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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3  통권 269호  필자 : 카시무 카서가얼(卡西姆·  |  조회 : 1895   프린트   이메일 
[차이나 윈도]
중국 정부, 레비야 빌딩 철거…유명 위구르 반체제 인사들의 유산 말소

워싱턴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주도인 우루무치에 있는 레비야(Rebiya) 빌딩을 조용히 철거했는데, 랜드마크가 되는 이 빌딩은 비밀리에 폐허로 바뀌었다. 

이 8층짜리 빌딩은 한때 위구르 문화와 상업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이 상업시설 부근의 상인들에 따르면 현지 당국은 이들에게 이틀 동안 가게 문을 닫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익명의 향수 가게 주인은 “돌아와 보니 건물은 이미 철거된 상태”였다고 미국의소리(이하 VOA)에 전했는데, 보복이 두려워 익명을 요청했다며 “철거 작업 중에는 현장 접근이 통제”됐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철거는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의 정체성과 문화유산을 지속적으로 탄압하기 위한 조치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은 2017년 이후 신장에서 대규모 구금, 강제노동, 위구르 문화와 종교건축물(종교 명소)의 체계적인 철거 정책을 펴면서 국제 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와 기타 국제기구는 이런 행위를 반인륜적 범죄와 민족 학살로 규정했다.

중국 정부는 테러와 극단주의 그리고 분리주의에 맞서기 위한 정책이라며 이러한 비난을 시종 부인해 왔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런 이유들은 사실을 은폐하려는 허울에 불과하고, 그 이면에는 위구르인들을 통일된 한족의 정체성으로 동화시켜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철저히 파괴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봉쇄와 비밀에 에워싸이다
미국의 위구르 인권운동가 줌라트 다우트(Zumrat Dawut, 早木熱·達吾提)가 레비야 상업시설 철거 소식을 처음 확인했다. 그는 우루무치 소식통과 연락을 취해 지난해 11월 30일 소셜미디어에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중국 당국이 하루 전날 비밀리에 건물을 철거했다고 전했다.

다우트는 VOA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 구역은 봉쇄되었고, 누구도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국가기밀로 간주하고 관련 증거를 공유하면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비야 빌딩의 철거는 78세의 레비야 카디르(Rebiya Kadeer)의 삶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레비야 카디르는 이 상가시설의 중심인물이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 북부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유명 위구르 반체제 인사인 그녀는 한때 신장자치구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의 정책에 저항하는 위구르인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사업가에서 망명자로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레비야는 창업의 기회를 잡았다. 그녀의 사업적 관심 분야는 방직과 무역 그리고 제조업이었다. 1992년 우루무치에 레비야 빌딩을 세우고, 위구르인들이 주로 운영하는 800여 개의 상점을 입주시켰으며 문화·경제 발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 레비야는 이 건물은 단순한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위구르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며, 상업시설의 문화적 의미를 되짚으며 강조했다.

그녀의 사업가적 성공으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國人民政治協商會議全) 전국위원회의 의석을 얻었고, 매우 존경받는 ‘소수민족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위구르인의 권익을 공개적으로 옹호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기 시작했는데, 특히 1997년 ‘이닝 사건(伊寧事件)’ 탄압의 실상을 폭로한 이후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1997년 2월 5일, 중국 보안군은 이닝(伊寧)시에서 열린 평화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이 시위는 문화 권리와 종교자유 그리고 억압 정책의 종식을 위한 위구르인들의 요구로 촉발됐다. 레비야는 1999년 중국의 위구르인 시위대에 대한 중국의 탄압 정보를 해외에 전달했다가 체포돼 국외 조직에 국가 정보를 불법 제공한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혹독한 학대를 당했다. 감옥에서 젊은 위구르인들이 잔혹하게 학대받는 것을 목격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2005년 미국의 외교적 노력으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와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에 도착한 뒤 레비야는 위구르인 인권을 위해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었으며, 자신의 경험을 자세히 설명하고 자국민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2006년 그녀는 세계위구르대표대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중국은 그녀의 두 아들을 투옥하고 의심스러운 죄명으로 고발함으로써 보복했다. 그들은 그녀의 아이들을 이용해 그녀를 벌주었다고 VOA에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계획적 말살
레비야의 망명 이후 중국은 줄곧 그녀의 유산(遗产)을 말소하는 데 힘써 왔다. 2009년 중국 당국이 우루무치 사건을 선동해 2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고발하자 레비야는 폭력 사태와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이 우루무치 사건은 레비야 빌딩의 종말을 알렸다. 이 빌딩에 있던 가게들은 인근의 다른 건물로 옮겨야 했고, 기존 건물은 철거될 때까지 비어 있었다.

2017년 이후 레비야의 자녀와 손주와 형제자매를 포함해 최소 20여 명의 친척이 구금됐다. 레비야에 따르면 그녀의 자녀와 손자 손녀는 2019년 말과 2020년 초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레비야는 여동생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 정부는 그녀의 자녀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선전 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조작된 선전(宣傳)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레비야의 손자와 아들은 중국의 정책을 찬양하고, 그녀를 비난했다. 영상 속 한 외손녀는 “할머니,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손녀는 “다시는 외국에서 저 나쁜 사람들에게 속지 말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레비야는 이 영상들을 선전 수단으로 생각한다. “진실은 영상 뒤에 감춰져 있다”라고 그녀는 가족의 강요된 가담에 마음이 찢어지듯 슬프다고 했다.

중국의 반응
VOA는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에 레비야 빌딩 철거가 통보와 배상을 포함한 법적 절차를 따랐는지 여부를 물었다. 류펑위(劉鹏宇)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응답하지 않았다.

레비야는 자기는 아무런 고지도, 배상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내 자녀들이 동의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내 자녀들은 그 재산을 처분할 권리가 없으며, 오직 나만이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1995년, 빌 게이츠의 방문
레비야는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자기의 상업시설을 방문했을 때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레비야는 중국 관계자들의 긴밀한 감시 속에 상업시설을 방문한 빌 게이츠를 위해 따뜻한 환대를 준비했으며, 또 중국 관계자들의 감시 속에 상업시설을 둘러보며 비정치적인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고 했다.

VOA는 레비야 빌딩이 철거된 뒤 빌 게이츠 재단에 연락하여 의견을 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레비야는 실망하며, “빌 게이츠의 방문은 위구르 상업계에 대한 존중을 상징한다. 지금 그의 침묵은 불안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레비야는 이번 철거가 자신의 유산을 말소하기 위한 계획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녀의 모든 공헌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녀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위구르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사진 설명 | VOA와 인터뷰하는 레비야 카디르
 ▨ 출처(사진 포함) | <차이나에이드> (2024/12/14)
 ▨ 번역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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