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국가인 것 같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경제학 박사이자 중국통 금융인인 이 책의 저자 한재현은 이 두 성격을 각각 대변하는 단어로 마오타이와 알리바바를 꼽습니다. 알리바바는 풍운아 마윈(馬雲)이 1999년 설립한 IT 기업입니다. 20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에 중국의 대표적인 거대기업으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그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서운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바람에 중국공산당의 눈 밖에 나게 됩니다. 창업주는 은퇴하고 막대한 벌금(이라 쓰고 탈취라고 읽음)을 납부하는 등 수난을 겪게 됩니다. 중국의 경제가 자본이나 법의 논리가 아니라 공산당이나 정치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국가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에 관광이나 업무차 갔던 사람들이 거의 빠짐없이 손에 들고 들어오는 것이 마오타이입니다. 중국의 명주(名酒)입니다. 레벨에 따라 워낙 고가이다 보니 가짜도 많습니다. 마오타이를 생산하는 구이저우(貴州) 마오타이는 대표적인 국유기업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중국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중국 경제를 지배하는 진정한 실세입니다. 〈포춘(Fortune)〉이 매출액을 기준으로 매년 선정하여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의 2022년 순위에 중국 기업 136개가 이름을 올렸는데, 이 중 국유기업이 86개에 달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 중국 경제(또는 사회)를 대표하는 20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중국 경제가 어떤 성격과 특징을 지니며 또 어떻게 운영되는지, 왜 중국 경제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정리했습니다. 이 외에도 현재 중국 경제가 당면한 주요한 과제들은 무엇인지, 앞으로 중국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도 적었습니다.
공동부유(共同富裕, Common Prosperity) 공동부유라는 말은 다들 아시겠지만, ‘함께 잘 살자’는 뜻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 잠깐 올립니다. 30대 중반쯤, 직장을 옮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체였습니다. 창업자가 자본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서로 마음이 맞는 듯해서 함께했습니다. 그때 그 창업자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라면 먹으면 같이 라면 먹고, 고기 먹으면 같이 고기 먹읍시다.” 그런데 같이 오래 못 갔습니다. 나는 라면 먹고 있는데 그 집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자주 나더군요(돈이 좀 들어오니까 본인의 차부터 바꾸더군요). 서운했습니다.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저에게 다른 개인적인 사정도 생겨서 결국 그 사람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중국은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회적 갈등이 (공산당) 체제의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가 다시 들고나온 개념이 바로 ‘공동부유’입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신중국 성립 직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인 1952년에 등장한 용어입니다. 당시에는 사회주의 시스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개혁개방 시대를 거치며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정기조의 핵심 구호 중 하나로 부활합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공동부유는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만큼 공동부유를 중요시한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중국 속 공동부유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분히 사회적인 의도가 빤히 보입니다. 바로 자본이 정치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깁니다. 빈부격차의 상당 부분이 독과점 기업을 필두로 하는 자본의 책임이라는 것이지요. 아이러니 하다못해 어처구니없는 것은 온갖 특혜와 이득을 보는 공산당 간부들이나 국영기업체는 예외로 둔다는 점입니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알리바바 등 빅테크 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빅테크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엄청난 기부금을 정부에 바쳐 공산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일국양제(一國兩制) _하나의 국가, 2개의 제도 개인적으로 중국 관련 기사에서 빼놓지 않고 읽게 되는 것이 대만과 홍콩 관련입니다. 1982년 중국의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일국양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구체화했습니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을 대비해 마련한 방안이었습니다. 그런데 1984년 중국이 홍콩 반환에 대한 협상을 영국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개념을 적용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영국과 협상에서 향후 50년간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홍콩인 자치통치, 국방, 외교를 제외한 여타 부문은 기존의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된 뒤 당시 약속에서 절반이 지난 현재 일국양제는 잘 적용되고 있을까요? 일국일제로 바뀌고 있지 않나요? 홍콩의 자치권은 쇠퇴하는 가운데 중국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급기야 중국은 2014년 6월, “홍콩 관할권은 중앙정부에서 전면 보유한다”고 밝혔습니다. 2017년에는 행정장관 선거가 간접선거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홍콩의 중국 반환 당시 직선제를 약속했던 중국 정부가 약속을 뒤집은 것입니다. 그나마 행정장관 후보자 자체를 실질적으로 중국 정부가 결정함으로써 허울뿐인 선거로 전락했습니다. 기존에 약속했던 ‘홍콩인 자치통치’도 ‘애국자에 의한 통치원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홍콩은 중국의 금융 허브 기능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아무래도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각종 규제가 심하고 금융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은 중국 본토보다 홍콩 경유가 훨씬 쉬웠죠. 통계를 보면 2022년 역외 위안화 지급결제의 50~70%, 역외 위안화 예금의 60%, 역외 위안화 대출의 30%, 글로벌 위안화 장외 거래의 30%가 홍콩에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또한 2021년 기업 공개를 실시한 중국 기업의 10%가 미국에서, 30%가 홍콩에서 자금 조달을 할 정도로 홍콩은 중국에 매우 중요한 금융시장입니다.
홍콩의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절반 이상이 중국 기업이기도 합니다. 완비된 법률체계 및 조세 혜택과 함께 영어 사용이 자유롭다는 점은 아시아 어느 지역보다 홍콩을 매력적인 금융 중심지로 만드는 요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홍콩의 이점은 홍콩의 중국화 경향이 심해지면서 점점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아직 눈에 띄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아시아 금융 허브의 이전이 일어나는 조짐이 보입니다. 실제 매년 발표되는 국제금융센터지수에서 줄곧 아시아 1위를 차지하던 홍콩은 2022년 9월 발표된 순위에서는 싱가포르에 밀렸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중국과 홍콩의 갈등이 줄어들까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만 홍콩 특유의 컬러는 사라지고 중국화한 홍콩만 남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전 홍콩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은 점차 세상을 떠날 것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세대들은 이미 변해버린 지금의 홍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그 과정 중에서 중국이 홍콩 거주민들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