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지난 3월 4일부터 12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렸다. 2026년 양회 공식 보고서, 리창(李強) 총리의 정부공작보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발언,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기자회견 등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시 주석과의 가상 심층 인터뷰를 구성해 보았다. 양회를 앞두고 인민해방군 장성 9명이 숙청되고, 올해는 향후 5년 중장기 경제계획인 ‘15·5(제15차 5개년(2026∼2030년)) 규획’의 첫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이번 양회에서 제시된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그 내부 논리로부터 묻고 들어보았다. 아울러 민감하게 여길 수 있는 종교 문제도 사전 협의 없이(?) 물어보았다. 따라서 질문은 날카로웠고, 대답은 최대한 시 주석의 언어로 재구성하려고 애썼다.
- 이번 양회의 특징 중 하나는 ‘법제화’입니다. 국가발전규획법, 생태환경법전, 민족단결진보촉진법 등 굵직한 법안들이 한꺼번에 올라왔습니다. 단순한 입법 정비입니까, 아니면 통치 방식의 근본적 전환입니까?
▲ 법(法)과 당(黨)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당의 영도는 법치의 적이 아니라 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조건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국가발전규획법 초안을 올린 것은 당이 지난 수십 년간 발전시켜 온 중장기 계획의 지혜를 법률로 고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숙한 방식의 법제화’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미국의 행정부는 4년마다 뒤집힙니다. 유럽은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수십 년이 걸립니다. 그러나 중국은 5년, 10년, 30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당이 있기 때문이고, 당의 의지를 법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예측 가능성과 집행력을 동시에 높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양회의 법제화는 통치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입니다.
-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법제화는 당의 통제를 더욱 촘촘하게 만드는 수단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법률의 언어로 당의 의지를 포장하면, 이의를 제기하기가 훨씬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어느 나라의 법이 그 나라 지배 집단의 의지와 무관한가요? 미국 헌법도 결국 당시 백인 지주 계급의 산물이었고, 그것이 200년이 지나도록 반복적으로 해석되고 확장됐습니다. 법은 권력의 도구이자 권력을 규율하는 틀입니다. 우리가 법제화를 추진하는 핵심 이유는 지방 간부들의 자의적 행동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중앙의 전략이 지방에서 왜곡되거나, 단기성과를 위해 장기 목표가 희생되는 문제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법으로 계획의 틀을 고정하면, 집행의 규율이 생깁니다. 이것은 통제의 강화가 아니라 책임의 명료화입니다.
- 이번 양회에서 시 주석께서는 해방군 대표단에 특별히 강한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당에 이심(二心)을 품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최근 군부 숙청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 군의 순결성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이것은 숙청의 언어가 아니라 건군(建軍)의 언어입니다. 군사 현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기술의 부재가 아닙니다. 충성심의 결여, 부패의 침투 그리고 권력이 군사력과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구조적 타락입니다. 우리는 이미 고위 장성들의 부패 사건을 통해 이것이 추상적 위험이 아님을 경험했습니다. 2027년 건군 10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15·5 군사건설 규획은 단지 무기체계의 목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건군(政治建軍), 즉 당의 지도가 군 내부에 살아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청사진입니다. 충성과 현대화는 모순이 아닙니다. 충성 없는 현대화는 쿠데타의 씨앗이고, 현대화 없는 충성은 공허한 구호입니다.
- 중국 자체 제작한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함, 오늘 8월 발사 예정인 달 탐사선 창어(嫦娥) 7호…, 중국의 군사·우주 역량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주변국들은 이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불안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역사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19세기에 중국은 강한 군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을 겪었습니까? 아편전쟁, 홍콩 할양, 난징 조약, 8개국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 우리는 ‘백년굴욕(百年屈辱)’이라고 부릅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이웃을 위협한다면, 왜 그 약한 나라는 강해지면 안 됩니까? 중국의 국방 현대화는 방어적입니다. 우리는 해외에 군사 기지를 세우고 다른 나라의 정권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반대하는 특정 국가가 수십 년간 해온 일입니다. 우리의 강함은 위협이 아니라 안정의 조건입니다. 강한 중국이 있어야 아시아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이란과의 전쟁으로 연기된 중미 정상회담이 오는 5월 열리는데요.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관세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진정한 협력이 가능할까요?
