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중국교회 개혁사상 1. 개혁의 요청
2. 개혁의 본질 3. 개혁의 원칙 4. 개혁의 목표
1949년 10월 공산당이 집권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됨과 동시에 공산당 정부는 ‘공동강령(共同綱領)’을 제시하며 ‘종교 신앙의 자유’를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그 자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전제조건은 바로 중국교회가 중화인민공화국 이전의 기득권과 분명히 결별함으로써 새로운 집권 세력에 대한 순종을 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교회의 새로운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 되었다.
I. 중국교회 개혁사상 신(新)중국의 중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개혁하며, 누가 이 개혁을 끌어 나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전국협진회(全國協進會)는 이 문제로 집행위원회를 소집하여 교회개혁에 대해 집중해서 토론하고, 이른 시일에 전국적인 기독교협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1949년 10월 전국협진회는 중앙 인민정부에서 종교사무위원회(宗敎事務委員會)라는 정부부서를 둘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기독교회도 강력한 전국적인 행정기구를 성립하여 정부 종교부서와 대등하게 반응해야겠다고 계획하였다. 1950년 1월 전국협진회 집행위원회는 8월에 베이징(北京)에서 ‘기독교와 새 시대’라는 주제로 전국기독교 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의하고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는 대회선언(大會宣言), 사업강령(事業綱領), 혁신계획(革新計劃)과 연락협력(聯絡協力) 등 네 개 소조(小組)로 역할 분담을 하였다. 교회개혁이 이번 회의의 중요한 초점이므로 교회혁신 계획을 작성하는 중책은 혁신계획조장(革新計劃組長)인 자오쯔천(趙紫宸)에게 맡겨졌다. 그리하여 신중국 성립 이후 자오쯔천의 교회개혁에 관한 주장들은 대부분 1950년 1월부터 7월 사이에 정리 발표된다.
1. 개혁의 요청 자오쯔천이 볼 때 중국교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과거 백여 년의 역사 속에서 누적된 것들도 있었고, 새로운 형세 속에서 생겨난 것들도 있었다. “오늘의 중국교회는 개혁해야만 존재할 수 있으며, 개혁하지 못하거나 개혁하지 않으면 곧 멸망할 것이다. 교회는 생사존망(生死存亡)의 고비에 직면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개혁은 필요한 것이고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1) 중국교회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자오쯔천은 외적인 구조 문제와 내적인 내용 문제로 나누어 보았다. 외적으로 너무 산만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중국교회는, 전도 목회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문서, 구제 등 교회 사역에 있어서 “몸통은 크지만, 머리는 작고 기독교의 중심 작용을 거의 잃어버렸다.” 결국 선교 목적의 도구가 “오히려 도구의 교회로 무력하게 전락했다.” 그러므로 중국교회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교회 자체였다.”2) 이런 산만한 구조 속에서 중국교회는 또한 크고 작은 교파의 분열에서 오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자오쯔천은 ‘전통주의(Traditionalism)’가 각 종파 간에 합일(合一)을 이루는 최대의 장애가 되었다고 지적하였다.3) 내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오쯔천은 중국교회가 진정한 공동체와 영적인 생활이 없는 것은 교회의 인재 부족 문제라고 지적하였다.4) 특히 교회의 지도자 계층을 ‘삼심이의(三心二意)’, 즉 표면적으로는 각종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오직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뼛속 깊이 “이익 두 글자만 새겨져 있다”라고 비판하였다.5) 물론 자오쯔천이 지적한 이러한 중국교회 문제들은 1940년대에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과거에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 엄중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이 모든 것은 폭로되었다.”6) 비록 새로운 인민정부는 종교 신앙 자유의 정책을 확립하였으나 자오쯔천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자유(自由)는 하나님의 은사(恩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피와 땀을 흘린 대가로 쟁취한다. 우리의 오늘날 신앙 자유는 그 누가 피와 땀을 흘려 쟁취해 온 것인가? 우리가 피 한 방울 땀 한 방울 흘린 적이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감사드리고 뼈저린 결단을 해야 한다. 새로운 중국의, 새로운 정권의 시대 앞에 우리는 신앙 자유에 합당한 이유를 표명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신앙 자유가 합당한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디에 있는가?7)
