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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3  통권 270호  필자 : 후선도  |  조회 : 2416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홍해포럼_선교중국을 향한 중동지역 선교전략
중국의 시각에서 본 중동지역 선교

I. 개념의 명확화 _중동의 지리적 범위 

1. 극동, 중동, 근동 
극동은 서구 세계에서 사용되는 지리적 개념이다. 영국의 해양 탐험이 아시아(태평양)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이 방향은 동반 진출을 의미했다. 여기서 ‘동’은 동양 국가 혹은 동양 땅을 가리키며, 기준점은 서유럽, 좀 더 정밀하게는 영국이다. 아시아 동부 국가는 거리상 가장 멀어 극동으로 불린다. 아시아 서부 국가는 북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해 중거리로, 중동이라고 칭한다. 남유럽 및 지중해 국가들은 가장 가까워 근동이라고 한다. 사실 ‘극동’, ‘중동’, ‘근동’은 대략적인 구분일 뿐 명확한 범위와 경계는 없다. 

2. 중동과 대중동 

(1) 중동 및 대중동 지역
중동 또한 서구에서 사용하는 지리적 용어이다. 전통적인 중동 국가에는 바레인, 이집트, 이란,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쿠웨이트, 레바논,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아랍에미리트, 예멘이 포함된다. 팔레스타인, 마그레브 국가(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수단공화국, 모리타니, 소말리아는 아랍 세계의 역사적, 문화적 이유로 일반적으로 중동 국가로 간주한다. 튀르키예와 키프로스는 지리적으로 중동의 일부지만, 자신들은 유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북쪽의 아프가니스탄은 때때로 중동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대중동 국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아, 소말리아, 수단, 지부티, 에리트레아, 코모로(The Union of Comoros)를 포함한다. 

(2) 언어와 민족 
주요 언어는 아랍어, 아람어, 아르메니아어, 아제르바이잔어, 발루치어, 프랑스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쿠르드어, 페르시아어, 소말리아어, 튀르키예어이다. 주요 민족은 아랍인(베두인, 콥트인, 드루즈인), 페르시아인(파르시인), 튀르크인, 쿠르드인(야지디인), 유대인(팔라샤인), 베르베르인(투아레그인), 아시리아인, 체르케스인(카프카스 민족), 하자라인(튀르크-몽골 혈통), 가가우즈인(튀르크계 일부), 브라후인(다르드계 일부)이다. 인구는 약 4.54억 명이다. 

(3) 중동과 서아시아의 차이점 
중동은 지리적 지역으로, 대체로 서아시아와 겹치며 북아프리카 일부를 포함하지만, 외카프카스 지역은 포함되지 않으며,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의 아시아 부분이다. 

① 지칭 대상이 다르다. 
▶중동: 중동지역은 지중해 동부와 남부지역으로, 지중해 동부에서 페르시아만까지의 넓은 지역을 지칭하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서아시아: 아시아 서부로, 이란부터 튀르키예까지 포함하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을 연결하고 대서양, 인도양을 잇는 요충지이다. 

② 위치의 중요성이 다르다. 
▶중동: 이 지역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세 대륙을 연결하고 대서양과 인도양을 잇는, 중동은 고대부터 동서 교통의 요충지로 “두 대양, 세 대륙, 다섯 바다”의 지역이라 불린다. 전략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며, 귀중한 담수 자원 및 석유 자원을 둘러싸고, 종교 문화의 차이로 인해 연중 정 세가 불안하다. 
▶서아시아: 서아시아의 지리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고대 유명한 육상 무역 경로인 ‘실크로드’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출발하여, 허시(河西) 회랑을 지나 신장(新疆)을 거쳐 중아시아, 서아시아를 통과해 유럽에 도달했다. 서아시아는 철도, 도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국제 항공선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해상 교통로도 통제하고 있다. 

(4) 중동과 아랍 세계
아랍 국가, 즉 아랍 세계란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 분포한 아랍어를 주 언어로 하고 이슬람교를 주 신앙으로 삼는 국가 및 지역의 22개국을 의미한다. 아랍 세계의 총인구는 4.23억 명으로, 주로 아랍 민족이다. 그 외에 쿠르드, 베르베르, 투르크멘, 누비아 등 다양한 민족이 존재한다. 전체 면적은 약 1,426만 제곱킬로미터로, 세계 육지 총면적의 약 9.5%를 차지한다.

