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융(金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소설이 중국 문화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지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광검영(刀光剑影), 즉 격렬한 전투와 살기등등한 강호(江湖)의 세계는 뜻밖에 중화민족 문화의 해자가 되어, 중국 문화에서 멀어진 전 세계 중국인들이 궈징(郭靖), 황룽(黄蓉), 동사서독(東邪西毒), 남제북개중신통(南帝北丐中神通)의 세계를 통해 역사적 전승과 선조들의 업적을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하였으며, 2019년 홍콩 독립을 외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혼란 속에서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를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백 살의 진융, 무협소설의 대가인 그는 1914년에 태어나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이 그의 문학적 감화력, 즉 문학무림에서 세운 공이 혁혁할 뿐 아니라 유능한 협객이었던 것을 회상했다.
그러나 사실 진융은 홍콩의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더욱 잠재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중 속에 중국 문화의 씨앗을 심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분리주의 행렬에 저항함으로써 대중의 제재에 직면한 2019년 홍콩시위 사태는 위기를 모면하게 됐다.
이것은 또한 중국이 베이비붐 세대부터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출생자) 세대까지 여러 세대가 진융의 중국 문화 이야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영어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진융의 소설을 많이 읽으면 무림세계의 전설에 빠져들게 된다. 모든 움직임에는 중국 문화의 저력이 농축되어 있는데 항용십팔장(降龍十八掌), 견용재전(見龍在田), 비용재천(飛龍在天)은 모두 역경(易經, 주역(周易)이라고도 함)의 진수다.
화산논검(華山論劍), 양양혈전(襄阳血战), 대막풍광(大漠風光)은 중국 신주(神州) 땅의 역사적 현장으로 이끈다. 오랫동안 서양 교육을 받은 해외 유학생(번서자, ‘番书仔’)들이 중국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보은과 복수의 뒤에 숨은 문화적 매력에 사로잡히게 한다. 두보(杜甫)의 시구에서 “봄비는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신다(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라고 말한 것처럼 강대한 중국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는 또한 전 세계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으로서 그들은 진융의 무협소설을 좋아하며, 책 속 중국 문화, 즉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견인불발(堅忍不拔) 정신에 이끌린다. 특히 동남아시아 중국인들이 더욱 그러하다. 진융의 일부 작품은 1960~70년대 그가 싱가포르에서 ‘신명일보(新明日报)’를 창간할 때 쓴 글일 뿐만 아니라 동남아 중국인들이 화교를 배척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 문화에 대해 떨쳐버릴 수 없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2019년 홍콩 독립을 외치는 폭동 시위대에 대해 극도로 증오하는 태도를 보였다. 시위대들이 민주라는 이름으로 입법회를 깨뜨리고 백화점을 불살랐으며, 도로를 막고 또 수백 개의 신호등을 파괴했다. 홍콩의 영국 유니언기와 미국 성조기를 들고 미군의 홍콩 상륙을 환영한다고 외치는 시위대에 대해 동남아시아의 중국인들은 모두 ‘서양을 흠모하는 개’라고 불렀다. 그 후에 리콴유(李光耀)는 이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감히 영국과 미국을 향하여 No라고 말함으로써 권익을 보호했다.
사실 진융의 세계관은 편협한 한족우월주의(大漢人主義)도 아니며, 서양을 흠모하는 개가 공격하는 ‘대중화(大中華) 접착제’도 아니다. 전혀 상반되는 진융의 모든 이야기는 다양성과 포용을 주장하며, 행간마다 인종차별과 패권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했다. ‘천룡팔부(天龍八部)’의 주인공 차오펑(喬峰)은 마지막에 자신이 거란(契丹)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한인(漢人)세계에서 의심을 사서 샤오펑(萧峰)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충의와 의리 사이에서 깊은 고통을 겪다가 옌먼관(雁门关: 산시(山西)성 북부 네이창청(内长城) 연변의 중요한 관문)에서 자결하여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진융은 이를 통해 인종주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기치를 높이 들었는데, 모든 가치와 원칙 중에 인도적 원칙이야말로 지고지상의 가치임을 밝혔다. 진융은 중국 문화가 본질적으로 포용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였으며 한(漢)족, 만주족, 몽골족, 후이(回)족, 티베트(藏)족은 모두 한 가족이며 불교는 인도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무협소설의 뜻을 빌려 전통문화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이상적인 세계의 미래를 구축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진융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득 뒤를 돌아보니 세상은 급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의 세계(강호)는 변함없이 다양하고, 편안하고 즐거우며, 조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찾고 있었다. 진융을 기리기 위해 중국 문화에 대한 진융의 영향은 잊힐 수 없는 것이다. ▦
* 본고의 내용은 웹진 <중국을주께로>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사진 설명 및 출처 | 2024 3월 15일 홍콩 중앙 에든버러광장에서 진융 흉상 개막식 (신화사 캡처) ♣출처 | <亞洲週刊> 2024년 10기(3/11-3/17) ♣번역 | 하늘브릿지·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