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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4  통권 283호  필자 : 쑨빈  |  조회 : 1713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왕밍다오 목사와의 가상 인터뷰 _“교회는 누구의 것인가”

2026년 2월, 우리가 서 있는 이 시점에서 중국 가정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이름이 유난히 또렷하게 떠오른다. 바로 ‘중국 가정교회의 영적 아버지’로 불리던 왕밍다오(王明道, 1900∼1991) 목사다. 20세기 중국 현대사라는 격랑 속에서 그는 22년 10개월이라는 긴 수감 생활을 견디며, “교회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오늘날 중국 정부의 종교사무조례 강화, 온라인예배 통제, 청소년 신앙교육 제한, 그리고 디지털 감시체제는 교회의 존재 방식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 이때, 왕밍다오 목사의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우리를 향해 묻는다. “교회는 핍박을 받을 때보다 보호받을 때 더 위험하다.” 이 경고는 과연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가상의 인터뷰 형식을 통해, 그가 오늘 우리 앞에 서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상상해 본다. 


- 목사님은 대형 교회의 수장도, 화려한 학문적 명성을 가진 신학자도 아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중국 교회와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왕밍다오: 사람들은 가끔 나를 특별한 인물로 생각하려 합니다만, 나는 내 생애를 돌아볼 때마다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저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 했던 한 명의 문지기였을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의 성장 전략, 선교 전략, 조직 구조, 그리고 새로운 신학의 체계를 찾으려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훨씬 더 단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 하나입니다. “이 양 떼가 누구의 것인가?”

나는 내 평생, 이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든, 줄어들든, 칭찬을 받든, 모욕을 당하든, 이 질문은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네가 섬기는 이 교회, 이 사람들, 이 공동체는 누구의 것인가?” 내가 문지기였다는 말은, 그 문밖으로 다른 주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일이 내 사명이었음을 뜻합니다. 내가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문지기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도둑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 그 ‘단순한 진리’를 지키는 것이 오늘날에도 참 어렵습니다. 왜 핍박보다 ‘보호’가 더 위험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왕밍다오:  많은 이들이 핍박을 교회의 가장 큰 위험으로 생각합니다. 감옥, 고문, 재산 몰수, 예배당 폐쇄…. 분명 그것들은 실제적이고도 잔혹한 고통입니다. 핍박은 교회를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방식, ‘보호’라는 이름의 시험입니다. 핍박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 내는 리트머스 역할을 합니다. 환난 앞에서 이익을 따라온 사람들은 떠나가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던 이들이 남습니다. 고통은 교회를 상처 입히지만, 동시에 교회의 중심을 알게 됩니다. “너희가 진짜로 믿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보호막 아래 들어갈 때,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국가와 권력의 후원, 편의, 인정, 안정된 제도적 지위를 얻는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이 표현은 조금 부드럽게 바꿔주십시오.” “이 주제는 설교에서 너무 자주 다루지 마십시오.”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되도록, 복음의 톤을 조절해 주십시오.”

이렇게 조금씩, 교회의 야성은 사라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설교를 다듬고, 기도의 방향을 틀고, 양 떼를 향한 목자의 시선을 국가를 향해 돌아서게 만듭니다. 환난은 교회를 찢을지 몰라도, 보호는 교회의 주인을 바꾸려 듭니다.

1950년대 초, 삼자애국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중국 정부는 우리에게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보호할 것입니다. 서양 제국주의의 영향을 끊고, 독립된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습니다. 단, 국가의 관리 체계 아래 들어오십시오.” 많은 이들이 그 제안을 안전과 지혜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교회가 ‘보호’를 받는 대가로 주권을 넘겨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핍박의 시대에도, 보호의 시대에도, 질문은 동일합니다. “지금 이 교회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 결국 그 문제가 목사님의 체포로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왕밍다오: 1951년 시작된 삼자애국운동은 표면상으로는 “외세 결탁 금지”를 외쳤습니다. 서구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중국인 스스로 자립, 자전, 자치하는 교회를 세우자는 구호는 처음 듣기에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산당 체제 아래 교회를 두고, 신앙 공동체를 국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만들려는 시도였습니다. 나는 성경이 말씀하는 분명한 선을 보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경고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를 바꾸지 말라는 절대 명령입니다. 그 멍에를 함께 메는 순간, 교회는 복음을 체제의 장식품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삼자애국운동에 가담하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선택은 곧 나와 내 가족, 그리고 함께하던 성도들에게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1955년 나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감옥 생활은 나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탈진시켰습니다. 그러나 나는 감옥의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진짜 위기는 감옥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침묵하는 교회, 양심을 알고도 타협하는 지도자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이죠. 감옥은 내 몸을 가둘 수 있었지만, 교회의 주인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감옥 안에서 나는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왕밍다오, 너는 누구의 종이냐?”


