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룬녠(董潤年, 1982〜 )이 각색하고 연출하여 2023년 연말에 상영한 이 영화는 2023〜2024년도 중국 영화 빅데이터 및 영화채널 차트에서 연간 화제작 상을 받았다. 또한 최근 3년간 새해 영화 누적 관객 수 1위, 중국 영화사 신년 시즌 영화 누적 박스오피스 3위, 박스오피스 1억 8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였으며, 《중국 영상물 백서》가 선정한 2023년도 10대 영향력 있는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제20회 중국영화화표(華表)상에서 우수 스토리 영화상을 수상하였는데, 중국영화화표상은 국가영화국이 주최하고 심사 및 시상하는 중국영화정부의 상으로, 사회적 공헌을 인정받은 것이다. 둥룬녠은 1999년 중국커뮤니케이션대학(Communication University of China)에 입학하여 영화 연출을 전공하였다.
이 영화는 직장인의 위기와 직장의 부조리를 코믹하게 풍자하였다.
후졘린(胡建林, 大鵬 분)은 1998년 새해에 대담중합표준부품공장(大潭眾合標准件廠) 연회에 참석하여 인기 가수 장위성(張雨生)의 ‘나의 미래는 꿈이 아니다(我的未來不是夢)’를 불렀고, 연회에서 만난 여성과 1999년에 결혼한다.
영화는 마카오 반환, WTO 가입, 베이징올림픽, 인터넷 시대 진입, 영화 ‘타이타닉’ 상영 등 역사적인 순간들을 나열하였다. 중국의 격변 속에 한 작은 공장은 연 매출 100억 위안을 돌파하고 대담중합(大潭眾合) 그룹으로 성장한다. 후졘린의 아내는 공장은 그룹으로 성장하는데, 여전히 남편은 말단 노동자 신세라고 투덜대며 집을 떠난다.
공장 자재과 과장 좡정즈(莊正直, 王迅 분)는 아들을 도시의 명문 중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라오허우(老侯, ROCK 분)를 통해 본사 인사담당 이사 토마스(托馬斯, 大木 분)에게 30만 위안을 뇌물로 보낸다. 술에 취한 토마스가 공장의 숙련된 기계공인 후졘린을 전근 대상자로 착각하면서 본사로 승진 발령을 내게 된다. 토마스는 그룹 연회에 참석하려고 제출한 후졘린의 신청서를 보고, 전근 대상자로 착각하고 후졘린을 본사 인사과로 승진 발령을 한다. 후졘린은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그룹 본사로 발령받는다. 인사부 마제(馬傑, 白客 분)는 이 황당한 착오를 알아차렸지만, 일련의 파문을 두려워하여 후졘린을 돕는다. 후졘린은 신비스러운 풍운의 인물로 오해도 받았지만 뜻밖에 승승장구하면서 고속 승진한다.
2019년 서른다섯 살이 된 후졘린은 본사 발령을 받고 오래전 결혼할 때 입었던 슈트를 꺼내 입고 첫 출근을 한다. 후졘린의 인사 발령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문책이 두려워 모른 척하는 마제는 사무실 근무에 어려움을 보이는 그에게 업무 적응을 위해 직원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한다.
인적 자원(Human Resources·HR) 부서에 속해 있고, 구조조정의 민감한 시기에 마제가 제안한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겠다며 벌인 소동은 오히려 직원들을 겁먹게 했다. 후졘린이 이름을 불렀다고 공포에 떨었고, 그가 무심코 건넨 해바라기씨 한 줌마저도 “씨앗의 개수가 곧 잘려 나갈 머릿수”라고 과잉 해석되어 소문으로 퍼졌다. 직원들은 자신의 이름이 감원 명단에 포함될까 봐 두려워했다. 특히 직장에서 사원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권력의 위압으로 비칠 수 있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회장과 부자관계란 거짓 소문까지 돌면서 후졘린은 고속 승진한다.
