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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  통권 256호  필자 : 조동욱  |  조회 : 2599   프린트   이메일 
[특집] - 모든 미전도 방언종족을 주께로!
THN (Trans Himalaya Network) - 돌아보는 10년, 내다보는 10년

【편집자 주】 이번 호는 지난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 진새골 사랑의 집(경기도 광주)에서 ‘2023 THN KOREA GLOBAL CONFERENCE’가 ‘모든 미전도 방언종족을 주께로!’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귀한 내용이 많았지만 여러 사정상 몇 편의 글만 특집 글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번 특집을 통해 ‘THN 사역과 사역자와 동역자들’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본웹진에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필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어둠에서 빛으로 바뀌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며 묶였다가 풀려나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며, 또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이 가능케 하신 기적의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히말라야선교이다.

1900년대가 기울어가고 2000년, New millennium이 다가올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쭈었다. 하나님, New millennium이라는 새로운 세대로 접어드는데 제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 중에 하나님은 내게 지도 한 장을 보여주셨다. 큰 히말라야산맥의 지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히말라야산맥은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다시 여쭈었다. 왜 제게 이 깜깜한 히말라야 지도를 보여주십니까? 성령님은 어두운 히말라야산맥을 보면 나의 마음이 답답하다. 네가 이 어두운 히말라야를 빛으로 덮으라 하셨다.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제가 어떻게 이 크고, 어두운 엄청난 땅을 빛으로 덮을 수 있나요? 저는 못합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 일을 혼자 할 수 없다. 여럿이 함께하라. 아니 어떻게요? 성령님은 히말라야산맥에 선교의 길을 만들어라. 선교의 통로를 만들면 사람들이 그 통로를 따라 모여들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환상 중에 이 지도를 받은 것은 서기 2000년, 히말라야 산자락인 북인도 실리구리(Siliguri)였다. 

그 환상을 따라, 서기 2001년 10월 히말라야산맥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쳐 놓고 그 위에 선을 그었다. 히말라야산맥 남쪽에 있는 북인도 실리구리와 히말라야 북쪽 티베트의 수도 라싸(Lhasa)를 아래위로 선을 그었다. 그 사이에는 실리구리-시킴(Sikkim)의 갱톡(Gangtok)-부탄의 팀부(Thimbu)를 거쳐 티베트의 야동(Yadong)과 싱가체(Thingatche) 그리고 라싸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히말라야 아래쪽 인도의 실리구리를 중심으로 왼쪽의 다람살라(Dharamsala)에서 시작하여-심라(Simla)-데라둔(Dehradun)-갠지스강가의 바라나시(Varanasi)와 실리구리-구와하티(Guwahati)-나갈랜드(Nagaland) 그리고 미안먀로 이어지는 선교의 선을 그었다. 그리고 히말라야산맥 북쪽에는 티베트의 라싸를 중심으로 동쪽에서 동티베트 리장(丽江)과 옌진(盐津)-라싸-시가체(르카쩌, 日喀则)-그리고 카일라스(Kailas)산을 지나 라다크(Ladakh)와 파미르고원에 이르는 주요 도시를 연결했다. 이때 주요 거점 도시를 ‘선교축(宣敎軸)’이라 불렀으며 선교축을 서로 연결하여 ‘선교축선(宣敎軸線)’이라 불렀다. 이 선교축선을 따라 인도의 열방신학대학의 졸업생들을 전도자나 교회 개척자로 파송했다. 우리는 이 선교전략을 ‘히말라야 하이웨이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프로젝트 선교를 펼쳐가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다른 환상을 더 보여주셨다. 이전에 보여주셨던 깜깜하고 어두웠던 히말라야산맥의 산등성이에 환한 불빛이 반짝반짝 하나둘씩 밝혀지는 환상이었다. 그 불빛을 따라 많은 군인이 산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는 환상이었다. 그 환상을 본 날은 2013년 히말라야선교를 위해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인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함께 모인 첫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기뻐하신다. 히말라야선교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이었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교단이 서로 달랐고 소속된 선교단체도 달랐으며 선교 경험도 달랐다. 히말라야선교라는 하나의 꿈만 바라보는 선교사들이었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선교 퍼즐 조각을 가진 이들이 히말라야선교라는 큰 그림을 따라 그 퍼즐 조각들을 맞추어 나갔다. 이처럼 지난 10년의 THN은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전환의 선교라 할 수 있다. 


