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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3  통권 269호  필자 : 서동준  |  조회 : 1350   프린트   이메일 
[특집] - 로잔운동과 복음주의의 새길 _제4차 로잔대회 이후 패러다임 변화의 방향 모색 (Ⅱ)
로잔운동과 청년, 그리고 세대 간 선교 파트너십
The Lausanne Movement, Youth, and Intergenerational Mission Partnerships

서론
1958년, 존 스토트(John Stott)는 IVF 연례 총회에서 ‘학생 세계에서의 전도(Evangelism in the Student World)’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모든 복음 전도 활동이 중요하지만, 학생 전도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리더들은 어제의 학생들이었고, 현재의 학생들은 내일의 리더들입니다.”1) 스토트의 이러한 주장은 일차적으로 대학생들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이는 넓은 의미에서 ‘청년 세대’에도 적용이 가능하다.2) 즉, 오늘의 청년 세대는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들이며, 그들이 지닌 잠재력과 열정, 그리고 창의성은 교회와 선교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로잔운동은 그 운동이 시작된 시점부터 청년 세대의 중요성을 인식해 왔다. 로잔운동의 역사와 현재의 여러 활동은 로잔운동이 다가올 미래를 위해 청년 세대를 준비시키는 일에, 또한 그들의 잠재력과 영향력이 미래뿐 아니라 현재에도 발현되도록 하는 일에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청년들은 로잔운동의 수동적 참여자가 아닌,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 글에서는 로잔운동의 역사 속 청년들의 역할과 그들이 로잔의 선교운동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국제 로잔운동의 역사 속 청년의 역할을 고찰하고, 이어서 한국 로잔운동의 역사 속 청년 세대의 중요성을 살펴본다. 이와 더불어 로잔의 청년운동을 YLGen(Younger Leaders Generation)의 활동을 중심으로 조망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토대로 ‘세대 간 선교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국제 로잔운동과 청년
1974년 7월, 세계복음화 국제대회(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제1차 로잔대회)가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되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은 이 대회를 기획하면서 참가자 비율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특히 그는 대회 참가자들이 적어도 절반가량이 40세 이하 청년들이길 바랐다.3) 이러한 그의 바람 속에 개최된 1차 로잔대회에는 총 2,473명이 참가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 44세 이하였다.4) 비록 40세 이하라는 그레이엄의 본래 목표가 완벽히 달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44세 이하의 젊은 세대가 참가자의 절반을 차지함으로써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1차 로잔대회 가운데 잘 들릴 수 있길 바랐던 그의 비전은 실현될 수 있었다. 그렇게 1차 로잔대회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 세대 복음주의 지도자들 가운데 두 명의 40대 초반 학생 선교 사역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와 르네 파딜라(René Padilla)였다. 

1960〜7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는 사회 정치적 혼란 속에 있었다. 쿠바 혁명(1953〜1959) 이후 약 10년간 거의 모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억압적인 군부의 통치를 받았고, 이에 따라 사회 전역에서 시위와 혁명의 분위기가 가득했다.5) 특히 대학가는 그러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 청년 기독교인들은 당면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복음주의적 반응을 고민하고 모색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라틴 아메리카 복음주의 교회들은 이러한 복음주의 청년들의 고민에 적절한 응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스코바와 파딜라는 학생 선교 사역자들로서 이러한 복음주의 청년들의 고민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들의 고민에 대해 복음주의적 응답을 제시해 주길 원했다.6)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들은 기독교 선교를 ‘복음 전파’와 함께 ‘사회적 책임’도 포괄하여 이해하는 총체적 혹은 통전적 선교(misión integral, integral mission) 개념을 발전시키게 된다.7) 

