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주> 8월호의 글 두 편 <중국을주께로> 지난 8월호에는 홍콩을 주제로 한 글이 두 편 실려 있습니다. 두 편 모두 ‘오늘의 중국교회’ 코너에 실려 있는데 하나는 “‘홍콩과 동행’ 기도회,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의를 행하라”이고, 하나는 “홍콩교회는 어떻게 청년들과 함께 감정의 어두운 골짜기를 건널 수 있을까”입니다.
앞의 글에는“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지 5년이 되는 날에 열린 기도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콩 주민들, 특히 양심적인 지식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아직 안 읽으셨으면 8월호를 검색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뒤의 글에는 홍콩의 청년 사역과 관련하여 ‘삼불이동(三不二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면 역시 8월호에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홍콩이 그리워졌습니다. 여기에서 ‘그 시절’이라고 하는 것은 1997년 7월 1일 이전을 말합니다. 홍콩은 1842년 8월 29일 체결된 난징(南京)조약으로 영국의 식민지(영국령 홍콩)가 되었습니다. 그 후 홍콩은 동서의 문화가 만나는 곳 그리고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콩이라고 하면 매력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주> 가족들 가운데 “홍콩 아가씨”라는 대중가요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1954년에 가수 금사향(琴絲響) 씨가 부른 노래인데요,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며 꽃 파는 아가씨” 이렇게 시작되지요. 이 노래는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독특한 음색의 노래 자체도 매력이 있었지만 홍콩을 소재로 한 노래라는 점 때문에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97년 7월 1일 전(前)과 후 그때의 홍콩은 중국선교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때는 ‘중국선교’라고 하지 않고 ‘중공선교’라고 했는데 홍콩을 두고 ‘중공선교의 교두보(橋頭堡)’, ‘중공선교의 전진기지’ 이렇게들 많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군사용어는 피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져서 ‘중심지’라는 평범한 말을 썼습니다. 그때 홍콩에는 중국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 선교단체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폴 카프만(Paul E. Kauffman) 선교사가 이끌던 아시안아웃리치 센터(Asian Outreach Center), 국제오픈도어선교회도 홍콩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중공으로 보낸 하나님의 밀수꾼》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콩 극동방송(香港 遠東廣播, FEBC HONGKONG)은 중국을 대상으로 한 방송선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때 중국선교 일로 일 년에도 여러 차례씩 홍콩을 방문했습니다. 그때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한 번만 쓸 수 있는 단수여권을 사용하던 시절이라 한 번 다녀오면 다시 여권을 신청하곤 했습니다. 한중수교 이전에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 특정 국가 방문 허가를 받아 중국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홍콩에 가서 거기에서 중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동포 밀집 거주지역인 옌지(延吉)에 가려고 해도 먼저 홍콩에 가야 했습니다. 홍콩에서 상하이(上海)나 베이징(北京)을 통해 중국에 입국해서 선양(沈陽)에 가서 프로펠러 비행기에 올랐지요.
그런데 1997년 7월 1일 자로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의 홍콩특별행정구가 되면서 형편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그 이전부터 중국선교 기구들이 하나, 둘씩 홍콩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보장한다고 강조했지요.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체제를 변함없이 보장한다고 역설했는데 실제로는 어떤지 <중주> 가족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앞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 법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처리돼 2020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 결탁 등 네 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의 시행세칙에는 공안이 인터넷 검열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지금의 홍콩을 중국선교의 중심지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형편일 것입니다.
홍콩을 한자로는 ‘향항(香港)’이라고 적는데 이는 ‘향을 실어 나르는 항구’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전의 홍콩을 ‘복음의 향기를 중국에 실어 나르는 항구’, 이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 아니 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중주> 가족 여러분,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호는 권주은 목사님의 “이주 노동자와 유학생선교의 이해와 접근”을 기획 글로 실었습니다. 권주은 목사님은 구미국제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젊은 사역자인데 처음에는 중국인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2013년부터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사역을 하면서 교회 이름도 지금과 같이 바꾸었습니다. 이 글은 중국대학선교회(대표 이바나바 선교사)가 발행하고 있는 계간 의 2025년 봄호(통권 97호)에 실려 있습니다. <중주> 가족들을 위해 귀한 글의 전재(轉載)를 허락해 주신 권주은 목사님과 이바나바 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결실의 계절입니다. <중주> 가족들께 이 계절에 좋은 일이 많기를 기도드립니다. ♣
♣ 유관지 | 본웹진 발행인,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