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평전 현대 중국의 초상 마오쩌둥의 모든 것 이창호 저 | 북그루 | 2023년 12월 26일 발행 | 339쪽 | 정가 22,000원
마오쩌둥은 중국과 세계 역사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서, 특히 그의 리더십과 공산주의 이념은 현대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중국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오쩌둥의 업적, 철학,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마오쩌둥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지금의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 마오쩌둥의 업적은 지금의 중국을 만드는 데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논란과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주석이 되어 장기 통치를 하였다. 중국 내에서는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고통을 준 지도자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우고 국가 주석 및 혁명 군사위원회 주석으로 뽑혔다. 또한 마오이즘의 창시자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집권 이후 독선과 권력욕에 의한 실책들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해 중국의 발전을 심각하게 정체시켰으며, 자신만의 일방적 이념으로 중국 사회를 개조하려고 한 독재자로 비판을 받을 때가 많다. 또한 중국의 문화재를 파괴하고 전통문화를 뿌리 뽑은 폭력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인 천안문 광장에 걸린 대형 초상화의 얼굴 모델로도 유명하다. 마오쩌둥은 문화 대혁명을 주도하여 사회, 경제, 문화에 걸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비록 중국 역사상 가장 혼돈스러운 시기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문화 대혁명 후에도 중국을 사회주의로 개혁하려는 그의 정책과 개혁 시도는 중국 사회와 경제에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중국의 성장과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평전을 통해 독자들은 마오쩌둥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복잡한 마오쩌둥의 철학과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오쩌둥의 위대한 삶과 그가 이끌어간 중국의 역사를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교훈과 영감을 얻기를 기대한다. (머리말 정리)
미국이 길러낸 중국의 엘리트들 미국의 중국 유학생들, 1872~1931 장윤전 저 | 이화승 역 | 글항아리 | 2023년 08월 28일 발행 | 544쪽 | 정가 30,000원
1872년 룽훙(容宏)이 최초로 어린 유학생들을 데리고 미국에 간 것을 시작으로 중국의 미국 유학 역사의 막이 올랐다. 당시 증국번(曾國藩·이홍장(李鴻章))의 상소문에 따르면 “오랑캐의 기술을 익혀 오랑캐를 제압한다(師夷之長技以制夷)”는 명제 아래 “총명한 아이들을 선발해 서양 여러 나라에 보내어 군정·선박·수학·제조 등 학문을 배우게 한다. 약 10여 년의 교육을 마치고 서양인의 장점을 중국에 접목하여 익히면 강해질 것이다”라는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따라서 중국을 강국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이루는 순간 중단될 계책이기도 했다. 맨 처음 중국 정부가 미국에 유학생을 보내는 정책을 수립한 목적은 “초재진육(楚材晉育: 춘추전국시대 낙후된 초나라 인재를 진나라에서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화법〉이 활성화하던 1882년부터 1943년까지 60년 동안 중국 유학생은 감히 미국에 남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법안이 폐지된 후, 특히 1965년 매년 2만 명의 이민이 허용되면서부터 비로소 유학생에게 ‘배움이 뛰어나면 남을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해졌다. 결국 초나라 인재를 진나라에서 교육시키는 ‘초재진육’은 초나라 인재를 진나라에서 등용하는 ‘초재진용(楚材晉用)’의 수단이 되었고, 인재 유출 현상의 단초를 제공했다.
지나친 ‘서양화’는 늘 골칫거리였다. 룽훙이 데리고 간 120명의 어린 유학생은 1872년부터 1875년까지 4차례에 걸쳐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공부했다. 청나라 정부는 이들에게 15년간 투자하여 중등 교육부터 기초를 다진 뒤 군대·선박 분야의 인재로 육성할 계획이었으나 1881년 여름, 10년도 못 채우고 모든 유학생을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그 까닭은 이들이 지나치게 서양화되어 학업을 완수해도 중국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서양화는 곧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당시의 유학이 사회적 투자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학생들이 과도하게 서양화되었다는 지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즉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와 사회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므로 사회적 자본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20년대 학계에서도 유학생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수신청(舒新城)의 《근대중국유학사》는 시간적으로 룽훙의 어린 유학생부터 1920년대 중기까지, 공간적으로 일본부터 유럽까지 유학의 전체 과정(국비, 자비, 경관과 그 이후 칭화대학 유학생 및 기독교 학교 유학생)을 조명했다. 수신청의 비판은 정부의 실책, 즉 청조 말부터 일관되지 않은 유학 정책과 통일된 집행기구의 부재, 느슨한 선발 시험 등에 집중되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자비 유학생에 대한 자격 제한이 지나치게 느슨해 기본 테스트조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정부가 사회 자원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출세만 바라는 허영심”을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칭화대학 졸업생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었으나 돌아온 성과가 너무 적어 ‘경제적’으로도 실패했다고 보았다. 칭화대학 출신 유학생들은 국내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아 ‘중국인도 서양인도 아닌(不中不西)’ 존재가 많았다. 수신청은 “유학 교육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면서도 스스로 이 비판이 “지나치게 격렬”하여 “유학생들이 이룬 공헌을 지워버리는” 면도 있다고 한 반면, 왕이쥐의 비판은 수신청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그는 근대 중국의 유학 정책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방면에서 악몽이자 비극이었다고 했다.
