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중앙아시아의 한 시골 교회에서 2박 3일의 교사 강습회를 마치던 날 그 교회 목사님이 오늘 저녁은 수도인 시내로 가서 먹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냥 가까운 곳에서 먹으면 되는데 왜 멀리까지 나가냐고 물었더니, 자기 형님이 초대해서 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형님을 모른다고 하였더니, 형님은 가끔 나의 설교들을 이야기한다면서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시내의 한 고급 음식점에 도착하여 형님과 인사를 하였는데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교사 강습회에 참석하여 열심히 배우던 집사님이 앉아 있었다. 목사님은 자기의 형수님이라고 소개하였다. 함께 식사하고 시내 구경을 하였다. 그런데 이 도시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교사 강습회를 오지 못했었다. 코로나19가 끝난 다음에는 시골 교회들을 순회하며 교사 강습회를 하느라, 수도 시내는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 전혀 다른 도시 같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목사님은 다음에 오시면 자기 동생하고 식사를 같이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또 물었다. 동생이 누구냐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자기 동생은 나를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 시과 목사님이 오셔서 교사 강습회를 하였다고 전해주니, 다음에는 꼭 자기와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동생을 언제 만났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동생이 중국에서 유학할 때 만났었다고 하였다.
15년 전에 중국의 한 교회에서 교사 강습회를 하고 있는데, 14시간 기차를 타야 하는 다른 도시의 직업 전문학교 교장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자기 학교에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는데 이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와서 도와 달라고 했다. 한족인 교장선생님은 한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선교사님이 운영하던 학교에서 다른 선교사님들과 같이 사역하다가 선교사님들이 추방당하면서 학교 운영을 맡게 되었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어떤 도시에서 학교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하여 ○○○ 선교사님을 아냐고 물었더니, 그 선교사님은 추방을 당하여 자기가 그 학교의 교장으로 있다고 하여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학생들이고,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교장선생님은 그 나라에 가서 사역하고 있으니 제발 와서 자기를 좀 도와 달라고 하였다. 교회 강습회를 마치고 다음 교회 집회를 이틀 미룬 채 저녁 기차를 타고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 그 도시에 도착했다.
기차역 앞에서 옥수수죽으로 아침을 때우고 학교로 갔다. 먼저 교장실로 가서 어떠한 상황인지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기숙사 학생들이 소등 뒤 몰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두세 시간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고는 하는데, 남녀 학생들이 함께 몰래 외출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면 안 된다고 선생님들과 교장인 자기도 여러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상황을 파악한 뒤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 달라고 하였다. 학생들이 다 모였다는 말을 듣고 교실로 들어가니 2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학생들을 둘러보는데 아는 학생이 두 명 있었다. 그 두 명의 학생을 본 순간 이들이 어떻게 이곳에 유학을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먼저 러시아어로 나를 소개하고 학생들에게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자기 돈으로 유학 온 친구가 있으면 손을 들어 달라고 하였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유학 온 학생들은 모두 서로 다른 교회이지만 중앙아시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후원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두세 시간 동안 흔히 말하는 잔소리를 하였다. 특히 유학 온 너희들은 중국 학생들이 10시에 자면 너희들은 11시에 자고, 중국 학생들이 6시에 일어나면 너희들은 5시에 일어나서 공부하라고 하였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끝내고 학생들에게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하면서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은 고향에서 먹던 샤슬릭(양꼬치구이)을 먹고 싶다고 하였다. 모두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학생들에게 몇 꼬치를 먹을 거냐고 물었다. 남학생들은 두 개, 여학생들은 한 개씩 먹겠다고 하였다. 주문을 받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학생들이 말한 숫자만큼의 양꼬치와 리뽀시끼(난, 중앙아시아 빵) 다섯 개를 시켰다.
잠시 후 빵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양꼬치구이가 나오는데 모두 웃음이 빵 터졌다. 어떤 학생은 웃음을 한참 동안 참지 못하고 웃고 또 웃었다. 이는 바로 양꼬치의 크기 때문으로 중국의 꼬치구이 한 개는 중앙아시아의 양꼬치구이 한 조각 정도였다. 꼬치구이에 끼우는 고기의 크기가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차이가 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학생들과 나 사이의 어색함을 풀어 주었다. 그 자리에서 50개를 더 추가했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함께 강변을 산책하면서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잊혔던 15년 전 학생 중 한 명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나는 다른 도시로 교사 강습회를 하러 떠났다. 기존의 교사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들로 바뀌어 있었다.