아랍 국가는 알제리(4385.1만 명), 바레인(170.16만 명), 코모로(86.96만 명), 지부티(98.8만 명), 이집트(10233.44만 명), 이라크(4022.25만 명), 요르단(1020.31만 명), 쿠웨이트(427.06만 명), 레바논(682.54만 명), 리비아(687.13만 명), 모리타니(464.97만 명), 모로코(3691.06만 명), 오만(510.66만 명), 팔레스타인(510.14만 명), 카타르(288.11만 명), 사우디아라비아(3481.39만 명), 소말리아(1589.32만 명), 수단(4384.93만 명), 튀니지(1181.86만 명), 아랍에미리트(989.04만 명), 예멘(2982.6만 명), 시리아(1750.07만 명) 등이 포함된다. 


II. 오래 전부터 _중국과 중동의 관계 교류 

1. 서한 시대에 장건이 대하(大夏)에 도달
장건은 두 차례 한무제에 의해 서역으로 파견되어 138년 장안에서 출발, 흉노를 지나 포로로 잡혀 10년간 갇혔다가 탈출했다. 서쪽으로 대완(大宛)을 지나 강거(康居, Sogdiana)를 거쳐 대월지 (大月氏) 로 갔으며, 대하에 도착하여 1년여 머물다 돌아왔다. 귀국 도중 장건은 남쪽 도로로 변경, 남산을 따라 흉노를 피하려 했으나 여전히 잡혀 1년 이상 구금되었다. 126년에 흉노 내란이 일어나자 장건은 기회를 틈타 한나라로 돌아왔다. 

2. 동한 감영이 페르시아만에 도달 
감영(1세기~2세기)은 동한의 외교관으로, 대진(大秦)으로 출사명을 받았다. 97년 서역도호 반초(班超)의 명령으로 대진 출사길에 올랐다. 그와 그의 사절단은 오늘날 신장의 쿠차에서 출발하여 티르지스, 파르티아(당시 이란 위치) 등을 거쳐 파르티아 서쪽의 서해 연안에 도달했다. 

3. 중국 상인이 두르강 지역에 도달
《양서(梁書)》〈제이전(諸夷傳)〉에 따르면, 삼국 시대에 남쪽 오나라에 해로로 온 로마 상인이 있었다고 한다. 진 이후로 중국의 범선도 서아시아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이를 증명한 것은 아랍 역사학자 마수디가 그가 쓴 《황금 초원》에서 5세기 전반기에 유프라테스 강변의 히라성 아래에서 중국 상선이 종종 항행하여 각각의 국가 상인들과 무역하였다는 기록이다. 아랍 상선도 직접 중국으로 항해할 수 있었으며, 항로는 페르시아만에서 출발하여 아라비아해를 거쳐 인도로 이동, 인도에서 말라바르 해안을 지나 벵골만, 말라카 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를 넘어 광저우(廣州)에 도달했다. 

4. 당나라 두환이 이라크에 도달 
751년의 탈로스 전투는 당군 총사령관 고선지의 경솔함과 고립 정책으로 인해 참패하며 많은 당군이 아랍에 포로로 잡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종이 제조 기술이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뒤이어 유럽에 전달되었다. 두환(杜桓)은 당나라 안서 절도사 고선지의 군관으로서 탈로스 전투에 참여했으며, 포로로 사마르칸트를 거쳐 목루(현재 투르크메니스탄 마레)로 이동하여 아랍 군대에 소속되었다. 758년에 두환은 이라크 쿠파로 이동했으며, 곧이어 인접국(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으로 군 이동을 하며,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등 곳을 지나갔다. 

두환은 13개 국가를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중국에 돌아와 《경행기(經行記)》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중국 최초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지리, 산물, 노동, 생활 관습, 이슬람 교리와 율법 등을 소개한 문헌이 되었으며, 또한 대식국(大食國)에 거주 중인 중국 장인의 상황도 소개하고 있다. 

5. 송나라 중앙아시아 상인 교역 
송나라의 조선업과 해운업이 상당히 발달했고, 육로가 차단되어, 해로가 중앙아시아 교류의 주된 선택이 되었다. 중국 원양 상선은 더욱 짧고 시간절감 이 되는 “향료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였다. 중국에 온 아랍 상인은 주요 도시에서 분포하였고 무역량은 급증했다. 아만의 수하르 항구는 아랍 상인과 중국 상인이 무역하는 대동맥으로서 “중국으로 가는 출입구”라고 불렸다. 

