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선교 산물이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복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기 위해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야 할 ‘세상’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세상에서 선교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를 세우셨다. 즉, 선교는 교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세워졌다.
최근 지인의 권유로 하나님의 선교 관계, 이른바 선교적 트라이앵글과 선교적 성경읽기의 중요성을 밝히는 책, 《다니엘서를 선교적으로 읽으면 깊고 은밀한 일이 보인다》(저자 손창남)를 읽었다. 저자는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 세상이라는 삼중 구조로 선교 개념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면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선교 사례로 들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부르신 곳에서 세상을 향해 복이 돼야 한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상에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세상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선교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예배란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선교를 위한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던 민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이 선교라는 점에서 선교를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선교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선교적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선교적 존재로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분리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 더 나아가 복음으로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은 종국적으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는 역군이 돼 ‘일일신 우일신(日日新 又日新)’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선교적 삼중 구조에 따른 성경읽기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결코 대립관계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믿음이 없으면 순종을 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 된다.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교회,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무의미해진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행동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믿음에서 순종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으로 거듭난 자들은 주어진 삶(일터) 속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면 삶이 변화되고 사회적 책임도 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성취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지를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보여줄 때 맺을 수 있는 열매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선교 활동을 보여준다. 목적 있는 창조 행위로부터 전 창조 세계의 구속을 통한 우주적 선교의 완성이 그것이다. 교회에는 선교 사명이 있다.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며 구약의 예언대로 민족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교, 즉 인간과 악이 가져온 파멸로부터 창조 세계를 구속하는 일이 존재한다. 창세기 11장에 나타난 열국의 분열로부터 요한계시록 21∼22장에 나오는 열국의 치유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온통 채우고 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선교다. 따라서 우리의 선교 활동은 하나님의 거대한 역사적 선교에 겸손히 동참하는 것이다. 바울의 표현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다.
따라서 우리는 선교의 초점을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세운 선교 계획이나 선교 의제, 일정, 목표, 전략은 바뀔 수밖에 없다. 인생의 목적은 전 창조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세상에 맞추기 위해 애쓰지만 하나님의 선교는 세상을 복음의 형태에 맞도록 변형시킨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를 위해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묻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총체적인 십자가 선교신학을 배워야 한다. 만일 십자가에 대한 편협한 개인주의적 견해를 고집하며 십자가를 오직 개인적인 천국행 수단으로만 간주한다면 십자가가 전 창조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성경의 여러 가닥을 뒤지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추적하면 하나님 선교에는 많은 차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차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귀결된다. 성경적 구속 개념은 개인적 죄 문제와 용서 문제를 초월한다. 예수님이 대속 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자 진리다. 이것은 전도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십자가 신학에는 개인 구원 이상이 있다. 복음은 창조 세계 전체를 위한 굿뉴스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의 만민은 헬라어로 모든 피조물을 뜻한다. 우리는 개인 구원에 관한 이 보배로운 복음을 붙잡되 이를 성경의 총체적 구속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피조물 전체를 위해 구속을 성취하셨고 마침내 완성하셨다. 기독교의 모든 선교는 십자가에서 흘러나온다. 십자가는 선교의 원천이며 권능이다.
500여 년 전 종교개혁도 하나님의 선교 산물인 성경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개혁자들은 성경적 설교를 강조했을 뿐 아니라 교황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권위 아래 자신을 두었다. 최종 권위를 성경 그 자체에 둔 것이다. 개혁자들에게 성경의 번역과 해석, 강해, 교육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의 실천이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에도 교회,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가르침 아래에 개혁돼야 한다. 우리의 예배도 변해야 한다. 죄로 인해 회개의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 구원으로 인해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우리 예배의 일부가 돼야 한다. 개혁자들은 회중예배뿐 아니라 말하고 행하고 노래하고 듣는 것을 알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믿음의 고백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찬양은 성경의 진리에 의해 검증돼야 한다. 개혁자들은 로마서 1장 5절, 로마서 2장 13절, 로마서 16장 20절 등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순종이라는 행위에 초점과 목적을 두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반응할 때, 순수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고 순종할 때 세상의 기쁨이 될 것이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그의 백성들을 권력과 성공, 탐욕의 우상에서 돌이키라고 요청하신다. 하나님은 겸손과 정직, 단순함으로 살아가도록 요구하신다. 그런 점에서 로잔의 정신인 HIS, 즉 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돼야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적, 공적 차원의 정직, 삶과 사역 모든 면에서의 정직을 요청하고 있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경적 윤리 없는 선교, 교회, 그리스도인은 있을 수 없다.
내년 9월 말 5000여 명의 세계교회 리더십이 한국에 모일 예정이다. 하나님의 선교를 바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성경읽기가 일상화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우리는 세계 선교에 헌신한다. 세계 선교가 하나님과 성경, 교회와 인류 역사, 그리고 종국적인 미래를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화해를 이루신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 것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케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해 죄와 악으로 파괴된 피조물을 죄나 저주가 더 이상 없는 새로운 피조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은 메시아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열방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심판 아래 흩어진 모든 열방들과 방언들과 족속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구세주를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공의와 평화의 영원한 통치를 위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은 죽음과 부패와 폭력의 통치를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세상 나라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며, 그분의 영원한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 케이프타운 서약 1부 10장의 서문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모든 교회, 그리스도인을 위함이다. 전문 선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교회의 존재, 교회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고 참여하는 것이 돼야 한다.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고 피조된 세계를 돌보는 일을 혼자서 다할 수는 없다. 하나님도 우리의 제약을 아신다. 그래서 교회를 만드신 것이다. 각자 은사도 다르고 소명도 다르지만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 밖을 벗어나는 순간 그리스도인은 선교지로 가는 것이다. 모든 교회 성도들의 선교 영역은 삶의 전 영역이다. “중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 되심을 결단하자.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리신 | 중국인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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