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선교회의 통합 중국 개신교회의 연합 활동은 1843년 중국어 성경 번역을 위해 처음 시도되었고, 1877년과 1890년 상해에서 선교사회의가 열리면서 연합을 지향하는 역량 결집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로교 차원의 통합운동으로는 1862년 하문(廈門) 지역 미국 북장로회(Presbyterian Church in U.S.A(North)), 미국 남장로회(Presbyterian Church in U.S.A(South)), 미국 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America), 영국 장로회(Presbyterian Church of England)가 통합 조직을 결성한 바 있다. 1901년 10월 2일 상해에서 열린 장로회선교사대회에서는 교회 통합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가 결의되었고, 1903년 11월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7개 장로교파가 상해에서 모여 본격적인 통합 활동을 개시했다.
이어 1905년 장로교대회가 두 차례 개최되고, 산하에 9개 노회를 조직하였으며, 여기에 아일랜드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Ireland), 캐나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Canada), 스코틀랜드교회(The Church of Scotland), 스코틀랜드연합자유교회(The United Free Church of Scotland) 등도 가담하면서 ‘중화기독교장로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Christ in China)’란 이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화기독교장로회는 1910년 중국선교협의회를, 상해를 본부로 하여 창설하여 중국선교 연합 활동을 관장하게 되었다. 성공회, 침례회, 루터회 등 선교단의 통합 성공회계 선교사들도 1897년 이후 연합을 시도하다가 마침내 1909년 영국국교회선교회(The Church Missionary Society), 영국해외복음전도회(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s, SPG), 미국성공회(Protestant Episcopal Church in U.S.A.), 캐나다성공회(Church of England in Canada)가 연합하여 ‘중화성공회(Holy Catholic Church of China)’로 통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각 교단의 모국 본부로부터 각각 승인을 받아 1912년 정식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침례회계 선교회들도 ‘중화침례회’로 통합하였고, 루터계도 ‘중화신의회’로 통합하였다. 이러한 선교회들의 교단별 통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우선 개신교회가 많은 교파로 분열된 것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한다는 현실, 너무 세분화한 선교회 단위 선교의 비능률성에 대한 대안의 모색, 그리고 교회는 하나라는 ‘세계교회(Ecumenical Church)’을 지향하는 경향의 대두 등이 배경을 이루는 것이었다.
초교파 연합 기관 조직 중국 개신교 선교의 선구자였던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의 중국선교 100주년이 되는 1907년 4월 25일부터 5월 7일까지 ‘중국선교 100년 기념회의(The China Centenary Missionary Conference)’가 상해에서 열렸다. 당시 중국 선교사 3,833명 중 1,179명이 참석하였고, 일정 중 5월 1일에는 연합기관으로 ‘중국교회연합(The Christian Federation of China)’을 조직하기로 의결하였다. 지금까지 교단별 선교단 통합에 그치고 있었던 중국교회 합동의 노력이 전체 교단을 포괄하는 연합을 지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중국인 교회에 관한 관심도 높아져서 중국 내 모든 개신교회를 포함하는 실질적인 중국교회 연합, 즉 ‘중화기독교회(he Church of Christ in China)’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각 지역 단위 연합회를 조직하고 그 대표들로 전국연합회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08년에는 사천성 성도에서 먼저 장로교회뿐만 아니라 침례회, 공의회, 성공회, 순도회 등 제 교단이 망라되어 ‘화서(華西)기독교회’로 연합 조직이 출발하였으며, 광동·복건성에서도 ‘광동민남(廣東閩南)중화기독교회’가 연합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 교육 사역에서도 교단 연합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1906년 이후 중국 화북, 화서, 화동, 화중 등 기독교협화교육회(基督敎協和敎育會)가 조직되었고, 전국을 아우르는 ‘중국기독교교육회(China Christian Educational Association)’로 발전하였다. 1922년 이후 중국기독교교육회는 고등, 초중급, 종교, 성인교육조의 4개 조로 조직을 갖추고, 중국 전역을 10개 교육구로 나누었으며, 각급 조와 구 단위 위원회가 교육 사업의 성과를 높이고 중국의 교육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연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북경의 연경대학, 상해의 성요한대학, 화중대학, 화서협화대학, 화동협화대학 등이 그 연합을 지향한 노력의 대표적 결실이었다.
중화속행위판회의 조직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회의(The World Christian Conference)’에서 교회 일치를 위한 협력이 결의되고, 그 속행위원회 위원장인 존 모트(John Raleigh Mott)의 중국 도착을 기해 제4회 ‘기독교전국대회’가 1913년 상해에서 열렸다. 여기서 ‘중화속행위판회(中華續行委辦會, The China Continuation Committee)’가 조직되고, 전국적 교세 통계 조사, 중국 미전도지역 전도 촉진, ‘중국교회’의 수립, ‘중국교회’ 지도자 양성 계획 및 제 교파와 교회의 연합 등을 위한 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을 개시하였다. 특히 중국교회 전체의 통합, 중국교회의 토착화, ‘중화기독교회(The Church of Christ in China)’의 건설, 경제적 자립, 중국형 교회, 중국인에 의한 전도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되었다. 이로써 중국에서의 교파와 선교단이 통합된 ‘중국교회’의 수립을 지향하는 좀 더 강력한 구심체를 이루게 되었다. ♣
♣ 사진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4_%EB%AA%A8%ED%8A%B8 [2025.11.6. 접속함] ♣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