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궈뤼(劉國瑞, Lau Kok Rui, 1990∼ ) 감독이 연출하고 각색한 첫 장편 영화다. 2022년 제59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馬獎)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신인감독상, 최우수 극본상, 남우주연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황추성(黃秋生)은 영화 《무간도(無間道)》로 명성을 구가했지만 이 영화로 생애 처음 진마장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남아시아 출신 린눠(林諾)는 진마장에서 처음으로 배우상 후보 명단에 올랐다. 류궈뤼는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으로 2008년 홍콩시티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홍콩중문대학에서 조교를 하다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장훙(張虹)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제작을 배우고, 위안졘웨이(袁劍偉)와 정바오뤼(鄭保瑞) 감독에게 사사를 받았으며, 2015년에는 홍콩 영주권을 획득하였다.
류 감독은 홍콩에 거주하는 말레이시아 국적을 지닌 이민자 출신이다. 그런 그가 소외계층, 타향,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홍콩에는 매년 수천 명의 난민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물질적·정신적 결핍에 허덕이는 난민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홍콩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출신의 난민 가정을 다루었다. 어느 날 택시기사 천바이르(陳白日, 黃秋生 분)는 파키스탄 난민 아메드(阿默, 潘文星 분)가 운전하는 승합차 옆 부분과 충돌하여 교통사고를 낸다. 그러나 천바이르는 경찰에게 난민 아메드를 고발한다. 천바이르는 아메드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하며 택시로 그를 뒤쫓았고, 아메드는 그를 피하려고 가속하다가 차가 전복되어 결국 죽게 된다. 그 뒤 아메드의 아들 하산(哈山, 林諾, Sahal Zaman 분)은 숙부가 소속된 불법 조직에 가담하여 도둑질하는데 그 현장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천바이르는 택시로 하산을 도피시키고, 택시 면허증을 판 거액을 챙겨 들고 밀항선을 수소문한다. 그리고 하산을 캐나다로 이민 보내는 것을 돕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인종의 결혼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천바이르는 경찰인 아들 천캉(陳康, 周國賢 분)의 결혼식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냈는데 아들이 자신에게 결혼 통지를 늦게 해주어 심기가 불편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잘 나가는 사돈댁은 와인에 관심을 보이는 천바이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또 다른 결혼식은 많은 난민이 모여서 축복하는 장면이다. 아메드의 아내는 첫아들 하산에 이어 둘째를 가진 것을 지인에게 이야기하면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불안해한다.
결혼과 임신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가정불화 등 환경적 요인은 이런 인식을 달리하게 한다. 난민 가정은 더욱 그렇다. 아메드는 홍콩에 10여 년을 거주했는데 그 시간은 마치 감옥살이와 같았다고 말한다. 아메드의 아들 하산 역시 천바이르의 택시를 타고 주룽(九龙)을 지나며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주룽에 온 것은 난생처음이라고 말한다. 난민 부자(父子)는 법적인 제재뿐만 아니라 활동의 제약도 받고 있었다.
국제 난민의 환승역 역할을 하는 홍콩은 도피한 난민들이 난민 자격 심사를 기다렸다가 유엔 난민기관에서 지정한 제3국가로 이주하는 곳이다. 난민들은 주로 캐나다, 미국, 호주 등의 국가를 선호한다. 홍콩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서 다른 국가로 가는 난민은 매우 드문데 이는 세계 난민인정 평균치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홍콩으로 피신했지만 장기간 계속되는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여 결국은 자신을 박해한 고국으로 송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류궈뤼 감독은 난민들은 제도와 환경의 문제보다 자신과 가족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영화는 난민 문제를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온 밀입국자들과 연결을 지었다. 천바이르는 1970년대 중국 본토에서 헤엄쳐 홍콩으로 밀입국에 성공하였지만 아내는 도중에 익사하였다. 아들 천캉은 열한 살이 넘어서 홍콩으로 이민을 오게 되어 뒤늦게 부자 상봉이 이뤄졌다.