영화에 담겨 있는 직장생활 풍속도도 볼 수 있다. 상사는 말을 일부러 모호하게 해서 부하 직원이 윗사람의 의중을 헤아리게 만들고, 친화력을 이용하여 부하 직원이 상사를 위해 대신 일하게 한다. 부하 직원들을 서로 치열한 경쟁으로 맞서게 하고, 윗사람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게 불만과 공격의 화살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한다. 윗사람이 부하 직원들을 착취하는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둥룬녠 감독은 6년간 대본을 수정하고, 직장인에 관한 조사 연구를 위해서 여러 차례 취재하였다. 2017년에는 야근이나 윗사람에 대한 신뢰도에 불만이 있는 직장인들이 있었지만, 마음은 그래도 편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난 2021년의 직장인들은 불투명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초조함이 심해졌으며, 2022년에는 경제 침체에 따라 직장인들의 실업에 대한 위기감과 스트레스가 고조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원가 절감을 위해 직원들을 감원 및 해고하면서도 연말연시 연회 행사에 6,000만 위안이나 들이며 회사를 과시한다고 풍자한다. 또한 무료 식당과 휘트니스 센터 그리고 고급 휴게실을 운영하며 직원들에게는 야근을 더 부추겼다.
대담중합 그룹의 이인자인 쉬윈펑(徐雲峰, 李乃文 분)은 대규모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통해 회사의 권력 구조를 개편하여 회사를 장악하려고 하였다. 쉬윈펑은 폭력배를 불러 자신과 관련하여 후졘린이 찾아낸 부패 증거를 빼앗으려고 했다. 대담중합표준부품공장 노동자들은 후졘린이 해고를 지시한 것이 아니라는 오해를 풀고 그를 도와준다. 후졘린과 마제 그리고 판이란(潘怡然, 莊達菲 분)은 연회 자리에서 쉬윈펑의 부패를 폭로한다. 회장은 공장 노동자의 해고계획을 취소한다. 세 명의 용기 있는 직장인과 300명의 공장 노동자의 노력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후졘린, 마제 그리고 판이란의 모습은 직장인으로서 전형적이거나 비전형적이며, 몽상적이거나 이상적이다. 그중 2000년 출생 세대로 6년째 외주사 계약직 직원인 판이란은 반항과 이상주의의 상징이며, 마제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명철보신(明哲保身)한다. 영화는 직장인 동화 같다.
둥룬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직장인 관객에게 통쾌함이나 위로를 선사하는 것 이외에 한국 영화의 《기생충(2019)》, 《택시운전사(2017)》처럼 사회 공정과 정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평범한 사람이 과연 공정한 대우를 쟁취할 능력이나 용기가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싶었고, 현실 속에서 공정과 정의를 획득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영화에서 다루었다고 설명했다.
후졘린의 본사 발령은 공정 관련 문제의 시작점이다. 그는 본사로 발령받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공장에서 매년 우수 사원으로 뽑혔기 때문에, 그룹에서 모범으로 삼고자 저를 불러올린 겁니다. 노력만 하면 저처럼 될 수 있어요.” 이는 오해이고 난센스이며 황당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최적화[優化]’의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후졘린은 시위자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을 해 주었다. 다소 엉뚱하고 황당한 과정이 펼쳐지며 도달한 결론은 코믹하게 현실을 비틀었다.
사내 교육을 맡게 된 후졘린은 용접·기계 조립 교육을 시행했는데, 사내 간부들을 공장으로 데려가 망치를 들게 하였다. 공장의 사장 출신인 회장은 이를 기발하다고 칭찬하였다. 이야기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소품(小品, 단막 꽁트) 연출 방식을 통해 중국 관객에게 웃음을 자아냈다.
《노포아(老炮兒)》로 2017년 금계장(金雞獎)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한 둥룬녠 감독은, 2019년에는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빛에 붙잡힌 사람들(被光抓走的人)》을 데뷔작으로 선보였는데, 우화와 리얼리즘 공상과학의 결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자신은 단지 상성(相聲, 만담)뿐만 아니라 경극 등 전통 희곡 문화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세상은 연극 무대와 같다는 둥룬녠 감독 톈진(天津) 출신인 둥룬녠은 어려서부터 상성 공연에 심취하여 류바오루이(劉寶瑞)의 단구상성(單口相聲, 일인 상성) 《연승삼급(連升三級)》 공연을 좋아했다. 부잣집 아들 장하오구(張好古)는 글자도 모르면서도 과거 시험을 보겠다며 수도로 가서 조정 대신들의 어리석음과 부패 때문에 그의 실력이 드러나기는커녕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연달아 세 번이나 승진해 결국 큰 벼슬까지 하였다. 이 상성의 내용은 영화와 닮아있다.
