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황제(皇帝)라는 칭호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는 국가 최고 통치자를 그냥 ‘왕(王)’이라고 불렀을 뿐 황제라는 칭호는 없었다고 합니다. ‘황제’라는 두 글자는 진시황이 정한 것입니다.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승상 왕관, 어사대부 풍겁, 정위 이사 등이 모두 이렇게 아뢰었다. (…) ‘고대에는 천황, 지황, 태황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태황이 가장 존귀하다’라고 했습니다. 신들이 황공하옵게도 전호를 올리나니, 왕을 ‘태황(泰皇)이라 하고, 명령은 각각 ‘제(制)’와 ‘조(詔)’라고 하며, 천자가 자신을 부를 때는 ‘짐’이라고 하십시오.” 이에 진왕은 “‘태’ 자는 없애고, ‘황’ 자만 취한 다음 상고의 제(帝)라는 호칭을 덧붙여 ‘황제’라 부를 것이며, 다른 것은 그대들이 논의한 대로 하라”고 했다. 그 왕에 그 신하인지, 그 신하의 그 왕인지 아무튼 서로 죽이 잘 맞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 필자가 만났던 중국 역사에 관한 자료들과 사뭇 그 분위기가 다릅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사식(史式)입니다. 필명이나 가명이 아닌 본명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역사학자로, 태평천국사를 전공했습니다. 현재 중화민족사연구회 회장, 중국태평천국사연구회 고문, 중경사범대학 교수 등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중화민족사연구’, ‘태평천국대사전’ 등과 같은 방대한 편찬 사업을 주도했다고 알려집니다. 필자가 이 책에서 받는 느낌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내용과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과 지은이가 책에서 표현하는 문장들이 솔직하다 못해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황제가 대체 뭐 하는 물건인가?”, “진 이래 황제들은 모조리 다 도적놈이다!”, “성공하면 황제, 실패하면 도적”, “황제 제도는 소인배를 길러내는 온상이었다.” 등입니다. 아마 지은이가 이 책을 1세기 전에 썼다면 목이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책에는 황제 또는 황제나 다름없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진시황을 비롯해 유방과 항우, 조조, 유비, 아두, 수 양제 양광, 당 태종 이세민, 무측천, 당 현종 이융기, 후량 태조 주온, 남당 이후주, 송 태조 조광윤, 명 태조 주원장, 숭정제, 옹정제 등입니다. 세계의 흐름을 앞서 내다본 청년 황제인 숭정제나 갈등과 모순을 해소한 위대한 정치가 송 태조 조광윤, 아둔함 속에 숨진 지혜의 소유자 아두 등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간 제왕들도 있지만, 대부분 안 좋은 평이 붙어있습니다. 후세에 재앙을 남긴 간웅 조조, 속 좁고 변덕스러운 혼세마왕 수 양제 양광, 세상을 속여 명예를 도적질한 성군 당 태종 이세민, 양귀비를 죽인 냉혹한 카사노바 당 현종 이융기, 황제가 된 살인마 후량 태조 주온, 독창적인 문자옥(文字獄)을 자행한 얼뜨기 옹정제 등등입니다.
진시황(秦始皇), 평생 남에게 통제당하며 살았던 대황제 뜻밖입니다. 진시황이 평생 남에게 통제를 당하며 살았다고요? 진시황은 후세대에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받습니다. 진시황은 영명하고 위대하며, 중국 통일이라는 대사업을 완수한 만고에 유일한 황제이자 2천 년이 넘는 제왕사의 시조라는 칭송과 진시황은 포악한 전제 독재자의 대명사이며, 분서갱유(焚書坑儒) 같은 사상 탄압에다 지나치게 가혹한 형 집행으로 백성들을 해친 고금에 찾아보기 힘든 대폭군이었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진시황은 진나라 왕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韓)나라의 대상인(大商人)이자 투기꾼인 여불위(呂不韋)의 사생아에 불과했습니다. 그를 낳은 생모는 조(趙)나라 여인으로,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희(歌姬)였다고 합니다. 여불위가 고심 끝에 엄청난 투기 거래를 한 결과 그의 사생아는 귀신도 모르게 진나라 왕궁에 들어가 왕위에까지 오릅니다. 어찌어찌 13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진시황은 22살까지 여불위의 통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 무렵 진나라의 진짜 권력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여불위였습니다. 그러나 여불위에게 불똥이 튄 반란 사건 때문에 그는 정치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진시황이 중심을 잡고 국정을 운영했으면 좋았겠는데 여불위의 영향력이 너무 강했던 탓에 다시 틈을 보입니다. 그 틈새에 이사(李斯)라는 인물이 침투합니다. 이사는 산전수전 다 겪고 고생 끝에 한 단계씩 고위직에 올라 권력을 차지한 자수성가의 전형이었습니다. 진의 숱한 폭정들이 명목상으로는 진시황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이사가 연출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이사의 성정(性情)을 짐작해 볼만한 그림이 있습니다. 