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리처드 티모시 리처드(Timothy Richard, 李提摩太, 1845-1919)는 영국 웨일스 침례교 선교사로서 중국선교에 크게 헌신하였다. 그는 1845년 10월 10일 영국 웨일스 남부 지역인 카마던셔(Carmarthenshire)의 팔디브레닌(Ffaldybrenin)에서 독실한 침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사범학교에 들어가서 졸업한 이후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제2차 복음주의 각성운동 전개 중 소명 의식을 갖고 1865년 교직을 떠나 하버포드웨스트 침례회신학교(Haverfordwest Baptist College)에 입학했다.
신학 공부를 마친 그는 1868년 침례회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 BMS)의 파송을 받아 중국으로 향하여 1870년 2월 상해에 도착하였고, 이어 산동성 연대(烟臺)로 이동하여 중국선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876년 가뭄으로 인한 산동 지역 대기근 동안 각계 모금을 진행하여 빈민 구제 활동을 전개하였고, 1878년에는 산서성 흉년 구제 사업에도 헌신하였다. 그가 주도한 빈민 구제 사업은 기독교회에 대한 반대가 극심하던 산동·산서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의 문호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중국에서 교육 선교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대학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선교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여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대신 그는 1890년대 들어 중서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신문과 잡지 간행 등 문서 사역에 헌신하였다. 일간신문을 간행하였고, 영문 잡지 ‘The Review of Times’의 주필을 맡아 일하였다. 1894년에는 ‘Christian Literature Society’의 주무를 맡아 헌신하였다.
그는 서양 학문의 중국으로의 전파 역할을 감당하고 있던 광학회를 맡아 일하면서 《만국공보(만국공보)》 등 언론에 열심히 기고하였고, 《태서신사요람(泰西新史要覽)》, 《자서정동(自西征東)》 등 명저를 번역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중국의 개역 사상가 양계초(梁啓超)의 논저 44편, 강유위(康有爲)의 논저 38편을 편집 출판하였으며, 마테오 리치의 논저 33편도 편찬 간행하여 중국 근대화의 진전에 힘을 보태었다.
그는 옹동화(翁同龢) 등 중국 관료들을 대상으로 중국 개혁 방안을 건의하는 일도 꾸준히 전개하였는데, 그중 진치(陳熾)가 중문으로 번역한 〈광학회적중국개혁계획(廣學會的中國改革計劃)〉에서는 외국인 고문 추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그는 중국의 개혁 관료 강유위에게서 중국 황제의 고문 추천을 받았고, 강유위의 변법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1897년 인도에서의 선교 현황을 통해 중국 선교의 방법론적 점검을 시도하기 위해 젊은 선교사인 아서 고스틱 쇼록(Arthur Gostick Shorrock, 1861-1945)과 함께 인도로 가서 실론, 마드라스, 아그라, 베나레스, 델리, 콜카타, 뭄바이 등지를 방문하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외국 선교사들이 조약상의 권리를 청 왕조에 대하여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을 반대하는 등 중국 친화적 선교 전략을 강조하였고, 의화단운동 이후 각국이 받은 배상금도 청 왕조에 반환하여 중국 문화 사업에 충당하여 중국을 도와줄 것도 영국과 미국 정부에 건의한 일로도 저명하다.
1902년 6월 26일에 그는 영국이 받은 배상금과 모금 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중국 3대 근대적 대학 중 하나인 산서대학당(山西大學堂)을 설립하였고, 대학에 역서원(譯書院)을 세워 역사, 상업, 산술, 대수학, 생물학, 광물학, 생리학, 물리학, 교육학 등 각종 교과서를 출판하면서 교육 사업을 전개하였다.
산서대학당(Shanxi University)은 예과(중등 3년 과정)와 본과(대학 과정 4년)를 운영하였고, 엄격한 학사 운영을 통해 우수 인재들을 배출하여 중국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산서대학당의 운영 기금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갔고, 산서대학당의 서양학대학(College of Western Studies)의 학장직도 맡아 일하였다. 티모시 리처드가 중국에서 전개한 교육 선교는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 교육을 선교의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운동을 인도에서 전개한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를 계승한 것이어서 그는 ‘중국의 더프’라고도 불린다. 그는 1916년 노환으로 불편하던 중 귀국하였다가 74세를 일기로 1919년 4월 17일 런던에서 별세하였다. ▒
▒ 사진 설명 및 출처 | 티모시 리처드(Timothy Richard, 李提摩太, 1845-1919) 영국 웨일스 침례교 선교사로서 중국선교에 크게 헌신하였다. [바이두>바이커] ▒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