제1차 로잔대회에 참석한 에스코바와 파딜라는 이와 같은 총체적 선교의 메시지를 제1차 로잔대회 공식 문서인 ‘로잔 언약’ 안에 분명히 반영하길 원했다. 로잔 언약은 존 스토트를 위원장으로 꾸려진 작성 위원회(Drafting Committee)에서 대회 개최 이전에 발표자들에게서 받은 강연 자료들을 토대로 초안 작업을 진행하여 3차 수정본이 완성된 상태였다.8) 이 수정본은 로잔대회 참석자들에게 공개되었고, 작성위원회는 참가자들로부터 문서 수정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했다. 이때 수백 건의 수정 제안서가 여러 참가 그룹으로부터 제출되었다. 그중 규모가 큰 그룹이 ‘신학과 급진적 제자도(Theology and Radical Discipleship)’ 그룹이었다. 에스코바와 파딜라를 비롯해 주로 젊은 복음주의자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로잔에 대한 응답(A Response to Lausanne)’이라는 문서를 자체적으로 배포했다. 이 문서에서 그들은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적 행동’을 대립적 또는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총체적 선교 개념을 강조했다. 이때 로잔언약작성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존 스토트는 이러한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토트는 ‘로잔에 대한 응답’에 담긴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메시지와 표현을 로잔 언약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그뿐 아니라 ‘로잔에 대한 응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9) 1992년, 존 스토트는 제1차 로잔대회 당시 그의 이러한 노력의 이유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변했다. “만일 우리가 그 젊고, 부상하는 복음주의 리더들이 가진 문제의식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로잔운동의 쇠퇴는 불가피했을 겁니다.”10)

결과적으로 총체적 선교에 대한 에스코바와 파딜라를 비롯한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로잔 언약에 반영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제목의 로잔 언약 제5항은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님”을 강조하면서도,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천명했다.11) 결국 제5항의 존재 때문에 로잔운동은 좀 더 총체적인 선교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로잔 언약이 내포한 선교적 총체성은 세계 각지 수많은 복음주의자의 기독교적 사회 참여 실천의 신학적 기반이 되어주었는데, 그 가운데는 1980년대 한국의 젊은 복음주의자들도 있었다.

한국 로잔운동과 청년
1960〜7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과 유사하게 1980년대 한국은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 가운데 있었다.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키며 등장한 신군부에 대항하여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는 이러한 민주화운동이 움트고, 성장하고, 발현되는 주요한 공간이었고, 많은 대학생이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한국의 복음주의 청년들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은 불의한 정권에 대항해 자신의 삶을 걸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드는 자기 친구, 또래들을 바라보며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고민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 한국 복음주의 교회들은 기독교인들의 사회 참여에 매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였다.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던 시대 속에서,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복음주의 청년들은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심했다. 이러한 고민과 고뇌의 여정 속에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이 바로 로잔 언약이었다.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의 가장 중요한 결실들 가운데 하나였던 로잔 언약은 한국인 참가자들을 통해 처음 한국 복음주의 교계에 소개됐다. 1차 로잔대회는 총 65명의 한국 대표가 참석했는데,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였던 조종남 박사가 이 대표단을 이끌었다.12) 조종남 박사는 로잔대회로부터 2년이 지난 1976년에 《선교에 대한 복음주의 입장: 로잔언약해설》이라는 제목을 달아 존 스토트의 로잔 언약 해설서를 한국어로 번역 및 출간했다.13) 하지만 이러한 로잔 언약을 소개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로잔 언약은 많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고, 조종남 박사가 1976년에 출간한 번역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었다.14) 그렇게 대중화되지 못하던 로잔 언약이 한국 교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시기는 1980년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캠퍼스 사역자들이 있었다.15) 1980년대의 혼란한 사회, 정치적 상황과 민주화운동의 열기 속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갈구하던 복음주의 청년들의 목소리에 캠퍼스 사역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청년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줄 신학적 자원을 국제 복음주의운동 안에서 찾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들은 로잔 언약을 복음주의 청년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1985년 이승장 당시 ESF 간사는 ESF 기관지 <소리>에 로잔 언약 전문을 번역하여 기고하였다.16) 한편 IVF 소속 캠퍼스 사역자들은 국제 복음주의 네트워크와 긴밀한 연결 속에서 로잔 언약을 비롯한 총체적 선교에 관한 다양한 문서들을 접하기 쉬운 환경에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 또한 로잔 언약을 한국의 복음주의 청년들에게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17)

