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분류보기 > 전체보기 
북쇼핑
2026.4.3  통권 284호  필자 : 원핑(文平)  |  조회 : 1594   프린트   이메일 
[기획]
〈천풍(天風)〉을 통해 살펴보는 중국교회 이슈들 _2025년 1~3월호를 중심으로

【필자 주】〈천풍〉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이 두 기관을 중국기독교양회라고 통칭함, 이하 ‘양회(兩會)’라고 약칭함)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이다. 1945년에 창간되었고 1966년에 정간되었다가 14년이 지난 1980년에 복간되었다. 현재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행되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기독교 잡지인 〈천풍〉은 양회 본부가 소재한 상하이에서 출판되며 간행물 번호는 ISSN 1006-1274이다. 〈천풍〉은 현재 ‘교계 뉴스(中國基督敎新聞)’, ‘편집자의 권두언(卷首語)’, ‘종교정책 관련 특별기고(特稿欄)’, ‘설교문(溪水邊)’, ‘특집 토론의 장(衆議苑)’, ‘삼자교회 역사 관련 문장(求索篇)’, ‘찬양시 및 신앙 에피소드 등 문학 작품(香花畦)’, ‘신앙 간증(見證會)’, ‘교회 사역 관련(事工坊)’, ‘신앙생활 관련(守望角)’, ‘신앙과 생활(耕犢圃)’, ‘목회자 경험담(自牧園)’, ‘심리 상담 관련(守心亭)’, ‘중보기도(祈禱屋)’, ‘국내 사회 뉴스(新聞眼)’, ‘독자 질의응답(回應壁)’ 등 다양한 코너로 이루어져 있고, 매회 분량은 65페이지이다. 주제들이 포괄적이고 중국 기독교인들의 영성 생활에 근접하여 중국 기독교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기독교 신학사상의 정립과 발전에 대한 논의들도 담고 있어서 중국교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고 종합적인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다. 


필자는 〈천풍〉 2025년 1~3월호의 ‘특집 토론(衆議苑)’ 코너에 게재된 특집 주제와 그 토론 내용의 요약을 통해 중국 기독교의 최근 이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25년 1월호 ― 系統推進基督敎中國化走深走實 (一): “道成肉身”

〈천풍〉 2025년 1월호의 토론 주제는 ‘기독교 중국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게 그리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데 있어서 ‘성육신(道成肉身)’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중국화라는 시각으로 중국교회의 특색있는 ‘기독론’을 정립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라고 밝힙니다. 그리하여 1월호는 2편의 글을 실어 ‘성육신’과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라는 시각으로 우수한 중국 전통문화와 결부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이해하고 중국 기독교의 ‘기독론’을 해석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광둥협화신학원(廣東協和神學院) 교학실 주임 페이롄산(裴連山) 교수의 “중서 문화 만남에서의 성육신(中西文化會遇中的道成肉身)”입니다. 이 글은 칼 바르트의 “신학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라는 명언으로 시작하면서 기독론이 신학의 중심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학 담론에서 기독론을 주제로 토론할 때 흔히 그리스도의 위격(位格, Person), 사역 및 구속의 공로에 집중하였음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요한복음>의 서두로부터 시작하여 중국 전통문화와 결합하여 토론하고자 합니다. 

첫째, 육신이 되신 ‘로고스’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본래 이성, 법칙, 이치의 뜻이 있는데, 중국어로 ‘도(道)’라고 번역한 것은 ‘거룩한 말씀’의 뜻으로 근원성과 창조성을 강조하고 우주의 이성과 심지(心智)를 가리킵니다. 그 때문에 ‘도’는 중국 전통사상을 차용한 용어로써 중국 철학사상의 ‘궁극’ 개념이며 형이상학의 ‘본체’를 강조합니다. 

