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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3  통권 280호  필자 : 이혜원  |  조회 : 2046   프린트   이메일 
[기획]
해방 이후 동북아시아 선교 _‘한국중국선교협의회’ 유관기관을 중심으로

Ⅰ. 들어가며

한국 개신교회의 타문화권선교는 1912년 조선장로회의 산둥(山東)선교에서 그 시원을 찾는다.1) 그 후 약 110년에 걸쳐 한국교회는 교회의 성장 및 경제력의 신장과 더불어 세계에서 상위 5위 안에 드는 선교사 파송국으로서 그 규모를 키워나갔다. 

한국교회의 타문화권선교 역사를 회고하는 연구들은 대개 세 시기로 나누어 지난 한 세기의 선교활동을 이해한다.2) 

첫 번째 시기는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도에 파송된 1907년부터 해방 이전까지의 시기로서, 대개 조선장로회의 산둥선교와 남북감리회의 시베리아선교가 중심이었던 해외선교 태동기이다. 

두 번째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까지로 1955년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최찬영 선교사 태국 파송에서 시작되어 1968년 국제선교협력기구의 설립을 필두로 선교기관이 증가하고, 수교국 역시 증가함에 따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선교 지역이 확산하여 나갔던 도약기이다. 

마지막이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1988년의 서울올림픽, 1990년의 여행 자유화 조치, 1992년 중국과 수교 등을 거치면서 장기 및 단기 해외선교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팽창기이다. 

한국선교연구원의 선교현황 조사 발표에서 동북아시아에 해당하는 중국 및 일본 파송 선교사 숫자가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1996년이 처음이었는데, 그 숫자가 중국의 경우 413명(1996), 492명(1998), 1,482명(2004), 1,943명(2020), 1,709명(2021), 1,547명(2022), 1,353명(2023) 등으로, 일본의 경우 334명(1996), 387명(1998), 691명(2004), 1,299명(2020), 1,281명(2021), 1,250명(2022), 1,256명(2023) 등으로 집계되었다.3) 그 사이 74개였던 선교단체의 수는 223개로 증가하는데, 다시 말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3천 명이 훌쩍 넘는 한국 선교사가 수많은 단체의 파송을 받아 동북아시아에서 활동하였음을 알게 된다. 즉, 연구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동북아시아선교 가운데 중국에 집중하고자 하며, 단체로서는 2007년 조직된 ‘한국중국선교협의회(KCMA, 이하 중선협)’에 가입된 기관 중 자료가 일부 공개되고 있는 몇몇 단체로 범위를 좁혀 살펴보고자 한다. 위의 시기 구분에 따르면 1990년 이후의 팽창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대략 2007년부터는 한국 선교사가 가장 많이 파송된 국가로 올라섰으며 2021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다가 현재는 3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30~40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가 어떻게 공산권 국가의 선교에 접근해 왔고, 임해 왔는지 고찰해 볼 수 있는 사례 연구가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한국교회의 해방 이후 타문화권 선교역사에 관한 연구는 한국기독교역사학회의 학술지에서도 2008년에 특집으로 3편의 연구논문을 소개한 바 있으며,4) 중국선교에 대해서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연 1회 발행되었던 〈중국교회와 선교〉라는 학술지에서 “오늘의 중국선교”라는 제목으로 각 선교회 혹은 선교사들의 회고가 소개된 바 있다.5) 그 중 〈중국교회와 선교〉에 실린 중국선교단체들의 글은 회고의 성격이 강해 연구논문이 아닌 사료로서 간주할 수 있다. 

한편,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인 ‘중선협’을 직접 다루고 있는 선행 연구로서는 이대영(1998)의 논문을 한 편 찾아볼 수 있다. 아직 협의회가 조직되기 이전에 발표된 논문이지만 후에 협의회를 이끌어 가는 ‘중국복음선교회’와 ‘중국어문선교회’를 중심으로 각 단체의 설립과 사역의 특성을 비교 검토하고 있다.6) 

본 논문은 우선 제2장에서 1992년 한·중수교 이전에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중국선교에 접근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며, 제3장에서는 중선협에 가입된 단체들 가운데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중국복음선교회를 비롯한 여섯 선교회의 설립과 조직, 활동 등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서, 한국교회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중국선교를 준비했고 진행해 나갔는지 고찰해 나가도록 하겠다. 

사료로서는 지난 2023년 9월 중선협에서 펴낸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7)를 비롯하여, 중국복음선교회에서 간행한 〈中國과 福音〉, 〈中國과 敎會〉, 〈중국교회와 선교〉 등의 소식지와 잡지, 학술지 및 중국어문선교회의 저널 〈중국을주께로〉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선교회의 홍보 책자, 요람(要覽), 홈페이지 등을 사용하였다. 또한 관계자들의 인터뷰도 진행하였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안전과 보안으로 인해 각 선교회의 좀 더 자세한 활동과 사항을 담을 수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린다.

Ⅱ. 1992년 한·중수교 이전의 중국선교 양상

한국 국적 선교사들이 직접 중국 대륙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이지만,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한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한 중국선교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1978년부터 1992년 사이의 중국선교는 크게 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그 양상이 바뀌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올림픽 이전에는 외국 국적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베이징(北京) 혹은 중국 동포의 거점인 옌지(延吉)로 들어가 금전 지원과 방문 등의 활동을 주로 하였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에는 조금씩 기업 간 교류가 증가하면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한국 국적자들이 중국 각지로 들어가 금전 지원뿐 아니라 교회에 접촉하는 방식으로 그 사역을 확장하여 나갔다.8) 

수교 이전의 중국선교 방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9) 

첫째, 방송선교로서 개혁개방 이전부터 한국에서는 이미 아세아방송과 극독방송이 주축이 되어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을 송출하였고, 그로 인한 전도 효과는 적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둘째, 1979년 미·중수교가 체결되면서 중국 출입이 가능해진 재미 교포들에 의해 소규모의 선교활동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들을 통해 중국어 성경의 전달, 가정교회 지원 및 제자훈련·교역자훈련 진행, 중국 동포 방문선교 등이 이루어졌다. 