크기와 색갈이 다른 선교 퍼즐 조각을 가지고 모인 THN은 세 가지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다. ‘성령. 방언종족 그리고 협력’ 세 가지이다. 이 핵심 가치는 셋을 하나로 묶어 놓은 조합이 아니라 서로 상호 작용하는 융합적 운동으로 나타났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히말라야의 어둔 세력들에 묶여 있는 미전도 방언종족들을 복음으로 풀어 하나님 앞에 세우라는 힘겨운 일을 명령하셨다. 이 일은 크고 힘겨운 것인지라 우리는 성령을 더 많이 의지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함을 알았기에 서로 연합하며 서로를 도왔다. 

성령. 방언종족 그리고 협력이라는 핵심가치의 융합적 운동은 THN을 이상한 특성을 가진 이상한 단체로 변화시켰다. THN은 첫째 무법단체이다. 둘째로 THN은 권세단체이다. 셋째로 THN은 성령단체이다. 왜 THN이 무법단체이냐? THN에는 정해진 회칙이 없다. 회칙이 없으니 회원들의 참여나 탈퇴가 자유롭다. 정해진 리더도 없다. 누군가 잘못을 해도 벌칙이 가할 규정도 없으며 재정 부담에 대한 의무도 없다. 구성원도 모두 제각각이다. 교단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고 성격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이는 열정이 특심하여 빨리 혼자 가자는 이, 높은 히말라야를 넘으려면 위험하니 손잡고 함께 가자는 이, 사탄의 세력을 묶어야 선교가 가능하니 하나님만 바라보자는 이 등 다양한 선교사가 모였으니 얼마나 마찰이 많으며 요란할까? 무법천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THN은 권세가 있는 단체이다. 무법단체이면 당연히 소란, 복잡, 혼돈스러워야 할 터인데 염려하는 일들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모일 때마다 즐겁고 헤어지면 서로를 그리워한다. 깊은 산골짜기나 홀로 외딴 곳에서 선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탄과 싸우고 귀신들을 냅다 내던지기도 한다. THN은 섬기는 국가나 지역의 경계가 다른 데도 필요하면 서로 기도로 돕고 찾아가 실제 사역을 돕기도 한다. THN은 사역 경계가 넓어 국제적인 모임도 잦다. 모일 때마다 필요한 재정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서로 알지 못한다. 이상한 권세를 지닌 사람들이다. 신기하고 놀라운 단체이다. 한 마디로 말해 알 수 없는 권세를 지닌 단체이다.

뭔가 이상하다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THN은 성령이 이끄시는 단체이다. THN 안에는 법규도 없고 회장도 없고 회비도 없지만 그 안에는 성령님이 계신다. THN은 성령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출발했다. 성령님이 가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성령이 원하시는 전략을 따르고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한다. 정해진 회칙이 없으니 흐물흐물해 보이고 무력해 보이는데 사실 THN은 단단하다. 힘이 넘친다. 권세가 있다. 왜냐하면 성령의 감동을 따라 나아가기 때문이다. THN은 성령이 떠나면 그냥 무너지는 단체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붙들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THN은 지지속적으로 성령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THN의 지난 10년을 뒤돌아 보며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신 결과를 나누며 그분을 찬양한다. 성령님을 앞세운 THH의 지난 10년은 연속적인 돌파 선교의 연속이었다. 성령님은 지역의 경계와 국경이라는 지리적 장벽을 돌파하게 하셨다. THN은 동티베트와 동북 인도를 중심으로 시작하였다. 점차적으로 부탄과 네팔, 서북 인도와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 그리고 한국의 서울에 각각 독립된 THN 공동체를 세우게 하셨다. 크고 넓은 히말라야산맥 전체를 관통하는 선교 통로를 만드는 일은 몇몇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성령님께서 뚫어 주셨다. 

두 번째로 성령님은 인종적 경계를 돌파하게 하셨다. 히말라야산맥에는 수많은 미전도 방언종족이 살고 있다. THN은 아직 알려지지 않거나 숨겨진 방언종족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THN은 동티베트와 부탄의 몽골리안종족, 인도의 얼굴색이 하얀 아리안과 얼굴이 새까만 드라비안종족, 네팔의 아리안종족과 몽골리안이 혼합된 종족 그리고 파미르고원의 타직(Tajik)종족과 두샨베의 페르시아인과 타직인이 혼합된 종족을 섬기고 있다. 성령님은 다양한 종족을 섬기는 기회를 안겨 주셨다. 이들을 복음 앞에 세울 부담을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린다. 