둘째, 중국 전통 중의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尊道而貴德)”입니다. 중국 문화에서 ‘도’는 시공을 초월하고 언어를 초월하는 궁극적인 단어입니다. 《도덕경》에서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고 말했듯이, ‘도’와 ‘덕(德)’은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의 자연 범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도’와 기독교 가치의 결합입니다. 기독교 교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곧 성육신한 ‘도’이며 추상적인 ‘도’의 화신(化身)입니다. 기독교의 선교사역들은 우리는 ‘전도(傳道), 강도(講道), 증도(證道), 청도(聽道), 행도(行道)’라고 부르는데 이 모든 것은 예수를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곧 중국 기독교인들이 중국 문화 전통 안에서 ‘도’에 대한 이해와 해석입니다. 

두 번째 글은 홍콩중문대학 철학박사이며 홍콩성공회역사연구센터 연구원 천루이원(陳睿文)의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 《민중 성가집》의 그리스도(人神和好: <民衆聖歌集>中的基督)”입니다. 이 글은 예술은 그리스도 성육신의 반영이라며 시작합니다. 그래서 ‘도’는 노래가 되고 시가 되며 건축이 되어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구체적인 함의를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중국 찬송가는 중국 상황에서 기독론에 관한 함의를 확실하게 반영한 좋은 예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오쯔천(趙紫宸)과 미국 선교사 판톈샹(范天祥, Bliss Wiant)이 공동으로 창작한 《민중 성가집》입니다. 이 찬송가들은 자오쯔천이 자신의 중국 기독인들 종교·문화·생활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하여 작사한 것으로써 자오쯔천의 신학사상과 그의 기독론 이해를 반영합니다. 특히 ‘성자 찬송(聖子歌)’, ‘선한 목자 찬송(好牧人歌)’, ‘구세주 찬송(救世歌)’, ‘존귀한 주님 찬송(尊主歌)’, ‘주님 사랑 찬송(愛主歌)’ 등 다섯 곡이 자오쯔천의 초기 기록론에서 예수에 대한 ‘인간이면서 하나님(인이신)’이라는 인식을 가장 분명히 반영한 찬송가입니다. 

‘존귀한 주님 찬송(尊主歌)’에서 자오쯔천은 ‘자비, 유정(有情), 용감, 총명, 체량(體諒), 온유, 청결, 공평’ 등 단어로 인간 예수를 묘사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오쯔천 마음속의 예수 형상은 ‘혈육(有血有肉)’을 가진 인간입니다. 자오쯔천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나를 이끈 것(吸引)이 아닙니다. 반대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예수가 철저한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자오쯔천은 예수의 인격을 특별히 부각하면서 ‘인애’와 ‘평등’으로 예수를 중국의 문화 및 철학의 모범적 형상으로 구성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본받아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법신을 드러내 보이시어(垂示法身, 불교 용어) 우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중 성가집》의 찬송가는 음악적으로 중국화한 기독론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중국 기독교인들의 삶의 경험과 종교적 경험 그리고 음악적 경험과 융합시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神人和好)’를 중국 기독교인들의 생명 안에 불어넣어 간증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2025년 2월호 ― 系統推進基督敎中國化走深走實 (二): “道成肉身”

〈천풍〉 2025년 2월호의 토론 주제는 1월호에 이어 ‘기독교 중국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게 그리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데 있어서 ‘성육신(道成肉身)’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중국화라는 시각으로 중국교회의 특색있는 ‘기독론’을 정립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라고 밝힙니다. 그리하여 2월호는 2편의 글을 실어 ‘성육신’과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라는 시각으로 우수한 중국 전통문화와 결부시켜 하나님의 임재를 이해하고 중국 기독교의 ‘기독론’을 해석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진링협화신학원(金陵協和神學院) 부교수 톈퉁신(田童心)의 “‘도의 성육신’의 목적은 ‘특별히 진리를 위한 간증’(道成肉身的目的是特爲給眞理作見證)”입니다. 이 글은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할 때 예수의 대답인 요한복음 18장 37절 말씀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를 서두에 인용하면서 예수가 친히 언급한 기독론을 분석하였습니다.