셋째, ’86 서울아시안게임, ’88 서울올림픽, ’90 베이징아시안게임 등 중국과 접촉할 수 있는 교류단을 통해 선교활동을 진행한 것이다. 특히 베이징아시안게임 때에는 그에 앞서 아시안게임을 통한 선교전략과 관련된 좌담회가 개최되어 유전명(한성중화교회 담임목사), 유관지(극동방송 총무국장), 김영을(북경아시안게임 문화사절단 국내 총무) 등이 참여하여 전단지 배포, 맨투맨 전도 등의 방안을 간구하기도 하였다.10) 실제로 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의 목사들은 중국을 방문하여 가정교회와 접촉하는 등의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의 방문을 통해 수교 전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로서 ① 중국교회 소식이나 정보를 중화권 선교단체로부터 제공받아 구체적인 기도로 준비하는 것, ② 자비량 목회를 하는 가정 목회자들을 위해 생활비를 모아 지원해 주는 것, ③ 대륙 전도여행단을 조직하여 한국 교인들에게 중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는 것, ④ 중국의 문화・풍속・습관 등을 교육・훈련하는 장단기 사역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등이 언급되었다.11)


그 밖에도 넷째, 상업적 및 방문 명목으로 중국에 입국하여 가정교회와 접촉하는 선교, 다섯째, 가정교회 직접 지원 사역으로서 제자훈련과 교역자 훈련을 극비리에 진행하는 것, 여섯째, 전문인 선교로서 병원과 기술대학 설립을 통한 기독교 선교, 일곱째 합법적 종교 단체와 교류하는 것으로서 YMCA 혹은 중국기독교협회의 초청으로 대표단이 방문하는 것이 있다.

점차 수교에 대한 준비에 들어가고 인적 교류가 시작되는 1991년에 들어서면 한국교회가 중국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항들이 연구되고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첫째, 교회 안에 ‘중국선교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 논의를 시작하는 것, 둘째, 웨이하이(威海)-인천 정기 선편 운항을 통해 한국에 오는 재중 동포들을 돕는 일, 셋째 중국복음화를 준비하는 전문 기관들을 돕는 일 등이 시급한 일로 꼽혔다.12)

한편, 대만의 신학계에서도 한·중수교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견해를 밝혀 오기도 하였는데, 첫째, 세계교회의 중국선교를 위한 기도에 동참해 줄 것, 둘째, 국제적인 중국교회 연구센터를 설립할 것, 셋째, 각 교단과 교회에서 중국선교부를 만들 것, 넷째, 중국어를 할 수 있는 목회자를 중국 가정교회에 보내 교역자를 양성할 것, 다섯째, 중국교회의 신학교육을 발전시킬 것, 여섯째, 중국어 성서와 신앙 서적을 공급할 것, 일곱째, 복음방송 사역을 지속해 나갈 것, 여덟째, 해외에 체류하는 중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전도할 것 등이었다.13) 한국교회와 대만교회의 생각이 일맥상통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수교 이전의 중국 방문선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제기되기도 하였는데, 첫째, 한국에서의 전도 방식을 중국에서 그대로 사용하려 하는 점, 둘째, 교파 간 협력이 없는 점, 셋째, 중국 상황에 적합한 선교사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점, 넷째, 장기적인 계획이 없는 점 등이었다.14)

한·중수교 11주년을 맞았던 2003년 중국선교를 점검한 〈국민일보〉의 함태경 기자는 1992년 이전의 선교에 대해 “극동방송 등을 통한 방송선교, 미국 한인교회의 중국 선교사 파송, 한국 목회자의 조선족 교회 지도자에 대한 단기 훈련 등이 주종을 이뤘다. 80년대 설립된 중국복음선교회 중국어문선교회 등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에 대한 이해에 주력했다. 일부 선교사들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중국선교를 위한 전진기지로 삼고 본토 사역을 준비해 나갔다.”라고 총평한 바 있는데,15) 함 기자의 단평처럼 수교 이전에는 한편에서는 중국선교에 대한 상황 인식과 제언, 연구, 비판 등을 쌓아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과 같이 중국선교를 위한 전문 선교기관들이 하나씩 설립되면서 다가올 수교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였다. 

Ⅲ. ‘한국중국선교협의회’ 유관기관의 중국선교

2007년은 중국선교 2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한국의 중국선교 관련 몇몇 단체들은 함께 모여 이를 기념하며 중국선교를 위한 협의회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고, 2007년 4월 17일 창립총회를 갖고 ‘한국중국선교협의회’를 발족하였다. 창립의 목적은 중국 연구, 정보교류, 선교동원과 훈련, 전 세계 화인(華人) 기독교인 등 해외 교회와 연대 및 선교현장과 협력 강화를 통한 새로운 중국선교 패러다임 제시 등이었다.16) 초대 회장은 중국복음선교회 대표이자 한성중화기독교회의 담임목사였던 유전명(劉傳明)이었다. 설립 당시에는 중국복음선교회, 중국어문선교회, 빌리온선교회, 중국대학선교회, 모리슨선교회, 동아시아신학원 등 20여 개 단체가 참여하였으며, 격년으로 ‘선교중국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현재는 앞서 언급된 대표 단체들 외에 SIM 국제선교회, 바울선교회, 합신세계선교회(PMS) 등도 포함하여 총 32개의 초교파 및 교단 총회 소속 선교단체들이 가입되어 있다.17) 

본 논문에서는 그 가운데 198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1) 중국복음선교회와 (2) 중국어문선교회, (3) 모리슨선교회를 비롯하여 협의회 조직 당시 대표적인 기관으로 꼽혔던 (4) BM 빌리온선교회, (5) CUM 중국대학선교회, (6) EATS 동아시아신학원 등 여섯 기관의 설립 배경과 활동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18)

(1) 중국복음선교회

‘중국복음선교회’는 1984년 9월 3일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旅韓中華基督敎 漢城敎會)에서 중국선교를 향한 비전을 공유한 화교 및 한국 젊은이들의 기도·공부모임에서 시작되었다.19) 1984년은 한국기독교 10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였는데, 그때 타문화권선교를 향한 증폭된 관심이 중화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성교회의 청년부인 ‘치민투안치(器皿團契)’에 중국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장차 다가올 중국선교를 준비하고자 하는 한국인 청년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화교 및 한국 청년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함께 기도, 성경공부 및 중국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언어 문제가 생겨 한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모임을 따로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 1985년 1월 ‘띠지투안치(地極團契, 땅끝모임)’가 조직되었다.20) 이름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에 나오는 ‘땅끝’의 중국어역 성경에서 따온 것으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의미였다.21) 