새로운 시대가 교회에 주는 도전은 무엇인가? 먼저 교회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과거에 기독교는 교육과 기타 봉사사업을 중국 사회와 접촉하는 방법으로 삼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건국 초기부터 공산당의 기본 정책은 교회학교 안에서 학생에게 종교 신앙과 종교활동의 참여를 강요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오쯔천은 인민정부의 교육 정책은 곧 교육과 종교를 ‘완전 분리’해서 “중소학교 안에서 다시는 종교의식과 종교적 사역이 없을 것이다”라고 예견하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청소년 신자들은 종교 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교회로 가지고 와서 해답을 찾을 것인데,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과 분리된 목회는 이 도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8)
그다음 자오쯔천은 교회에 ‘제국주의 혐의를 제거하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9) 다시 말하면 자양(自養)과 자립(自立)의 문제인데 이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중국교회를 괴롭혔던 문제이다. 만약 교회가 계속하여 서방선교회의 공급에 의지한다면 ‘외래적 견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교회가 하루라도 자양하지 못하면 곧 하루라도 자립하지 못하는 것이고, 하루라도 자립하지 못하면 하루라도 개혁의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이다.”10) 자오쯔천은 자신이 매우 관심을 두는 신학교육을 예로 들면서 “중국의 모든 신학원이 전부 다 외국 자금의 지원을 받는 기구이다. 하지만 외국 자금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예견하였다. 이는 치명적인 타격일 것이다.11)
또한 자오쯔천은 새로운 중국 사회가 중요시하는 집체주의(集體主義)는 “모든 사람이 노동의 관점으로 대중적 의식 갖기를 요구”하는데 이는 분명 교회의 개인주의 성향에 도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12) 하지만 새로운 형세 속 도전에 대해 자오쯔천은 여전히 확신하기를 “공산주의는 기독교에 대한 인간적인 도전일 뿐만 아니라 의지가 박약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다.13)
2. 개혁의 본질 기독교가 신중국에서 직면한 최대의 문제는 의심할 바 없이 교회와 제국주의와 관계이다. 공산당에 있어서 제국주의는 신중국의 첫 번째가 적이므로 기독교의 개혁은 불가피하게 이 민감한 과제를 다루게 되었다. 인민정부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1950년 전국협진회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공산당의 기독교와 제국주의와 관계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기독교는 제국주의 총포의 위력과 중국 청나라 정부를 협박하여 체결한 불평등조약에 의지하여 전도와 기타 특권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교회가 오늘날 직면한 근본 문제는 중국 인민들이 기독교를 양교(洋敎)로 취급하고,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한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오늘에도 여전히 중국의 종교단체들을 이용하여 신중국을 파괴하는 활동을 진행하는바 중국교회는 반드시 민족적 반제(反帝)를 결심하고 제국주의와 관계를 단절하고 자치, 자양, 자전의 교회를 건립하여야 한다.14) “우리의 통일전선 확대는 그 분계선을 제국주의, 봉건주의 그리고 관료자본주의와 연계를 단절했는지 아닌지로 본다.”15)
하지만 교회개혁의 본질 문제인 기독교와 제국주의와 관계에 대해 자오쯔천의 견해는 중국공산당의 견해와 완전히 달랐다. 자오쯔천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람들은 중국의 기독교와 제국주의가 무슨 결탁이 있는 줄로 의심한다. 그들은 서방의 기독교가 정치, 경제, 종족 등 여러 상황과 관계가 있음을 보았고, 또한 중국의 기독교는 서방에서 전해 온 것을 보았기에 자연히 중국의 기독교는 서방의 기독교와 정치, 경제 등 문제에서 같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의 기독교(천주교가 아님)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교회에서 미국 선교사들과 접근한 사람들은 다소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미국 쪽으로 기울 수도 있고, 영국 선교사들과 접근한 사람들은 다소 영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영국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 이것은 인지상정이다. 선교사 중에는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남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정말로 감동적이며 사랑스럽다. 그들을 사랑하니 자연히 그들의 나라와 인민에 대하여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16)
