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논단 통신】 최근 홍콩의 정치와 사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홍콩의 교회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지난 기독교 도서전에서 홍콩신학원(香港神学院)은 성찰을 통해 교회가 앞으로의 길을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신간 《여행길의 교회(旅途中的教會)》를 출간했다. 지난 10월 25일 기독교 도서전 행사에서 홍콩신학원 성서학과 조교수 셰간린(謝甘霖) 박사는, 오늘날 홍콩교회가 초기 로마 기독교 공동체를 거울로 삼아 두 시대의 교회가 격동의 때와 직면하여 매우 불안했지만, 격동은 교회 공동체가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기호가 될 것이라고 했다.
셰간린 박사는 새 책에 실린 그의 글을 간략히 소개했는데, 주로 도시교회 공동체를 연구한 1, 2세기의 로마 기독교 공동체를 예로 들었다. 그는 먼저 과거 로마 기독교 공동체가 처한 상황, 즉 격동의 사회 환경과 통제, 경제 구조의 불균형과 빈부격차의 심화 그리고 다양한 종교 문화 역시 홍콩교회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마 기독교 공동체가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AD 40년경, 당시 무명의 성도들이 로마에 복음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로마 기독교 공동체를 ‘격동을 기호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는데, 그 당시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가 기독교인들을 로마에서 쫓아내라고 명령한 ‘클라우디우스 칙령(edict of Claudius)’과 로마의 대화재가 있을 때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방화죄를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두 개의 큰 사건이 있었다. 셰간린 박사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표적이 된 이유에 대해 아마도 그들이 여러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활동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의 거처를 개방할 것이며, 사방팔방의 사람들이 그 가정 집회에 올 것이다. ‘한 가정은 한 나라와 같다’. 모든 사람이 그 속에서 누가 아버지이고, 자녀인지를 다시 정의하게 될 것이다. 당시 부권(父權)을 강조하고, 종족 위주의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사회의 문젯거리였고, ‘쉽게 배제될 수 있는 공동체’이기도 했다.
셰간린 박사는 홍콩이 처한 상황을 성찰하고, “홍콩교회가 급격한 변화를 겪을 때 확실히 많은 불확실성과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역으로 말하면 이런 경험이 있으므로 격동은 오히려 우리의 존재 기호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마 기독교 공동체의 존재는 그들이 겪은 격동의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그는 초기 기독교는 가정교회를 세웠으며, 가정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하므로 기독교의 정신을 잘 드러냈다고 말했다. ▩
▩ 사진 설명 | 셰간린(謝甘霖) ▩ 출처(사진 포함) | 〈時代論壇〉(2024/11/6) ▩ 번역 | 공유호·중국어문선교회 협력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