둘째 날 강습회를 시작하기 전에 할머니 한 분이 사진첩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자랑하면서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 사진첩에 세 살짜리 우리 아들의 사진이 있었다. 25년 전 포천에 있는 한국중앙기도원에서 구소련 지역교회 지도자 초청 훈련이 있었는데, 그때 두 주간 동안 아들을 맡겨 놓을 데가 없어서 데리고 가서 사역하였다. 할머니 집사님은 그때 참석하였던 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사 강습회를 마치고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한 식당으로 갔다. 거기는 젊은 신혼부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면서 만나서 반갑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부부가 자기들을 기억하지 못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잘 기억나지 않는데 미안하지만, 우리가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이 중국 유학 시절에 만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아~ 그때 그 문제아?”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때 자기들에게 잔소리해 주고, 맛있는 것 사 주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들의 식사 대접을 받고 다음 날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 탑승을 위한 수속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앉은 분이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어떻게 이 나라로 왔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분들은 신학교 학장들이었고 이번 학술 세미나를 이곳에서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분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한 젊은 친구가 내 앞에 와서, 혹시 ‘아르부스’ 목사님이 아니냐고 하여 맞다고 했더니, 자기를 모르겠느냐고 하는데 그 친구 어릴 때 모습이 얼굴에 있어서 이름을 이야기하였더니 맞다고 하였다.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고 하였더니 자기 부인과 함께 아버지의 사역지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때 옆에 있던 사모님이 두 사람은 몇 년 만에 만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14, 5년 정도 되었다고 하였더니, 그런데 어떻게 이름까지 기억하느냐고 놀라워했다. 나는 멋진 친구들의 이름은 잘 기억한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2025년 1월에 중앙아시아의 또 다른 지역에서 처음 교사 강습회를 진행하는데, 그 도시는 무슬림들의 도시로 교회도 적고 고려인들도 많지 않아서 통역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예전에 한국에 유학을 와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목사로 교회 사역과 신학교 사역을 하는 동역자를 소개했는데 그 동역자가 흔쾌히 허락했다. (이 목사님의 딸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중국 유학생들 가운데 알고 있던 두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지금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이 학생도 그때 중국에 함께 유학하였던 학생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 새로운 도시의 교사 강습회는 현지 목사들이 서로 이야기하다가 결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참석하는 줄 알고 준비하였었는데, 나중에 참석하는 교사들의 숫자를 확인하다가 단순한 교사 강습회가 아니라 현지 목사들과 전도사들을 위한 교사 강습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 교육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교육학 그리고 실제적인 시청각 교육 등을 강의하였다. 이틀간의 교사 강습회를 마치고 통역을 도와준 목사님이 너무 감사하다면서 예전에 개인 교습으로 배웠던 것들을 다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 통역을 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이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돌아오는 길에 늘 사역하는 도시의 입구에는 예전에 없던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고 벽이 둘러쳐 있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었더니 중국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데 자기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교회 사역과 또 다른 두 나라의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번에 알게 된 중국에서 유학하였던 학생에게 연락하였다. 그랬더니 그 학생뿐 아니라 또 다른 학생도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고 하여서 며칠 뒤 그 지역에 교사 강습회가 있어서 가는데 그때 만나자고 하였다.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만났던 중국으로 유학 간 학생들이 상관이 없었던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동역자의 가족이요, 또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함께 동역해야 할 학생들이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인 줄 알지 못하고 귀찮아하면서 왜 이런 일을 내가 해야 하는 걸까 하면서 찾아갔던 학교, 또 그곳에서 만났던 학생들, 두 명밖에 아는 학생이 없다고 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 친구들 모두 동역자들의 가족이고, 성도들이었다. 또 머지않아 함께 사역을 감당해야 할 동역자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동역자이다. ▩
▩ 시과 | 순회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