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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9.3  통권 253호  필자 : 이명석  |  조회 : 2838   프린트   이메일 
[특집] -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를 통해 세계선교를 읽다(2)
새로운 선교의 최전방: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책임

[편집자 주] 이번 호도 지난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강원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Ⅷ)에서 강연한 주제 강의를 특집으로 다루려고 한다.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한국세계선교협의회와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1. 들어가는 말: 문제 제기
지난 2020년 2월부터 최근까지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바로 1세기 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스페인독감의 생태적인 도전을 새로운 형태로 또 한번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류는 기후와 생태환경의 변화로 인한 결과가 이제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과 생활양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절감하였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축적한 환경과 생태계의 혼란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팬데믹으로 나타나면서 인류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증유의 현상을 겪으면서 한국교회 안에서도 창조세계와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사명에 더욱 관심이 늘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반에 대한 교회의 선교적 사명과 책임의식을 고취하는 의미 있는 진전이 여러 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선교포럼과 세계선교학회들의 대회 주제들에서도 그 관심의 정도가 드러난다.1) 이제 전 세계교회는 미래세대의 몫까지 염두에 두는 생태정의의 실현을 통하여 창조세계 전반을 포괄하는 생명선교로 넓혀 가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2023년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영역을 새로운 선교의 최전방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선교전략을 수립하고자 하는 것은 선교적으로 크게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하겠다.

이번 발표에서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한다. 환경과 생태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지금의 환경과 생태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나? 환경과 생태계 보전에 대해서 어떤 대응들이 있었나? 지금까지 창조세계의 보전과 생태적 책임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환경과 생태는 선교의 새로운 최전방 영역인가?

2. 환경과 생태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역사적으로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가진 인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강력한 외력에 의한 인위적인 조작이 아니라 종종 의도치 않은 조그만 사건에서 비롯된 경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살충제의 일종인 DDT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린 이는 레이철 카슨(1907~1964)이다. 그가 쓴 《침묵의 봄》은 당시 수백만 명이 읽었으며 ‘환경운동’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서 오르내리게 된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침묵의 봄》이 가져온 여파는 미소 냉전의 시기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부 내 환경보호국이 신설되게 하였고, 유해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하는 조처로 이어졌다. 1998년 4월 타임지는 카슨을 20세기를 빛낸 100인 중의 한 명으로 선정했으며 그녀가 평생 투쟁했던 DDT를 20세기 최악의 아이디어 100가지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하지만 《침묵의 봄》으로 인해 막대한 이윤의 근원을 잃게 된 거대한 화학회사들과의 힘겨운 싸움이 이어졌다. 그 연유로 지금도 여전히 살충제의 위험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 일반인들에게 환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생태라는 말이 일상에서 통용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것은 먼저 카슨이 심층연구를 통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의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거대 살충제 회사에 고용된 전문가들을 거침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가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글을 썼다는 점이다. 카슨은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썼다고 한다. 한 시대의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에는 어려운 과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징한 소통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예이다.

책 첫머리에 있는 ‘내일을 위한 우화’에는 “아침이면 새들의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지고는 했는데, 이제는 기묘한 침묵만이 감돈다”라고 적고 있다. 살충제 살포로 인해 매일 아침 듣던 새들의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새가 죽은 것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도 닥쳐올 운명으로 느꼈다. 하나의 생물 종이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로 지구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마치 핵폭발이 가져올 전 생태계 멸종의 서막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는 마치 한 동네에서 기르던 애완견이 모두 집단으로 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와 비슷한 경험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환경운동이나 생태학적 표현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 과학적 언어로 쓰여졌으며 전문적인 식견을 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 보니 대중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에는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세계교회연합(WCC)과 같은 곳에서 유래한 환경과 생태 관련 용어들은 서양식 사고방식에서 발전된 표현들이 많아서 일반 대중이나 평신도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필자의 이번 발표도 선교와 생태와의 관계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알기 쉽게 다루고자 한다. 또한 선교현장에서 창조세계를 보호하는 선교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실제적인 예를 들어 제언을 하고자 한다.