사실 당 덕종 정원을 연간(785〜805년), 재상 가담은 중외 사신 상인들로부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광저우 통해 이도”를 기록하고, 중국 최대 항구 광저우에서 남중국해와 인도 등을 거쳐 페르시아만과 홍해까지의 항로를 상세히 기록했다. 이 항로는 페르시아만에서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이동하여 바그다드에 도달하는 것으로, 사실상 송나라 중국 상선이 아랍지역에서 삼각무역을 하는 항로의 방향을 나타내며, 그 두 항로의 교차점과 화물 운송 지점은 아만의 수하르 항구였다.

6. 원나라 왕대연이 이집트에 도달 
왕대연(汪大淵, 1311년~?)은 원나라의 중국 상인, 항해가로, 고향은 장시(江西) 난창(南昌)이다. 원 명종 지순 원년(1330년)과 원통 5년(1337년) 두 차례 천주에서 출발하여 서양 여러 나라로 항해했다. 가장 멀리 이집트의 두미아트(북지중해 근처)까지 도달했다. 

7. 경교 서행 바그다드 도달 
라반 사오마는 1223년 베이징의 경교 신자 위구르족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248년경 베이징 성방산의 경교십자사에서 은둔 수련하였다. 1260년 젊은 라반 마르코(Rabban Marcos)라고 불리는 젊은이(또는 마거스)가 고향 동생에서 방산십자사로 와서 라반 사오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수련하였다. 15년 후에 이들은 예루살렘 순례를 결심하고, 결국 먼 프랑스 파리까지 갔다. 

그들은 바그다드에 도달하여, 라반 사오마는 이란 타브리즈에서 아밧하칸(훌라구 왕실의 후계자, 경교 숭상자)를 만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권을 부탁받고 출발했다.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를 경유하여 해로로 예루살렘까지 가려고 했으나, 중간에 전쟁을 만났고 이를 피하고자 결국 바그다드로 돌아와야 했다. 그 후에 마덴하 주교장(당시에 가장 높은 경교 지도자)의 강력한 추천으로 1280년 35세 라반 마르코는 ‘계단성 및 왕구부 대주교’로 지명되며, 다음 해에 바그다드에서 ‘동방교회의 대감독’인 주교장 마르 야볼라하 3세(Mar Jabalaha III)가 되었다. 반면, 라반 사오마는 주교장의 축복으로 순시 총감이 되었다. 

8. 명나라 정화가 소말리아에 도달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정화(鄭和)는 해군을 이끌고 7차례 ‘서양’에 내려간 기록이 있으며, 총 30여 개 국가를 방문해 중국 고대 조선업과 해양사업의 정점에 도달했다. 1405년 이후 수백 척의 대소 선박과 2만~3만 명의 관병으로 구성된 중국 함대가 주로 인도양에 들어갔다고 하며, 동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케냐까지 도달했다. 그중 네 번째(1413〜1415)의 서양 항해 때 주요 방문국, 지역, 주 활동 기록으로는 중구만라가, 팽행, 끽란단, 고치, 고리, 루산, 훌룸스, 아단(아라비아반도), 무쿠두수(현 모가디슈), 마린디(현 케냐 말린디), 불라와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을 포함해 있다. 이 항해에서 정화 함대는 페르시아만, 홍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항해했다. 귀국 시 마린의 외교관이 함대에 동행하며 명나라를 방문하며 기린을 헌상하였다.

9. 중국의 중동 사안에 열정

(1) 대중동 국가와 외교관계 설정 

▶1950년대 외교관계 설정 국가: 알바니아(1949.11.23), 아프가니스탄(1955.1.20), 파키스탄(1951.5.21), 시리아(1956.8.1), 예멘(1956.9.24), 이라크(1958.8.25), 알제리 (1958.12.20), 모로코(1958.11.1), 수단(1959.2.4) 
▶1960년대 외교관계 설정 국가: 소말리아(1960.12.14), 케냐(1963.12.14), 튀니지(1964.1.10), 모리타니(1965.7.19) 
▶1970년대 외교관계 설정 국가: 이란(1971.8.16), 쿠웨이트(1971.3.22), 레바논(1971.11.9), 튀르키예(1971.8.4), 코모로(1975.11.13), 요르단(1977.4.7), 오만(1978.5.25), 지부티(1979.1.8), 리비아(1978.8.9), 사이프러스(1971.12.24), 그리스 (1972.6.5) 
▶1980년대 외교관계 설정 국가: 아랍에미리트(1984.11.1), 팔레스타인(1988.11.20), 카타르(1988.7.9), 바레인(1989.4.18) 
▶1990년대 외교관계 설정 국가: 사우디아라비아(1990.7.21), 아르메니아(1992.4.6), 아제르바이잔(1992.4.2), 조지아(1992.6.9), 이스라엘(1992.1.24), 카자흐스탄(1992.1.3), 키르기스스탄(1992.1.5), 타지키스탄(1992.1.4), 투르크메니스탄(1992.1.6), 우즈베키스탄(1992.1.2), 북마케도니아(1993.10.12) 
▶2000년대 외교관계 설정 국가: 남수단(2011.7.9) 

