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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3  통권 281호  필자 : 쑨빈  |  조회 : 1429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사기열전》으로 읽는 중국교회의 미래 _인간 유형과 시간의 신학

서론: 정책 너머의 인간을 보다
2018년 2월, 중국 정부가 개정 ‘종교사무조례’를 시행했을 때, 서구 언론들은 일제히 “종교 탄압 강화” 등 비관적 제목을 뽑았다. 새로운 박해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개정 조례가 단순한 탄압을 넘어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것은 종교를 당-국가가 설계한 언어와 규범 속으로 편입하는, 일종의 ‘재구성’ 작업이다.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을 이해하는 열쇠는 법조문 자체보다 그 뒤에 있는 인간 이해에 있다. 정책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그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인간의 패턴은 놀라울 만큼 반복된다. 이 글은 기원전 91년에 완성된 사마천의 《사기열전》 속 인물들을 오늘날 중국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인간 유형’의 원형으로 읽어보려 한다.

상앙(商鞅), 여불위(呂不韋), 장량(張良)—이들은 단순한 역사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중국 권력 구조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인간 유형’의 원형이다. 그리고 이 인간 유형을 이해할 때, 우리는 중국교회가 직면한 현실과 선교의 미래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1. 상앙형 인간 – 법으로 인간을 재설계하는 자
상앙은 진나라의 재상으로, 법가 사상을 제도화한 인물이다. 그의 전제는 단순했다. 인간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법과 제도를 통해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도덕성보다 시스템의 설계를 신뢰했고, 통제 가능한 도덕만을 허용했다.

사마천에 따르면 그의 법은 가혹했지만 효과적이었고, 결국 그는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처형된다. 이 역설은 중요하다. 상앙형 인간은 완벽한 시스템을 꿈꾸지만, 그 시스템은 결국 인간을 살리는 대신 인간을 갈아 넣으며 유지된다.

2018년 개정 ‘종교사무조례’ 제3조는 종교사무의 관리 원칙을 “합법 보호, 불법 금지, 극단 억제, 침투 저지, 범죄 타격”으로 규정한다. 제4조는 종교가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하도록 적극 인도”하며, 종교단체와 신자들이 “사회주의 핵심가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의 자유 제한’이 아니라, 종교를 사회주의 국가의 이념과 안보 구조 속에서 재설계하는 작업이다. 상앙이 백성을 법과 상벌 체계로 재구성하려 했듯, 중국공산당은 종교를 당이 정한 언어와 가치로 ‘재코딩’하려 한다.

중국교회가 직면한 것은 단순한 박해보다 ‘재코딩 압력’이다. 반대 성명과 인권 담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국가가 설계한 법·제도 언어 안에서 무엇까지는 ‘번역’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번역 불가능한 영역’을 지켜야 하는가.

법은 인간의 행동을 관리할 수 있지만, 인간 영혼 전체를 규격화할 수는 없다. 중국교회는 지금 ‘환원 불가능한 영역’을 구별하고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

2. 여불위형 인간 – 네트워크와 실리의 예술가
여불위는 상인 출신으로 권력의 중심에 진입한 인물이다. 그의 유명한 말 “기화가거(奇貨可居)”—진귀한 물건은 쌓아두면 값이 오른다—는 사람과 관계를 투자 대상으로 보는 그의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이념보다 관계를, 원칙보다 거래를 중시했다.

사마천은 여불위를 도덕적으로 칭송하지 않지만, 그의 현실 감각과 전략적 능력을 솔직하게 기록한다. 여불위형 인간은 권력의 언어를 이해하고, 시스템의 빈틈을 읽으며, 네트워크를 설계하는 데 탁월하다.

오늘날 종교사무국·통일전선부 일선 관료 가운데 상당수는 여불위형 실무자에 가깝다. 그들의 핵심 관심은 신학적 진리 여부가 아니라 “이 종교 집단은 관리 가능한가, 예측 가능한가”이다.

