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논단 통신】 홍콩에서는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1980년대의 영화 《망향(投奔怒海, Boat People)》에서부터 1990년대의《첨밀밀(甜蜜蜜)》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민자들이 어떻게 정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다. 최근 아시아실천신학학회(亞洲實踐神學學會) 주최의 《오늘은 아주 기뻐야 해(今天應該很高興)》영화 상영과 신학대담회에서 홍콩기독교협진회(香港基督教協進會) 사무총장 펑수이(彭淑怡)는 ‘근심 없이 생활하는 것(安身立命)’은 찬란했던 과거를 붙잡거나, 악착같이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찬란했던 과거에 갇히지 마라 이 영화는 1990년대의 이민 물결을 조명한다. 감독은 캐나다 태생 중국계 이민 2세대(CBS: Canadian-born Chinese)로서 잊힌 이민 1세대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그들은 왜 특정 시공간에 갇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는가를 고민하게 했다. 펑수이 사무총장은 참석자들에게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다양한지 잊지 않게 일깨워 주었다. 또한 그녀는 이민자들의 삶의 터전은 뿌리째 뽑히고 지지 기반이 사라진 채,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꿈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녀는 “인간은 어디에서 뿌리를 내릴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어, 영화 속 한물간 가수 단(DAN)은 자기의 과거 속에 갇혀 있다. 그의 찬란했던 시절은 우상화가 되고, 그의 삶은 정체된 채로 “이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두 여배우는 ‘보이지 않는 동반자’나 체면치레를 위한 직업 등 도달할 수 없는 장래에 몸을 의탁하려는 듯하다. 이들의 목표는 분명해 보이지만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다. “노력만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펑수이 사무총장은 부동산 중개업 자격증을 땄지만 여전히 몸을 팔아야 하는 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배우 판(Fan, 리치훙(李綺虹) 분)과 연인을 만나면 몸을 의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사기를 당해 상처받고 더욱 외로워지는 또 다른 여배우 에바(Eva, 양스민(楊詩敏 분)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오늘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펑수이는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소년이 공장 관리자인 토니(Tony)의 집에 불쑥 들어와 놀라움을 선사한 것을 꼽았다. 토니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전문직에 큰 집에 살며 자리 잡고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심한 우울감을 느꼈다. 그런데 해고당해 실의에 빠진 그날 뜻밖에 불쑥 찾아온 소년에게서 서로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덕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며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여기서 펑수이는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의 말을 인용하여 ‘미래(푸투룸, futurum)’와 ‘임재(아드벤투스, adventus)’의 차이를 설명했다. ‘미래’는 구체적이고 선형적인 목표로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임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종말적인 힘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뚫고 들어오는 (break into, 打進)’ 것이라고 했다.
펑수이는 몰트만이 제시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기(hope against hope)’처럼 간절한 바람은 예상했던 모든 장래가 무너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하나님 안에서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앞으로 홍콩의 상황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홍콩인들은 어떻게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만 매몰되어 있을 것인지? 아니면 반드시 걸어가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미래에만 소망을 둘 것인지? 이는 마치 과거와 미래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처럼, 어느 쪽에도 진정한 희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꾸준히 노력하는 영성을 기르자 “우리는 차라리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현실에서 미지의 세계를 품을 것인가? 아니면 찬란했던 과거를 붙잡거나,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할 것인가?” 그녀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했는데, 어쩌면 진정한 소망은 ‘작지만 진실한 오늘’과 모든 순간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꾸준히 노력’하는 영성과 우리 자신의 주변에서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 그녀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인내하는 이러한 영성이야말로 우리가 가꾸고 기반으로 삼아야 할 영성이라고 믿는다.
펑수이는 참석자들의 나눔에 답하며, 영화가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라는 데 공감했다. 이민자들은 때때로 ‘양쪽 끝에 도달하지 못하고’ 무엇을 잡아야 할지 모르는데, 이를 두고 인류학에서 말하는 ‘경계인(間閾, liminality)’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이민이나 신분 및 소속감 형성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환경 자체가 이와 같다고 했다.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안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분별할 수 있어서 그 소망을 알아볼 수 있고, 그래서 원래 우리의 계획보다 더 진실함이 있는지를 잘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또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에게 생명력과 희망을 주는 순간들은 아주 많았는데, 그것은 모두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으며, 바로 이러한 것들이 지금, 이 순간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삶의 의미 찾기 이민 경험자인 린인(琳蔭)기금의 예잉산(葉穎姍) 회장은, 영화는 이민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 익숙한 환경과 자신의 일터와의 단절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은 사람들도 이민자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인간관계를 다시 형성해야 하고, 떠난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버림받고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더욱이 도시의 급속한 이주와 철거 그리고 재건은 남은 사람들과 지역마저 단절되었는데, 특히 직업적 단절은 더욱 심각하다. 교사, 변호사 그리고 회계사 등 전문직의 단절은 더욱 뚜렷해서 새로운 제도와 규례의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예잉산 회장은 의지할 곳도 없고, 집도 없는 사람이 되면 쉽게 시류에 휩쓸리거나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쉽다고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홍콩 사람들이 KOL(핵심 오피니언리더)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수년간의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홍콩이 이제는 ‘존재론적 공허’에 빠졌으며, 이는 은폐와 보상에 대한 욕구, 즉 권력과 돈 그리고 향락을 추구하고, 보복성 소비에 뛰어들거나 탐닉하는 행동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유의미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가라고 격려하며, 그래야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임은 지난 3월 1일 가오셴(高先) 영화관에서 열렸다. ♣
♣사진 설명 | (왼쪽부터) 린인(琳蔭)기금 회장 예잉산(葉穎姍), 홍콩기독교협진회(香港基督教協進會) 사무총장 펑수이(彭淑怡) ♣출처(사진 포함) | <시대논단(時代論壇)> (2026/3/31) ♣번역 | 공유호·중국어문선교회 협력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