첫 번째 화두는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전에 진리는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운행하며 계시하였는가?”입니다. 이 화두는 주로 ‘양심의 비밀(良心的奧秘)’에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간에,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부르시는데, 이것이 곧 인간 양심의 비밀입니다. 성육신이 이루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양심에 일반계시를 주셨기에 이스라엘 민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전통문화 체계 안에 하나님의 일반계시가 담겨 있습니다. 

두 번째 화두는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전에 진리를 따라 살기로 원하는 세상 사람들은 왜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내려오심의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입니다. 이 화두는 주로 ‘양심의 마태 효과(良心馬太效應)’에 관련된 것입니다. ‘양심의 마태 효과’란 예수의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듯이 착하고 좋은 양심을 가진 마음의 밭에는 반드시 복음의 결실을 보게 되고, 그 양심에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화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육신 목적이 진리를 위한 간증임을 알았다면, 이제 문화적 차원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계시는 무엇인가?”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계시는 중국 전통문화도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시는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전할 때 전통 미덕(美德)을 긍정하며 진리를 행하는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계시는 양심의 비밀과 양심의 마태 효과는 우리에게 서방 전통 신학의 ‘인성의 전적인 부패,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대해 질의(質疑)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글은 홍콩 훙언(宏恩)기독대 교수 우쯔밍(吳梓明)의 “중국 기독교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기: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중국화(講好中國基督敎的故事: 從道成肉身的角度看基督敎中國化)”입니다. 이 글은 먼저 진링협화신학원의 왕웨이판(汪維藩) 교수의 발언을 빌려, 기독교 중국화는 ‘성육신(Incarnation)’의 관점에서 기독교가 서구의 틀을 벗어나 수천 년의 전통을 가진 중국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와, 중국 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함께하며 그 토양에서 자라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합니다. 

첫 번째로 중국 문화와의 만남과 적응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기독교가 중국 사회와 어떻게 호흡해 왔는지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를 제시합니다.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交友論)’은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진정한 우정을 쌓는 ‘문화 적응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1927년 난창봉기(南昌起義) 당시 훙다오교회(宏道堂)의 류핑겅(劉屏庚) 목사가 자신의 사택을 허룽(賀龍) 장군에게 지휘소로 제공했던 사례를 들며, 교회가 민족의 역사적 사건 속에 깊이 관여했음을 강조합니다.

두 번째로 애국과 애교(愛敎)의 조화입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성공회의 로건 루츠(Logan Roots, 吳德施) 주교와 저우언라이(周恩來)의 깊은 우정을 언급하면서 기독교 신앙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중국 기독교’는 단순히 자립·자양·자전(삼자 원칙)하는 교회를 넘어, 중국의 역사와 사회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결국 기독교 중국화란, 중국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요 1:14)”라는 진리를 중국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증명해 내는 과정이라고 요약합니다. 

2025년 3월호 ― 系統推進基督敎中國化走深走實 (三): “道成肉身”

〈천풍〉 2025년 3월호의 토론 주제는 1, 2월호에 이어 ‘기독교 중국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게 그리고 내실 있게 추진하는 데 있어서 ‘성육신(道成肉身)’에 관한 것입니다. 3월호는 3편의 글을 실어 ‘성육신’과 ‘하나님의 은혜’라는 시각으로 우수한 중국 전통문화와 결부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이해하고 중국 기독교의 ‘기독론’을 해석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글은 중국기독교협회 부회장, 푸젠성기독교삼자애국운동회 주석, 푸젠신학원 원장웨칭화(岳淸華)의 “성육신, 기독론의 중국화 해석(道成肉身: 基督論的中國化闡釋)”입니다. 이 글은 ‘성육신과 중국 문화의 대화’는 요한복음 1장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의 성육신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에 근거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교리가 중국의 근본적 사고방식인 도가(道家) 전통과 결합하여 ‘중국화한 기독론’을 세우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는 성육신과 도가의 ‘허성(虛性, 비움)’입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의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그리스도의 비움(Kenosis)’은 단순히 신성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영광과 특권을 내려놓으신 사랑의 결단입니다. 도가에서 ‘도(道)’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비어 있음(虛)’을 본체로 삼아 만물을 화생(化生) 시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신성을 스스로 제한하고 육신으로 오신 것은 도가에서 말하는 ‘비움으로써 만물을 살리는 원리’와 사상적으로 일치합니다. 