(2) 중국과 중동 국가관계 
1955년 4월 18~24일 반둥회의의 개최는 중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우호 협력관계의 문을 열었다. 21세기 두 번째 10년 동안, 중국과 중동 국가 간의 관계는 품질 향상과 전면적 발전의 역사적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 쌍방 간의 정치적 신뢰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고위층의 합의는 방향 설정 및 방침을 제시하며 쌍방관계의 지속적인 향상을 선도한다. 중국 국가주석은 2016년, 2018년에 두 차례 중동을 방문하여 사우디, 이집트, 이란, 아랍에미리트 4개국을 국빈 방문하였고, 베이징에서 중국-아랍국가 협력포럼 6, 8회 장관급 회의 개회식에 참가해, 세 차례나 중동을 대상으로 한 정책 연설을 발표했다. 중국은 현재까지 해당 지역 국가와 아랍연맹과 14개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였고, 이스라엘과 혁신적 총체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2018년 중국 정부는 또한 중국과 아랍 운명을 공동체로 만들자는 제안을 제시했으며, 아랍 국가로부터 환영과 반응을 받았다. 

2023년, 중국의 중재 아래 작년 사우디와 이란은 역사적인 화해를 이루고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 2023년에는 시진핑 주석이 이란, 팔레스타인, 알제리, 모리타니, 시리아, 쿠웨이트, 이집트 등 중동 국가 지도자들을 방문하며, 협력의 대계획을 논의했다. 11월 20일에는 왕이(王毅) 국무위원은 베이징에서 아랍, 이슬람 국가 외무장관 연합 대표단과 회담을 했다. 올해 중국의 외교는 ‘중동의 시간’에 진입했다. 3월 왕이 국무위원은 사우디, 튀르키예, 이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오만 등 6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5월에는 이집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과 이집트는 “전면적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에 대한 공동 성명”을 정식으로 체결했다. 7월에는 팔레스타인의 각 정치 파벌이 베이징에서 ‘베이징 선언’을 서명했다. 

(3) 중국의 ‘일대일로’ 공동 발전 추진 
특히 2004년 중아협력포럼이 설립되고, 2013년 ‘일대일로’ 이니셔티브가 출범하며, 중동은 중국의 ‘큰 주변부’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다. 중동 국가들은 적극 지지하며, 현재까지 19개의 중동 국가가 중국과 일대일로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2023년에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 이란, 팔레스타인, 알제리, 튀니지 등 약 20개의 중동 국가가 3차 일대일로 국제 협력 정상 포럼에 고위급들이 참여하였으며, 중국은 모든 아랍 국가와 일대일로 협력 문서 서명을 완료하며, ‘전면적 커버’를 실현했다. 

(4) 중국과 중동의 경제무역이 중동선교에 도움 제공 
2023년 6월 중아협력포럼 10차 기업가 대회 및 8차 투자 세미나가 사우디 리야드에서 개최되었다. 행사 주제는 “중아 협력, 함께 번영 창출”로, 중국과 20여 개 아랍 국가의 3,5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중아 쌍방은 무역, 금융, 인프라, 에너지, 녹색 산업 등 의제에 대해 교류 토론을 진행했다.

(5) 중국과 중동 두 대국의 무역 
중동의 정치적 안정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중국은 현재 리야드의 최대 원유 고객이다. 중국 정부는 사우디 전체 생산량의 20%를 넘게 구매했다. 중국의 에너지 안전은 상당 부분 중동에 의존한다. 중국은 이란에서 획득한 석유량도 유사하지만, 이란에 대한 영향은 더 크다. 현재까지 중국은 또한 이란의 최대 석유 구매 고객이며, 비중은 37%이다. 반대로 이란 또한 중국에서 기계 및 전자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좋아한다. 2022년에만 4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은 과거 그리스 주권 부채 위기에서도 ‘구세주’ 역할을 했다. 당시 파산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중국 기업이 수십억 유로를 투자했다. 

