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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3  통권 270호  필자 : 김에녹  |  조회 : 2021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홍해포럼_선교중국을 향한 중동지역 선교전략
바울의 선교전략과 오늘날 우리의 선교

【편집자 주】 2024년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중동의 한 지역에서 선교중국을 향한 선교전략을 논하는 홍해포럼이 열렸다. 중동지역 선교중국의 지나온 발걸음에 대해 나누고, 앞으로 이들 지역의 선교중국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확장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함께 모이기 바로 전까지 여러 어려운 일 앞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령님께 온전히 맡기며 기도할 때, 홍해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열방과 피조물에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그 마음을 품고 중동지역의 중국 영혼을 섬기는 모든 사역자님을 축복합니다.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한국중국선교협의회(KCMA, 중선협) 와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실제 선교사역에서 선교전략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중국의 가정교회는 전략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를 인간적이고 사람의 지혜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성령에 의존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성령이 ‘계략의 영’이라고 명확히 알려줍니다. 즉, 선교를 추진하는 성령 그분이 바로 위대한 전략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사역의 도전에 직면할 때 우리는 기도로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지혜와 성령이 주시는 전략을 찾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서를 통해 초기 교회 선교역사에서 하나님께 특별히 쓰임을 받은 바울의 선교전략을 연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의 선교사역에 유익한 참고와 지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 

“1. 바울은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다 (…) 4. 그들은 여러 도시로 지나갔다. (…)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갔다. 7.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다.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케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였다.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는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나기를 결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로 여겼다. 11.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가서 다음 날에는 네압볼리로 갔다. 12. 그리하여 우리는 거기서 빌립보로 갔다.” (행 16:1〜13 발췌) 

사도행전은 초기 교회의 발전 역사를 기록한 책이며, 실질적으로 이는 선교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복음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넘어갈 때 성령의 역사가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에게서 오는 명확한 환상과 성령의 직접적 인도가 있었습니다(행 10:19〜20). 또한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주의 사자의 지시와 성령의 직접적 인도가 있었습니다(행 8:26〜29). 이 외에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에게해를 지나 유럽으로 선교하는 과정에서도 성령의 명확한 역사가 있었습니다(행 16:6〜12). 선교사가 선교지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성령이 항상 직접적으로 그분의 인도를 나타내시지는 않지만, 성령의 인도가 자주 일어나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선교지가 어디로 결정될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선교사들에게 있어 끊임없는 기도와 성령의 인도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의 명확한 지시가 있으면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이는 선교사들에게 우선되는 선택이어야 합니다. 물론 성령이 직접적인 인도를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는 예도 있지만, 기도 중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로 가는 일에 기도하며 결국 성취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평탄한 길로 너희에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롬 1:10)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증언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 

“그 성에서 너희를 박해하면 다른 성으로 피하라.” (마 10:23) 

기독교인들이 선교를 이야기할 때 순교와 선교를 자주 연결합니다. 왜냐하면 선교사역은 다른 정도의 위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주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실 때처럼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이라는 언급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마 10:16). 그들은 배신당할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마 10:17〜19).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조심하라”라고 경고하시고, “너희를 박해하는 그 성에서 다른 성으로 피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0:23). 이 주님의 가르침은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들이 마음가짐이 박해와 심지어 순교까지 각오해야 하지만 전략적으로는 박해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선교사는 순교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주를 증언하기 위해 보내졌습니다. “그 성에서 박해를 받으면, 다른 성으로 피하라”는 목적은 계속해서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박해에 대한 선교사들과 목사의 응답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교에 특별히 쓰임을 받고 다른 선교사들보다 많은 박해를 받은 바울도 ‘도피’를 가장 많이 했던 선교사입니다. 물론 바울의 도피는 두려움 때문이거나 박해를 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선교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사로서 부름을 받고 보내진 목적이며 그들이 맡은 임무입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던 경고는 선교사들에게 중요한 깨우침을 줍니다. 이는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들이 선교지를 선택할 때 먼저 안전하고 복음 전파와 증언이 가능한 곳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안전은 상대적입니다.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명확한 인도가 없다면 선교사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증언이 가능한 곳을 선택해야 하며, 다른 지역의 시간이 무르익거나 성령이 그곳의 전도의 문을 여실 때 그곳에 증언하러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명확한 역사가 있는 곳을 먼저 고려 

“그들이 버가에서 떠나가 피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형제 들이여, 만일 백성을 권면할 말씀이 있거든 말씀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여, 들으라 (…).’”(행 13:14〜16) 