그렇다면 왜, 지금, 기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여기는가? 자오쯔천은 기독교 내부의 잘못과 죄악이 문제의 관건이라고 보았다. 그 일부분은 서방 기독교회의 죄악이고, 다른 일부분은 중국 신자들의 우매, 미신, 의존적, 이기적 그리고 오만함이다. 이는 교회와 신자 그리고 지도자들의 잘못이지 결코 기독교 본질의 문제가 아니다.17)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기독교 본질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다만 기독교에 걸쳐진 이런저런 겉옷만 본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만 책망해야지 다른 사람들을 질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겉옷은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18) 이렇게 자오쯔천은 기독교가 ‘제국주의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결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본질만을 말하기보다 현실 속 역사적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자오쯔천은 “하지만 서방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세력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린 일은 적고, 중국 신자들이 서방 선교사들을 속이고 저지른 죄악들이 오히려 더 많다. 교회 안의 중국 목사들과 신자들이 자원해서 서방 선교사들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매판(買辦)’의 작풍을 조성하였다. 이 대부분은 중국인들의 잘못이다. 만약 서방 선교사들이 중국교회에서 “객석으로 물러앉아 직분을 임명하는 권세를 내어놓으면”, 이제 “제국주의로부터 받아 온 요소”는 제거되고, 문제는 절반 이상의 해결을 보게 될 것이다.19)
중국교회의 자양 문제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가진 자오쯔천은 서방의 자금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 게 자양이라고 강조하였다. 양심적으로 말하면 이 자금은 서방 기독교인들의 사랑의 헌금이고, 중국교회에 관한 관심이다. “종교적·국제적인 우의로 본다면 이 자금이 무슨 불량한 동기와 작용이 있다고 의심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하지만 외화가 도착하면 사람들은 그 유혹을 감당하지 못한다.20) 저우언라이 총리도 담화에서 특별히 자양 문제에 대하여 자주 독립된 국가임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다른 사람을 의지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맹목적으로 외국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외국 자금에 대해 분별해야 하며, 만약 어떠한 부에 대해 조건이 따르는 원조는 받아서는 안 된다.”21) 이 발언은 공산당 정부도 짧은 시일 안에 당장에 곧 자양을 실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명백히 알고 있음을 반영하였다. 이에 대하여 자오쯔천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는 공산당 정부의 정책은 변할 것이고, 외국의 후원을 언젠가는 중단시킬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자신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만약 달러가 오지 않는다면 교회의 생존에 책임져야 할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22)
자오쯔천은 선교사역과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강력히 부인하며, 중국교회 개혁의 본질은 종교적인 것이고 비정치적이라고 지적하였다. 물론 그 누구도 자치(自治), 자양(自養)과 자전(自傳)이 중국교회 개혁의 목적임을 부인하지 않지만, 어떤 시각에서 ‘삼자(三自)’를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이다. 당시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우야오쭝(吳耀宗)의 교회개혁에 대한 태도는 공산당 정부의 이해와 매우 근접한 정치적인 해석이었다.
1920년대 중국교회가 ‘본색교회운동’을 추진할 때부터 자치, 자양, 자전을 목표로 했지만 그가 제창하는 개혁운동은 그때와 비교하여 내용과 본질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해방 전의 중국은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의 통치 아래 있었고, 반봉건, 반식민지의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교회의 개혁은 “모두 이러한 사회의식의 형태 속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이러한 사회의식 형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기독교 혁신운동은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타도한 이후의 신중국, 신민주주의 중국, 사회주의 행로를 전진하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발동되는 것이다.23)
반대로 자오쯔천은 더욱 풍부한 종교적 함의로 교회 혁신과 ‘삼자’ 원칙을 이해하였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삼자에 대한 종교적 의미였지 결코 제국주의와 선교사역의 연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독교와 함께 전래해 온 서방 문화의 부속물을 제거하는가”24)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서방에서 가져온 부담들을 내려놓고 기독교 본래의 진실을 잡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25) 자오쯔천은 심지어 기독교와 중국 전통문화의 관계에 대해 다시 관심을 두면서 ‘중국의 사상 방식’으로 기독교 본질의 보존을 기대하였고, 이것이 “최소한 사람들의 우리 신앙에 대한 의심을 해소할 수 있다”라고 보았다.26) 새로운 시대 상황에서 자오쯔천이 ‘반제’를 제기하는 것은 단지 “선량한 국제우인(國際友人)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죄악에 대한 반대”이고, 제국주의의 침략 행위에 대한 반대에 불과함을 강조하였다.27)