3 지금의 환경과 생태의 위기는 어디서 왔나?2)
기독교 역사학자인 린 화이트(Lynn White Jr.)가 1967년 3월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유명한 논문 ‘우리의 생태위기에 대한 역사적 근거들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생태적 관심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킨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그의 글에서 중세 시대부터 유래한 ‘서구방식의 기독교’와 과학기술이 1960년대 생태위기에 책임이 있다고 파격적으로 주장했다.3)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가 지금의 생태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는 그의 주장으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화이트가 말하는 기독교는 일반적인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서구 기독교와 거기서 파생된 과학기술이라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화이트가 말하는 주장의 핵심은 사람들이 가진 종교와 세계관이 그들이 사는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로 주변 환경과 기후가 사람들의 종교와 세계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도 자명하다. 결국 화이트의 주장처럼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서구 기독교 안에 들어온 세계관은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인간사회를 분리하여 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한 신학적인 변화로 사람들이 자연의 신비를 경외하던 것에서 자연을 비신성화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도하게 인간중심적으로 해석된 서구 기독교에 의해 지금의 환경생태적인 위기가 야기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4)

화이트는 지금 우리가 겪는 “환경생태의 문제의 근원이 종교적이라면 그 회복도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5) 즉, 그에 의하면 만약 종교인 것으로 인해서 지금의 환경 문제가 기인했다면 역설적으로 그 문제의 해결도 종교적인 것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계몽주의 이전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표상되는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를 생태주의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함으로 그의 글을 결론짓고 있다.6)

역사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헬라·로마 문화권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의 전파는 문명화라는 기치와 결을 같이하는 흐름이 강했다. 결과적으로 미신적이고 토속적인 것은 다스려져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수많은 전통신앙과 결부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태도는 비문명적인 요소로 인식되었으며 복음의 걸림돌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선교적인 흐름은 19세기 초반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의식을 지배한 것이기도 했다.

4. 환경과 생태계 보전에 대해서 어떤 해법들이 제시되었나?
화이트가 제기한 이러한 주장은 그 이후 서구 사회에 아주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특히 유대-기독교 신학자들과 비기독교 생태주의자들의 활발한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생태청지기(stewardship), 심층생태학(deep ecology),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그리고 생태정의(ecojustice) 등이다. 

1) 생태 청지기(Stewardship) 사명과 안식일 정신: 유대교 계통의 학자들인 데이비드 에렌펠드(David Ehrenfeld)와 필립 벤틀리(Philp J. Bentley)는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대교 전통 안에는 “청지기 매뉴얼(steward’s manual)”이 있다고 주장한다. 신명기 20장 19절에 나오는 “파괴하지 말라(baltashchit)”는 규정과 신명기 22장 6절에 기초한 “살아있는 생물에 고통을 주지 말라(za’arbaaleihayyim)”는 규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피조물들과 자연을 지키는 청지기 사명이 원래 구약성서 안에 들어 있음을 밝힌다.7) 에렌펠드와 벤틀리는 이러한 생태 청지기 사명이 현대 기술사회에서 쉽게 훼손되기 쉬운 점이 있음을 옳게 지적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따로 제시하고 있다. 즉, 생태 청지기의 사명이 구약성서의 안식일 정신과 함께 적용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유대주의의 지혜를 온전히 발현”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8) 이는 생태 청지기 사명의식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복잡하게 구성되어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기술문명의 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 파괴되어 가는 환경을 보전하는 것과 인간의 무한한 소비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자각인 것이다.

