경험을 왕모리의 글쓰기 숙제에 넣었다.
또한 왕모리와 같은 반 남학생 장자신(張家新, 安棟·Anton 분)은 왕모리를 시기하여 다른 반 남학생을 시켜서 왕모리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다른 반 남학생은 왕모리가 자신과 같은 산시 타이위안 출신인 것을 알고 오히려 왕모리를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같은 고향 출신에 대한 애착과 코믹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여선생님(衛萊, 분)이 글쓰기에 뛰어난 왕모리를 국어 과목 반장으로 지정하자, 남학생 장자신은 왕모리가 지각하고 몰래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고발한다면서 반대했다. 선생님은 국어 과목 반장이 되는 것과 고발 내용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은 잊지 못할 여행에 관한 글쓰기 숙제를 내주었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외국 여행을 다녀온 듯이 말했다. 왕모리도 프랑스에 여행을 갔었다는 거짓말을 쓰려고 하였다. 하지만 샤오예와 엄마 톄메이는 고향 산시에서 보낸 추억을 쓰도록 권했는데, 왕모리는 외국 여행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 왕모리는 샤오예와 엄마 톄메이와 함께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를 보러 출국하려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가 바빠서 외국 여행을 한 번도 간 적 없다고 말한 딸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한 여행이다.
영화의 분위기나 내용은 여성주의 시선과 멀지 않다. 왕톄메이는 2022년 8월 출간한 영국의 작가이며 기자인 캐롤라인 크리아도 페레즈(Caroline Criado Perez)의 저서 《보이지 않는 여성(看不見的女性, Invisible Women)》을 라이브 방송으로 판매하였다.
영화 포스터에 두 여주인공이 유명 외국 여성을 코스프레한 모습이 나온다. 여성 인권, 장애인, 환경 문제 등에 대해 진보적인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와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이다. 두 여성은 병마의 고통을 이겨 내고 사회의 편견과 장애를 극복한 여성이다. 영화는 싱글맘에 대한 동정이나 비참한 이야기를 거부하고 그들이 삶을 즐기는 것을 비난하지 말고 포용해 주길 바란다.
왕톄메이는 손수 전등을 갈아 끼우고, 화장실과 에어컨을 수리하고, 야밤에 샤오예를 뒤따라오던 치한을 쫓아내고, 샤오예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한 줄 알고 남성인 샤오마 대신해 샤오예를 등에 업고 계단을 내려갔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여성 주인공은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 싱글맘 왕톄메이와 사랑을 갈구하며 사랑에 의지하는 샤오예이다. 두 사람은 겉으로 대조적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준다. 왕톄메이는 샤오예에게 자신은 여성이고 엄마이기에 완벽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먹거리자, 샤오예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영화의 끝에 왕모리는 엄마 왕톄메이가 기사에 썼던 말을 인용했다. “우리가 꽤 낙관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면, 비극을 직면할 수 있다.” 삶의 고난이나 고통 같은 어려움과 장애도 낙천적이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넘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허스토리》는 최근 보기 드물게 평론가와 관객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종종 여성 감독 자링(賈玲)이 연출하고 출연한 여성 권투선수 이야기 영화 《열랄곤탕(熱辣滾燙, You Only Live Once)》(2024)과 비교되고, 2023년 개봉한 미국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바비(Barbie)》의 중국 버전이라 불린다.
사오이후이 감독은 중국의 우디 앨런(Woody Allen)이라고도 불린다.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한 사오이후이는 이혼을 성인의 다반사로 여기고 싱글맘을 주목해 왔다. 사오이후이는 세 명의 여성 속에 자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말한다. 왕모리는 자신의 어린 모습이고, 샤오예는 과거 사랑에 빠졌던 모습이며, 왕톄메이처럼 인터넷에 글을 써서 물건을 판 경험도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해 네티즌에게 욕먹은 왕톄메이처럼, 감독도 과거에 전자담배를 파는 광고 문안을 썼다가 인터넷에서 악플을 경험했다고 털어놓는다.
왕톄메이의 새로운 직장 이름은 ‘하오둥시(好東西)’이다. 좋은 것이란 뜻이다. 영화에서 좋은 것은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여성이 주체이며, ‘좋을 호(好)’ 글자를 ‘여자(女子)’로 해석한다.
영화는 여성의 태도를 고수해 남성을 배격하거나 갈등을 조장하길 원치 않는다. 여성과 남성이 조화롭게 지내며 서로의 장점이 발전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런 관점은 왕모리에게도 나타난다. 왕모리는 샤오마에게 드럼을 배우고,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우고, 엄마에게 글쓰기를 배웠다.
영화의 마지막 삽입곡은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이다. 이 곡은 신명기 33장 27절에서 영감받아 작사 되었다. 어떤 두려움이나 슬픔 속에서도 주님의 강한 팔에 의지하여 안온과 평안을 얻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세상에서 고통받고 외로운 사람들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위로받기를 기원한다. ♣
♣김영철 | 한양대학교 글로벌문화통상학부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