‘띠지투안치’는 조직 후 우선 연구모임을 진행하였다. 1985년부터 매주 목요일 모여 해외 화교교회로부터 수집한 중국 및 중국교회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중국어 성경공부 및 중국 연구 등을 진행하였다. 이후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하여 1부 중국어 예배, 2부에는 중국어 및 중국교회사 강의 형태로 진행하였다.22)

이후 띠지투안치는 중국선교를 홍보하기 위한 문서 사역을 시작하여 1987년부터 〈地極〉라는 소식지 형태의 월간지를 발행하였고 1988년 4월호부터 〈中國과 福音〉으로 개편하였다.23) 〈中國과 福音〉은 4면짜리 얇은 소식지로서, 중국선교에 대한 사설, 한국 및 중화권 일간지에 실린 중국 관련 기사를 소개하는 ‘대륙소식’, 띠지투안치의 활동 소개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기관지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부터는 8면으로 지면이 늘어났고 중국선교특보, 중국소식, 소수민족 소개, 책 소개, 회원탐방, 선교회 소식 등을 담았다. 이후 1995년 선교회 산하에 중국선교사훈련원과 중국교회와선교연구소 그리고 애화도서관 등 부설되면서 〈中國과 福音〉은 16면으로 늘어나 중국선교 및 선교사 현황에 대해 본격적으로 게재했다.

1988년 5월부터는 “중국 대륙의 정치 변천과 종교활동을 소개하는” 전문잡지로서 격월간지인 〈中國과 敎會〉를 창간하여 발행하였다.24) 〈中國과 敎會〉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 관한 관심이 증폭되는 한국 사회 및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중국의 종교정책과 중화권 기독교를 소개하는 창구 기능을 하였다. 창간 당시는 18쪽 정도였으나 이듬해부터 50쪽 정도의 분량 안에 중국과 기독교에 관한 자세한 기사들을 담아 나갔다. 이들 간행물 중 〈中國과 福音〉은 2011년에, 〈中國과 敎會〉는 1994년경 정간되었다. 

그 밖에도 띠지투안치는 국내외 중국교회 전문가를 초청하여 연 2회의 중국선교세미나 및 연 1회의 중국선교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1988년 7월 제1회 ‘地極團契세미나’가 개최된 이래 ‘중국복음세미나’라는 이름을 거쳐 1990년부터는 ‘중국선교세미나’로 명칭을 바꾸어 개최되었고, 1987년부터는 본래 한성교회 내의 중국선교신학원에서 제3회까지 개최되었던 선교대회를 띠지투안치가 이어받아 ‘中國宣敎大會’를 개최해 나갔다.25) 1987년의 띠지투안치로는 첫 번째로 개최한 ‘중국선교대회’에서는 홍콩과 대만에서 중국선교의 기관들을 설립한 조나단 차오(趙天恩) 박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26) 

띠지투안치는 1989년 지금의 ‘중국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개편하며 선교기관으로서 정식 발족하였다. 이때 회비제를 후원제로 바꾸기 위해 후원회를 모집하기 시작하였는데, 같은 해에 120여 명이 후원회원으로 등록하였다. 

중국복음선교회의 이후 사업은 크게 국내 사역과 해외 사역으로 나뉘었으며, 국내 사역은 ① 목요일 정기집회, ② 문서출판 사역으로서 〈中國과 敎會〉 및 〈中國과 福音〉 간행, ③ 교육 사역으로서 매주 목요일 중국어, 중국 문화, 중국어 성경 강의 개최 및 연 1회 선교대회, 연 2회 선교세미나 개최, ④ 선교사훈련원 사역을 위한 1995년부터의 전문 인재 양성 기관 운영, ⑤ 국내 선교사역으로서 홍보, 강의, 세미나를 인도하는 사역을 진행하였다. 해외 사역으로서는 ① 해외 선교사파송, ② 해외 단기선교훈련 사역, ③ 기금을 모아 후원하는 사역 등을 진행하였다.27) 

이러한 활동과 중국선교를 향한 열망이 모아져 중국복음선교회는 한·중수교도 전인 1990년 박화목 당시 선교회 총무가 중국복음선교회의 제1호 선교사로서 중국에 파송되었다.28) 선교사 파송과 더불어 선교회는 1990년부터 부산중화교회에 지부를 개설하는 등 이후 부산과 대구, 대전 등지에도 지부를 개설하여 나가 각 지역에서 중국어 강의, 중국선교 강의 등을 개최해 나갔다.29) 

한편, 중국복음선교회의 초대 대표였던 유전명 목사는 1970년대부터 이미 홍콩과 대만의 중국선교대회에 참석하며 중화권 교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한국교회가 중국선교에 대해 준비되어 있어야 함을 제안받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연대와 교류 가운데 중국복음선교회는 1994년 조나단 차오 박사가 설립한 ‘中國福音會(China Ministries International, CMI)’의 한국지부로 전환하여 국제 중국선교단체와 함께 사역을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30) CMI는 ‘중국복음화’・‘중국교회의 하나님 나라화’・‘중국문화의 그리스도화’라는 3대 비전을 공유하는데, 중국복음선교회도 이때부터 ① 중국선교사역부·중국농아사역팀, ② 중국선교사훈련원, ③ 중국교회와 선교연구소, ④ 애화도서관으로 부서를 세분하여 ‘사역’, ‘훈련’, ‘연구’의 내용을 심화・확장해 나갔다. 

이 가운데 ‘훈련’을 먼저 살펴보면, 선교회는 1995년 3월 중국선교사훈련원을 개원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중국 선교사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전일제 2년 학위 과정으로서, 한국에서는 처음 개설된 중국 선교사 전문 훈련원이었다. 한·중수교의 열기가 살아 있던 개원 당시 모집한 1기에는 무려 20명의 훈련생이 입학하여 훈련받았다. 훈련원은 2년간 총 4학기의 교육과 4회의 현지실습을 하였다.31) 2년짜리 전일제 전문 훈련 과정으로써 다른 직업을 포기한 헌신자만 훈련받을 수 있었고 학비가 다른 교단 신학교만큼 비쌌기 때문에,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전원 중국 선교사 파송으로 이어졌다.32)