▲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예측 가능한’ 미국 정치가 중국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 이 모든 것이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이었습니다. 지금의 미국 일방주의는 혼란스럽지만, 역설적으로 그 혼란이 중국에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유럽이 흔들리고, 동맹국들이 불안해하고, ‘글로벌 사우스’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할 때, 중국은 일관성과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합니다. 미국의 5월 정상회담 제안을 우리가 거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화는 항상 유리합니다. 우리의 원칙만 명확하다면요.
- 그 ‘원칙’이 무엇입니까? 미국이 요구하는 것과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는 무엇인가요?
▲ 주권, 안보, 발전 이익, 이 세 가지입니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이며 내정입니다. 이 선에서 물러서는 일은 없습니다. 기술 패권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개발하고, 인공지능(AI)을 발전시키고, 우주를 탐사하는 것은 정당한 발전의 권리입니다. 이것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억누르려 한다면, 우리는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공중보건, 마약 밀수,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등 공동 이해가 있는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싸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한 이익이 침해될 때 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 이번 양회 정부공작보고에서 ‘대만독립 분리세력 타격’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지난 2024년 2월 대만공작회의 성명에서 “대만독립 분리주의에 대한 타격(打擊台獨分裂)을 처음 언급한 바 있었는데요. ‘반대’에서 ‘타격’으로의 수위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 언어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반대’는 의사의 표명이지만 ‘타격’은 행동의 의지입니다. 대만 민진당 정권이 대만독립의 노선을 계속 고수하고, 외부 세력이 이를 조장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더 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대응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본 방침은 평화입니다. ‘대만광복기념일’을 제정한 것은 군사적 위협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의 기억입니다. 1945년 일본 식민통치가 끝났을 때 대만은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법적으로 고정함으로써, 우리는 통일의 논리를 역사에서 찾는 것입니다. 총칼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와 법리로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것, 이것이 중장기 전략입니다.
- 하지만 군사적 옵션은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셨습니다. ‘평화통일’ 키워드도 3년째 생략되어 있고요. 우발적 충돌의 위험은 없습니까?
▲ 왕이 외교부장이 그 질문에 직접 답변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셨군요. 그 침묵은 의도적입니다. 전략적 모호성은 외교적 도구입니다. 우리가 모든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면 협상력이 없어집니다. 중국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합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이 두 가지 명제가 동시에 참일 때, 외부 세력이 함부로 도발하지 못합니다. 억지(Deterrence)란 바로 그것입니다.
- 2026년 경제성장률 목표가 4.5∼5%로 소폭 낮아졌습니다. 부동산 위기, 지방정부 부채, 청년 실업…,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서방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중국 경제는 정말 괜찮습니까?
▲ ‘괜찮다’라는 표현은 너무 안이합니다. 중국 경제는 거대한 구조적 전환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을 위기로 볼 것이냐, 성장통으로 볼 것이냐는 시각의 문제입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과정입니다. 지방정부 부채는 심각하지만, 중앙정부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은 우리도 깊이 우려합니다. 그래서 고용 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5%가 아닌 4.5∼5%를 선택한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더 이상 속도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일본이 고속 성장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한 것은, 품질 없는 성장의 대가입니다. 우리는 그 교훈을 배웠습니다.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 AI, 반도체, 바이오의약, 저고도 경제… 이것들이 다음 30년의 엔진입니다. 지금 우리는 엔진을 교체하는 중입니다. 비행 중에 엔진을 교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더 위험합니다.
-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이 2조 6천억 위안의 소비를 이끌었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결국 소비자의 미래 수요를 미리 끌어 쓰는 것 아닙니까? 지속 가능할까요?