두 선교사가 갈라디아 지역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을 첫 번째 선교 장소로 정했습니다. 나중에 바울의 선교 여정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보였습니다. 유대 회당이 없는 빌립보에서도 그들은 유대 여성들이 기도하는 장소를 찾아내어 그곳에서 먼저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유대 회당을 선교사역의 첫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유대 회당이 선교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 주된 집단인 지역에서 유대 회당은 이미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회사에 등장한 첫 선교팀이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곧 선교지에 첫발을 내딛는 선교사들에게 좋은 깨우침을 제공합니다. 가능한 여러 선교지 중 하나님이 이미 역사하신 곳을 첫 번째 선교지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교지가 이미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인다는 표지는 그곳에 선교사역이 이미 시작되었고, 선교팀이 협력하여 봉사하고 있으며 믿는 자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처음 선교지에 도착한 선교사에게는 팀 내에서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하며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성장과 가정의 안정에 매우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선교팀이 있는 곳으로만 향한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보이지 않는 지역들은 선교사가 없게 될 것이 아니냐고. 사실 한 선교사가 어느 선교지와 성숙한 팀 내에서 성장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여 더 어려운 지역에 사역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교사가 선택한 첫 선교지가 그의 전체 선교사역의 종착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선교지에 도착한 이후에도 성령께서 계속 선교사를 인도하시며, 그가 다른 선교지로 나아가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선교사역이나 후대의 선교 역사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선교 과정에서 젊은 선교사 양성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이미 제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디모데라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 여자인데 믿음이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형제들이 그를 칭찬하거늘,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길 원했다. 그곳의 유대인들이 그 부친이 헬라인인 줄을 다 알기 때문에 바울이 그에게 할례를 행하였다.” (행 16:1〜3) 

바울이 첫 번째 선교 여행 중 세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교회에 이를 때, 두 교회의 형제들이 그들 중 젊은 형제를 칭찬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길 원했다”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형제들은 디모데의 훌륭한 삶을 증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디모데를 바울에게 추천하여 그를 동행하여 섬기도록 해달라는 희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추천을 받아들였고, 이렇게 하여 디모데는 바울의 선교팀에 합류하여 그와 함께 섬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가리켜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딤전 1:2), “나의 아들 디모데야”(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라고 말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관계는 바울과 바나바의 동역 관계와는 달리 영적인 부자관계, 사역의 사제관계였으며, 특히 디모데가 바울의 팀에 처음 합류했던 시기에 그러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의 사제관계 모델은 디모데가 바울의 인도와 가르침 아래서 따라가며 배우고 섬기며 성장한 후 실제로 바울의 동역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나의 동역자 디모데’라고 불렀습니다 (롬 16:21). 디모데와 같은 선교 사역자들이 선교현장에서 사제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구약 신명기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일꾼 성장 모델과 일치합니다. (민 4:1〜3, 8:23〜25)

팀 사역 및 교회 연대

“그와 함께 아시아로 가는 사람들 중에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그리고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가 있었고,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가 있었다.” (행 20:4) 

바울의 선교사역은 처음부터 팀 중심의 사역이었습니다.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성령은 바나바와 바울로 구성된 선교팀을 마련하였으며, 그들은 젊은 마가를 그들의 조수로 데려갔습니다.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갔으며, 나중에는 디모데 등을 모집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바울의 선교사역이 단지 팀 사역일 뿐만 아니라 교회 간의 협력이 이루어진 팀 사역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은 다양한 교회에서 왔으며, 그가 이루는 팀은 그를 파견한 안디옥교회에 속하지 않았고, 이는 공공의 선교사역 팀이었습니다. 그가 새롭게 설립한 교회들도 파견된 교회 중 어느 교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교회 간의 선교팀과 하나님 나라 중심의 사역은 여러 교회의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즉, 바울의 선교사역은 많은 교회가 선교에 연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전초 기지 사역 설립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할 것이 있노라.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행한 이 외에는 그 무엇도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니, 곧 이방인들을 복종하게 하심이라. 이는 나의 말과 행위로 말미암아, 도리어 기적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으로 하여금 되어진 것이라. 예루살렘부터 두루 다녀서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내가 또 이같이 명을 세우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린 적이 없는 곳에 복음을 전하려 함이로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남이 닦아 놓은 터 위에서 집을 짓지 않으려 함이라 (…)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내가 전할 곳이 없으며, 이 여러 해 동안 내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이는 너희와 함께 잠시 교제하고 기쁨을 나누며, 다시 가는 길로 나를 보내주기를 원함이라.” (롬 15:15〜33 발췌)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은 로마교회가 그가 서바나에 선교할 수 있도록 지지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서바나선교의 전초 기지로 로마교회를 선택한 것은 안디옥, 빌립보, 에베소와 같은 시대적 교회들과 비교했을 때 서바나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로마교회는 바울의 서바나선교의 전초 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전초 교회 선교전략을 본받아, 전략적 지역에 선교 전초 기지를 세우는 것은 후방 교회와 선교현장을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교회가 선교에 실제로 참여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 설립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가 되게 하고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또한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고,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권면하며,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리라 이르되” (행 14:20하〜24) 

사도행전을 보면, 어느 지역의 선교사역이라도 새로운 지역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교회를 세울 만한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던 경우만 제외되었습니다(예를 들어, 아덴이나 바울이 처음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처럼). 선교지에서 새로운 지역교회를 세우는 것은 바울의 중요한 선교전략 중 하나였습니다. 바울이 어디서 선교하든, 최종적으로 그곳에 지역교회를 세웠으며, 지역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면 지역을 떠나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또한 새롭게 설립된 교회도 바울의 선교사역팀에 사역자를 파견하여 다른 지역교회 설립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선교는 단지 복음 전파에 그치지 않고 교회를 설립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물론 새롭게 설립된 교회도 대명령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과거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 교회를 설립했던 본은 좋은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








▦ 김에녹 |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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