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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3  통권 280호  필자 : 김종건  |  조회 : 1525   프린트   이메일 
[중국기독교회사]
중화귀주운동과 협진회의 출범

《중화귀주》의 출판 
‘중화속행위판회(中華續行委辦會, The China Continuation Committee)’는 1914년 산하 특별위원회로 기독교사회적용위원회(Special Committee on the Social Application of Christianity)를 조직하여 아동교육, 평민교육, 공중위생, 환경위생 등 중국교회가 향후 감당할 주요 활동 영역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와 더불어 제 교회 연합과 ‘중국교회’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욱 널리 확산하였다. 이에 1918년부터 150여 선교 단체들이 중국 선교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조사를 다방면으로 시행하였고, 이를 수합하여 1922년에 《중화귀주(中華歸主, The Christian Occupation of China)》란 제목에 ‘중국기독교사업통계(中國基督教事業統計) 1901—1920’이란 부제를 달아 600여 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출판하였다. 이 자료 편찬의 주편은 미국 선교사 스토퍼(Milton Theobald Stauffer, 司德敷)가 맡았고, 나병생(羅炳生) 등 31명이 조사 편집에 참여하였으며, 영문판 외에 중문 요약판이 함께 간행되었다. 이는 ‘중화귀주’운동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중화귀주운동의 시작
1910년대 중반 중국에서 전개된 신문화운동은 전통과 유교 정신에 머물던 중국의 새로운 변모를 위해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과학 정신의 확산이 필요함을 크게 확산시켰다. 서구 정신의 도입 주장은 중국교회에 대한 피해를 주지 않았으나, 유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 전반에 대한 비판 의식의 확산을 가져왔고, 아울러 중국교회와 중국선교에 큰 장애로 다가오게 되었다. 

1919년 5·4운동은 이러한 신문화운동를 통해 확산한 민주주의와 과학 정신의 영향,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부각한 제국주의 서구 열강에 대한 반발 등이 배경이 되어 일어났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로 학생, 노동자와 상인들이 각각 동조하여 전개된 새로운 중국을 지향하는 대중운동이었다.

이러한 비종교적 조류 확산 시국에 대응하기 위하여 중화속행위판회는 1919년 12월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상해에서 ‘중화귀주운동위원회(中華歸主運動委員會)’를 조직하였다. 여일장(余日章, 1882〜1936)이 위원장을 맡았고, 성정이(誠靜怡, 1981〜1932)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중화귀주운동(China for Christ Movement, 중국을 주께로)’은 중국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고양되고 있는 애국주의운동과 비기독교적 지향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의 신앙 심화, 가정·학교·교회에서의 기독교 교육 강화, 중국인 기독교 지도자 육성, 비신앙인들에 대한 전도 강화 등을 지향하였다.

중화기독교협진회의 출범 
1922년 5월 상해에서 개최된 제5회 기독교전국대회에서는 지난 10년간 중화속행위판회의의 활동 성과를 점검하면서 모든 교회의 협력을 주관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이 재인식되었다. 이에 최초의 전국 조직으로 중화기독교협진회(The National Christian Council of China; NCC)을 결성하였다. 

1923년 제1차 연회에서는 협진회의 기능과 관련하여, 진도의 신상적 교제 심화, 제 교회의 정보 연락의 중심 역할, 새로운 전도 참고 지식의 제공, ‘본색(本色)교회’ 육성,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의견 표명 등 5개 항으로 의결하였다. 이를 위해 매년 총회를 개최하고, 회보와 연감(年鑑) 출판하여 기독교가 중국 전통에 적응하여 본색교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자 하였다. 아울러 산하에 퇴수여포도(退修與佈道)위원회, 국제위원회, 공업여사회(工業與社會)위원회, 향촌포도(鄕村佈道)위원회 등 4개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특히 공업여사회위원회에서는 아편 흡음 반대, 12세 이하 아동 고용 반대, 주 1일 휴일 설정, 노동 주간(4.26〜5.2)과 노동절 제안 등 중국 사회 현안에 대한 역할과 중국 근대화를 지향하는 계몽에도 앞장서려고 하였다.

1925년 제3차 연회에서는 본색교회위원회를 추가 조직하여, 중국 문화상의 가치 있는 요소 연구, 중국 각 종교 단체의 근대화 운동 조사, 종교반대운동 조사, 중국 내 독립교회 현황 연구, 외국 선교 단체와 중국교회의 관계 연구, 중국교회의 예배와 혼상례 등 의례 연구 등을 일차적인 과제로 제기하였다. 

그러나 1926년 10월 제4차 연회에서는 중화기독교협진회의 중국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 여부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었고, 내지회와 신의회 등이 탈퇴하면서 연합운동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








♣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중화귀주(中華歸主, The Christian Occupation of China)》中華歸主的搜索结果_百度图片搜索 [2025.12.2. 접속함]
♣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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