▲ 타당한 지적입니다. 단기 부양책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우리도 압니다. 그래서 이번 15·5 규획에서 민생 지표를 7개나 배정한 것입니다. 사회보장체계를 완비하고, 장기요양보험을 전국화하고, 유연고용 노동자 2억 명을 사회보험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사람들이 미래를 덜 불안해합니다. 불안이 줄면 저축이 소비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진짜 내수 활성화입니다. 쿠폰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 중국은 4대 글로벌 이니셔티브(발전, 안전, 문명, 거버넌스)를 제시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은 “글로벌 사우스의 세계 경제 비중이 40%에 달한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이 꿈꾸는 새로운 세계 질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 제가 원하는 세계는 패권이 없는 세계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중국의 패권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단일 국가도 세계를 지배할 수 없고, 지배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다극 체제, 즉 여러 강국이 균형을 이루는 세계가 더 안정적이고 공정합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서방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프레임을 거부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발전의 권리, 자국 모델 선택의 자유, 그리고 진정한 다자주의입니다. 중국은 이 요구에 응답합니다. 아프리카에 전 품목 무관세를 제시하고, 인프라를 건설하고, 기술을 이전합니다. 서방이 ‘인권’을 조건으로 내세울 때, 우리는 조건 없이 협력합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지지를 받겠습니까?
- 그러나 일부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아프리카 투자가 새로운 형태의 신식민주의라고 비판합니다. 부채의 덫(Debt Trap)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 ‘부채의 덫’은 서방이 만들어낸 내러티브입니다. 데이터를 보십시오. 중국이 아프리카 채권의 몇 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습니까? 대략 12%입니다. 나머지는 누가 갖고 있습니까? 서방 상업은행과 다자개발기관입니다. 그들이 부채를 양산한 다음, 우리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설한 항구, 철도, 발전소가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것이 착취입니까, 발전입니까? 역사는 판단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 이번 질문은 예정된 것에서 빗나간 영역인데요. 하지만 이번 인터뷰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되어 종교 문제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중국 정부는 ‘종교의 중국화(宗教中國化)’ 정책을 공식화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철거, 가정교회 단속, 미성년자 종교 교육 금지, 성경의 국가 공인 번역 추진… 세계 기독교 공동체는 이것을 명백한 종교 박해로 간주하는데,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박해’라는 단어는 당신들이 가져온 단어입니다. 우리는 중국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 자유를 존중합니다. 현재 중국에는 약 3천만 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습니다. 물론 외부에서는 1억 명에 달하는 기독교 신자가 있다고 주장도 하죠. 중국에는 수만 개의 등록 교회가 있습니다.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고, 신앙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명확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종교는 중국의 법률과 사회주의 핵심 가치에 부합해야 합니다. 이것은 박해가 아닙니다. 이것은 주권입니다. 어떤 나라가 외국 세력의 지원을 받는 종교 조직이 자국 내에서 아무런 규제 없이 활동하도록 허용합니까? 미국조차 종교 단체의 세금 문제, 정치 활동 제한, 등록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 ‘주권’을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러나 구체적 현실을 보면, 후난(湖南)성·저장(浙江)성에서는 수백 개의 십자가가 강제 철거됐고, 등록된 교회에도 당 간부가 파견되어 설교 내용을 감시합니다. 성경에는 로마서 13장이 있습니다. 교회가 국가에 복종하라고. 그러나 국가가 교회 안에 들어와 무엇을 믿으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아닙니까?
▲ 성경을 인용하는군요.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역사를 인용하겠습니다. 19세기 서방 선교사들은 아편전쟁의 포화와 함께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복음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계지, 치외법권, 불평등 조약이 함께였습니다. 기독교는 중국 근대사에서 제국주의의 문화적 선발대로 기능했습니다. 이 역사를 중국인들은 잊지 않습니다. 십자가 철거 문제를 좁혀 이야기해 볼까요. 일부 지역에서 건축법 위반, 안전 기준 미달 구조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십자가가 포함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면적 탄압으로 묘사되는 것은 과장입니다. 등록 교회에 간부가 파견된다는 것,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시가 아니라 연락 체계입니다. 모든 대형 단체, 노동조합, 학교에도 당 연락원이 있습니다. 종교만 예외일 이유가 없습니다.