자오쯔천은 순수 종교의 함의로 삼자를 이해했기에 특별히 서방선교회와 아무 연계가 없는 중국 본토 자립교회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오늘날 각종 간고한 상황 속에서도 이러한 교회들은 오히려 부흥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수가정(耶穌家庭), 소군(小群)교회와 여러 영은파(靈恩派)는 각 지방에서 우후죽순처럼 성장하고 있다.”28) 이들은 외국의 지원을 받는 교회보다 더 생기가 있다.29) 상대적으로 완전히 자립한 교파보다 외국 자금에 의지하는 많은 대종파(大宗派)는 “영력(靈力)과 감력(感力)이 부족하여 자양은 더욱더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자오쯔천은 동시에 소군교회, 영은회(靈恩會) 등이 “자신들만이 진정한 교회이고, 다른 기독교 조직은 마귀의 모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편협한 신학 주장에 불만을 표시하였다.30) 중국 본토 자립교회 중에서 자오쯔천은 예수가정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이 있었다. 비록 신학원의 일부 사람들은 예수가정에 대해 ‘적지 않은 미신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자오쯔천은 그 속에 있는 ‘살아있는 교회’를 부인할 수 없으며, “생수가 샘에서 솟아나 강물을 이룰 때 흙모래도 떨어진 꽃잎도 함께 섞일 수 있다”라며 긍정적이었다.31)
3. 개혁의 원칙 자오쯔천은 교회개혁의 본질은 순수한 종교적 문제라고 보았기에 개혁의 원칙과 중심을 탐구하는 것도 종교적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자오쯔천은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근본 원칙이 ‘이신칭의(以信稱義)’라면 오늘, 중국교회 개혁의 근본 원칙은 ‘사랑으로 공동체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32) 사랑으로 교회 공동체를 만든다는 주장은 자오쯔천의 1940년대 교회론적 주장의 연속이었다. 자오쯔천은 한층 더 앞으로 나가는 교회가 곧 사랑의 공동체이며,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바로 사랑으로 공동체를 세운다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한 사람이 가난하면 모두가 원조하여 가난을 이기게 하고,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가 간고(看顧)하여 건강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 가장 작은 형제는 가장 친밀한 관심을 받고 가장 연약한 자매는 가장 친절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성도는 한 가족으로서 공동의 우환과 안위를 품고 있다. 함께하는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교회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근거가 되며, 복음의 유력한 간증이 되는 것이다.33)
그러나 지금의 중국 상황에서 이러한 교회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이런저런 수입한 제도와 이식(利息)한 유전(遺傳)’만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오쯔천은 사랑의 공동체와 제도, 유전 간의 인과관계를 돌출시켰다. 제도와 유전은 마땅히 공동체의 증진을 위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제도나 유전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들은 필요 없는 것들이고 반드시 폐기하거나 개혁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교회개혁 작업의 절차에서 첫 번째가 사랑으로 공동체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으로 건립된 공동체라면 모든 게 충만하며, 사랑 없이 건립한 공동체라면 모든 것이 허망한 것이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34) 다시 말하면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만이 교회개혁의 유일한 기초이고, 교회가 개혁을 이룰 수 있는 보장이며, “모든 교회 문제의 해답이다.”35)
또한 자오쯔천은 자양의 문제는 어떻게 목회자와 신자들의 ‘의뢰심(依賴心)’을 해소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보았다.36) 그러므로 교회의 자양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회 내 모든 신자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거룩한 사랑(聖愛)’이 필요하다. 한 교회에 백 명의 교우와 한 명의 목사가 있는데 교우마다 목사를 사랑하고, 사람마다 서로 사랑하며 목사도 교우들을 사랑한다면 “이들 백 명의 사람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목사 한 가정을 공양(供養)하지 못하겠는가? 목사 가정도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면서 과분한 보수를 요구하겠는가?” 이렇다면 사랑의 공동체가 자립, 자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결국 교회도 더욱 진실함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37)