왕이쥐의 연구는 유학생을 겨냥한 잘 조사 정리된 기소장과 같았다. 그는 몇몇 특별한 인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학생에 대해 난감함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다. 안하무인으로 교만하며, 지나치게 서양화되어 중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서양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갖고 있으며, 지식은 실질적이지 못해서 중국 사회의 요구에 들어맞지 않았고, 쉽게 출세하려는 야심으로 오직 개인의 부귀영화를 추구할 뿐 사회적으로 갖춰야 할 도덕의식과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학생들이 야구를 하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교회를 다니는 등 지나치게 미국 문화에 젖어 들게 방치하여 감독 교사를 무시하는 일은 둘째 치고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초창기 유학생들은 학업 성적도 좋지 않아서 본국으로 소환될 무렵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단 2명뿐이고, 10명 미만이 갓 대학에 입학한 상태며 나머지는 아직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중이었다고 했다. 1854~1954년까지 100년 동안 대략 미국에서 유학한 중국인 학생은 2만2000명이었는데 50~60퍼센트만이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했다.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은 타이완 학자 쑤윈펑(蘇雲峰)이 1996년에 출간한 《칭화학당에서 칭화대학까지 1911~1929》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그는 1981년 출간한 《칭화대학사고(淸華大學史稿)》가 칭화대학을 ‘노예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폄하했다면서 재조명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초기에 칭화대학은 외교부 관할이었는데 미국 공사의 간섭을 받는 등 국격 손상에 해당하는 일이 있었으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귀국 유학생 출신이 교육부보다 외교부에는 더 많아서 안정적인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적어도 그들은 현대 지식인이었고 이념적으로 미국과 근접하여 비교적 소통이 원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칭화대학은 미국 문화와 사회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영어 교육을 중시하고 중국어 교육을 소홀히 했으나 얼마 후 이를 개진하여 융합을 꾀했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칭화대학이 충분한 재원을 바탕으로 미국식 하드웨어를 갖추고 교수와 엘리트 학생들에게 건강하고 활발한 캠퍼스 생활을 제공했다. 졸업생들은 미국 여러 대학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으며 차별받는 환경에서도 강렬한 애국심으로 ‘변방의 지식인(周邊知識人)’으로서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개명한 입장에서 중국 문화와 사회에 합리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창조적인 공헌을 발휘했음을 통계 수치로 소개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유학한 중국 학생에 관한 연구에서 수신청·왕이쥐의 비판을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번안사학자들처럼 ‘애국-매판’ 또는 ‘전통-현대성’이라는 이원대립의 사고 틀에 갇히고 만다. 우리는 반드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즉 21세기의 시각으로 21세기의 문제에 대해 질문해야 하며 21세기의 언어와 개념으로 분석해야 한다.
아시아 1945-1990 서구의 번영 아래 전쟁과 폭력으로 물든 폴 토머스 체임벌린 저 | 김남섭 역 | 이데아 | 2023년 10월 23일 발행 | 968쪽 | 정가 55,000원
이 책은 일본 제국의 패망 이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중국 공산당의 내전(중국 혁명), 미·소 한반도 분할 점령의 비극과 학살, 그리고 한국 전쟁으로 시작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책은 “동쪽으로는 만주 평원, 남쪽으로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우거진 열대우림, 그리고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및 중동의 건조한 고원에 이르기까지” “냉전 시대 가장 치명적인 군사 현장에 관한 역사서다.”(5쪽)
1945년부터 1990년까지, 탈식민화 과정을 겪는 포스트식민지국가(권력)를 둘러싸고 초강대국들, 새로 등장한 통치 세력들, 야심찬 혁명가들이 한데 얽혀 냉전의 또 다른 전선을 형성했다. 새롭게 형성된 이 아시아의 전선을 따라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45년 동안 전체 대외 원조의 80%를 쏟아 부었으며, 미군 전사자의 99.9%, 소련군 전사자의 95%를 희생시켰다. 민간인도 2,000만 명이 희생되었는데 이는 매일 약 1,2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망했음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대체로 대규모 전쟁을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장기 평화’의 냉전 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879쪽)라는 서구의 역사적 시선이 아시아에 관한 한 완전히 잘못된 평가임을 책은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책의 저자 체임벌린은 ‘장기 평화’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만 국한되었을 뿐 동일한 시기 아시아에서는 내전, 해방전쟁, 초강대국들의 대리전 등으로 끔찍한 ‘열전’이 지속되었음을 방대한 연구를 통해 증명한다.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Cold War International Project)’와 ‘국가안보 문서보관소(National Security Archive)’가 기밀 해제한 미국, 소련 및 중국의 문서, CIA 문서를 비롯해 비정부기구와 인권단체의 자료, 구술, 목격담, 언론인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역사적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미국도서관저널 또한 이 책을 두고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냉전이 결코 차갑지 않았으며, 미국과 소련 사이의 대립만도 아니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역사학자들과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여러 생각을 던져주는 의미심장한 저작”라고 평가하며 추천한다.