시대적 상황에 대한 복음주의적 방향을 놓고 고민하던 복음주의 청년 및 대학생들에게 복음과 선교의 총체성을 강조하는 로잔 언약은 말 그대로 “한 줄기 빛”과 같았다.18) 그들은 전도 활동뿐 아니라 사회 현실 문제에 참여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 성경적 가치이며 기독교인의 선교적 의무임을 강조하는 로잔 언약의 가르침을 통해 위안을 얻었다. 또한 로잔 언약은 한국 복음주의 청년들이 복음주의 신앙인으로서 확신을 품고 사회적 책무를 이행할 수 있게 하는 신학적 토대가 되어주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한국의 젊은 복음주의 세대는 다양한 복음주의적 사회 참여 활동들을 진행했다. 한 예로, 복음주의 청년과 대학생들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복음주의 청년, 학생협의회’를 결성하여 공정선거 감시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이 활동은 서울 지역에서만 자원봉사 수가 2,118명에 달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19)

그러나 복음주의 청년들이 총체적 선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실천을 진행하고 확산시켜 나가는 과정은 그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에스코바와 파딜라가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와 같은 앞선 세대의 의지적인 협력과 지원을 바탕으로 총체적 선교 메시지를 국제 복음주의운동 안에 확산시켰다. 마찬가지로 한국 복음주의 청년들의 총체적 선교 활동 여정에도 그들의 열망에 공감하고, 그들과 협력한 앞선 세대가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87년 12월에 창립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다. 기윤실의 시작은 서울대학교 교수들의 정기적인 성경 공부 모임으로 소급된다. 손봉호 교수를 비롯한 당시 모임에 참여하던 서울대 교수들은 1980년대의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적 반응을 갈구하던 복음주의 학생들의 심정에 깊게 공감하며 그들을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사회 참여의 공간으로 기윤실을 설립하게 되었다.20)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사회 참여의 한 방식으로서 기윤실은 복음주의 청년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들의 기윤실 활동을 기반으로 이후 다양한 복음주의 사회 참여 기관들이 설립되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기독법률가회(1999년)와 좋은교사운동(2000년) 등이 있다.

혼란한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 앞에서 복음주의자의 역할과 책무를 고심했던 복음주의 청년들의 목소리는 로잔 언약이 한국에 대중적으로 소개되는 데 마중물 역할을 감당했다. 그들의 다양한 총체적 선교 실천은 한국 복음주의 교계에 중대한 도전을 주었다. 이 과정에는 이들의 목소리에 깊게 공감하고, 이들과 협력하고자 했던 앞선 세대들의 노력이 존재했다. 바로 로잔 언약을 복음주의 청년과 대학생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캠퍼스 사역자들과 그들의 활동에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하고자 했던 손봉호 교수와 같은 이들이다.21) 이렇게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협력과 우정으로 한국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양 날개로 하는 로잔 언약이 제시하는 총체적 선교에 좀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로잔 청년운동과 세대 간 선교 파트너십
빌리 그레이엄과 존 스토트의 정신을 따라 로잔운동은 복음주의 세계 선교운동에서 청년 세대의 중요성을 인식해 왔고, 미래 세대의 주역으로서 그들의 성장을 돕는 일에 힘써 왔다. 로잔운동 산하의 YLGen은 로잔운동의 이러한 노력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이다. YLGen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세대를 뛰어넘어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연결하여 온 세상이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22) 여기서 YLGen이 촉진하고자 하는 ‘연결’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세계선교를 위한 젊은 복음주의 지도자 간의 연결, 즉 ‘세대 간 연결(Intergenerational connection)’이다. 이러한 연결을 위해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YLG 대회가 개최되었다. 60개국에서 300명이 참여한 제1차 로잔 YLG 대회(싱가포르, 1986년 6월 2〜10일)를 시작으로, 제2차 대회(말레이시아 2006년 9월 24〜30일), 제3차 대회(인도네시아, 2016년 8월 3〜10일)가 차례로 개최되었다.23) 오는 2026년에는 제4차 로잔 YLG 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YLGen의 사명대로, 이 대회들을 통해 전 세계 수백 명의 복음주의 청년 리더들이 또래 세대의 동역자들과 연결되어 선교적 협력을 모색할 수 있었다. 한편, 제3차 YLG 대회에 참석했던 한국 청년 리더들을 중심으로 2016년에 설립된 한국 YLGen은 한국의 상황에서 YLGen의 사명을 실현하고자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 한국 YLGen은 동아시아 지역 YLGen과 함께 동아시아 YLG 콘퍼런스를 개최하여 동아시아 청년들 간의 선교적 교제를 촉진했다.24) 또한 한국 YLGen은 선교한국(사무총장, 최욥 선교사)과 함께 7월 13일 제1회 로잔청년 콘퍼런스(주제: “그렇게 살라고 창조한 거 아니다”)를 개최하였다. 한국 YLGen 대표 오장석 목사는 로잔운동이 “시대와 상황의 도전에 대해 복음적인 응답을 실천적으로 모색”하고, “그 실효적인 작동을 위해서 청년들의 이해와 참여에 진심을 쏟아” 왔음을 강조하면서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청년들이 “복음의 생명력과 선교의 운동성을 경험”하게 되리라고 기대했다.25)