- 그렇다면 가정교회는 어떻습니까? 등록 자체를 거부당하거나, 등록 조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지하로 들어간 교회들입니다. 청두(成都) 이른비언약교회, 베이징(北京) 시온교회처럼 수천 명이 모이던 교회들이 강제 폐쇄됐습니다. 그 신자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 저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등록 제도는 중국의 사회 관리 체계의 일부입니다. 등록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법적 틀 밖에서 활동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국가도 그것을 무한정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부 지방 정부의 집행 방식이 지나치게 강압적이었던 사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앙 정부의 방침은 ‘종교의 중국화’이지 ‘종교의 말살’이 아닙니다. 관리와 박멸(消滅)은 다릅니다. 지방에서 이 선이 흐려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우리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 ‘종교의 중국화’의 핵심은 결국 종교가 당의 영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의 영도와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서 중국 기독교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 매우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솔직하게 답하죠. 왜냐하면 이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에서 종교와 정치권력은 긴장 관계에 있어 왔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교황과 황제는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선언되었지만, 낙태 문제, 동성결혼 문제, 공교육 문제에서 종교와 국가는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어느 사회도 이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방식은 명확합니다. 개인의 내면적 신앙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신앙이 사회 조직, 외부 세력과의 연계, 국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외부자 시각에서 보면 박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사회 안정의 수호라고 부르죠. 이 두 해석의 차이는 결국 가치관의 차이고, 그 가치관의 차이는 문명의 차이입니다.
-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 신앙을 갖고 계신지요?
▲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 우리는 유물론자입니다. 그것이 공식 입장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의 오랜 전통 사상 속에서 자랐습니다. 유교의 인(仁), 도교의 자연 순응, 불교의 인과응보. 이것들이 중국인의 사유 방식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종교가 사람에게 도덕적 나침반을 제공하고, 삶의 의미를 묻게 한다는 것, 그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어떤 신앙도 중국이라는 나라, 중국의 역사, 중국의 문화를 떠나서는 중국인의 영혼에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중국화’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외래 종교가 중국의 토양에서 중국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때로는 고통스럽다는 것, 저도 압니다.
- 한국 독자들을 위해 여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양회에서 왕이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한반도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인 침묵입니까?
▲ 침묵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무관심의 침묵과 배려의 침묵. 이번은 후자에 가깝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는 새로운 안정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FTA 진전, 공급망 협력, 디지털경제, 문화교류 복원 등에 공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공개 의제로 한국을 거론하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에 매우 중요합니다.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동북아 전체의 안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비차별적으로 대우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기대를 합니다. 호혜는 쌍방향이어야 합니다.
- 북한 문제는 어떻습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군이 파병된 이후 한반도 정세가 복잡해졌습니다. 중국은 북한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습니까?
▲ ‘통제’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된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은 동맹이지만, 북한은 독립적인 주권 국가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통제’한다는 서방의 내러티브는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북한 문제는 우리에게도 복잡한 딜레마입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우리도 원하죠. 핵무장 북한이 중국 국경 가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리스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 체제의 붕괴와 그로 인한 혼란, 미군의 압록강 접근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시나리오입니다. 오는 4월 중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의미 있게 논의되기를 우리도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이 진정성 있는 제안을 가지고 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 이 또한 예정에 없었던 질문인데요, 역사에 어떤 인물로 기록되고 싶으신지요?
▲ 중국이 가장 굴욕적이었던 시기로부터 가장 강했던 시기로 이행하는 그 전환점에 제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마오쩌둥(毛澤東)처럼 혁명의 아버지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처럼 경제의 설계자가 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 둘이 열어놓은 길을, 외부 압박과 내부 갈등 속에서도 걸어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이것이 구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경험한 것을 안다면, 이것이 얼마나 뼈에 사무친 열망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열망이 실현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이고, 저의 짐이고, 저의 영광입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 쳇지피티 작업 왕빈 | 중국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