2) 심층생태학(Deep ecology)과 표층생태학(Shallow ecology): 아르너 네스(Arne Naess)는 “생태 청지기”를 표층생태학(shallow ecology)이라고 비판하면서 보다 더 근원적이고 급진적인 해결방안인 심층생태학(deep ecology)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9) 네스에 의하면 환경오염이나 자연자원의 고갈 같은 과학기술적인 문제 해결을 다루는 것을 ‘표층생태학’이라 정의한다. 대신에 인간의 행동양식을 심연에서부터 철저히 파헤치면서 사회구조와 규범에까지 폭넓게 포괄하면서 다루는 철학적이고 생태학적인 접근방식을 ‘심층생태학’이라고 정의한다.10) 이러한 심층생태학적인 접근은 다른 생명체와 인간과의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지배와 착취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의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역으로 보면 기독교의 유일신관을 희석시키고 자연을 다시 신성시하는 과거의 함정으로 빠져드는 위험을 가져올 소지가 매우 크다.11) 하지만 심층생태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는 인간사회의 구조적 변혁이 없이는 온전한 생태적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3)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로즈마리 래드포드 류터(Rosemary Radford Ruether)와 같은 생태여성신학자들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남성중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를 자연의 질서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통념에서 벗어나서 “성차별과 계급과 인종의 차별이 없는 공동체의 재발견”을 해야만 현재의 생태적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임을 제시하고 있다.12) 류터의 이와 같은 주장은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생태신학을 개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대지와 자연과 더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현재 지구의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여성들이 더 큰 잠재력을 가진다는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필자는 오히려 생태여성학자들이 추구하는 이분법적인 접근법보다는 남성과 여성이 협력하여 서로 다른 강점과 지식을 결합하는 것이 생태적으로 손상된 자연을 치유하는 데에 보다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4) 생태정의(Eco-Justice): 송준인은 우리 시대의 생태위기의 뿌리가 기독교의 창조교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창조세계의 보전과 회복을 위한 실천적인 방안으로 “생태정의”를 실현할 것을 제안한다.13) 이현모는 자연생태계의 보전과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생태정의로 표현한다.14) 생태정의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서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두는 것이 아니다. 생태정의는 더 넓은 차원에서 생태계 보전과 인간사회의 경제정의가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는 기독교인의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자원의 무분별한 남용과 개발의 명분으로 이뤄지는 생태계 훼손 행위를 “다음세대에 대한 부정의”라는 이현모의 주장은 그래서 더욱 타당성을 갖는다.15) 이런 면에서 교회의 생태적 관심은 현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정의 실현의 밑거름이 된다. 


5. 지금까지 창조세계의 보전과 생태적 책임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우리나라는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후유증으로 사회의 모순적인 현상이 축적되었다. 1980년대는 대규모 중화학공업단지의 조성으로 인해 심각해진 산업공해 문제에 대처하고자 여러 시민사회와 교회 단체들이 조직되어 환경운동을 시작한 시기였다.16) 이러한 환경단체들은 주로 정부의 환경공해 관련 정책들을 비판하고, 공해 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적극 알리는 캠페인을 선구적으로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이 시기의 환경운동은 대부분 민중운동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종교성이 갖는 본성에 대해서 민감하지 못하여 민중교회는 위축되었고, 특히 당시에 제시되기 시작한 환경 문제와 기후변화의 결과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17) 또한 이 시기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개인의 영혼 구원과 교회 성장이라는 교회중심의 패러다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창조세계 전반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그 관심의 정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으로 창조세계의 보전과 교회의 생태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가자 세계교회 안에서는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의 진영 양측 모두에게서 이를 새로운 신학적인 과제로 인식하는 현상이 확대되어 나타났다.18)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1983년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이라는 주제로 모인 뱅쿠버 총회와 1990년 서울대회를 거치면서 교회의 책임영역을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으로 확대하고 있다. 또한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개혁교회 총회가 ‘창조의 보존(Integrity of Creation)’을 총회의 주제로 정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도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여 선교의 일환으로 생명에 대한 관심과 환경보전을 선교적 과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1974년의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인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와 르네 파딜라(Rene Padilla)는 교회의 선교적 사역으로서 복음전도와 사회정의가 모두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는 마치 통밀빵의 내용물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 또는 전인적 선교개념으로 소개되었다.19) 파딜라는 1999년 총체적 선교를 지향하는 미가 네트워크(Micah Network)의 결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20) 특히 2001년 미가네트워크대회에서 나온 ‘총체적 선교에 관한 미가선언문(Micah Declaration on Integral Mission)’에는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적이며 지속가능한 자원의 사용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21)

