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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20  통권 89호  필자 : 이바나바  |  조회 : 2644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사단나라의 기강을 흔들며

 1999년 여름, 10일 간의 단기선교로 처음 중국 땅을 밟은 뒤, 꼭 1년 후인 2000년 8월에 중국에 다시 들어가서 4년 반의 한 텀 사역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다. 물론 중간에 2번 정도 짧게 들어오는 기회가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안식년을 위해 들어 온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처음 며칠 동안은 꼭 남의 집에 온 것처럼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적응이 되었으나, 이제 갓 4살이 되는 어린 딸은 아직도 태어나 자란 중국 땅을 그리워하며 향수(?)에 젖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전에 함께했던 교회며, 훈련 받으러 오가던 길, 캠퍼스에서의 추억들이 하나하나 기억 속에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4년이 넘었지만, 이곳은 중국에 비해 별로 바뀐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있었던 중국 H성 S시에서는 현재 급변하는 중국의 변화와 발전의 모습을 친히 우리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었던가?

 

중국으로 떠나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부부도 처음 학교에 등록한 후에 한어를 배우게 되었다. 전혀 언어배경이 없었던 우리들은 마치 아기가 언어를 익혀 가듯 하나하나를 배워야만 했다. 다행히 미리 와 있었던 동료 선생님들이 있어 언어와 생활면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더 빨리 낯선 환경과 문화에 적응 할 수 있었다.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익혀가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었다. 특히, 조금씩 익혀가는 언어를 도구로 어색한 말과 손짓으로 학생들을 사귀어가고 알아가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었다. 친구를 삼고 집에 초대하여 사귀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들 속에 있는 순수함에 너무 놀라고 감사했다.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고 관심을 기울였을 때 가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 그들이었지만 그 가진 것을 다 내어놓으며 화답하던 그들. 우리가 책자나 다른 경로를 통해 알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정보들이 때로는 너무 피상적이고, 실제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현지에서의 삶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주관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깊은 정이 있었다. 그렇게 언어를 배워가는 동안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들은 후에 우리 부부가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있었던 지역은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공기오염 정도가 1-2위 순위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환경적으로는 참 힘든 지역이었다. 늘 스모그로 뿌연 하늘, 코를 매캐하게 찌르는 이상한 화학냄새로 얼룩진 공기, 항상 휘날리는 검은 먼지는 이 지역이 얼마나 공기 오염이 심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환경적으로 그러할 뿐이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마음이 따뜻한지 늘 우리 기도의 감사제목이 되었다. 거짓 없는 순수한 심성, 추수하는 농부의 낫을 기다리는 곡식처럼 그들은 그렇게 준비되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중국을 특별히 사랑하시며, 또 축복하고 계시는 한 증거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많은 낙후함과 숨쉬기조차 힘든 오염이 심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 땅이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였던 이유는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곳에 있기 때문에, 곧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기 때문이리라.

 

중국에서의 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많은 도전과 은혜를 기억케 하는 한 만남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단기 선교팀과의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같은 칸에 있는 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는 여름이어서 꽤 더울 때였는데 마침 우리가 기차를 탄 후 얼마 되지 않아 기차의 에어컨이 고장이 나 버렸다. 조금은 짜증나는 마음이 있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옆 침대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젊은 친구가 눈에 띄어 이야기를 걸게 되었다. 이런저런 내용으로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전하는 도중 자야 할 시간이 되어 기차의 등이 꺼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희미한 취침 등에 사영리 책자를 비추어가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영접했다.

 