사랑으로 공동체를 건립하는 것은 종교적 도덕적인 일이기에 ‘성령의 감도(感導)’와 ‘수양(修養)의 준비’가 필요하며, 인위적인 조급함을 허용하지 않는다.38) 그러므로 자오쯔천은 어떠한 조급한 혁신 방안도 반대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곧 “어린애 목욕물을 쏟아버리려다 아기까지 함께 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반대에 따라 계획적으로 절차 있게 진행해야 한다.39) “모든 마땅히 부흥될 것들은 자연히 부흥될 것이고, 마땅히 혁신해야 할 모든 것은 자연히 혁신될 것이다.”40) 자오쯔천의 혁신 방안은 한때 혁신계획조(革新計劃組) 부조장인 장장촨(江長川)과 마찰을 빚었다. 장장촨은 ‘본색(本色)교회’의 개념으로 출발하여 교회개혁의 중점을 제도와 조직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41) 그리고 또 다른 교회혁신의 열심파인 우야오쭝도 교회개혁을 정치적으로 주장하면서 자오쯔천과 본질적으로나 내용에 있어 모두 차이가 컸다. 그래도 자오쯔천의 최종 결론은 사랑으로 교회 공동체를 건립하는 것이 근본이라고 주장하였다. “만약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직접 교회를 개혁한다면 그 결국 쓸데없는 일일 것이다.”42)
4. 개혁의 목표 사랑으로 공동체를 만든다는 교회개혁의 근본 원칙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새로운 사회 환경에서 기독교의 독특한 공헌을 탐색하는 것이다. 자오쯔천은 일관되게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중시하였기에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교회는 어떠한 정권 아래서도 반드시 이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43)라고 주장하였다. 중국교회는 새로운 사회에서 반드시 그리스도 복음의 ‘창조적 증인(creative witness)’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44)
먼저 자오쯔천은 중국교회가 새로운 형세 속에서 어떻게 ‘중국 사회 속의 교회’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자오쯔천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괴리되지 않는 것이 그 첫 번째 조건이라고 보았다. 새로운 정권의 계획은 인민의 문화 수준을 높이는 것이기에 모든 종파의 교회는 연합하여 실질적으로 인민을 위해 섬기는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합하면 매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문맹 퇴치를 도울 수 있고, 야간학교도 세울 수 있으며, 탁아소 운영과 재해 구제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노동에도 참가할 수 있고 기술훈련이나 직업훈련 양성소도 세울 수 있다.”45)
자오쯔천이 말하는 이러한 기구는 교회가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자기중심적 교육이나 사회봉사 사역을 계속 혹은 확대하자는 뜻이 아니라 교회의 대외적인 ‘기독교복무소(基督敎服務所)’를 건립하자는 것이다. 복무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로지 봉사에만 집중하고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는 교회가 “봉사의 대가로써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는 신앙으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봉사를 통해 신자들이 그 봉사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행위를 연마’하고, ‘공동체 의식을 증진하며 서로 간의 사랑을 증가’한다면 이것이 공동체 생활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46) 오늘날 중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행동으로 전도’하는 것이지 ‘매끄럽고 화려한 설교’를 할 때가 아니며,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47)
우리는 남들과 기독교가 유심론(唯心論)인지 유물론(唯物論)인지를 변론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실천이고 생활이지 그 무슨 ‘이론(論)’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얼굴을 붉히며 기독교는 그 어떤 아편도, 미신도, 온정주의(溫情主義)도, 개인 자유주의도 아니며, 과학이 창성한다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가 배제한다고 해서 없어질 인간의 의지도 아니라고 논쟁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 지금은 우리가 말로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행동으로써 복음을 증거할 때이다. 행동이 없고, 성적이 없고, 인간 사회에 유익한 실제 사역들이 없다면 말을 많이 할수록 우리가 무치(無恥)한 공허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48)