아프리카 빨간 지붕 병원 나이지리아로 간 외과 의사 이야기 이재혁 저 | 좋은씨앗 | 2023년 10월 05일 발행 | 280쪽 | 정가 16,000원
이재혁 선교사는 1999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의료원 전문의 수료 후 안양 샘병원 외과과장으로 재직했다. SIM과 한국누가회 파송 선교사로 2010년부터 나이지리아 조스에 거주 중이다. 빙햄의과대학병원에서 교육, 치료, 경영에 참여하며 현지인들의 핵심 신앙 공동체를 통한 지속가능한 선교병원을 꿈꾸고 있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무지의 진흙탕에서 부딪히는 이슬람과 기독교, 그 위를 덮는 사회의 부조리 속에 길을 잃기도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나이지리아를 응원한다. 병원 밖으로는 정수기 보급 프로젝트를 통하여 현지 선교사와 고아원의 수인성 질환을 예방하고 난민캠프 지원 사역을 병행하며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을 돕고 있다. 아내 손은영 선교사와 두 아들 산지, 산하가 함께하고 있다.
소중한 자녀가 학교에 가다가 총에 맞아 죽고, 부모가 예배를 드리다가 폭탄 테러로 죽고, 친구가 길을 가다가 맞아 죽었는데도,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치안을 책임지는 군인과 경찰이 오히려 나쁜 짓을 하는데도 주님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참 어려운 일이다. 이슬람과 기독교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고난과 고통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슬람은 성전(聖戰)을 주장하며 폭력과 테러를 부추기는 논리를 내세우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해할 수 없는 박해와 고통을 당할 때, ‘더 큰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기독교의 진정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스의 많은 크리스천들은 전쟁터 같은 일상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핍박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길 기도한다. 〈3장. 더 큰 사랑을 선택하라〉에서
대화로 푸는 전도서 가장 완벽한 인생의 결론 강신욱 저 | 규장 | 2023년 10월 25일 발행 | 208쪽 | 정가 13,000원
전도서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자 했던 솔로몬이 자신의 인생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말한다. 세상을 다 뒤져도 다른 결론은 없고 새로운 진리를 찾아 헤맸던 시간과 수고가 모두 헛수고라고 솔로몬은 겸손하게 고백한다. 전도서가 말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진리는 하나님 경외함이다! 그것을 놓쳤을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우매함으로 그 복음을 거부하지 말라고 한다. 인생의 참 목적과 의미를 찾아 전도서를 새로운 관점으로 정독해보기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 은퇴 매뉴얼 한국교회 신뢰회복 프로젝트 곽은진·김상덕·신동식·장희종·정병오·조성돈·최현범 공저 | 기윤실 | 2023년 11월 17일 발행 | 112쪽 | 정가 10,000원
고령화 사회가 되고 교인 수 감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준비되지 않은 은퇴 문제가 교회와 목회자에게 재앙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베이비붐 세대 목회자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내에 이 문제가 한국교회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목회자 은퇴 관련 논의가 시작되면서 목회자 은퇴 문제를 은퇴가 임박해서 생각하면 너무 늦고 목회 초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교회, 노회 차원에서 각 분야별로 은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목회자 은퇴 매뉴얼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목회자 은퇴 이후의 생활비와 관련해서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목회자의 은퇴 시기와 평균 수명이 거의 일치했고 교회가 계속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령화 사회가 되고 교인 수 감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준비되지 않은 은퇴 문제가 교회와 목회자에게 재앙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베이비붐 세대 목회자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내에 이 문제가 한국 교회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기윤실에서는 2022년 목회자 은퇴와 관련하여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목회자 은퇴와 관련하여 물밑에서만 진행되던 문제를 공론화하자 이와 관련한 고민을 하고 있던 교회와 목회자들 가운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꺼내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회들 가운데도 개별적으로 하고 있던 논의를 공식적으로 꺼내 놓고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목회자 은퇴 관련 논의가 시작되면서 목회자 은퇴 문제를 은퇴가 임박해서 생각하면 너무 늦고 목회 초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교회, 노회 차원에서 각 분야별로 은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목회자 은퇴 매뉴얼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