두 번째는 성육신과 도가의 ‘유성(柔性, 부드러움)’입니다. “십자가의 역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굴욕 속에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사 53:7). 그러나 이 연약함은 죄와 죽음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유능승강(柔能勝剛)’, 즉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지극히 견고한 것을 부린다고(43장)” 했습니다. 또한 나라의 치욕과 재앙을 짊어지는 자가 진정한 왕이 된다고 말합니다(78장). 그리스도의 희생은 무력이 아닌 사랑의 ‘부드러움’으로 인류의 마음을 꿰뚫는 힘을 보여주며, 이는 도가의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라는 원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성육신과 도가의 ‘덕성(德性, 도덕적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도우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다투지 않고 소리 내지 않으며(마 12:19) 오직 사랑의 행동으로 세상을 인도하셨습니다. 노자는 ‘부쟁지덕(不爭之德)’, 즉 ‘선한 군사는 무용을 뽐내지 않고, 잘 싸우는 자는 노하지 않으며, 잘 이기는 자는 다투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기독교 구원의 특징인 ‘부쟁(不爭, 다투지 않음)’의 정신과 상통합니다. 《도덕경》 54장은 수신(修身)에서 천하(天下)까지, 즉 덕을 몸, 집, 마을, 나라를 거쳐 천하까지 넓혀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의 생명으로 온 인류를 무조건 먹이심으로써 이 보편적인 덕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기독론의 중국화 해석은 도가의 ‘허(虛)’, ‘유(柔)’, ‘덕(德)’ 개념과의 대화를 통해 성육신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시도는 기독교 신앙이 중국 문화권 안에서 더 깊이 수용되고 전파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두 번째 글은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종교연구원 원장 유빈(游斌) 교수의 “성육신과 ‘실’의 신학(道成肉身與‘實’的神學)”입니다. 이 글에서 유빈 교수는 기독교의 성육신 신앙이 세계의 ‘실재성(實在性)’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수용하는 종교적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첫 번째, 성육신은 ‘실(實)’의 신학을 위한 기초입니다. 성육신 신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경세무실(經世務實, 세상을 다스리며 실제적인 일에 힘씀)’의 하나님임을 보여줍니다. 그 때문에 신학의 방향성에 있어서 신학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에서 출발하여 추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성도의 ‘사회적 실천’으로 향하는 ‘사실을 지향하는 신학(面向事實的神學)’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신앙의 목적지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의 구체적인 ‘생활 실천’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경세무실’의 하나님은 곧 역사적 사실로서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세기 지중해 동안의 유대 지역에서 활동한 구체적인 시공간 속의 역사적 인물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실제로 경영(經世)하시는 분임을 증명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신 사실에 대한 증언입니다. 여기서 ‘실(實)’은 단순히 일어난 사건(事件)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진리(眞理)가 결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으며, 피조 세계는 허상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대상인 ‘실존(實存)’입니다.

세 번째, 생활 실천으로 산상수훈과 주기도문을 재해석해야 합니다. 유 교수는 성육신 신학이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윤리적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먼저는 산상수훈과 사회 질서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습니다(마 5:17∼18). 그리스도인은 사회와 인륜의 질서를 인정하고, 공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봉사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주기도문의 가치 구조입니다. 주기도문의 ‘앞선 세 가지 간구’는 하늘로부터 받은 신성한 사명을, ‘뒤의 네 가지 간구’는 인간의 현실적 필요(일용할 양식, 용서, 구원 등)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신앙이 하늘의 가치와 땅의 실재를 어떻게 조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실’의 구조입니다.

