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호의 기획 글 이야기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6년 상반기의 마지막 달인 6월이 열렸습니다. 6월이 올해의 여섯 달을 찬찬히 돌아보며, 하반기 여섯 달을 알차게 설계하는 값진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5월호의 기획 글인 “시진핑 시대의 중국 정치와 종교정책”을 읽으셨지요? 저는 이 기획 글을 읽으며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중국 정부가 교회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된 단편적인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그 밖의 매체들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5월호 기획 글은 교회를 비롯하여 중국의 종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과 실태 그리고 전망을 명료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소식들이 표피적(表皮的)이고 단편적인 것들이라면 이 기획 글은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교회에 관련된 소식들을 주로 듣고 있는데 이 기획 글은 중국의 종교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각 종교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 강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가정교회는 ‘높음’, 삼자교회는 ‘중’으로 분류하고, 신장(新疆) 지역의 이슬람과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는 교회에 대한 조치보다 훨씬 높은 단계인 ‘최고’라고 분류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종교 전반에 대해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밝힌 것인데 저는 ‘단호하게 밝혔다’라고 하고 싶네요.
중국복음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중국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기도의 제목들을 풍성하게 제공해 주는 내용이라고 여겨집니다. 좋은 글을 기고해 주신 김다니엘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중공의 기독교정책》에 대한 추억 저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 정치와 종교정책”을 읽으면서 42년 전인 1984년 초에 《중공의 기독교 정책》을 편역(編驛)해 발간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중국선교의 대가였던 고 조나단 차오(趙天恩) 박사가 소장으로 있는 중국교회연구센터에서 펴낸 《中共對基督敎的政策》을 번역한 것입니다. 초역은 화교 세 분이 하였고 윤문(潤文) 작업은 제가 담당했으며, 아르바이트생 한 분이 정서(定書)를 맡아 수고했습니다. 당시는 컴퓨터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이라 200자 원고지에 정서한 원고를 가지고 납으로 된 활자로 판을 짜서 기계에 돌려서 인쇄했습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종교 정책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단지 문화대혁명 당시 극심한 탄압을 받던 교회가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조금 숨을 쉬게 되었다는 것이 아는 것의 전부였습니다. 당시 제주도에서 송신되는 아세아방송(HLAZ)의 중국어 선교방송에 대한 중국 신자들의 반응(편지 통수)이 종교 자유 상태를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형편 가운데 던져진 《중공의 기독교정책》의 효용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이 책은 많이 보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선교에 뜻을 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서 삼자(三自)가 무엇인지, 통일전선이 어떤 것인지를 비로소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로부터 도움이 되는 책을 엮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반면 오역이나 실수로 여러 지적도 받았습니다. 《중공의 기독교정책》은 만청(滿淸) 시대인 1724년부터 난징회의(南京會議)가 열린 1980년 이후까지의 중공이 취한 종교정책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난징회의는 1980년 10월 6일부터 13일까지 중국 25개 성(省)과 소수민족들의 기독교 대표 176명이 참석한 중국기독교 제3차 전국대회의 약칭입니다.
여기에 대해 “시진핑 시대의 중국 정치와 종교정책”은 시진핑이 제18차 당대회에서 총서기로 선출되어 집권한 2012년 이후 지금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을 담은 글들이 시기에 따라서 이렇게 발표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두 사이에 30년의 공백이 있으나 그 기간의 일은 우리가 보고, 들었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는데요…. 저는 《중공의 기독교정책》과 5월호의 “시진핑 시대의 중국 정치와 종교정책”을 비교해 읽으면서 ‘종교정책의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외형적인 것은 바뀐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한국에서 중국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앞의 책에서는 ‘중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중국’이라고 하면 대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86서울아시안게임이나 88서울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송 진행자나 출연자가 ‘대륙’에 대해 말하면서 ‘중국’이라고 했다가 방송을 감독하는 기관에 지적받은 일들이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국호의 약칭이 중국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목을 많이 받는 것은 중국의 위상입니다. 중국이 어느 사이에 G-2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지난달 14일과 15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이 회담을 두고 하는 말들은 입장에 따라서 다르지만, 중국이 만만치 않은 자세였던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위상이 이렇게 달라졌으면 종교정책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지 여겨집니다. 5월호 기획 글에서는 ‘종교정책의 향후 전망’에 대해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데 현재의 현상이 유지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규제의 세부 항목이 늘어나고 자율 공간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이런 일들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려운 것은 디지털 감시가 정교해지고 AI를 통한 설교 내용 분석이 실시간으로 행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위상은 높아지는데 종교 박해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어울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제오픈도어선교회가 매년 정초에 세계 기독교 박해 지수(WWL, World Watch List)를 발표하고 있는데 중국은 언제나 박해 순위가 상위입니다. 2026년에도 중국은 미얀마, 말리, 부르키나파소(서아프리카의 내륙국)에 이어 박해 순위 17위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걸맞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종교정책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이번 6월호의 기획 글은 연초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천풍(天風)〉을 통해 살펴보는 중국교회 이슈들” 두 번째인데 이번 호에는 ‘2025년 4〜6월호를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이 기획 글에는 중국교회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반기에 베풀어주신 사랑과 관심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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