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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4  통권 283호  필자 : 이일형  |  조회 : 1668   프린트   이메일 
[선교현장 이야기]
그저 ‘한국에서 온 목사’로만 여겨지는 듯한 때도

샬롬! 동역자 여러분, 평안하신지요? 가족들과 함께 복된 설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인도네시아에 사는 화인(華人)들에게 춘절(설날)은 한 해 중 가장 큰 명절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춘절을 2월 17일 하루만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화인은 춘절을 전후하여 짧게는 1주, 길게는 2주 정도 쉬며 고향을 방문하거나 가족들과 여행을 즐깁니다. 

화인들에게 춘절(Imlek; 인도네시아어)은 단순한 새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족과 함께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소중한 명절입니다. 그래서 지난 12월 한 달 동안 성탄절 예배와 행사들이 이어졌던 것처럼, 2월 한 달 내내 춘절을 기념하는 각종 포스터와 붉은 장식, 그리고 크고 작은 행사들로 도시 곳곳이 가득 찼습니다.

이처럼 화려하고 오랫동안 명절 분위기가 이어지는 데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과거 약 30년간(1965년~1998년) 중국 문화 활동이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중국어 사용 금지, 중국어 학교 폐쇄, 춘절 행사 금지 등이 이어졌던 그 시절의 아픔이 있었기에 오늘날 춘절은 단순한 명절을 넘어 화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자긍심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메단(Medan)은 인도네시아에서 화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가 중국인가?’ 싶을 만큼 중국풍의 춘절 분위기가 2월 한 달 내내 온 도시를 가득 채웠습니다. 상점, 시장, 마트와 백화점은 물론이고, 회사와 관공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춘절 행사와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 명절에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을 보낼 때는 대부분 귤이나 사과 상자를 보냅니다. 귤과 사과가 모두 중국에서 수입된 과일이기 때문인데, 춘절이 중국의 명절인 만큼 중국산 과일을 선물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설날 전날인 2월 13일 금요일에 춘절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메단의 모든 학교에서 비슷한 행사가 열렸을 것입니다. 이날은 학생들이 빨간 옷이나 전통 의상을 입고 등교하며, 사자춤 공연과 함께 학년별로 준비한 중국풍 무용과 댄스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연습한 끝에 무대에 섰습니다. 또한 춘절 음식을 직접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으며, 명절의 풍성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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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역하는 화인교회에서도 2월부터 로비와 예배당을 설 명절 분위기에 맞게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2월 17일 설날 당일 오전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설날에 가정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 화인교회에서는 온 교인이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이날은 모두가 중국풍 의상이나 붉은 옷을 입고 교회에 나옵니다. 

춘절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홍바오(红包, 한국의 세뱃돈)입니다. 춘절에 홍바오를 주고받는 것은 서로에 대한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어, 이곳에서도 매우 소중히 여기는 문화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전 교인에게 홍바오를 준비하여 나누어 주었습니다. 물론 큰 금액은 아니지만(1인당 한화 약 1,500원),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배 후에는 교인들이 아이들에게 홍바오를 건네주었는데, 우리 자녀들도 여러 교인에게서 홍바오를 받아 무척 기뻐했습니다. 

한국에 있지 않으니 세뱃돈을 못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홍바오를 받게 되니 너무 좋아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도 홍바오를 건네주신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받아도 되는 건지 망설였는데, 나중에 목사님께 여쭤보니 이곳에서 홍바오를 거절하면 오히려 무례하게 보일 수 있으니 감사히 받으면 된다고 알려주셔서, 그 이후로는 마음 편히 감사히 받았습니다.

설날 예배라고 해서 모든 교인이 다 참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향에 내려간 교인들도 있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행사와 모임에 간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보통 오전 예배 후에는 교회에서 점심을 함께하지만, 이날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예배를 한 시간 앞당겨 오전 9시에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감사하게도 메단 한인교회의 초대를 받아 특별한 설날 점심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설날 전날 손수 빚으신 만두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떡으로 끓인 떡만둣국 그리고 정성스러운 한국 음식들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 음식을 제대로 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따뜻하고 행복한 설날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설날 당일 교회에서 예배드린다고 했을 때, 제 마음속에 불평이 일었습니다. ‘이날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쉬어야 하는데, 한국처럼 가정에서 예배드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인 중에는 가족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집에서 혼자 예배드리기가 쉽지 않고, 가족 모두 교회에 다니는 가정이라도 가정예배에 대한 개념과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나니, 교회에서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오히려 믿지 않는 가족들을 교회로 초대할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이날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를 데리고 온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설날 예배를 통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그 씨앗이 믿지 않는 영혼들의 마음속에서 잘 자라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저는 화인교회 사역 안에서 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불평과 편견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이렇게 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할까?’, ‘왜 이것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문화와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고, 성경적으로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도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하면 교회가 더 성장하고 부흥할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견들을 섣불리 꺼내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교인들은 아직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것 같고, 선교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낯설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저는 그저 ‘한국에서 온 목사’로만 여겨지는 듯합니다. 아직 제가 어떻게 목사가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선교사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성도들과 나눈 적이 없습니다. 그런 나눔의 기회가 생기기를 기다렸지만 아직 그런 자리는 없었고, 목사님과 교인들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 제가 먼저 의견을 제시하거나 무언가를 바꾸자고 나선다면, 오히려 반감을 사고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화인교회에서 사역한 선배 선교사님들도 같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적어도 3년은 자기 것을 하려 하지 말고, 그저 지켜보고, 기다리고, 잘 버텨내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들렸던 그 말이 이제는 조금씩 마음으로 이해가 됩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사역을 할 수 없고,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마음속에 조급함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 마음들을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훈련을 통해 가르치고 이끌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나의 의(義)만을 드러내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지금은 내 생각과 경험 그리고 나의 힘을 내려놓는 시간임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선교하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제 안에 교만함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이 땅을 위해 기도하며 예배하는 자로서 서 있을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동역자 여러분의 관심과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 이일형 | MDC 화교감리교회 협력목사, 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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