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이하 ‘마오’로 호칭)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습니다. 중국공산당 내에서도 마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공산당 내부에서 마오의 공(功)과 과오(過誤)를 7대 3으로 본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마오를 앞에 내세워야 합니다. 마오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 중국공산당의 입지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 프랑크 디쾨터는 독보적인 중국 현대사 연구자이자 저술가입니다. 네덜란드 태생입니다. 역사학과 러시아어를 복수 전공했다고 합니다. 중국 현대사 교수로서 학과장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디쾨터가 중국을 주제로 펴낸 10여 권의 저서들은 현대 중국을 바라보는 역사가들의 시각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디쾨터의 ‘인민 3부작(열린책들, 2016)’은 국내에서도 역사 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인민 3부작은 《해방의 비극》(1945~1957), 《마오의 대기근》(1958~1962) 그리고 《문화대혁명》(1962~1976)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디쾨터 글쓰기의 특징은 기존에 출간된 도서와 일반적인 사료에 근거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본인만의 독특한 노력과 치열함으로 채워집니다. 인민 3부작을 쓸 때, 디쾨터는 10년 동안 아열대 지역인 광둥(廣東)성부터 몽골 사막 인근의 가난하고 매우 건조한 지역인 간쑤(甘肅)성까지 중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수천 건의 당 기록물을 조사했습니다. 최고 회의의 비밀 회의록, 대량 학살 사건에 대한 조사 내용, 수많은 주민을 굶주리게 만든 지도자들의 자백, 농촌의 저항에 관한 보고서, 비밀 여론 조사 그리고 일반인들이 쓴 항의 서한 등 해제된 기밀문서를 참고로 했습니다.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2012년 11월에 시진핑이 집권한 뒤부터 기록 보관소들이 다시 문을 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쾨터는 자료 공개에 놀라울 정도로 개방적인 도시 및 지방 기록 보관소 10여 곳을 찾아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곳에서 찾아낸 약 6백 건의 문서를 기초로 했다고 합니다(공식 문서 기밀 해제 30년 규정을 훌쩍 넘어서는 2009년에 생산된 광범위한 주요 자료들도 포함). 아울러 미발표된 회고록과 주요 인사의 비망록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마오 이후의 중국》은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부터 시진핑이 중국 국가주석으로 오르기 직전인 2012년까지 이어집니다. 디쾨터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어떻게 강대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이 ‘경제기적’이라는 자평(自評)을 한 것에 제동을 겁니다. 법에 따라 통제되지 않고, 독립적인 사법 체계와 자유롭고 개방적인 언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시장은 결코 제대로 된 시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정치적 자유가 없는 경제적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과 더불어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민 사회와 독립적인 언론 등의 요구에 부응해 여러 기관으로 분산되어야 할까? 아니면 한 개인이나 한 정당에 집중되어야 할까? 전자는 민주주의라고 불리며 후자는 독재라고 불린다.”
세계화(2001~2008) 1999년 1월 15일. 미국 대사관이 군중들에 의해 포위됩니다. 그 무리는 중국과 미국이 무역협정에 조인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이었습니다. 2000년 미·중 관계법은 사실상 중화 인민 공화국에 이전의 최혜국 지위로 알려졌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미국과 특정 국가 간의 무역 관계를 의회가 매년 심사하지 않고 한 번 결정되면 이후에는 자동으로 정상적인 무역 관계 지위를 부여하는 것)를 부여했습니다. 이로써 2001년 12월 11일에 중국은 WTO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됩니다. 시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일단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취임 이래로 해결하고자 노력해 온 경제 문제 중 상당수가 예상보다 훨씬 더 고질적인 것으로 드러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막대한 보조금과 추가 대출, 거기에 더해서 광범위한 인수합병 프로그램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영 기업들은 여전히 적자 운영 중이었습니다. 농촌에서는 수백만 개의 향진 기업(鄕鎭企業, 우리나라의 읍면에 해당하는 중국의 향, 진 주민들이 생산, 판매, 경영 따위를 공동으로 시행하는 기업의 한 형태. 1978년부터 중국의 개혁, 개방 운동에 따라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시작됨)들이 도저히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없는 상품들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생산 과잉 현상이 도를 지나쳐 2001년에 재차 디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신중하게 추산된 디플레이션율은 3퍼센트였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실제 수치는 훨씬 높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다만 금융비용 같은 서비스 비용이 늘어나 정확한 산출이 불가능했습니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976년에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세계 123위였습니다. 2001년에는 25년 동안 끈질기게 경제 성장을 강조했음에도 오히려 130위로 더 떨어집니다. IMF는 약간 다른 수치를 사용했지만, 1인당 총생산 역시 중국이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거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마찬가지로 강조합니다. 투명성이 부족한 데다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제대로 훈련된 회계사들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편으로 의심스러울 수 있었지만, 이 수치들은 일부 외국인들이 경제 기적이라고 칭송한 경제 성장의 속도가 마냥 빠른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세기가 바뀌기 전에 경제 규모를 네 배로 늘리겠다는 덩샤오핑의 목표를 달성했고, 세계 무역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주요국이 됩니다. 장쩌민(江澤民)과 주룽지 치하에서 등장한 주식과 상품 및 채권 시장은 비록 시장의 힘보다 국가의 손에 의해 뒷받침되었지만, 중국이 중앙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확실하게 전환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1997년 이후로 심지어 국영 기업들의 인수 합병이 장려되고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를 하면서 민영 부문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WTO 회원국들은 중국이 그토록 갈망하는 회원 가입을 통해 공공부문을 보다 많은 경쟁에 노출하여 경제 개혁을 앞당기겠다는 주룽지의 약속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검열의 나라 마오쩌둥은 한때 펜이 총만큼이나 위험한 도구라고 단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신 기자들이 점점 더 많은 협박과 추방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현지 기자들은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받았습니다. 시진핑은 중국 언론 매체가 “당을 사랑하고, 당을 보호하고, 당 지도부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이 보는 외국 교과서를 제한하고, “그들의 머릿속”에 마르크스의 가치관을 직접 주입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인터넷 검열도 한층 강화되어 2019년에 이르러서는 좀 더 많은 외국 앱-구글, 페이스북, 드롭박스, 유튜브, 레딧, 스포티파이 등-과 외국 뉴스-BBC, 〈파이낸셜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로이터, CNN 등 -가 차단 됩니다. 그리고 두 개의 별도 인터넷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국에서 접속할 수 없는 인터넷입니다. 사람들은 외국에 나갈 때 자신의 기기를 가져갔고,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외국에 있을 때조차 디지털 방식으로 24시간 내내 감시를 당하는 셈입니다.
디쾨터가 바라보는 중국의 장래는 어둡기만 합니다(비록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현재 공산당이 직면한 과제는 권력 독점과 생산 수단 장악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생적인 오랜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쾨터의 글을 읽는 것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입니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해 보는 시간이 됩니다. ♣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