- 현재 중국은 종교 법령을 강화하며, 등록제, 온라인 종교 활동 금지, 청소년 교육 제한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현대의 사역자들은 이 ‘법’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 왕밍다오: 국가는 법을 만드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 법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을 존중해야 합니다. 무법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과 양심 사이에는 반드시 분명히 그어야 할 선이 있습니다. 국가는 “언제, 어디서 모이는가”를 묻고, 질서 유지를 위해 일정한 행정 절차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 영역에서 우리는 지혜롭게 소통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모임 장소를 옮기거나, 형식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를 규정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복음의 핵심을 수정하라고 요구할 때,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라는 고백 대신 다른 충성을 요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행정은 어느 정도 법을 따를 수 있지만, 교회의 양심은 결코 법에 종속될 수 없습니다.

국가가 교회에 묻습니다. “너희의 최고의 권위는 누구인가?” 그때 교회가 주저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이미 교회는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법에 순종하는 시민이 되는 것과, 양심을 팔아 체제의 종교 도구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의 사역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법을 두려워하지 말고, 양심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는 것은 비극이 아닙니다. 양심을 버리고 자유를 얻는 것이, 진짜 비극입니다.


- 목사님은 감옥에서 한 차례 굴복하고 삼자회 가입 문서에 서명하셨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실패가 목사님께 어떤 가르침을 주었습니까?

▲ 왕밍다오: (잠시 침묵) 그것은 내 생애 가장 깊은 상처요, 가장 부끄러운 얼룩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감옥살이와 심문,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그냥 서명하고 나가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유혹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삼자회 가입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겉으로는 풀려나는 길을 선택했지만, 내 내면의 양심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렀지만, 나는 자신을 바라볼 때, 비겁한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그 고백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나를 ‘진실한 사람’으로 빚기를 원하셨습니다. 흠 없는 완벽한 인물로 기록되기보다, 실패 속에서 다시 진리를 붙드는 사람으로 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지도자의 가장 큰 시험은 차가운 감옥 바닥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양심입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침묵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교회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교회의 진짜 위기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한때는 거짓을 선택했으나, 다시 진실을 선택하도록 붙드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 다시 투옥된 후 1980년에 석방되셨지만, 끝까지 삼자회 가입을 하지 않으셨죠?

▲ 왕밍다오: 나는 1991년, 91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종으로만 살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중국 가정교회의 영적 순결성을 상징하는 인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이정표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보다 더 깊은 고난을 견뎌낸 신앙의 선배들이 많습니다. 이름 없이 감옥에서 죽어간 이들, 기록도 남지 않은 채 묘비도 없이 사라진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조금 더 알려졌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킨 무명의 성도 한 사람이, 세상에 이름을 남긴 지도자보다 더 귀할 수 있습니다.

내가 끝까지 삼자회 가입을 거부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게 남은 생애가 얼마나 길든 짧든, “나는 누구의 종이었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 고백 하나로 충분합니다.


- 워치만 니(倪柝聲, 1903∼1972)와 함께 중국교회의 두 축으로 자주 거론되십니다. 두 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왕밍다오: 워치만 니 형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사로, 교회의 영적 구조와 생명을 풍성하게 세우는 ‘건축자’였습니다. 그는 말씀과 영적 통찰을 통해,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교회 공동체를 세워갈 것인지를 자세히 도와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지도를 제공했습니다. 반면 나는 주로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타협을 감시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도성의 성벽 위에서 밤새 눈을 부릅뜨고, 적이 다가오는지, 문이 열려 있는지 살피는 사람 말입니다. 교회에는 생명을 공급하는 이도 필요하지만, 그 생명이 오염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이도 필요합니다.

교회의 구조는 영성을 담는 그릇일 뿐입니다. 구조 자체가 아무리 탄탄하고 정교해도, 그 안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텅 빈 껍데기입니다. 반대로 구조가 완전하지 않아도, 그 안에 거룩한 생명이 살아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자리, 즉 문지기와 파수꾼의 자리를 지키고자 했을 뿐입니다.