한 지방 종교사무 담당자가 목회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박해하고 싶지 않다. 다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미리 알려주고, 외국 단체와 연결하지 말라. 그러면 서로 편하다.” 이것이 여불위형 사고의 전형이다.

중국교회는 모든 공무원을 상앙형 박해자로 동일시하는 대신, 여불위형 협상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신앙 타협이 아니라, 이집트와 바벨론, 페르시아의 궁정에서 요셉과 다니엘이 보여준 지혜에 가깝다.

여불위형 인간은 ‘통제 가능성·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교회는 무엇까지 행정 협력의 영역으로 둘 수 있고, 어디부터는 신앙의 본질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지 정교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3. 장량형 인간 – 보이지 않는 조력자의 지혜
장량은 유방의 책사였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지휘하지 않았고, 행정을 맡지 않았으며,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방이 천하를 얻는 과정에서 그의 전략적 조언은 결정적이었다.

사마천은 장량을 가장 지혜로운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는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위협이 되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천하 평정 후 그는 스스로 은둔을 택한다. 공이 너무 크면 의심받고, 의심받으면 제거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성숙한 가정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점점 더 장량형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해외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SNS에서 공개적으로 순교 각오를 선언하지 않으며, 대신 조용히 제자를 양육하고, 소그룹 공동체를 세우고,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일부 교회는 가시적 해외 연대를 줄이며, 소규모·비가시적 구조로 재편했다. 외부에서는 ‘후퇴’로 보였지만, 오히려 교회의 건실성은 더 깊고 넓게 뿌리내렸다.

중국교회의 미래는 장량형 지혜에 있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성숙함이다. 중국교회는 더 이상 ‘지하 vs 공개’, ‘저항 vs 순응’의 이분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제3의 길, 즉 ‘비가시적 현존’과 ‘비정치화한 신실함’이다.

장량형 지혜는 예언자 모델에서 요셉 모델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요셉은 제국의 심장부에서 하나님 백성을 보존한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 총리가 되었지만, 이집트인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제국의 권력을 사용했지만, 그 권력에 자기 정체성을 팔지 않았다. 제국 안에서 제국을 섬기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과 백성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체제 밖의 순교자”만이 아니라 “체제 안의 요셉”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병행해야 한다. 신앙의 공개성과 가시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분명히 고백하지만, 모든 정치적·사회적 공간에서 항상 가시화할 필요는 없다.


4. 시간의 신학 – 속도가 아닌 지속
예레미야 29장은 바벨론 제국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텍스트다. 예언자는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 성읍을 위해 기도하라”라고 말한다. 바벨론을 즉각 무너뜨리라는 명령 대신, 집을 짓고, 자녀를 낳고, 장기전을 준비하라는 낯선 명령이 주어진다.

이 신학은 시진핑 시대 중국을 바벨론으로 비유하는 많은 중국교회 지도자에게 중요한 자원이 되어 왔다. 바벨론을 저주하는 대신, 바벨론 안에서 신앙 공동체를 세우고, 바벨론의 평안을 통해 자신들의 평안을 구하며, 하나님이 정한 시간까지 견디는 것이다.

《사기열전》 역시 시간의 신학을 시사한다. 상앙은 빠르게 제도를 구축했지만 자신의 법에 따라 처형되었고, 여불위는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결국 실각했다. 반면 장량은 조용히 움직였지만 역사에 길게 남았다.

중국교회는 단기 계획이 아니라 중장기 비전으로 사역을 재설계해야 한다. 성장 지표를 숫자 대신 뿌리의 깊이, 관계의 질, 제자도의 성숙도로 재정의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극적인 성장보다, 수십 년 뒤에도 복음이 중국 문명 안에서 유기적 생명으로 살아남도록 차세대 리더십을 양육해야 한다.

《사기열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물들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안 사람들이다. 장량은 조언했지만 공을 주장하지 않았고, 진평과 소하는 공을 과시하지 않았다. 반면 한신은 자신의 공로를 자주 언급했고, 결국 유방의 의심을 사서 제거된다.