2년 동안 중국어, 중국선교 사역학(중국선교학, 현대의 중국선교, 중국교회의 지도자훈련, 중국선교의 다양화, 중국 선교사역의 실제 등), 중국학(중국 문화, 풍속, 역사, 문학, 사상, 종교, 기독교사, 현대 중국기독교, 현대 중국과 사회 등), 선교학 일반(현대선교학, 선교의 제문제, 타문화권선교, 한국교회의 해외선교, 영성의 훈련과 관리, 제자훈련, 성령과 선교 등) 등 신학과 중국학 등을 고루 배운다.33) 매 학기 종강 후에는 방학 때 중국 대륙과 대만을 교대로 약 3주간에 걸쳐 사역실습을 하였다. 훈련원은 일반대학 또는 신학대학 졸업자, 아니면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특정 업무에 4년 이상 근무한 자를 대상으로 원생을 모집하였으며, 훈련원 졸업 시에는 홍콩의 중국선교신학원(China Mission Seminary)의 인준학위인 중국선교학 석사 및 중국선교학 증서를 수여하였다.34)

1995년 1기가 20명으로 시작된 이래 기수마다 6~8명 정도의 훈련생이 모집되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1기 훈련생이 졸업한 1997년부터 중국복음선교회도 정규 선교사를 중국에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까지 총 40여 명의 훈련생을 배출하는 등 중국선교를 희망하는 신학교 졸업생들의 전문 훈련소로서 각광받았다.35) 하지만 선교훈련원 원장의 사임으로 강사가 부족하게 되어 2003년부터는 1년 과정으로 축소되었고, 2005년부터는 각 교단이 자체 중국 선교사훈련・양성소를 설치하고 선교회 이중 가입을 금지하면서부터 중국선교사훈련원은 점차 훈련생 모집이 힘들게 되어 2007년 10기 졸업생을 끝으로 운영이 중단되었다. 

다음으로 ‘연구’를 살펴보면, 선교회는 같은 1995년 부설 연구소로서 ‘중국교회와 선교연구소’를 설치하여 선교사훈련원을 돕는 연구기관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연구의 범주는 중국의 정치, 사회 동향, 종교정책, 소수민족, 중국기독교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등이었다. 연 6회의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고, 자료의 수집과 정리, 애화도서관 운영 그리고 출판 사역을 전문화해 나갔고 1996년 8월에는 연구소 이름으로 〈중국교회와 선교〉라는 학술지를 창간하여 연 1회 간행했다.36) 〈중국교회와 선교〉의 창간호부터의 발행인은 방지일 목사였다. 이후 〈중국교회와 선교〉는 2006년 정간될 때까지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중국의 종교 자료 및 중화권과 영미에 거주하는 화교 신학자들의 연구를 번역 소개하고, 중국의 정치・종교・소수민족 등에 대한 자세한 연구논문을 싣기도 하는 등, 중국기독교를 연구하는 전문 학술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역’을 살펴보면, 이렇게 1994년부터 CMI의 지부로서 발전되어 선교사역부, 연구소, 도서관, 훈련원 등으로 나누어 활발히 활동한 결과 1997년부터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였는데, 2000년에 이르면 선교회에는 전임 사역자 14명, 선교사 25명 등 총 39명의 소속 사역자가 중국선교에 헌신하여 섬긴다.37) 중국복음선교회 파송 선교사의 수가 가장 많았던 때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로 꼽히는데, 30가정 이상이 선교회 파송으로 중국 전역에서 활동하였다.38)

이 밖에 중국복음선교회가 집중한 또 하나의 ‘사역’은 ‘중국 농아사역’으로서 중국 대륙 내의 청각장애인에게 중국어 수화로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직업훈련을 진행하였다. 농아 사역을 기획하고 진행해 온 화교 Y 선교사는 젊은 시절 타이베이 사범대학교 위생교육과에 진학한 뒤 타이베이 농아학교에서 6년간 교육활동을 한 바 있는데, 이후 1,700만 명 이상의 중국 대륙 청각장애인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소명 의식을 느껴 1995년부터 한국에 돌아와 중국복음선교회에 소속되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1년 만에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농아 사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훈련하는 중에 15명의 청각장애인이 교인이 되어 교회 설립으로 이어졌다.39) 그리고 농아 사역 활성화를 위해 이후 한국, 대만, 홍콩 등의 교회에 농아 사역 홍보, 비전제시, 사역훈련 등을 진행한 결과 2000년 2월에는 최초로 농아선교사훈련학교를 개최하기도 하였다.40) 이후 농아선교를 위한 기관을 설립하여 2005년 ‘아가페국제농인협력기구’로 발전시켰는데, 임 선교사가 2019년 소천한 이후에도 아가페국제농인협력기구는 해외 각국과 한국에서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1984년 띠지투안치로 시작된 중국복음선교회는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0월 5일 기념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현재도 선교회로서 CMI와 함께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 중국어문선교회

중국어문선교회는 1989년 10월 30일 중국학을 전공한 동역자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를 지원하기 위한 초교파 선교단체이다. 선교회의 모태가 된 것은 2개의 모임이었는데, 하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중국어 성경반이었다. 1984년 동 대학 내에 중국어과가 신설되었을 때 부임한 박성주 교수가 학생들 가운데 중국선교에 관심 있는 20여 명을 대상으로 중국어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 학생들 가운데 졸업 뒤에도 중국선교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관심이 선교회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두 번째 모임은 1983년 6월 시작된 서울대학교 중문과 기도모임이었다. 대학원생과 학부생 6명이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그 모임 참석자 중 중국선교에 참여하길 희망하던 이요한(현 동아시아신학원 원장)이 박성주 교수를 만나 함께 논의하였고, 그 두 모임이 모태가 되어 1989년 중국어문선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설립 당시 선교회는 방지일 목사를 고문으로 위촉하였다.41) 사역은 선교회의 이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어문(語文)과 관련된 사역 즉, 문서, 교육, 연구에 중점으로 두고 있다.42) 

우선 문서 사역은 크게 잡지의 간행과 단행본의 편찬으로 나뉠 수 있다. 잡지의 경우, 선교회가 창립된 같은 해 12월 기관지로서 〈중국어문선교회보〉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5호를 끝으로 종간하고 6월호부터는 중국선교 전문잡지인 〈중국을주께로〉로 거듭나 격월간지로 간행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을주께로〉는 한국과 중국의 정치적 변화에 대한 분석, 중국선교에 대한 제안, 중국의 소수민족이나 지식인 등 주제별 연구, 여행상식, 선교도서 소개, 현장 사역자의 사역 소식, 중국에 관한 각종 정보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2007년 100호를 발간한 이듬해인 2008년부터 웹진으로의 전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오랜 기간 준비 끝에 2014년 9월호부터 〈중국을주께로〉가 웹진으로 변신하였고 이때부터 월간으로 전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43)

