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고는 오랜 시간 중국에서 보이차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경험하고, 그 지경을 넓혀 히말라야산맥의 미전도종족을 위한 선교사역을 감당해 온 유재철 선교사님이 그동안 방송을 통해 나눈 이야기를 편집하여 게재하였습니다. 모든 미전도 방언종족이 주께 돌아오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늘 주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회자: 오늘 보이마루 대표이신 유재철 선교사님 모셨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유 선교사: 2017년 저희는 티베트 히말라야산맥의 미전도종족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지역에서 함께 사역했던 집사님 한 분이 해발 5000m에서 예배를 드리고 내려오는 중에 고산증으로 인해 순교하게 되었고, 공안의 조사를 다 마친 후 제가 장례예배를 집례하였습니다.
사회자: BAM선교는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비즈니스선교라고 소개를 해드렸는데, 선교지에서 많은 미전도종족에게 생계의 수단을 찾게 해주는 일도 하시고, 또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심어주는 일을 동시에 하고 계신 거죠.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 선교사: 저는 히말라야의 동티베트지역에서 미전도종족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한 손에 복음을, 한 손에는 보이차를 들고 주님의 심장 가지고 주님의 눈물 어린 시선이 고정된 곳을 가자’라는 마음으로 제자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사회자: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커피가 대세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이차의 주산지가 윈난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윈난성에서 어떻게 사역을 하게 됐는지, 어떻게 중국선교를 하게 됐는지를 좀 들려주세요.
유 선교사: 제가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가 1992년부터 중국선교를 시작하면서 함께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에 내몽고 지역에 저희가 운영하는 신학교가 있어서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너 들어올 수 있겠니? 네 가족이 이사를 올 수 있겠니?”라는 말씀에 저희가 2005년에 10월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후에 윈난성이 보이차 산지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보이차 공장에서 땅을 내주니까 학교를 짓고 교회를 짓는 걸 보면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보이차 공장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두 번째는 그분들이 농약을 많이 치는 걸 보고 농약을 안 치는 방법이 있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자: 아무리 하나님의 음성 들었다고 해도 사모님은 직접 못 들으셨잖아요. 사모님 반대하셨을 것 같아요.
유 선교사: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초등학교 복음화를 위한 사명이 있었기에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싸인을 구했어요. 아내에게 제가 받은 감동을 나눴어요. 창세기 12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떠나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어느 날 아침에 아내에게 “이런 마음이 있는데, 중국에 갈래”라고 했더니, 아내가 “하나님 뜻이라면 가야죠”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너무 뜻밖이었어요. 저희는 확신에 차서 움직이게 됐습니다.
사회자: 언젠가 보이차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아요. 윈난성의 보이차가 최고라는 내용이었는데. 생산도 직접하고 나름대로 유통망도 갖춰져 있을 것 같은데 보이차 사업을 통해서 어떻게 선교를 하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유 선교사: 선교사 파송을 받을 때 문서 사역이나 제자훈련, 훈련학교를 목적으로 윈난성 소수민족지역으로 파송되었어요. 어느 날 윈난성이 보이차 산지라는 걸 알게 되었고 보이차를 알고 사람들을 만나니까 그분들이 마치 이런 느낌과 같은 겁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김치 담글 줄 알고 있으면 우리가 너무 반가운 거죠. 그리고 그분들에게 무농약 농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차를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마을 안에 한 가정과 계약 재배를 통해서 자연농법으로 2,000평 정도의 밭을 직접 재배하게 됩니다. 담배잎을 물에 희석해서 뿌리면 해충을 죽이는 게 아니라 퇴치하게 된다. 나머지들을 우리가 사용하면 된다. 이게 창조의 원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남편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어요.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정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편이 25년 동안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많이 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 무농약 농사가 나무를 살리는 것을 보고 촌장이 찾아와서 우리 촌에 전부를 다 해달라는 곳이 여럿 됩니다. 그래서 그 무렵에 저희가 단기 팀과 함께 들어가서 마을 초청잔치를 통해 마을 사람 모두가 영접하고 개종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만약에 현지인들이 옥수수를 재배했으면 저는 옥수수 박사가 됐을 거예요. 근데 보이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차를 연구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이 보이차를 마시는 분들이 편리하게 마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기도 중에 하나님이 감동과 지혜를 주셔서 다양한 제품들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마을 모두 개종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군요. BAM선교의 좋은 모델인 듯합니다. 