오늘날 중국교회도 언어의 정치학 한복판에 서 있다. 공적 발언과 내적 확신을 구분하지 못할 때,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발언이 수백 명의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모든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모든 때에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를 외치기보다 “우리는 이렇게 산다”를 보여주는 방식—실천의 언어—를 앞세워야 한다.

5. 실천적 제언 – 일곱 가지 지혜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기열전》과 중국교회의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실천적 지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을 구별하라. 모든 관료를 상앙형으로 간주하지 말라. 여불위형 실무자와 대화할 때는 실용적 해법을 제시하라. 그들은 통제를 원하지, 파괴를 원하지 않는다.

둘째, 선을 그으라. 무엇이 협력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교회 내부에서 먼저 합의하라. 이 선이 없으면, 모든 협상은 흡수로 끝난다.

셋째, 다원적 전략을 인정하라. 직접 대결, 장기 전략, 체제 내 증언을 모두 복음적 선택으로 존중하라. 한 가지 방식만을 정통으로 고집하는 순간, 교회는 분열한다.

넷째, 제자 양육에 투자하라. 건물과 조직보다 사람을 우선하라. 다음 세대가 신앙의 언어를 배우지 못하면, 지금의 모든 싸움은 무의미하다.

다섯째, 시간을 재설정하라. 단기가 아닌 장기 여정으로 바꾸라.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장기 생존을 놓친다.

여섯째, 언어를 선택하라. 외부에는 삶으로 말하고, 내부에는 신학으로 가르치라. 공개 담론과 공동체 신앙고백을 구분하라.

일곱째, 네트워크를 유지하라. 국내 교회 간 그리고 국내외 교회 간의 연결을 끊지 말라. 고립은 가장 큰 위험이다. 그러나 모든 연결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




6.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한 제언
한국교회는 1990∼2000년대 중국선교에서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투입했다. 이 헌신은 귀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30년의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열정만으로는 중국이라는 문명·정치 구조 앞에서 지속 가능한 열매를 맺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환이 필요하다. 빠른 성장과 드라마보다, 긴 시간에 걸친 관계·해석·멘토링에 투자해야 한다. 감정을 수출하기보다 해석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경험한 전쟁, 독재, 산업화, 세속화, 교회 성장과 위기의 경험을 중국교회가 자기 맥락으로 번역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전면에서 이끄는 ‘주인공’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받쳐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장량이 천하 평정 후 은둔한 것처럼, 한국교회는 주도권을 중국교회에 넘기고, 뒤에서 지원하는 단계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교회는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문명으로 존중하는 신학을 배워야 한다. 공개적 압력과 영웅 만들기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일부 사례에서 국제적 주목이 해당 지도자에게 더 무거운 정치·형사 책임을 안기기도 했다. 중국교회를 ‘도움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신학과 전략을 ‘공동 집필할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중국적 인간 이해와 기독교 신학이 만나면, 21세기 세계교회를 위한 새로운 기독교 인문학이 열릴 수 있다.

결론: 정책이 아니라 인간, 전략이 아니라 인내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제국의 흥망보다 인간의 선택과 성품,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패턴에 주목했다.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도 언젠가는 하나의 역사 장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정책 속에서 어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지켰는지는 훨씬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선교중국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인내다. 승리가 아니라 뿌리다. 정책을 이기려 하기보다, 시간을 견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상앙형 법치, 여불위형 실리 속에서도, 장량형 지혜와 요셉형 충성, 바벨론 속 인내의 신학이 복음의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문서가 아니라 인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을 통해 역사하신다. 《사기열전》이 그것을 증언하고, 성경이 그것을 확증하며, 중국의 역사가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질문은 남는다. 어떤 인간 유형으로, 어떤 시간 감각으로, 중국이라는 문명 안에 복음을 남길 것인가. 진시황은 사라졌다. 그러나 장량은 남았다. 정책은 인간을 규격화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정책 너머의 역사를 쓰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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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쑨빈 | 중국인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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