- 사무엘 램(林献羔, 1924∼2013)이나 장룽량(張榮亮, 1951∼) 같은 후대 지도자들의 사역을 어떻게 보십니까?

▲ 왕밍다오: 사무엘 램은 ‘인내’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는 수차례의 투옥과 감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고, “핍박이 부흥을 막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삶으로 증언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교회가 외적인 자유를 잃어도 내적인 생명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신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장룽량과 같은 이들은, 폭발적인 교회 성장을 이끈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의 사역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 가정교회가 전국에 확산하였습니다. 숫자가 늘고, 모임이 많아지고, 사역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 자체는 분명 축복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항상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축복이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양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거룩함이 거세된 대형 교회는 세상의 장터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는 적고, 프로그램은 화려하지만, 십자가의 정신은 희미해지는 교회 말입니다.

지도자가 숫자의 증가를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부터 교회는 위험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모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게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세웠는가”입니다. 한 사람의 거룩한 순종이, 백 명의 미지근한 종교적 열정보다 더 강력합니다.


- 한국교회는 중국선교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왔습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왕밍다오: 나는 한국교회가 중국을 위해 흘린 눈물과 기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한국 목회자와 선교사들과의 만남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중국 땅을 밟았고, 숨어서 예배드리는 성도들과 함께 울었으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그 헌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한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고난 없이도 거룩할 수 있습니까?”

환난 가운데서의 거룩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서 피어난 신앙입니다.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든가, 절망에 무너지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풍요 속의 거룩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시험입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습니다. 안전, 성공, 인맥, 영향력, 편안함…. 그 모든 것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환난을 견디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어쩌면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부흥을 숫자의 증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출석 인원이 늘어나고, 예배당이 커지고, 예산이 성장하는 것이 부흥의 증거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사람이, 백 명의 미지근한 신자보다 더 강합니다. 풍요 속에서 양심을 지키고, 인기가 아닌 진리를 선택하며, 편안함이 아닌 순종을 택하는 성도 한 사람이, 시대를 바꿉니다. 

한국교회가 중국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가 고난이 아니라 풍요 때문에 타락하지 않게 하소서.”


-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서구 선교사들의 헌신을 존중했지만, 동시에 서구 신학교에서 들어온‘자유주의 신학', ‘서구화한 모델’이 중국교회를 병들게 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셨죠? 

▲ 왕밍다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중국교회를 향한 사랑과 관심, 도움을 거부하자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교회는 외부의 선교 전략이나 자금으로 살아남는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숨결로 보존됩니다. 선교는 시스템의 수출이 아니라, 생명의 전수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중국교회를 여러분들의 특정 모델에 맞추려 하지 마십시오. 각 나라, 각 시대의 교회는 저마다 다른 역사와 상처, 문화와 상황 속에 서 있습니다. 서구 교회의 틀, 혹은 한국교회의 틀을 그대로 가져와서 중국교회를 그 안에 끼워 넣으려 한다면, 결국 우리는 중국 성도들의 양심과 현실을 억압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 교회가, 중국 땅에서, 중국의 언어와 눈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둘째, 숫자라는 통계의 우상에서 벗어나십시오. “몇 명이 세례를 받았는가, 몇 개의 교회가 개척되었는가, 몇 명의 지도자를 훈련했는가”라는 숫자는 참고 자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교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최종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과 진실함입니다.

셋째, 전략을 짜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으십시오. 기도 없는 선교는 결국 인간의 제국을 건설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잘 디자인된 프로그램과 탁월한 계획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종교 조직을 확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중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물어야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이미 중국 교회 안에서 하고 계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일을 방해하지 않고, 겸손히 동참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 오늘날 혼란을 겪는 모든 성도에게, 한 문장만 남겨주신다면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 왕밍다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국가는 변하고 정책은 바뀌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교회는 영원히 패배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보호받아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존재합니다. 시대의 정책이 바뀌고, 권력이 교회를 억압하거나 이용하려 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 작은 무리만 있다면, 교회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어떻게 보호받을 것인가’를 먼저 묻지 말고, ‘어떻게 진실할 것인가’를 먼저 물으십시오. 문이 닫히면 다른 통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문이 닫히면,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가 누구의 것인지, 그 단 하나의 질문 앞에서 정직하게 서는 교회가 있다면, 어떤 시대에도, 어떤 나라에서도,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







♣ 사진 출처 | 왕밍다오(王明道) 목사  [출처 | 바이두> 이미지 ]
♣ 쑨빈 | 중국인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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