파키스탄에서 변호사였던 아메드는 고국에서 불법에 저항하다가 아내와 홍콩으로 오게 되었고, 홍콩에서 태어난 아들 하산은 열 살이 되었다. 10년 동안 송환 반대 심사를 기다리며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였다. 아메드는 자신과 같은 파키스탄 출신 정착자가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승합차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천바이르가 택시를 몰다 자신의 승합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낸다. 아메드는 사고를 낸 천바이르에게 수리비를 요구했지만 그는 아메드에게 각목을 휘둘렀다.
천바이르의 아들 천캉의 동료 형사가 아메드를 찾아와서 천바이르가 아메드를 때리지 않았다고 거짓 증언을 요구하였다. 아메드는 천바이르의 택시가 뒤쫓아 오자 속도를 내다가 차량이 전복되어 죽음으로 내몰린다.
하산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 숙부 누만(努曼)이 운영하는 절도 조직에 들어간다. 그는 자전거 등 물건을 훔쳐서 주고 새 운동화를 받았다. 하산은 캐나다 이민을 떠나는 여자친구에게 강아지를 훔쳐다 주었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난민 소년의 하산은 이렇게 범죄에 노출되고 만다.
경찰이 누만의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급습하였다. 하산은 떨어진 경찰의 총을 감추었다. 천바이르가 하산의 밀항을 도우려고 모아둔 돈 보따리를 들고 도망쳤다. 하산은 천바이르가 아버지를 죽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나침반이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1970년대 나침반을 목에 걸고 남쪽으로 헤엄쳐서 홍콩에 온 천바이르는 수십 년이 흘러서 캐나다로 떠나는 하산에게 나침반을 건넸다. 영화에서 나침반은 밀입국, 난민, 인생 등을 상징한다. 안정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을 꿈꾸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타향에 왔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은 경제적·심리적 안정을 찾기에 쉽지 않았다. 현지인은 난민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을 축낸다고 욕한다. 또한 난민은 타향에서 온갖 편견과 불평등에 시달린다. 천바이르는 경찰에게 자신이 저지른 차량 충돌사고를 모면하기 위해서 난민의 불법을 조사해 보라고 하였다. 동료 경찰은 천캉의 아버지 천바이르가 구속 기소당하지 않게 하려고 아메드가 일하는 상점에 찾아와서 천바이르에게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는 거짓 증언을 요구했다.
영화는 난민 문제 외에도 부자간의 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천바이르는 아들 천캉과 부자관계의 불협화음을 빚었다. 이에 천바이르는 속죄하듯 하산에게 아버지의 정을 쏟는다. 또한 하산의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천바이르는 평생을 함께한 그리고 노후 생계를 위한 전 재산인 택시 면허증을 팔아서 하산을 캐나다로 이민을 보내려고 하였다. 천바이르는 자신이 홍콩으로 밀입국할 때 아들을 데려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 때문에 아들에게 베풀지 못했던 아버지의 정을 혈연이 아닌 하산에게 쏟았다. 술을 좋아해 간경화로 고생하는 아버지 때문에 두 번째 간이식을 하려는 아들 천캉은 하산이 부럽다고 말한다. 하산이 경찰의 총과 천바이르의 돈을 가지고 도망쳤지만, 천바이르는 갈 곳이 없어 배회하는 하산과 재회하고 용서하였다. 영화는 집과 타향, 가족, 비혈연, 타국인, 세대 차이 등을 아우른다. 류 감독은 홍콩을 이민 도시라고 정의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60만 명이던 홍콩의 인구가 800만 명 가까이 증가하였다. 홍콩인은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또다시 캐나다 혹은 호주로 떠날지 남을지 고민한다. 1970년대 천바이르처럼 하산 가족도 더욱 안정된 생활을 쫓아서 홍콩으로 왔다. 류 감독의 할아버지가 중국 본토에서 말레이시아로 이주하고 자신은 말레이시아에서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이주는 거주지, 국적, 신분의 변화와 심리적 혼란이 내포되어 있다.