단행본 편찬으로서는 동 선교회에서 편역한 조나단 차오의 《중국선교핸드북》(1991), 중국복음선교회와 공동 번역하여 출판한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1996), 《중국단기선교 길잡이》(2004) 등의 중국선교 관련 서적이나 《전도중국어》(2001), 《중국어로 기도하기》(2013) 등의 전도 중국어 서적, 《중국관문도시》(2007) 등 중국 소개서 등을 제작하고 있다. 또한 홍콩의 기독교 출판사인 복음증주협회(CCL)와 협력으로 중국어 기독교 서적을 국내로 들여와 보급하고 있기도 하다.44) 

교육 사역으로는 ‘중국선교훈련원’의 설립을 들 수 있다.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바로 그다음 달인 1992년 9월 14일 중국어문선교회 부설 중국선교훈련원이 개원했다. 선교사 훈련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당시 어문선교회의 박성주 대표와 이요한 총무가 설립에 뜻을 모았고, 이를 위해 박성주 대표는 직접 정동제일교회의 해외선교훈련원(1년 과정)에 입학하여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45) 중국선교훈련원은 전 과정의 80%를 중국어 훈련과 중국 문화 적응에 중점을 두었다. 훈련원 이전인 1990년 2월에 이미 2달 과정인 선교중국어 강좌를 개설하여 1991년 6기까지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그런 경험에 더해 훈련원이 시작되었다. 

초대 원장은 박성주 어문선교회 대표가 맡았고, 훈련 목표는 “① 중국에 대한 바른 이해와 현지 적응능력 배양, ② 생활중국어와 선교중국어 습득, ③ 중국선교사역에 대한 비전 구체화였다. 6개월 과정(주 5일, 28시간 수업)으로 운영되었는데, 매 기수의 인원은 10명 내외로 정하였다. 훈련 내용은 크게 언어훈련, 선교특강, 공동체훈련, 현지 연수 및 탐방 등 4가지고 구성되었는데, 언어훈련의 경우 14주에 걸쳐 초급중국어와 회화에서부터 중국어 성경, 중국어찬양, 중국어 듣기능력훈련 등 전문훈련을 시켰다. 선교 특강에서는 중국 문화, 역사, 사상, 종교정책, 소수민족 등의 중국학 과목과 중국선교 이론과 실제, 타문화권 생활과 적응, 중국교회 토착화 등 중국교회 및 선교에 대한 여러 과목을 두루 배울 수 있게 설계되었다. 공동체훈련의 경우 1주일간 합숙훈련을 통해 언어실습, 문화충격에 대한 적응능력 배양을 훈련하였고, 현지 연수 및 탐방의 경우에는 현지 언어연수를 8주간, 선교지 탐방을 1주일간 실시하였다.46) 

1992년 9월 1기생 7명으로 시작된 선교훈련원은 2012년 10월의 28기까지 진행되었고, 매 기마다 7명에서 18명 사이의 수강생을 모집하여 평균 9명으로 4달~6달 과정을 진행하였다. 총 259명이 수료하였다. 설립 첫 6년간은 훈련을 마친 100여 명의 훈련생 가운데 약 80%가 중국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을 정도로 선교 헌신자들이 등록하였다.47) 하지만 선교훈련원은 2012년 10월을 끝으로 운영을 중단하였는데, 중단의 가장 큰 원인은 2000년대 중반부터 교단 선교회가 자체 훈련소를 개설하기 시작하였고 교단의 파송을 받고자 하는 선교사의 수가 늘었기 때문에 결국 수강생 모집이 되지 않은 것이 컸다.48)

중국선교훈련원은 위와 같은 4~6개월 선교훈련 과정 외에도 단기선교훈련으로서 ‘중국비전학교’와 ‘선교중국어학교’, ‘중국어전도폭발훈련’ 등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중국선교비전학교는 7주간 중국 문화, 중국교회, 중국선교, 중국어찬양, 비전트립 등을 훈련해 중국선교에 관한 관심을 높이려 노력한 프로그램이었고, 선교중국어학교는 선교사와 사역자의 언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였다.49) 비전학교는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선교중국어학교는 2006년부터 14기까지, 전도폭발훈련은 대만 전도폭발훈련본부의 도움을 받아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기에 걸쳐 훈련을 진행하였다. 이와 별도로 1991년에는 ‘중국인 제자학교’라고 하여,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인을 대상으로 3개월 간의 공동체 생활과 1개월 간의 실습으로 중국인 사역자를 배출하고 중국교회 지도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1년에 3기 배출 목표로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폐지되었다. 

중국어문선교회는 그 밖에도 중국선교의 첫걸음으로 일컬어지는 ‘중보기도 사역’을 주요 활동 중 하나로 운영하여 오고 있다. 초기에는 기도캘린더를 만들어 기도 제목을 공유하였고, 현재는 카카오톡, 이메일 등 SNS를 통해 공유하며 중국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중보기도를 위해서는 ‘중국을 주께로 기도합주회’라는 이름으로 월요일 오후 2~4시에 모여 찬양과 기도, 중국선교 공부회를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1998년에는 ‘태산 기도회’라는 기도선교팀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또한 재한 중국인 사역으로서 중국 유학생과 선원,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 및 양육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중국유학생 전도 집회 및 인천항 중국 선적 승선 사역 등이 진행되기도 하였다.50) 승선 사역은 특히 인천 지역 중문과 학생들과 협력하여 매주 2회 사역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장학 사역으로서 중국교회 지도자 자녀들 및 국내 중국인 신학생에게 장학금 전달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어문선교회는 2019년 제주 김녕으로 본부를 이전하였는데 그 뒤에도 웹진과 문서 사역, 선교 중국어 학교 운영, 재한 중국인 사역 등을 중심으로 현재에도 그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3) 모리슨선교회

모리슨문서번역회로 시작된 모리슨선교회는 1980년대 말 중국 내 선교사들과 한국 및 해외의 중국인 사역자들이 필요로 하는 선교언어 자료를 제공하고 또한 중국교회 성도들을 위한 적절한 도서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1998년 12월 출판사 등록을 하여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하였다. 