기독교인은 반드시 공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사회봉사에 참여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대해 당시 많은 교계 인사의 공통된 인식이었으며, 자오쯔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오쯔천은 한층 더 깊이 있는 지적을 하였다. 신자들이 어떻게 최선을 다하여 봉사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공민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 문제는 교회 전체가 복음 증거의 책임을 감당하느냐, 사랑으로 공동체를 세워 가느냐에 있다는 것이다.49) 이것은 자오쯔천의 두 번째 사색의 문제였다. 중국교회가 새로운 사회 속에서 어떠한 특별한 공헌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교회의 유력한 복음의 간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의 가장 앞선 사상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낙오된 것이다. 만약 기독교 자체의 이론으로 생활 속 최전선에서 간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내재적인 진실이 있고 자체의 확실성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자신 있게 시대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동시에 시대적인 방식으로 이 진실과 확실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50)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시대적 사조 앞에서 자오쯔천은 교회가 조화롭게 기독교의 문화적 사명을 감당하고 중국의 사회적 사명도 감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진정한 새로운 사상은 혁명성이 있고 역사성이 있으며, 인민대중의 이익을 요구하고 무산계급 사회의 실현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본질과 공산주의는 같은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신학은 세계관과 역사관에 있어서 이 부분의 사상적 요소들을 강조해야 한다.”51) 하지만 자오쯔천은 동일성을 찾는 동시에 기독교의 우월성을 반드시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유주의, 신비주의, 범신론(불교와 도교 포함), 다종내재론(多種內在論, 유교 포함)은 마르크스주의와 조화할 수 있다. 유독 기독교만은 한 분이신 초월적 주(主)와 하나의 다른 세계(비록 이 세계에 깊이 침투해 있지만, 이 세계 위에 있는)를 견지하기에 조화를 이룰 수 없다.”52) “우리는 억지로 조화를 이루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반드시 독립적이어야 하며 반드시 이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53)
자오쯔천이 말하는 독립은 본질과 역사관 그리고 윤리관, 세 가지 방면이다. 본질에 있어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이지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서로 다른 시대 속에서 기독교는 그 당시 가장 유력한 사상을 빌어 자신을 해석하였지만, 이는 신앙생활 그 자체가 아니며 더구나 영원하고 무제한적이며, 초월적인 하나님을 포괄한 것은 아니다.54) 역사관에 있어서 자오쯔천은 기독교와 유물론의 최대 차이는 기독교는 역사적 과정에서 인류는 영원히 자신의 힘으로 천국을 실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윤리에 있어 기독교는 인간의 모든 죄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것이다.55)
1950년 2월 자오쯔천은 《나는 붙잡혔다(我被逮住了)》라는 책을 발표하여 특별히 유신(有神)과 무신(無神)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양자가 “믿는 것이 정반대이지만 모두 동일한 착오를 범했다”라고 보았다. 즉 모두 다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자오쯔천은 종교는 신앙적인 일이기에 근본적으로 지식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지금 유신론자들은 두려워하고, 무신론자들은 자기가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데 과연 기독교의 기초가 이로써 무너진 것인가? 자오쯔천은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것을 “하나님이 사람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깨닫는다.”56)
베이징 해방 초기에 자오쯔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재와 미래의 수년간 공산주의는 여전히 격정과 자신감이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낭만(浪漫)은 순간에 사라지고 인간의 죄성과 이기적 사실, 영적인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갈구(渴求)가 이 뜨거웠던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 순간이 올 것이다. 아마 머지않은 장래에 적지 않은 공산주의자들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교회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57)