류 감독은 이주민, 난민,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에 관해 지속적으로 천착해 왔다. 《백일청춘》 이전에 그가 각색 연출한 단편영화로는 《9번 도로(九號公路)》(2017), 《말로궁도(末路窮途)》(2018)가 있다. 《9번 도로》는 홍콩대학 졸업생 자랑(嘉朗)이 중국 샤먼(廈門) 출신 여학생 원원(文文)을 대만 유학생인 줄 알고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말로궁도》는 홍콩의 파키스탄 가정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다. 감독은 국적이 말레이시아나 파키스탄 그 어디든지 홍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류 감독은 비록 10여 년을 홍콩에서 생활하고 아내도 홍콩인이지만, 자신을 홍콩인이라기보다 말레이시아인으로 규정한다.
류 감독은 홍콩인들은 해외 진출을 시도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홍콩 사회 변화의 증인이 되겠다고 밝혔다. 열여섯 살이 넘어 홍콩에 온 그는 경영과 정치철학을 공부하려다가 홍콩대학에서 장훙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관심을 보이며 드라마와 단편영화를 통해 출신이 어디든 간에 홍콩인의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번화한 도시 홍콩은 소비 물가가 높아서 이민자가 생활하기 쉽지 않다. 동남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홍콩으로 온 난민이나 이민자는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홍콩 생활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류 감독은 자신의 이민자 신분에서 출발하여 종족, 종교, 사회계층에서 충돌을 겪는 난민을 다루었다. 감독은 홍콩은 난민에게 식품, 주거비, 교통비 등을 제공하여 난민에게 어느 정도 편의를 제공하지만 오랜 심사 끝에 결국 고국으로 추방될 운명에 처한 이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영화는 종족, 세대 갈등, 타향살이 등 다양한 시선에서 밀입국자와 난민과 같은 사회의 소외계층을 이야기하여 홍콩에서 보기 드문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혹자는 이 영화가 홍콩 영화의 뉴웨이브의 새로운 도래라고 하였다. 이 영화는 일본에서도 올해 1월 26일 상영되었으며, 일본의 한 교수도 유명 일간지에 영화를 소개하였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청대 시인 원매(袁枚)의 〈이끼(苔)〉에서 유래한다.
白日不到處, 靑春恰自來. 苔花如米小, 也學牡丹開.
밝은 볕이 들지 않는 음지에도 푸른 봄의 기운은 꼭 절로 찾아오네 쌀 알갱이 만한 작은 이끼 꽃 모란을 따라 화려한 꽃을 피운다
이 시의 첫 구절 백일(白日)은 천바이르(陳白日)의 이름이고, 청춘(青春)은 하산의 중국어 이름 모칭춘(莫青春)이다. 천바이르와 하산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세대와 국적을 넘어 부자의 정과 밀입국과 난민이란 이주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인생에서 음지를 벗어나 안정과 희망을 찾고자 하는 욕망과 고통 또한 닮았다.
류궈뤼 감독은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기울였다. 아메드는 파키스탄 변호사 출신이지만 홍콩에 와서 생계를 위해서 물건을 배달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아들 하산이 가게에서 물안경을 훔치는 것을 나무라고 배상해 주려고 하였다. 맑은 영혼의 아메드는 궁지에 몰려서 죽음까지 당한다. 그는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홍콩으로 도피하여 가족과 함께 안온할 새 둥지를 찾으려 했지만, 그 꿈은 스러졌다. 음지에 핀 꽃에도 성장할 공간을 베푸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난민이나 이주민이나, 현지인이나 누구든지 고독과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영혼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활절을 맞아 살아 있는 자의 평안과 사자(死者)의 안식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
♣사진 출처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부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