세 번째 글은 진링협화신학원 교수 양천시(楊晨曦) 교수의 “성육신에서 신성한 화해에 이르기까지-딩광쉰 신학사상의 중국화 실천(從道成肉身到神聖的和解-丁光訓神學思想的中國化實踐)”입니다. 이 글은 성육신 교의는 하나님과 세계, 은혜와 자연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딩광쉰(丁光訓) 주교의 신학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친교(Fellowship of Love)’ 모델을 통해 중국 사회 내에서 교회가 ‘신성한 화해’를 이루는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첫 번째로 딩광쉰 신학의 구조와 방법을 요약합니다. 딩광쉰 주교는 20세기 후반 중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로, 그의 신학은 단순히 서구 신학을 옮겨온 것이 아니라 중국의 특수한 정치·사회적 상황 속에서 탄생한 ‘상황신학(Contextual Theology)’입니다. 그는 무신론 정권하의 중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사회와 적응하고 소통할 것인가를 평생 고민했습니다.

두 번째로 성육신은 ‘사랑의 정체성’과 ‘죄와의 분리’입니다. 딩(丁)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와 ‘동일시(Identification)’되셨지만, 동시에 인간의 죄와는 ‘분리’되셨다는 예수의 이중적 관계에 주목합니다. 1940년대 항일 전쟁의 어두운 시기, 그는 성육신한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중국 민중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에서 ‘고난 속의 임재’라는 위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우주적 그리스도는 원죄보다 큰 ‘원천적 은혜(原恩)’를 드러냅니다. 딩 주교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단순히 죄에 대한 부정을 넘어, 창조된 세계 전체에 대한 긍정, 즉 ‘은혜의 보편성’이라고 보았습니다. 딩 주교의 ‘원천적 은혜’ 사상은 “아담의 타락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주신 은혜의 영향이 훨씬 크다”라고 강조하며, 인류는 원죄 속에 살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원천적 은혜 안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게 하며, 인류가 평등과 단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선한 행위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조화를 이룬다는 ‘창조와의 일치’ 인식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천풍〉 2025년 1~3월호 이슈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 토착화와 혼합주의의 경계에 대하여
질문: 요한복음의 ‘로고스(Logos)’를 도가(道家)의 ‘도(道)’나 ‘비움(虛)’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친숙하게 전달하는 수용성을 높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기독교 고유의 ‘초월적 인격신’ 개념을 도가의 ‘무인격적 원리’로 희석하여, 신앙의 본질이 동양 철학화하는 혼합주의(Syncretism)의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2. ‘인성’ 강조와 ‘성’의 약화에 대하여
질문: 자오쯔천(趙紫宸)의 신학처럼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과 도덕적 모범을 강조하는 것은 유교적 전통을 가진 중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유리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신적 구원자보다 ‘윤리적 스승’으로 치중하여 묘사할 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대속적 죽음과 부활의 영성이 약화하는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3. ‘일반계시’의 확대와 ‘특수계시’의 독특성에 대하여
질문: 중국 전통문화 역시 하나님의 ‘일반계시’ 영역에 있다고 보는 관점은 타 종교 및 문화와의 평화적 공존과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양심의 비밀’이나 ‘전통 미덕’을 지나치게 긍정할 경우, 인간의 전적 부패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한 ‘특수계시’로서의 구원관이 상대화할 우려가 있는데, 이에 대한 신학적 안전장치는 무엇입니까?

4. ‘경세무실(經世務實)’과 정치적 도구화에 대하여
질문: 신앙을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생활 윤리’로 연결하는 ‘실(實)의 신학’은 교회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다만, 신학의 목적지가 ‘세상 속의 실천’에 과도하게 고정될 경우, 교회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보다 국가 정책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부작용)은 어떻게 제어해야 할까요?

5. ‘원은(原恩)’ 사상과 죄의 파괴성에 대하여
질문: 딩광쉰 주교의 ‘원천적 은혜(原恩)’ 강조는 무신론 사회 속에서 보편적 인류애와 연대를 끌어내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보다 은혜의 영향력이 크다는 논리가 자칫 인간 본성의 죄의 심각성과 회개의 필요성을 간과하게 만들어, 복음의 ‘심판과 회복’이라는 긴장감을 무너뜨릴 부작용은 없을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사진 출처 | (위) 픽사베이 (아래) 中国基督教网
원핑(文平) | 미도중국선교연구소 소장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