성령님은 또한 종교의 경계를 돌파하게 하셨다. THN은 동티베트의 티베트 라마불교와 토속 종교인 뵌교(Bon), 히말라야 샤마니즘, 인도와 네팔의 강력한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네팔 토속 종교인 키란티(Kiranti)와 북인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의 이슬람교와 자이나교(Jainism) 등 여러 종교권을 복음으로 관통하는 기적 같은 일을 THN에 허락하셨다. 

이런 돌파 선교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쉽지 않은 일들을 겪었고 그것을 이겨 내야만 했다. 히말라야선교는 힘에 겹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설산을 오르내리며 거주민의 마음과 생각을 짓누르고 있는 악한 세력들을 주님의 능력으로 대항해야 했으며, 수천 년 동안 우상을 경배하는 골짜기를 찾아가 그리스도 예수가 왕이 되어 다스리실 것이라며 주님의 왕권을 선포하는 일들을 해 오고 있다. 소수의 방언종족들을 찾아가 사랑으로 품고 복음 앞에 세우고 있다. 이 일들을 위해 우리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떤 때는 길을 잃기도 했으며 끼니를 굶으며 피를 흘리는 사고도 있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저항도 받았다. 우리는 한 형제의 목숨을 주님께 내놓아야 했었다. 해발 5000미터를 오르던 형제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숨진 그 형제의 식어져 가는 몸을 무릎에 안고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산골에서 기도로 온밤을 지샌 형제가 우리 가운데 있다. 숨진 그 형제와 그 팀을 산에 올려 보내며 우리는 순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재촉한 이가 여기 서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그의 아버지와 그가 사랑하던 아내와 아이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 히말라야선교는 쉽지 않다.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께 이 일들을 맡기며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제 지난 날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10년간 걸어야 할 길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앞으로 THN이 할 일은 히말라야의 세워 놓은 선교축선을 따라 각 나라와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그 땅의 거민들이 구원받은 즐거움으로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영혼 추수에 집중할 것이다.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만들어 놓은 선교축선을 다시 오실 주님 예수를 맞이하는 왕의 대로로 만드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영혼 추수 사역은 종말론적인 우리의 과업이다. 이 시대는 도끼가 나무뿌리 위에 놓여 있는 긴박한 시대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들이 일어나 주를 환영하는 영적 추수의 열매를 기다리고 계신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잘라 불에 던진다. 어두운 사탄의 세력에 묶인 이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풀어주고 거짓 철학과 종교의 덫에 걸려 있는 이들에게 예수의 피와 부활의 권세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 ‘추수꾼의 노래’와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이들’이 어울려 오실 주님을 함께 찬양하는 것이다.  

THN의 꿈은 단순하다. 히말라야선교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히말라야선교가 어렵다 하여 외면할 때 우리는 히말라야의 잊힌 영혼들을 주님 앞에 세우는 일을 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히말라야선교의 전문성을 지닌 THN은 결코 히말라야에 함몰되지는 않아야 한다. 히말라야선교의 전문성은 고집하되 그것을 뛰어넘어 히말라야선교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과 세계선교의 완성을 위해 기여하여야 한다. 성령께서 이미 THN에게 허락하셨던 크고 담대한 선교 비전, 지리와 종족과 종교의 장벽을 관통한 선교적 경험 그리고 하나가 되기 힘들다는 협력선교의 경험을 다른 선교단체들과 나눌 것이다. 이러한 선교적 자산을 다른 선교단체와 교회 그리고 다가오는 젊은 세대에게 나누며 서로 협력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스라엘 회복을 위해 선교하는 이들이 있다.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실크로드선교.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페르시아 윈도우 선교단체, 중화권을 통한 세계선교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2000주년을 맞이하여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함께하여 예수를 축제하는 JC2033’ 등 세계적인 선교단체와 함께 보조를 맞출 것이다.

히말라야선교는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성령님을 앞세우고 성령 안에서 서로를 낮추며 겸손하게 그분을 따라가면 히말라야선교 가능하다. 세계선교의 완성이 가능하다. 성경은 “내가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세우리라” 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언제일까? 지리적으로 험하고 영적으로 깜깜한 히말라야에 숨겨진 히말라야의 방언종족들이 모두 일어나 영적 대로를 따라 주님을 맞이할 그때가 주님이 오실 때라고 믿는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나의 사랑하는 동지들과 함께 히말라야선교를 붙들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함께하길 원한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아멘!!





♣사진 출처 | (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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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욱 | 히말라야 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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