그런데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유 선교사: 그런 중 아내가 뇌경색을 진단받고 오른쪽이 마비되는 증상이 있었는데 중국에서 치료가 되지 않아 어렵게 한국으로 귀국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후 15년 동안 하나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특별한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한 것은 아내가 어느 날 “여보, 물이 따뜻한 게 느껴져요.” 하는 겁니다. 그리고 아내가 현지에서 사역자들과 예배드릴 때 반주를 했는데 가끔 건반을 잘못 누르기도 했어요. 근데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지 감동이었습니다. 그때 깨닫게 된 것은 평상시에 하나님 앞에서 작은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았구나 하면서 회개가 되었어요. 보이차가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이고 도구라고 생각했어요. 보이차를 생산하고 관리하고 사업하는 일에 있어서 청지기로서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2018년과 2019년에 중국에서 많은 한국선교사가 추방되었는데 그때 저희 가게에도 공안들이 여러 명 와서 조사하고 갔습니다. 근데 그때마다 이분들이 “여기는 제대로 하네”라고 하면서 가셨어요.
사회자: 코로나19 팬데믹 때 봉쇄 상황에서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유 선교사: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자들이 다 직원이었는데요. 한날에 이들을 다 불러서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개방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지금 우리의 재정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이 재정을 가지고 한 3개월을 버틸 수 있지만 이후에는 어렵다 그러니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그때 모두가 월급을 삭감하게 되고 어떤 친구는 월급봉투 채 가지고 와서 “보이마루가 어려운데 우리 이거 안 받아도 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이들과 어려움을 같이했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이럴 때는 고정비용을 줄여야 된다”고 조언하셨어요. 고정비용은 첫 번째가 인건비를 줄이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자들과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마음으로 같이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월급을 밀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마스크는 복음이다”는 말씀이 있던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유 선교사: 코로나19 팬데믹이 2020년 1월에 시작됐어요. 둘째 아들이 한국에 비자 문제로 나와 있었는데 그때 대한항공의 마지막 직항 비행기를 이용해서 마스크 2만 장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것들을 한인들에게 다 나눠주고 현지 병원과 공안국 등에도 나눠주고 우리 제자들 가정과 고향에도 다 나눠주고 또 남은 것들을 지역 아파트에도 나눠주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제자들이 너무 신이 나고 성령충만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스크는 곧 복음이다”라고 했어요.
사회자: 최근에 큰 어려움을 당하셨다고요. 그 이야기도 해 주세요
유 선교사: 갑작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히말라야 티베트에 미전도종족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 2022년 4월에 티베트를 방문했는데 이 일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며칠 정리하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제자들이 동요하지 않고 이들을 든든히 세울 수 있을까 하는 기도가 가장 큰 기도였어요.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3-4년전부터 엄청난 기도를 하게 하셨는데요. 그때부터 제가 없어도 제자들이 BAM선교 사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올해 증평군 도안면에 티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티는 차의 의미도 있으나 티베트에 대한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선교의 출발점이라는 마음을 제가 좀 가지려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회자: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좋다면서요.
유 선교사: 어느 한의사는 10년 넘은 것은 모두 약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처럼 신앙이 깊이가 있으면 그때 예수 향기가 나타나는 것처럼 오래됨으로써 깊은 향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그런 차들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건강에 유익을 줍니다.
사회자: 선교사님에게 힘을 주셨던 성경 말씀을 나눠주셨으면 좋겠어요.
유 선교사: 출애굽기 3장 18절의 말씀이 사실 저를 지탱해준 말씀이에요. 거기에 보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이게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했던 이야기입니다. 제 마음에 와닿은 것은 희생제사, 곧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곧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있는 것인데요. 이 감격이 오늘날까지 저를 지탱하게 한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 그리도만이 제 삶의 주인인 것을 고백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주님의 주 되심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행하고 역사하시는 은혜를 우리가 목격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이런 얘기 자주 합니다.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내자!” 그것이 곧 예배자입니다.
♣유재철 | 보이마루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