둘째, YLGen이 촉진하고자 하는 또 다른 ‘연결’은 세계선교를 위한 ‘세대 간의 연결’이다. 이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5월 31일부터 6월 3일까지 미국 바이올라대학교에서 진행된 The Lausanne Generations Conversation(이하 LGC23)이다. 18세부터 81세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41개국 출신 참가자들 100명이 모여 진행된 LGC23은 참가자들이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고 상호성을 함양하여, 이를 토대로 세계선교를 위한 협력과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26) 즉 LGC23의 핵심 가치는 세대에 대한 성경적 비전과 선교적 소명에 기반하여, 세대 간 우정과 상호성을 기르고, 이를 통해 세대 간 협력 행동을 끌어내는 것이다(아래 이미지 참고). 


LGC23의 핵심 가치들(세대에 대한 성경적 비전과 선교적 소명에 기반하여, 우정과 상호성을 기르고, 이를 통해 협력 행동을 끌어낸다.)27)


여기서 ‘우정’과 ‘상호성’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관계는 ‘멘티와 멘토’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LGC23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정과 상호성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수평적 협력’을 강조했다. LGC23 참가자였던 미카엘라 브레이스웨이트(Micaela Braithwaite)는 LGC23이 강조하는 ‘세대 간 우정(Intergenerational friendship)’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대 간 우정은 단순한 멘토-멘티의 관계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멘토-멘티의 관계는 나이가 젊은 멘티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하향식 접근법을 전제하는 반면, 진실된 세대 간 리더십은 동일한 위치에 서서, 공통의 관심사에 기반하여,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선교적 우정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우정은 서로에게 유익합니다. …… 이러한 우정은 세계 선교를 위한 세대 간 파트너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 세대는 선교를 위해 각기 독특한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28)

브레이스웨이트가 이야기하듯,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일종의 수직성과 일방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우정은 기본적으로 우정에 참여하는 이들 간의 동등한 위치와 쌍방적인 영향력을 전제한다. LGC23은 이러한 동등성과 수평성을 ‘세대 간 우정’이라는 개념에 담아낸다. 그러면서 세계선교를 위해 각기 다른 기여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고, 서로를 통해 배우며, 세계선교를 위해 함께 협력하는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선교 파트너십’ 혹은 ‘동반자선교’에 대한 논의들은 많은 경우 문화적 측면, 특히 선교사 및 선교 파송교회와 현지교회 간 수평적이고 상호 문화적인 협력 관계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져 왔다.29) 하지만 선교 파트너십 혹은 동반자선교 개념은 세계선교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등하게 참여하여 선교에 각기 독특하게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한 선교의 동반자들임을 강조한다. 즉 이러한 개념은 문화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세대적 측면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세대 간 선교 파트너십’의 개념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세계선교를 위해 함께 부름을 받았고, 이 사명을 이루어가는 여정 속에서 두 세대가 각기 고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즉 이 개념은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서로를 선교 파트너로 인정하고, 서로 협력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제시한다.

