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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3  통권 262호  필자 : 김종건  |  조회 : 1938   프린트   이메일 
[중국기독교회사]
중국의 개항과 개신교 선교(2) 미국 침례회와 감리회

미국 침례회
대니얼 맥고완(Daniel Jerome MacGowan, 馬高溫, 1814-1893, ‘대니얼’은 ‘다니엘’로 표기하기도 함) 선교사는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파리를 거쳐 1843년 2월 말 홍콩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미리 와 있던 제후 샤크(Jehu Lewis Shuck, 叔末士, ‘샤크’는 ‘슈크’로 표기하기도 함) 선교사의 집에 머물며 중국선교에 관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9월 말에 배로 주산(舟山)으로 향하였고, 이어 영파(寧波)에 정착한 뒤 11월 초에 개인 병원을 개설하여 의료선교를 시작하였다. 

1844년에 잠시 병원 문을 닫고 방글라데시로 가서 영국 성공회 선교사 오스본(Osborne)과 결혼한 뒤 그해 말 홍콩으로 돌아왔고, 1845년 2월 영파로 복귀하여 의료선교를 재개하고 영파지역 의료선교를 이끌며 의학전도회(醫學傳道會)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1847년 이후 그는 부인의 건강이 악화되자 보다 따뜻한 화남지방으로 옮겨 하문,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의료선교를 진행하였고, 1859년 이후 일본, 영국, 프랑스 등지를 경유하여 1862년 미국으로 복귀하였다가 1867년 중국 상해로 돌아와서 1893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의료선교를 이어 나갔다. 그는 《한영신약성서대조편(韓英新約聖書對照篇)》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토마스 데반(Thomas T. Devan) 선교사는 1844년 중국으로 파송되었고, 1845년 홍콩 연흥가에 병원과 진료소를 개설하여 의료선교를 전개하였다.

조지 피어시(George Pearcy, 啤士) 선교사는 목사안수를 받은 뒤 미국 남침례교 해외선교부(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s Foreign Mission Board)의 파송을 받아 1846년 마카오를 거쳐 광주에 도착하였고, 1848년 홍콩을 거쳐 상해로 이동하여 교회를 설립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1854년 건강이 나빠져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주로 교육과 의료선교에 헌신하였다. 

매튜 예이츠(Matthew T. Yates, 晏瑪太, 1819-1888) 선교사 부부는 미국 남침례교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1847년 상해에 도착하여 북문 밖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1853년 비밀결사 소도회(小刀會)가 상해를 점령하였을 때에도 교회를 지켰고, 1860년 미국 남북전쟁 개시 이후 재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영사관과 공부국 등에서 통역 일을 하며 188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중국선교를 이어 나가는 데 평생을 헌신하였다.

새뮤얼 클롭턴(Samuel Carson Clopton, 咖笠顿, 1820-1851?) 선교사는 미국 남침례교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1845년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고, 이후 주로 복건성 복주(福州)에서 교회를 설립하고 아동 및 청소년 교육과 의료선교에 헌신하였으나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미국 감리회
저드슨 콜린스(Judson Dwight Collins, 柯林, 1823-1852) 선교사는 화이트(M. C. White) 선교사 부부와 함께 1847년 미국 북감리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North, 以美會)의 파송을 받아 중국에 왔고, 복주에서 교회를 세우고 교육과 의료선교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건강 악화 등의 사유로 1851년 고향 미국 미시간으로 조기 복귀하였다가 결국 선교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모시스 화이트(Moses Clark White, 懷德, 1819–1900) 선교사 부부는 저드슨 콜린스와 함께 1847년 미국 북감리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에 왔고, 복주에서 선교를 전개하였다. 부인 제인(Jane)이 이듬해에 병으로 죽고 메리(Marry) 선교사와 재혼한 화이트는 복주에서 교육, 의료, 아편 구제 등 선교 사역에 전념하였으나 자신도 건강이 나빠져서 1853년 미국으로 귀환하여 중국선교를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였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戴樂安, 戴作士, 1819-1897) 선교사와 벤자민 젠킨스(Benjamin Jenkins, 秦右, 1815-1871) 선교사가 미국 남감리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의 파송을 받아 1848년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선교 사역을 개시하였다.

영 알렌(Young J. Allen, 林約翰, 林樂知, 1836-1907) 선교사 가족은 미국 남감리회의 파송을 받아 1859년 12월 중국으로 향하여 홍콩을 경유하여 1860년 상해에 도착하여 중국어를 익히며 선교 사역을 준비하였다. 현지 선교단에서는 남경으로 가서 사역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태평천국의 점령지여서 본격적인 선교 사역의 전개가 어려웠고, 미국 남북전쟁의 발발로 본국의 후원이 끊어져 궁핍한 생활고의 해결이 급선무인 상황이 되었다. 

그는 풍계분(馮桂芬)의 소개로 상해 광방언관(廣方言官)에서 서학을 가르치기도 하고, 강남제조국 번역관의 서양 서적 번역 작업을 하면서 선교 사역을 이어갔다. 이때 번역한 서적으로는 《인도사》, 《러시아사》, 《독일사》, 《유럽사》, 《만국사》 등 세계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과 서양 자연과학, 언론, 정치, 군사, 외교 등을 다룬 책들이 망라되었다. 

1868년에는 《상해신보(上海新報)》의 편집 업무를 겸하였고, 자비로 《교회신보(敎會新報)》를 창간하여 300기까지 중국 사정과 선교 관련 소식을 실어 간행하였다. 1874년 9월 301기부터는 제호를 《만국공보(萬國公報, Chinese Globe Magazine)》로 바꾸어 1883년 7월까지 간행하였다. 





그는 1881년 상해에 삼일당(三一堂, Trinity House)를 세웠고, 1889년 이후 상해 광학회(廣學會)에서 간행하는 《만국공보》 간행을 도왔다. 그는 후에 청일전쟁을 정리한 《중동전기본말(中東戰記本末)》(상해 광학회, 1897년 간행) 등 저술을 남겼으며, 상해에 중영학원을 세워 교육 선교에도 기여하였다. ▩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Dr. Daniel Jerome MacGowan, Shanghai
[출처: HISTORICAL PHOTOGRAHS OF CHINA] https://hpcbristol.net/visual/VH02-202 2024.6.1. 방문]
(아래)  
《만국공보(萬國公報)》 [바이두 캡처]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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