또한 이 영화는 러시아 고골리 희곡 《검찰관》 과도 비교된다. 건달 청년 헬레스타코프가 중앙에서 암행 감찰 나온 검찰관으로 어쩌다가 오인되자, 부패한 관료들을 실컷 골려주고 자취를 감춘다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부패한 관료정치를 비판한다.
영화는 현대인의 영어 애용 풍조를 풍자한다. 후졘린은 본사에 들어가 영문식 이름을 강요받는다. 그는 영어를 들으면 알파벳이 아니라 중국어로 노트에 받아 적는다. 자신의 영어 이름 john도 壯(장)으로 옮겨 적었다.
장위성의 팬인 둥룬녠은 장위성의 노래 ‘나의 미래는 꿈이 아니다’를 직장인의 노래로 개사하였다.
“당신도 나처럼 구조조정 속에서 불안해하며, 자리 지키며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있죠? 당신도 나처럼 매일 누명을 써도, 5대 보험(연금보험, 의료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 출산보험)과 장기 주택적금의 굴레는 내려놓지 못하죠?”
상사의 눈치에 시달리고, 불공정에도 말도 못 하고, 직장에서 몇 년을 버텼지만 돈이나 자존감도 오르지 않고,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려 몸은 해마다 쇠약해진다. 외주직은 힘들고 더러운 일을 도맡고, 줄 잘 서고, 아부 잘해야 앞날을 보장받고, 하위직은 마음이 불안하고, 중간 간부는 파벌 싸움, 회사는 기계, 사람은 나사못, 가사의 내용은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는 더우반(豆瓣) 평점도 10점 만점에 8.2점으로 높고, 새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였다.
모든 직장인은 동료와 상사에게 공정성 문제에 불만을 품을 수 있다. 회사에서 직무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고민한다. 열심히 일해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거나, 오히려 모욕과 조롱을 당하기 일쑤이다.
마제는 후졘린의 인사 발령 문제로 권고사직을 예견하면서 당대(唐代) 시인 이백의 시 “남릉에서 아이들과 헤어지고 수도에 들어가며(南陵別兒童入京)” 구절을 읊어 자신을 위로했다.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문을 나서니, 내가 어찌 평범하게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이겠는가?(仰天大笑出門去, 我輩豈是蓬蒿人)” 현대 직장인의 고뇌는 이백의 시에 나타난 자신감, 호방한 기개, 원대한 포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후졘린과 마제 그리고 판이란은 회사 내 권력 투쟁과 부패를 고발하였다. 그 뒤 후졘린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부공장장이 되었는데, 유능하고 양심 있는 리더는 작은 공장에 머물게 된다. 판이란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디션에 참가하며 회사를 떠난다. 순응의 상징인 마제는 승진과 급여 인상으로 회사에 남는다.
공장에서 대기업으로 들어간 노동자 후졘린은 직장에서 그가 겪는 온갖 형태의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뇌물 거래, 자리보전하기, 대충 때우기, 보여주기식 치적, 부실시공, 음모와 갈등, 파벌 싸움, 남을 해치며 사익 챙기기, 강제 야근 등등.
영화는 어쩌면 중국 청나라 말의 견책(譴責) 소설인 오견인(吳趼人)의 20년간 목도한 괴현상을 다룬 《이십년목도지괴현상(二十年目睹之怪現狀)》의 현대판이다. 청조 말기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영화는 현대와 직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알리바바 그룹이 운영하는 오픈마켓 타오바오 인기 상품 리스트에 ‘뽀롱뽀롱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 루피(Loopy) 인형이 이름을 올렸다. 직장인들은 사무실 책상 위에 루피 인형을 두며 루피 이모티콘을 쓴다. 중국에서 비버인 루피는 직장인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뽀롱뽀롱 뽀로로’에 나오는 분홍색의 캐릭터 비버 루피는 마음씨 착하고 소심한 개성을 지녔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겉으로는 반항적인데 속은 더 반항적인 이미지로 재해석되었다. 루피의 순하고 귀여워 보이는 외모에, “오늘 아무것도 안 했지만 그래도 난 수고한 거야.”와 같은 직장인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시니컬한 문구들로, 풍자와 치유를 극대화하여 현대 직장인의 속마음을 대변하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인정을 받고 존재와 가치를 확신하는 직장인이 늘어났으면 한다. ♣
♣ 김영철 | 한양대학교 글로벌문화통상학부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