(6) 중국과 걸프지역의 무역 
걸프 아랍국가 협력위원회(약칭 걸프협의회)는 1981년 5월 25일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설립되었으며, 회원국에는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국이 포함된다. 회원국 간의 경제 통합 협약은 같은 해 11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서명했다. 

2022년 12월, 중국과 걸프협의회는 “중국과 걸프 아랍국가 협력위원회 협력 및 발전 정상회의 공동 성명”을 종결하고, 양측 지도자는 중국과 걸프협의회 간에 수립된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고자 합의했으며, 정치, 경제 및 문화 등 분야에서 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새로운 시대에 진입시키고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대화 2023~2027년 실행 계획》을 통과했다. 

2024년 1월 1일, 사우디, 이집트, 이란, 아랍에미리트 4개의 중동 국가는 신흥 경제국 협력체인 BRICS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7) 중동지역의 위안화 결제 
세계은행 금융통신협회의 최신 《위안화 추적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아랍에미리트와 중국 간의 거래액의 74%가 위안화 결제로 진행되었으며, 전년 대비 52% 증가했다고 한다. 카타르의 위안화 결제 비율은 60%로 2014년과 비교해 247% 급증했다. 도하 위안화 청산은행은 카타르 수도 도하의 도시 중심부의 중앙업무지구에 위치하여, 2015년 정식 운영을 시작했다. 이는 카타르의 유일한 위안화 청산은행이자,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첫 번째로 운영에 투입된 위안화 청산은행이다.

2023년 2월, 이라크 중앙은행은 공식 성명을 통해 처음으로 중국과의 무역을 직접 위안화 결제로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20일 상하이(上海) 증권거래소와 두바이 금융시장이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자본시장 간의 협력을 강화했다. 

중국 인민은행의 《2023년 위안화 국제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총 40개 국가 및 지역의 중앙은행 또는 통화 당국과 양자 간 통화스와프 협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유효한 협약은 29건, 스와프 규모는 4조 위안을 초과하고 있다. 

(8) 중동 경제 전환이 기회 제공 
중동지역은 석유 경제에서 신경제로의 어려운 전환을 겪고 있으며, 이는 중국과 중동 간의 협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탄소 감축을 촉진하는 배경 속에서 신에너지 시대는 가속할 것이다. 이는 중동 산유국에 새로운 압력을 가하지만, 그들의 경제 전환이 중국과 중동 국가 간의 협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우디 비전 2030, 바레인 비전 2030, 쿠웨이트 비전 2035, 카타르 비전 2035 국가 비전, 오만 2040 비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2071 백 년 비전은 디지털 경제, 신에너지 산업, 금융 산업, 국제 항운 센터, 국제 물류 허브, 관광 산업 등을 주력 산업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의 “2022년 국가 산업 전략”은 항공, 자동차, 해양, 재생 에너지, 화학, 기계 장비, 의료 기기, 제약업, 식품, 건축 자재, 채광업과 군수 산업 등을 중점 산업으로 지정하고 지원한다. 

한편, 중동과 중국의 산업 구조는 상호 보완적이고, 에너지 등 자원 역시 상호 보완적이다. 이는 중국 중동 산업 협력, 경제 협력 그리고 금융 협력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반면에 중동 국가들은 단일 경제 구조의 문제점 및 취약성과 다양성 부족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특히 제조 대국과 디지털 경제 대국인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여, 중동 일부 국가의 경제 구조 전환 업그레이드를 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Ⅲ. 근본으로 돌아가기 _신앙 전통의 관점에서 본 중국교회와 중동교회의 관계 

1. 중국교회의 신앙과 영적 전통 
성경, 초대교회, 중동지역 및 동방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함. 예수와 제자들 → 예루살렘교회 → 안디옥교회 → 시리아교회 → 페르시아교회 → 당나라교회 → 원나라교회. 