분명히 자오쯔천은 공산주의가 인간의 죄와 이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독교만이 완전한 구원의 방법을 제공한다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교회가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한 자오쯔천은 교회의 부속 교육, 의료 그리고 사회봉사 기구 등도 이제 다시는 교회를 위해 공헌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반드시 하려고 할 것이고 언젠가 교회가 이러한 일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58) 교회의 부속기관들이 “복음을 증거할 가능성을 잃어감에 따라” 교회가 종교 신앙과 생활의 근거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교회의 목회가 이러한 ‘교회로 회귀’의 새로운 요구를 대처할 수 있는가? 이는 분명 하나님의 중국교회에 대한 시험이며 심지어는 심판이다.59) 자오쯔천은 중국교회가 아직도 깊고 넓은 교회 의식을 확립하지 못하고, 유력한 교리신학을 정립하지 못한 채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우려하였다. 왜냐하면 자오쯔천은 그 누구보다도 교리신학은 ‘교회로부터 나와서 교회의 기준이 되어 교회의 모든 일을 감당하는 무기’와 같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60)
자오쯔천은 지금 새로운 시대의 심각한 도전은 하나님의 중국교회에 대한 심판이며, 교회 지도자들이 뼈아프게 참회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임할 것이며 중국교회의 부흥을 인도할 것이라고 깊게 믿었다. “우리가 교회개혁을 하려면 먼저 성실하게 그리고 가슴을 치며 머리 숙여 우리 자신부터 개혁해야 하지 않겠는가?”61) 중국교회 개혁의 목표는 먼저 교회의 진정한 회개와 믿음의 재건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오쯔천의 간절한 호소였다. ♣
미주 1)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上海: 靑年協會書局, 1950), 1. 2)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金陵神學誌》, 第26卷 1,2期(1950), 15. 3) T. C. Chao, “Christian Church in Communist China”, Christianity and Crisis, (9:11, 1949), 83. 4) 위의 글, 83. 5)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4. 6) 위의 글, 1. 7) 趙紫宸, “論信仰自由”, 《天風》, 209期(1950), 1. 8)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31. 9) 위의 글, 3. 10) 위의 글, 36. 11)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19. 12) 趙紫宸, “用愛心建立團契”, 《眞理與生命》, 第15卷 1期(1950), 3. 13) T. C. Chao, “Christian Church in Communist China”, 85. 14) 中共中央文獻硏究室 編, “關於基督敎問題的四次談話”, 《建國以來重要文獻選編》(北京: 中央文獻出版社, 1992), 220-222. 15) 위의 글, 225. 16)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24. 17) 趙紫宸, “本刊的話”, 《眞理與生命》, 第15卷 1期, 1. 18) 위의 글, 2. 19)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25. 20) 趙紫宸, 《審判之下中敎會的革新》(上海: 靑年協會書局, 1950), 9. 21) 中共中央文獻硏究室 編, “關於基督敎問題的四次談話”, 223. 22) 趙紫宸, 《審判之下中敎會的革新》, 9-10. 23) 吳耀宗, “展開基督敎革新運動的旗幟”, 《天風》, 第233-234期(1950), 11. 24)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24. 25) 趙紫宸, “本刊的話”, 2. 26)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17. 27) 위의 글, 20. 28) 趙紫宸, 《審判之下中敎會的革新》, 7. 29) 위의 글, 9. 30)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20. 31) 위의 글, 18. 32)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15. 33) 趙紫宸, “用愛心建立團契”, 2. 34) 위의 글, 2. 35)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22. 36) 위의 책, 36. 37) 위의 글, 22. 38) 趙紫宸, “用愛心建立團契”, 12. 39) 趙紫宸, “爲一個眞的中國敎會奮鬪”, 《天風》, 第226期(1950), 1. 40) 趙紫宸, “用愛心建立團契”, 12. 41) 江長川, “中國基督敎會的革新芻議”, 《協進月刊》, 第8卷 10期(1950), 2-5. 42) 趙紫宸, “用愛心建立團契”, 12. 43) T. C. Chao, “Christian Church in Communist China”, 84. 44) T. C. Chao, “Red Peiping after Six Months”, Christian Century, (66:37, 1949), 1066. 45) 趙紫宸, “中國基督敎敎會改革的途徑”, 10. 46) 趙紫宸, “用愛心建立團契”, 10. 47) 위의 글, 3. 48) 위의 글, 3. 49) 위의 글, 4. 50) 趙紫宸, “本刊的話”, 3. 51)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17. 52) “趙紫宸致何明華信”, (1949年 9月 1日), Glüer, 《趙紫宸的神學思想》, 288에서 재인용. 53)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17. 54) 趙紫宸, “本刊的話”, 1. 55) 淸芬, “燕京大學宗敎學院冬令學習會記要”, 《恩友》, 第2卷 2期(1950), 6. 56) 趙紫宸, 《我被逮住了》, 1-5. 57) T. C. Chao, “Christian Church in Communist China”, 85. 58) 趙紫宸, 《審判之下中敎會的革新》, 23. 59) 위의 글, 1-2. 60) 趙紫宸, “今後四十年中國基督敎敎義神學可能的發展”, 17-18. 61) 趙紫宸, 《審判之下中敎會的革新》, 3-5.
♣ 사진 출처 | 바이두>바이커 ♣ 문영걸 | 미도(美道)중국선교연구소 소장, 제주반석감리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