결론
1980년 태국 파타야에서 로잔 세계 복음화전략회의(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 중 진행된 한 회의에서 스토트는 총체적 선교를 강조하는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호소하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복음주의운동이 지닌 맹점(blind spot)을 발견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을 강조했다.30) 앞서 살펴본 것처럼, 로잔운동의 역사는 이러한 스토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로잔운동의 역사 속에서 청년 세대는 중요한 기여를 해 왔다. 제1차 로잔대회에 울려 퍼진 사무엘 에스코바와 르네 파딜라를 비롯한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총체적 선교를 향한 목소리는 로잔운동이 좀 더 총체적인 선교를 지향하는 운동이 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당면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적 반응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에서 로잔 언약은 한국교회에 더욱 대중화될 수 있었고, 총체적 선교에 기반한 그들의 다양한 선교적 실천들은 한국 복음주의 교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

하지만 청년 세대의 이러한 선교적 공헌은 결코 그들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던, 그리고 그들과 협력하고자 했던 이전 세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무엘 에스코바와 르네 파딜라가 제1차 로잔대회를 통해 이루어 낸 선교적 공헌 그 이면에는 젊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로잔대회 참가 비중에 특별히 신경을 썼던 빌리 그레이엄이 있었다. 또한, 그 이면에는 젊은 세대의 총체적 선교에 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로잔 언약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존 스토트가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젊은 복음주의 청년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열망이 로잔 언약의 대중화와 총체적 선교 실천이라는 열매로 나타나기까지는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하고자 했던 캠퍼스 사역자들의 수고가 있었다. 또한 그 가운데는 그들의 여러 활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그들과 협력하고자 했던 손봉호 교수와 같은 기성세대가 있었다.

이처럼 로잔운동의 역사는 ‘세대 내’뿐 아니라 ‘세대 간’에서도 이루어진 파트너십의 역사였고, 이러한 역사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다가오는 제4차 로잔대회 또한 이러한 역사의 연장선에서, 참가자들 간에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이 형성되고, 이 우정이 세대 간 선교 파트너십으로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제4차 로잔대회를 통해 이러한 세대 간 협력과 파트너십의 정신이 대회 참가자들을 넘어 한국교회의 선교운동 전반에 퍼져 나가게 되길 소망한다. 