마침 우리가 사는 지역이 그의 고향이자, 근무지여서 그는 우리와 계속 교제할 수 있었고, 그 후 교제가 깊어지고, 형제의 신앙이 자람으로 그 형제는 우리 모임의 리더가 되었다. 초등학교 미술선생님이기도 한 그는 말씀에 대한 분별력과 전도하는 일에 은사가 있었다. 그리고 결단력 있는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 배워가는 가운데 어떠한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가를 알게 되었는데 자신도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다니던 교사직을 그만 두어야 하는데, 자신의 계획을 부모님과 상의하게 되면서 굉장한 반대에 부딪혔다. 신앙이 없는 부모님이 이 사실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남들은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려하는 학교의 교사직인데 그렇게 좋은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에 대해 부모님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형제가 당시 너무나 완강하게 나오니까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들이 잘못된 종교에 빠졌구나, 빠져도 너무 빠졌다, 이제는 아들의 삶을 완전히 망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의 계획을 막아보려고 했다.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이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되자 우리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우리의 신분을 의심하게 되었고, 나중에 법률가에게 자문을 의뢰한 결과 우리의 이러한 행동과 일들이 불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나중에 형제를 통해 들은 이야기는 우리의 행동이 “국가 기강을 흔들게 하는 아주 나쁜 일”이라고까지 아버지께서는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들은 우리의 첫 텀 사역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일어났다. 형제의 아버지가 우리의 신분의 약점을 이용해 최후의 방법으로 아들을 위협하려고 한 것이다. 그때 우리가 느낀 것은 ‘우리가 사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 마지막 학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지 않고 돌아가라고 하면 미련 없이 가야하는 것이구나.’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잠잠해 지는 듯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 학기가 뭔가 심상찮은 학기라 생각하고 새로운 각오로 준비하고 마음속에 기대감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새 학기 초반부터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고 낙담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이번 학기에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구나하는 기대감이 우리를 뜨겁게 했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돌아오기 전 마지막 학기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풍성하게 거두는 기쁨을 우리에게 맛보게 하셨다. 형제자매들이 매주 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데려왔고 또, 그들은 주님을 믿겠다고 결단했다. 그리고 교회에 기도의 바람이 불어 중보기도가 뜨겁게 불타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도 기도로 넉넉히 극복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그러나 사단 또한 결코 그냥 있지 않은 한 학기였다. 리더형제의 아버지는 결국 우리의 신분과 우리의 사역을 국가안전기관에 신고를 한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의 전화와 휴대폰은 모두 도청되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우리는 늘 함께 교제하는 현지인 형제자매들에게 전화할 때 언어에 조심할 것을 당부했지만 그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있던 곳에서 한 번도 그러한 일로 문제된 적이 없어 우리 자신도 느슨한 생각에 보안문제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어느 날, 그 형제가 사색이 되어 우리를 찾아 와서는 공안국보다 더 상급기관인 국가안전정보국 사람들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워낙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고, 또한 그들이 우리의 상황을 너무도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어 묻는 말에 부인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위법사실에 대해 증거를 확보하고 있고,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캐려 한다고 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그래서 급히 문제가 될 만한 서적과 자료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남은 것은 찢고, 태우고 하면서 조용히 일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떠나는 것이 옳겠다는 판단에 세워진 리더 4명에게 앞으로의 모임과 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당부하고 서둘러 귀국하게 되었다. 떠나기 전 일주일가량의 시간들은 그동안 중국에서의 4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이것이 정말 선교사의 삶이구나. 그동안 너무 긴장감 없이 살아 왔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연단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교회가 부흥하려 하는 시점이었는데, 우리가 떠나옴으로 남겨진 형제자매들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많았다. 이것이 사단의 공격인가? 아니면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나? 라는 생각에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혼란함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 일로 낙심하거나 낙망할 것이 아니라고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 돌아와 그들과 다시 연락을 취하는 가운데  여전히 그들이 믿음으로 굳건히 서 있다고 하는 것과 세워진 리더들이 형제자매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너무 감사했다. 우리는 비록 떠나 왔지만 남겨진 그들에 대해 분명히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이끌어 주실 것이다. 형제의 아버지가 이야기한 말이 생각이 난다. 우리의 행위가 신앙이 없는 그의 아버지에게는 “국가 기강을 흔들게 하는 아주 나쁜 일”로 비춰졌다고.

그렇다면 사단에게 있어서도 우리의 이러한 일들이 그들의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단이 자신의 나라가 갈수록 붕괴되어 간다고 생각하여 얼마나 놀라고 긴장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이번 일이 이해가 된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임을 안다. 우리를 부르셔서 세우시고 그 땅에 가게 하신 것은 바로 치열한 영적 전투를 위한 군사로 서기 위함이다. 그 땅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를 부르고 일으키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심을 믿는다. 비록 이런 사소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순종해 나가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나갈 것이다.

 

돌아보면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 가정은 보안문제라는 부분에서 별 의식 없이 살아왔다. 물론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 그것에 너무 신경을 썼다면 정작 해야 될 일 앞에서 마음 졸여 중요한 일들을 놓쳤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과신해서도, 그렇다고 너무 마음 졸여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낯선 땅에서 지금도 수고하고 계시는 많은 선생님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선생님들의 일은 사단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거룩한 영적 전투를 하고 있는 중이고, 그 싸움을 하나님께서 지금 총지휘하고 계신다고.





이바나바 | 중국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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