이사는 순자(荀子)의 제자였는데 순자 곁을 떠나면서 서쪽 진나라로 가서 부귀영화를 구하겠다는 말을 남깁니다.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없으며, 빈궁함보다 더 심한 슬픔은 없습니다.” 그 후 순자는 권세와 이익에만 급급한 제자가 못마땅했고, 장차 결말이 좋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여불위의 후광을 입고 진시황 측근이 된 이사는 제후들을 관리하면서 뇌물 아니면 암살로 처리합니다. 그러니까 내 편이 된다면 살려주고 말을 안 들으면 죽이는 겁니다. 이사의 악행 중 한비자를 죽인 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군요. 이사와 한비자는 순자에게 배운 동창입니다. 그런데 진시황이 한비자의 책을 읽고 난 후 그를 높이 세우며 “아!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사귈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던 중 한비자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옵니다. 모사꾼 이사는 자신이 한비자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권력의 비단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한비자를 죽입니다.
분서갱유 내친김에 진시황 이야기를 더하겠습니다. 분서갱유는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를 땅에 묻는다’라는 뜻입니다. 법가 사상에 기반을 둔 통일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벌인 일입니다. 이사가 작정하고 나름대로 대담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실행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이사가 작성한 명령서는 살벌합니다. 진의 기록이 아닌 것은 모두 태워버리기, 《시경》, 《서경》 및 제자백가의 책들 모두 태우기, 이 책들을 입에 올리는 자는 저잣거리에서 사형, 옛것으로 지금을 비난하는 자는 모두 멸족시킨다. (…) 다만 불태워 제거하지 않을 서적은 의약서, 점복서, 나무에 관련된 서적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분서갱유에 대해선 자료마다 다르긴 합니다. 책(그 당시에는 죽간)을 불태우고 수백 명의 유생을 생매장했다고도 하나 후세 유학자가 꾸며낸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진왕조가 멸망하는 바람에 큰 불행을 비껴갔다고 합니다. 이사가 주장한 ‘분서’ 조치가 그대로 관철되었더라면 진나라 이전, 특히 춘추전국 이래 발전해 온 중국의 학술 문화는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분서 명령서가 발표되고 3년 뒤 진승(陳勝)이 대택향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진 왕조는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이사는 마침내 자신이 뿌린 씨를 거둬들입니다. 그는 통치 집단이 내분을 겪는 와중에 소인배 조고(趙高)의 모함에 걸려 전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은 함양시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부귀영화를 위해 천리를 멀다 않고 초나라에서 진나라로 달려와 정치적 도박에 모든 것을 걸었건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리고 결국은 진 왕조마저 거덜 내고 맙니다.
진 이래 황제들은 모조리 다 도적놈이다 황제가 대체 뭐 하는 물건인가? 이 책의 지은이 사식은 이렇게 답합니다. “괴상할 뿐 아니라 아주 나쁜 물건!”, 이 말은 일부러 과격하게 하는 말이 절대 아니라고 합니다. 경전에서 나온 근거를 가지고 하는 대답이라고 합니다. 역대로 좋은 교육을 받아 양심적이고 비교적 어진 황제도 얼마간은 있었고,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은 한 황제도 없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황제의 권력이 너무 크고 제약이 전혀 없는 데다, 소인배들의 유혹이나 사주에 빠져 멋대로 백성을 괴롭히고 나쁜 짓을 일삼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황제는 360가지 직업 중 하나로, 이미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고 여자를 강탈할 수밖에 없는 큰 도적놈으로 결정되어 있었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명말 청초의 일부 선각자들과 위대한 사상가들은 황제의 본질을 무자비하게 폭로하고, 나아가서는 맹렬하게 공격했습니다. 당견(唐甄)은《잠서(潛書)》에서 “진 이래 제왕은 모조리 다 도적들이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당견은 이 말 뒤에 스스로 주석을 달았다고 합니다.
“한 사람을 죽이고 옷감이며 양식을 빼앗는 자를 도적이라 한다. 그렇다면 천하 사람을 모조리 죽여 그 재물과 부를 차지하는 자를 도적이라 부르지 않고 뭐라 부를까?”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