2. 초대교회의 선교와 경교의 동방 전파 역사 
기독교 선교역사는 복음의 서진 역사이자 동시에 동진 역사이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리아 안디옥으로, 다시 페르시아 제국으로 그리고 인도, 파키스탄, 심지어 서역(중국 신장)까지 전파되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하며, 안디옥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선교를 중시하고 선교 신학을 핵심으로 삼았으며, 전 세계 교회 역사상 최초의 선교 기지가 되었다. “사도 시대 이후 그들의 복음 전파는 인도,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일대까지 이르렀다.” 네스토리우스파가 에베소에서 부당하게 이단으로 정죄되었을 때 이드를라를 중심으로 시리아교회를 세웠고, 후에 페르시아로 강제 이동하여 페르시아교회를 설립했다. 

3. 중국교회와 네스토리우스파의 정명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원래 기독교의 한 분파를 설명하는 중립적 용어였으나, 서방에서는 이 용어가 5세기 교회 회의에서 강력히 비난받은 그리스도론 신학을 묘사하는 경멸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1889년, 한 시리아 성직자가 네스토리우스 자신의 학설과 가르침을 담은 고대 시리아어 필사본을 발견했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복음서에서 드러난 역사적 그리스도에 기반을 두었으며, 신학적 의미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성경 전통에 부합한다고 굳게 믿었다. 사람들이 그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고 비난했으나, 그는 결코 그런 적이 없으며, 단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명확히 구분하려 했을 뿐이다. 동일하게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을 부인한 적이 없었지만, 이는 그가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교황청의 비난을 받은 이유였다. 그래서 네스토리우스의 신학 사상은 이단이 아니며, 그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네스토리우스는 정치적 동기 및 문화적 차이로 인해 431년에 부당하게 추방되었다. 

초대교회에서는 신학 체계가 아직 완전하지 않았고 신학적 견해에 대한 논의가 발전하는 과정 중에 많은 신학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일련의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신학 논쟁이 해결되었다. 451년 칼케돈 공회의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갖추고 있음을 확증했다. 

4. 사명의 계승 _선교 비전의 관점에서 본 중동선교 

(1) 선교 대환경: 해안에서 내륙으로 전환되는 선교운동 촉진 
▶1807년 복음이 중국에 전해진 이후, 19세기 중엽 아편전쟁 뒤 신교 선교사들이 중국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1875년까지 신교 교단은 청대 내륙 18성(직례, 산서, 산동, 섬서, 감숙, 하남, 강소, 안휘, 호남, 호북, 강서, 절강, 복건, 광동, 광서, 사천, 운남, 귀주)의 해안 지방만을 선교지로 삼고 있었다. 광활한 내륙지역과 만주, 몽골, 티베트, 신장 등의 변방에는 어떤 신교 선교사도 없었다. 1876년 9월 중·영 ‘연대 조약’이 체결되면서 선교사들이 내륙과 티베트에 들어가 선교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고, 중국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국내지회는 기독교가 전해지지 않았던 서부 9개 성(省), 변방지역(9개의 내륙 성: 하남(1875), 호남(1875), 산서(1876), 섬서(1876), 감숙(1876), 사천(1877), 귀주(1877), 운남(1877), 광서(1877))에 20명의 선교사를 파견해 처음으로 선교했다. 이후 2년에 걸쳐 중국내지회 선교사들은 약 3만 마일(약 9만 6천 리)을 여행하며 9개 성을 전도하고, 중국을 가로지르며 첫 번째 선교지를 설립했다. 이로써 중국내지회는 청대 18개 성과 서부 변방 전체로 전파되었고, 근대 중국 선교사는 새로운 ‘내지선교 시대’에 접어들었다. 

▶아프리카 내지회: 철도 건설의 확장과 함께 아프리카 내륙으로 지속적으로 확대

(2) 선교 대비전: 80년 전 복음의 동예루살렘 선교운동의 부흥 

‘두 번째 영적 대각성’의 영향 
두 번째 대각성운동은 1792년에 시작되어 1800년에 절정에 달했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경건파와 복음주의자들이었다. 미국 서부 국경선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대각성운동도 서부 변방으로 확산하였다. 이 대각성운동은 미국 교파들의 선교 열정을 촉발했다. 19세기 초, 미국에서는 교파를 초월한 자발적 협회 네트워크가 등장했고, 처음에는 지역적이었으나 점차 주 단위 및 전국 단위의 협회로 발전했다. 이는 각 교파의 해외선교를 적극 촉진했다. 1810년에는 미국 해외선교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1812년에는 위원회가 처음으로 5명의 선교사를 인도로 파견했다. 