중국복음선교회 선교사훈련원 강사로도 활동한 바 있는 동 선교회 대표는 문서번역회를 통해 ‘문서를 통한 중국의 복음화’라는 비전을 품고 제작과 보급에 임하였는데, 한편에서는 중국인을 위한 번역 서적을 출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선교를 준비하는 서적을 출판하는 식으로 두 방향 사역을 진행하였다.


(4) BM (빌리온선교회)

1999년 7월 설립된 BM(Billion Mission, 빌리온선교회)은 개혁복음주의적 색채를 가진 초교파 선교회이다. BM은 설립 당시에 공산권 10억, 회교권 10억, 불교·힌두권 10억, 미전도 종족 10억을 품는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BM은 현재 한국을 포함하여 7개 지역 21개국에서 83유닛 160명의 선교사가 사역 중이다. 한국에서는 이주민 위주로 사역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① 교회 개척 ② 현지인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사역 ③ 원주민 사역 ④ 주일학교 교사 양성 사역 ⑤ 교육 사역(한국어, 컴퓨터, 어린이 등) ⑥ 교회 자료 번역 사역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연속적인 선교를 위해 BM 소속 선교사 자녀(MK)를 대상으로 라오스(2024년 1월)-신안증도(2024년 7월)-동유럽 5개국(2025년 7월)에서 하이캠프를 진행하면서 MK가 선교에 헌신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이 사역은 향후 BM의 선교전략의 중요한 사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2006년부터 몇 년 동안 C국 G성 H시에서 해외선교 및 선교언어훈련원 과정을 개설하여 선교언어(중국어) 훈련 및 선교의 이론을 집중 교육하고, 학기 말에는 사역 현장을 탐방하여 선교의 실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훈련 과정은 선교지에서 진행하는 선교사훈련 프로그램으로 매우 효과적이었고, 훈련 과정을 수료하면 BM 선교사로 허입하였다.

(5) 중국대학선교회

중국대학선교회는 중국의 대학 캠퍼스 전도 사업을 진행하는 선교회로서, 2002년 설립되었다. 한·중수교 이후 1990년대부터 중국으로 어학연수, 교환학생, 대학 진학 등 사유로 중국 대학 캠퍼스에 한국 청년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캠퍼스 안에서 중국 학생들과 접촉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기초 양육을 돕고, 그리고 장기 선교사들의 사역을 돕는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자 하였다.51) 특히 100개의 관문도시-대학-종족을 연결하는 지역연구정보(CUP 모형) 구축을 통해 미전도 종족과 미전도 지역의 교회 개척, 중국 지식인 사역, 현지 지도자 육성에 의한 자립교회 육성 등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이다.

주요 활동으로서는 ① ‘교육 활동’으로서 영성과 중국선교, 지역연구 등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며, ② ‘전도 활동’으로서 소수민족 전도와 캠퍼스 전도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③ ‘조사 활동’으로서 미전도 종족 조사, 대학조사, 관문도시 조사를 하고 있다.52)

실제로 2년간의 언어연수를 마친 선교사로서 해당 지역의 가정교회를 개척하는 ‘파송선교사’, 유학 혹은 사업을 위해 중국 체류 중 선교적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단기선교사’, 6개월 혹은 1년간 언어 및 선교 훈련을 통해 가정교회의 활동과 지역조사를 돕는 ‘단기사역자’ 그리고 협력선교사와 협력사역자 등을 내보내고 있다. 

중국대학선교회는 단순한 캠퍼스 사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중국선교의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캠퍼스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즉, 선교하는 중국교회로 세우기 위해 캠퍼스선교 단계에서부터 먼저 대학생들을 전도하고 그들을 통해 현지 교회를 개척하도록 하는 사역에 집중하며, 나아가 중국 소수민족 복음화도 함께 이루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것을 선교회 측은 도시(City), 대학(University), 종족(People)의 앞 글자를 모아 ‘CUP 모형’ 선교전략으로 부르고 있다. 

(6) 동아시아신학원(EATS)

안성에 위치한 동아시아신학원(East Asia Theological Seminary)은 2004년 3년제 목회학 석사(M.Div.) 과정으로 개교하여 올해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한국에 있는 중국 신학교’이다. 2001년부터 동아시아신학원 설립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고, 2004년 정식 개교한 뒤 2008년 안성캠퍼스를 준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53)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선교가 활발해지고 중국 내에서도 삼자교회와 가정교회를 막론하고 신학교를 자체 운영하고 있었지만, 양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내실 있고 균형 잡힌 신학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2001년부터 준비위원회를 발족하여 설립 준비에 들어 갔다. 

개교 10주년을 맞이하였던 2014년에는 ATA(Asia Theological Association)의 인준을 받아 정회원 신학교로 가입하였다.54) 이후 신학교육학 석사(M.A. in Theological Studies)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역시 ATA 인준을 받았다. 그밖에 2016년에 평신도 목회자를 위한 과정으로써 M.M.(Master of Ministry) 과정을 신설하여 설교, 목회리더십, 선경연구, 소그룹사역 등의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는 신학교 교수 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ATA 산하의 AGST(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와 협력하여 석박사 통합 과정을 신설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AGST는 ATA 산하 신학교들이 지역별로 연합하여 운영하는 연합 석박사 통합 과정이다.55)

한편, 2018년 시행된 ‘(수정) 종교사무조례’의 여파로 중국선교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라인 수업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동아시아신학원도 2020년 9월부터 온라인 M.Div. 과정을 개설하였다. 학점은행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60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다만 온라인 M.Div. 과정은 아직 ATA의 인준을 받지 못하였다.