미주 
1) Alister Chapman, Godly Ambition: John Stott and the Evangelical Movemen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34; Timothy Dudley-Smith, John Stott: The Making of a Leader: A Biography of the Early Year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9), 418.
2) 본 발표에서 ‘청년’은 넓은 의미의 ‘젊은 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즉, 밀레니얼 세대(1981〜1996)와 Z세대(1997〜2012년생)를 포괄하는 용어로서, 대략 대한민국 법률상 성인이 되는 만 19세 이상에서부터 약 40대 초반까지의 나이를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로잔운동에서는 25세부터 35세까지를 YLGen (Younger Leaders Generation) 대상 연령으로 보지만, 상황에 따라 40대 초반까지를 YLGen 대상 연령으로 보기도 한다.
3) Brian Stanley, The Global Diffusion of Evangelicalism: The Age of Billy Graham and John Stot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3), 156.
4) Stanley, The Global Diffusion of Evangelicalism, 164.
5) David C. Kirkpatrick, A Gospel for the Poor: Global Social Christianity and the Latin American Evangelical Left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19), 36.
6) Kirkpatrick, A Gospel for the Poor, 17〜8.
7) Kirkpatrick, A Gospel for the Poor, 4, 49.
8) 자세한 로잔 언약 작성 과정에 대해선 Stanley, The Global Diffusion of Evangelicalism, 169〜71을 보라.
9) Stanley, The Global Diffusion of Evangelicalism, 170〜1.
10) Chapman, Godly Ambition, 119; Stanley, The Global Diffusion of Evangelicalism, 173.
11) 〈로잔 언약〉, 로잔운동, https://lausanne.org/ko/statement/lausanne-covenant-ko.
12) 조종남,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운동의 역사와 신학》 (서울: 선교횃불, 2013), 26.
13) 존 스토트, 조종남 역, 《선교에 대한 복음주의 입장: 로잔언약 해설》, (경기: 서울신학대학 출판부, 1976); John Stott, The Lausanne Covenant: An Exposition and Commentary(Minneapolis, MI: Worldwide Publications, USA, 1975).
14) 최형근, “로잔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로잔교수회 편, 《로잔운동의 역사와 실천》 (서울: 한국로잔위원회, 2021), 377.
15) Myung-Sahm Suh, “Glocalization of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The Contested Legacy of the Lausanne Movement among Neo-Evangelicals in South Korea”, Religions 6, no. 4 (December 2015): 1400.
16) 김회권, “서론: 우리가 딛고 올라서야 할 복음주의자 4인”, 복음과상황 편, 《복음으로 상황을 바라본 4인의 시선: 이만열, 손봉호, 김진홍, 홍정길》, (서울: 복음과상황, 2011), 14; 학원복음화협의회 편, 《이승장 목사 청년사역 40주년 기념: 그, 끝나지 않은 열정》, (서울: 학원복음화협의회, 2007), 47.
17) Suh, “Glocalization of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1400.
18) Chul-Ho Han, ‘A Case Study: The Influence of the Lausanne Movement on Younger Korean Christian leaders,’ in The Lausanne Movement: A Range of Perspectives, eds. Margunn Serigstad Dahle, Lars Dahle, and Knud Jørgensen (Oxford: Regnum Books, 2014), 197.
19) “복음주의 청년, 학생 협의회 결성에 부쳐”, 〈복협신문〉, 1987.11.27, 1; “자원봉사자 등록상황”, 〈복협신문〉, 1987.12.11, 3.
20) “사치성 소비, 과감한 과세도입으로 약화시켜야”, 〈크리스챤신문〉, 1987.11.27, 1; 손봉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기독교사상〉 34, no. 11 (1990.11): 87-8.
21) 복음주의적 사회 참여적 실천을 강조한 손봉호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다음을 참고하라. 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서울: 푸른역사, 2014), 324-45.
22) “YLGen”, Lausanne Movement, https://lausanne.org/ylgen.
23) “Lausanne Younger Leaders”, Lausanne Movement, https://lausanne.org/lausanne-younger-leaders.
24) 문혜성, “로잔 동아시아 젊은 리더들 한자리에”, 〈한국성결신문〉, 2019. 4. 10., https://www.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690.
25) 조준영, “로잔청년 콘퍼런스 7월 13일 개최 “로잔 정신 전한다”, 〈기독신문〉, 2024.05.17.,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347.
26) “Lausanne Generations Conversation”, Lausanne Movement, https://lausanne.org/gathering/lausanne-generations-conversation.
27) “Lausanne Generations Conversation”, Lausanne Movement, https://lausanne.org/gathering/lausanne-generations-conversation.
28) Micaela Braithwaite, “God’s Purpose in Intergenerational Leadership: Why the global church needs intergenerational friendships”, Lausanne Movement, https://lausanne.org/about/blog/gods-purpose-in-intergenerational-leadership.
29) Scott W. Sunquist, 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 Participation in Suffering and Glory(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3), 370-95.
30) Ajith Fernando, “Mentor and Model to Emerging Younger Leaders”, in Portraits of a Radical Disciple: Recollections of John Stott's Life and Ministry, ed. Christopher J. H. Wright(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1), 128.


* <한국선교 KMQ> 2024년 가을호(통권 91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였습니다.

 





▨ 사진 | (위) 픽사베이
▨ 서동준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에든버러대학에서 세계 기독교학으로 신학 석사와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역서로는 《빌리 그래함: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이 있으며, 2021년에 Journal of Ecclesiastical History(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수여하는 World Christianities Essay Prize를 수상하였다. 분당우리교회 교육 전도사와 한국선교연구원(KRIM) 인턴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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