중동지역은 미국교회의 주요 선교지로 부상했다. 1862년까지 미국 선교사는 중동에서 33개의 선교 기지를 구축했으며, 이는 아나톨리아, 시리아, 페르시아만 및 북아프리카 등에 분포했다. 1872년에는 장로교 선교사가 테헤란에 선교 기지를 세웠고, 타브리즈와 하마단에서도 선교 활동이 점차 확대되었다. 이로써 미국 선교사는 이란에서 서양식 교육 및 의료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집트에서의 선교 활동도 빠르게 추진되어, 1884년까지 미국 선교사는 이집트에 33개의 교회를 설립하고 19명의 현지 목사를 임명했으며, 약 4,554명의 신자를 보유하게 되었다. 

(3) 끊을 수 없는 정서—성지에 대한 감정을 통해 본 중동선교 
중국교회에 중동지역 선교는 정말로 끊기 어려운 특별한 애착을 가진 분야이다. 중동지역에는 예수님의 발자취가 있으며, 초기 교회의 증거가 있고, 사도 바울의 사역이 있는 곳이다. 또한 중동은 수도원의 영적인 관점이 있고, 가장 큰 선교 무대가 존재하며, 중국인을 ‘warmly’, 진심으로 환영하는 지역이다. 중국교회는 역사적인 짐과 압박이 없기에, 이에 따라 중국교회는 최대한 중동지역 선교에 헌신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4) 중동선교—하나님이 중국교회에 남기신 선교 터전 

▶“서역(西域)은 하나님이 중국교회에 남기신 터전이다.” 
o 20세기 1940년대, 허은증 선교사는 실크로드의 무위에서 서양 선교사들과 교류했다.

▶중동 국가 및 지역이 중국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경우 
o 무비자 국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이란;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모로코, 튀니지; 오만, 아랍에미리트(아부다비), 카타르; 북키프로스, 알바니아. 
o 도착 비자 국가: 이집트, 튀르키예; 모리타니, 지부티, 코모로;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투르크메니스탄. 
o 전자 비자 국가: 파키스탄, 케냐, 리비아, 시리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o 최고의 선교 기회: 난민, 청소년, 아랍어 교육, 사업 플랫폼, 현지교회, 성지 단기선교 등. 

▶유의해야 할 사항들 
o 장기적 추진과 현장 유지 계획 
o 전후방의 연결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o 후방 지원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 
o 특별히 위기처리 팀의 설립 
o 정규 비자 및 합법적인 체류 
o 신변 및 자산, 여행 안전을 예방 
o 전쟁 상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집단 상대 
o 무슬림 커뮤니티의 필요와 적절한 전략 
o 겸손하고 지혜롭게 현지교회와 협력을 추구함 

(5) 전략적인 계획 _중동지역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선교전략에 대한 고찰 

▶중동선교 센터: 두바이, 이스탄불, 혹은 카이로에 사무소를 설립한다. 

▶선교훈련 센터: 단기 선교, 무슬림 선교, 유대인 선교, 부족 공동체(베르베르족, 베두인)의 훈련. 

▶선교 파송 센터: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페르시아만 국가, 중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전체 아랍 지역과 이슬람 세계를 대상. 

▶선교 연구 센터: 성지 고고학 연구, 초기 교회 발전 연구, 초기 교회 선교 연구, 초기 수도원의 발전과 영향 연구, 로마 제국(그리스-로마 문화)이 교회에 미친 영향 연구,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세계에 미친 영향,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 연구, 두 강의 유역 연구(도시발전, 농업과 상업 발전), 중동 문화 연구(문자, 건축, 음악, 전쟁 등). 

▶돌봄 및 휴양 센터: 전통 중동지역과 대중동 지역을 주로 봉사하고, 아프리카 각국,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국가들로도 파생 역할. 


그리스도를 위해 중동을 얻자 
중동 지역은 두 대양과 세 대륙, 다섯 해역의 교통 요지에 위치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이 지역은 페르시아만과 유럽을 거쳐 북아프리카로, 서쪽과 동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자,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허브이다. 그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동은 흔히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린다. 이 지역은 민족과 종교적 갈등이 매우 복잡하며, 전략적 위치 또한 매우 중요하고, 풍부한 석유 자원으로 인해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의 무대가 되어 왔다. 영적인 전투도 이례적으로 치열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중동에서 계속 부흥할 것이다. 중동은 하나님이 중국교회에 주신 선교 터전이며, 중국교회는 이 역사적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 후선도 |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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