현재까지 총 94명의 졸업생 중 20여 명이 Th. M.이나 Ph. D. 과정에 진학하였고, 그 가운데 10명은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신학원은 학생 모집, 학생들의 비자 발급 문제, 기숙사 운영, 교사 신축, ATA 인준, 전자도서관 개설, 온라인 교육 도입 등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도 20년 동안 중국 목회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Ⅳ. 나가며

지금까지 1992년 한·중수교가 체결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한 단면을 살펴보았다. 1992년 이전에는 한편에서는 방송선교, 해외 국적 한인 기독교인의 중국 방문선교, 중국 동포교회 제자훈련 등의 활동이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복음선교회, 중국어문선교회 등 중국을 향한 초교파 선교회들이 설립되면서 언어 훈련과 함께 중국교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 활동과 문서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그리고 1992년 한·중수교로 중국의 문이 열리면서 연구와 기도로 준비 중이던 선교회들은 선교사훈련원을 속속 개원하여 선교사를 훈련해 나갔고, 즉각적인 선교사 파송으로 이어져 나갔다. 그리고 본문에서 살펴본 초교파 선교단체들을 통한 중국선교의 최절정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는데 이 시기 각 선교회와 선교사훈련원 등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에 이르는 20년간, 중국선교의 준비와 초기 선교사 훈련, 그리고 파송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은 한성중화교회에서 시작된 중국복음선교회였다. 1912년 설립된 최초의 화교교회라는 오래된 역사적 전통과 그들이 갖는 한중 경계인이라는 정체성은 결국 한국과 중국기독교 사이의 교량 역할에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한국어와 중국어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화교들의 언어능력과 대만・홍콩 및 구미 화교교회들과의 인적 네트워크 역시 당시까지는 한국교회에서 갖추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에서는 중어중문학 전공자들이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초기 중국선교 사역에서 리더로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초교파 선교단체의 부흥기는 수교로부터 10~15년 정도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사그라졌는데, 그것은 그때부터 한국의 거대 교단들이 자체 중국선교훈련원을 운영하고 타선교회와의 이중 가입 금지 등을 시행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2010년대부터는 중국 파송 선교사의 절대다수가 교단 선교회 소속으로 전환되었고, 이에 초교파 중국선교회들은 또 다른 역할을 찾아 나가야 하는 때를 맞이하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종교관리법을 제정하여 종교를 관리한다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종교사무조례’가 2005년 반포되어 시행되어 오고 있었는데, 2017년 ‘(수정) 종교사무조례’가 국무원 상무회의를 통과한 뒤 2018년 2월 1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수정 조례에서는 “종교자유정책과 종교계의 합법적인 이익,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화해를 지키고 종교활동장소의 법인격 부여와 종교재산권, 종교의 상업화 경향 제어를 명확히 하며, 종교계의 재무관리와 온라인상의 종교 관련 활동을 규범화하기 위한 것”56)이라고 설명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종교행정 법제화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즉, 종교활동이 반드시 법적 구속을 당하여야 한다는 견해로서, 이렇게 중국 정부의 엄격한 종교관리법 적용으로 인해 2018년부터는 선교지를 떠나는 사역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역사의 시기 구분에는 앞으로 1912년 산둥선교, 1949년 중국공산화, 1978년 중국 개혁개방, 1992년 한·중수교에 이어 2018년 (수정) 종교사무조례 시행이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선교사 추방이 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사들의 재배치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57) 같은 논의가 2024년 10월 5일 개최된 중국복음선교회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도 진행되었는데, 이제부터는 선교의 개념을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로 전환하여 동남아, 유럽, 남미의 중국인 교회로 향해야 하며 실제로 그렇게 되어 나가고 있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58)

한편, 2007년 중선협이 창립되었을 때, 선교회들은 앞으로 ‘중국선교’가 아니라 ‘선교중국’으로 개념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 바 있다. 즉, 중국이 스스로 전도하고 선교해 나갈 수 있도록 이제 한국교회 선교사와 단체들은 뒤로 빠져 돕는 역할을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2018년 선교사 재배치로 인해 선교중국으로의 개념 전환이 더 가속할지도 모른다. 즉, 이제부터는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도 됩니다. ♣♣


【미주】
1) 한국기독교역사학회편, 《한국 기독교의 역사 II》(기독교문사, 2012), 139. 
2)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의 개관 및 시기 구분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참고 할 수 있다: Kim, Hwal-Young, “From Asia to Asia: A History of Cross-Cultural Missionary Work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Hapdong), 1959-1992”(The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1993); 김성태, 《세계 선교 전략사: 교회사 속에 나타난 선교 전략과 사례 연구》(생명의 말씀사, 1994); 박기호, 《한국교회 선교운동사》(아시아선교연구소 출판부, 1999); 마원석, 박기호 편, 《세계선교와 한국교회》(선교타임즈, 2006); 김한성,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 역사의 시기 구분에 관한 연구,” 〈성경과 신학〉60권(2011.10) 등. 
3) 한국세계선교협의회가 주관하고 한국선교연구원이 조사한 한국선교현황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krim.org/statistics(2024년 9월 20일 접속).
4) 김은수, “한국교회 해외선교정책,” 손승호, “한국교회 태국선교의 역사,” 김영남, “한국교회의 아시아 지역 선교역사와 그 추이: 이슬람 분쟁지역 파키스탄의 선교역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28호(2008). 
5) 〈중국교회와 선교〉는 중국복음선교회 부설 중국교회와선교연구소에서 발간한 학술지로서, 창간호에서부터 정간호인 제13호까지 매 회 “오늘의 중국선교”라는 제목 아래 2~3개의 선교회 혹은 선교사들의 회고를 실었다. 
6) 이대명, “한국의 중국선교단체와 중국선교 방향성 연구: 중국복음선교회와 중국어문선교회 중심” (중국선교사훈련원·홍콩중국선교신학원 공동 석사학위논문, 1998). 
7) 중국선교협의회 백서편찬위원회 엮음,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도서출판모리슨, 2023).
8) 倫若愚, “자유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中國과 福音〉제17호(1990년 5월), 3. 
9) 왕쓰웨, “중국선교에 대한 반성과 방법의 전화,” 〈中國과 敎會〉제20호(1991년 7/8월), 14-15; 유관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한 허와 실: 중국선교 12년의 반성,” 〈中國과 敎會〉제20호, 26-27. 
10) “’90 북경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선교전략 모색: 특별 좌담회,” 〈中國과 敎會〉제14호(1990년 7/8월), 17-18. 
11) 유전명, “중국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中國과 福音〉제22호(1990년 10월), 3. 
12) 유관지, “중국복음화를 위한 편지 I: 중국선교에 관심 있는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에게- 지금, 구체적으로 시작하십시오,” 〈中國과 福音〉제25호(1991년 1월), 3. 
13) 陳鐳, “한국인의 효율적인 중국선교,” 〈中國과 敎會〉제22호(1991년 11/12월), 20-21. 
14) 倫若愚, “자유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中國과 福音〉제17호(1990년 5월), 3.
15) 함태경, “수교11돌 中선교 긴급점검: 中선교 총론은 있지만 동력 아직 부족,” 〈국민일보〉 2003년 8월 18일, 원본링크: https://www.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20030818000003701(2024년 9월 20일 접속).
16) 유전명, “1. 《중국복음선교회》의 발전과 중선협,”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291. 
17) 차하경 중국어문선교회 간사・〈중국을주께로〉 편집장 인터뷰(2024년 10월 15일 진행, 온라인 통화). 
18) 중국선교협의회는 조직 이후 2007년 8월에 선교중국 2007 대회와 선교중국대회 국제학술컨퍼런스를 연이어 개최하였는데, 국제학술컨퍼런스의 경우 주최가 중국선교협의회이며 주관이 ‘중국복음선교회’, ‘차이나네트워크연구소’ 그리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였다. 이것을 보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도 중국선교 및 선교중국에 관한 관심을 일찍부터 가지고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미션차이나2007: 일어나라 중국교회여〉 자료집(2007년 8월 20~23일 개최), 34. 
19) 유전명, “중국복음선교회 10년 회고 및 앞으로의 전망,” 〈中國과 敎會〉제38호(1994년 11/12월), 4. 
20) 유전명, “1. 《중국복음선교회》의 발전과 중선협,”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287-288. 
21) 표지 하단, 〈地極〉 1987년 6월호. 
22) 박영조, “中宣會의 발자취,” 〈中國과 敎會〉제9호(1989년 9/10월), 14.
23) “《中國과 福音》이 서울에서 창간하다,” 〈中國과 敎會〉제2호(1988년 7/8월호), 15.
24) 劉傳明, “創刊辭,” 〈中國과 敎會〉創刊號(1988년 5/6월), 2. 
25) 박영조, “中宣會의 발자취,” 〈中國과 敎會〉제9호(1989년 9/10월), 14.
26) 〈第四會 中國宣敎大會: 강사 趙天恩 博士(香港中國敎會硏究中心 會長)〉 자료집(일시: 1987년 8월 17~18일, 장소: 여한중화기독교 한성교회). 
27) “중국복음선교회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第八回 中國宣敎大會 자료집〉(1991년 10월 3~5일, 한성중화기독교회), 4-5.
28) 유전명, “1. 《중국복음선교회》의 발전과 중선협,” 288.
29) “선교회 소식,” 〈中國과 敎會〉제13호(1990년 5/6월), 53. 
30) 유전명, “1. 《중국복음선교회》의 발전과 중선협,” 289. 현재 CMI에는 홍콩, 대만, 미국, 캐나다, 필리핀, 한국 등 6지부가 소속되어 있다.
31) 왕쓰웨, “중국복음선교회와 중국선교,” 208. 
32) 송〇〇, 중국복음선교회 총무 인터뷰(2024년 10월 15일, 전화 통화). 송 총무도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인 1998년부터 4기 훈련생으로 중국선교사훈련원에서 수학하였고, 졸업 후 곧 중국복음선교회의 선교사 파송을 받았다. 
33) 《중국선교사훈련원 요람》(1997), 9-11.
34) “1997년도 중국선교사훈련원 훈련생 모집 광고,” 〈中國과 福音〉제 89호(1996년 9,10월), 15. 
35) 광고, 〈중국교회와 선교〉 제12호(2005.03), 261. 
36) “〈중국교회와선교연구소〉 안내,” 〈중국교회와 선교〉창간호(1996.08), 274-276
37) 왕쓰웨, “중국복음선교회와 중국선교,” 〈중국교회와 선교〉제9호(2000.11), 203. 
38) 송〇〇, 중국복음선교회 총무 인터뷰(2024년 10월 15일, 전화 통화). 
39) 임갈렙, “1,700만 대륙 농아인들에게 복음을…,” 〈中國과 福音〉제86호(1996년 5월), 6.
40) 왕쓰웨, “중국복음선교회와 중국선교,” 〈중국교회와 선교〉제9호(2000.11), 206. 
41) 석은혜, “중국어문선교회와 중국선교,” 〈중국교회와 선교〉제5호(1998.12), 160-161.
42) 〈중국어문선교회 안내 팜플렛〉 참조.
43) 차하경, “문서사역 선교잡지 〈중국을주께로〉 33년의 회고와 변화 이야기,”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195-196. 〈중국을주께로〉의 웹진 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http://www.chinatogod.com/main/z2s_c_this.php.
44) 중국어문선교회에서 판매하는 도서에 대해서는 다음의 홈페이지를 참조할 수 있다: http://www.chinatogod.com/main/z1_8.php?category1=1. 
45) 장희락, 이성은, “중국선교사훈련: 중국어문선교회 부설 중국선교훈련원을 중심으로,”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206. 
46) 장희락, 이성은, 위의 글, 208-209. 
47) 석은혜, “중국어문선교회와 중국선교,” 〈중국교회와 선교〉 제5호(1998.12), 163. 
48) 차하경, 중국어문선교회 간사・〈중국을주께로〉 편집장 인터뷰(2024년 10월 15일 진행, 온라인 통화).
49) 중국어문선교회 홈페이지 http://www.chinatogod.com/main/z1_sub12.php 참조(2024년 9월 14일 접속).
50) 이대명, “한국의 중국선교단체와 중국선교 방향성 연구,” 46-52. 
51) 이바나바, “중국교회와 선교중국의 미래인 중국대학생 사역,”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177. 
52) 중국대학선교회 홈페이지 참조: http://chinaum.or.kr/?page_id=615(2024년 9월 15일 접속). 
53) 이요한, “신학교육(국내에서): 동아시아신학원 신학교육 사례,”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146. 
54) ATA는 1970년에 설립되었으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33개국 326개 신학교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총신, 백석, 합신, 아신, 개신, 웨신, 횃불트리니티 그리고 중국과 관련된 기관으로서는 동아시아신학원과 세계선교신학원 등 14개 신학교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55) 이요한, “신학교육(국내에서): 동아시아신학원 신학교육 사례,”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149. 
56) 김광성, “중국공산당의 종교정책,” 《대륙의 십자가 행전: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선교백서》, 45에서 재인용. 
57) 장창일, “중국의 선교사 추방 사태 대안은 선교사 재배치,” 〈국민일보〉 2018년 12월 3일, 기사 원본 링크: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889656(2024년 9월 30일 접속).
58) 김종구, “중국선교 현황,” 〈중국복음선교회 40주년기념대회: 중국선교 회고와 전망 국제 세미나 자료집〉(일시: 2024년 10월 5일, 장소: 한성교회), 31. 








♣이혜원 | 메이지가쿠인대학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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