이러한 교회의 환경에 관한 관심과 생태위기에 대한 대처들은 보다 더 큰 단위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가기관들과 정치인들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세계적으로 거시적인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 한 예로 1988년에 설립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를 들 수 있다.22) 2023년 3월 20일, IPCC는 6차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보고서에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종합적이고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기후 변화의 원인, 영향 및 해결책을 보고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기후 위기의 현실적인 상황과 위험성을 강조하며, 식량 부족, 열과 습도로 인한 인간 및 동물의 사망, 서식지와 생물종의 상실 등과 같은 파괴적인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생물 다양성의 상실, 기후 변화,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세 가지 세계적 위기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러한 위기들은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6. 환경과 생태는 선교의 새로운 최전방 영역인가?
기후환경과 생태계 위기로 인한 여러가지 재난이 발생하면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과 생태계의 가장 연약한 층에 속한 존재들의 생명이 생존의 위험에 처하고 고통을 당한다. 생태계와 살을 맞대고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오히려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했던 팬데믹을 통해서 모두가 경험한 것이다. 여기에 교회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선교 이유가 자명하게 존재한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와 그에 따른 환경공해 문제 대두로 이제 선교는 인종, 문화, 종교를 뛰어넘어 다른 생명체에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과연 “환경과 생태는 선교의 새로운 최전방 영역인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 안에 생태계가 포함되는가? 포함된다면 어떻게 포함되는가?”라는 질문도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 안에는 생태계 전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생태계 영역을 향한 선교에 대해 성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도 동시에 던질 수 있다. 

1) 성서 본문의 의미 재발견: 창세기의 1장과 2장의 구절들에 대해서 그간 보편적으로 해석된 바와 같이 인간의 자연 피조물에 대한 지배를 당연시했던 것은 편향된 성서해석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본래의 성서적 의미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피조물 세계에 대한 청지기의 사명이 부여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성서의 본뜻에 대한 바른 해석이 환경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무분별하게 착취하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들의 죄와 탐욕을 심판하는 분이시다. 인간에게 생태청지기로서의 책임(신 20:19; 22:6)을 묻는 분이시다. 베어드 캘리코트(J. Baird Callicott)와 제임스 맥래(James McRae)는 창세기에는 인간에게 자연을 수호하는 “생태 청지기(stewardship)”를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23)

2) 구속주 하나님이 창조세계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인가?: “구속주 하나님이 창조세계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인가?”라는 질문은 신약학자인 영국의 C. H. 도드(Dodd)가 던진 질문이다.24)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별개로 초월자로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창조세계 내에 내재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강조이다. 구속사적인 관점에서의 성경해석은 인간 중심적인 역사와 성경의 이해를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창조세계를 초월하시면서도 또한 창조세계 내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생태계 영역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세계를 지속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통을 전제로 하고 있다.

3) ‘생명선교’ 지향: 한국일은 기존의 한국교회의 선교가 개인의 영혼구원과 교세확장에 치중된 선교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한국교회가 교회 중심적 선교관으로 인해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중보자이며 인류와 우주 만물의 화해자요”(고후 5:19) 또한 “우주와 만물의 주관자(엡 1:10; 21∼23)로서 새 창조주인 사실”에 대해서 무관심하도록 만든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25) 그는 이 시대의 하나님의 선교는 전 세계를 선교의 장으로 포함해야 하며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세계와 전 우주”를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생명선교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26)

4) 생태학적 종말론적 지향: 이승갑은 현재 한국교회가 이기주의적이며 과도한 소비주의에 빠져 생태적 위기를 초래하고 지구의 미래를 간과하는 등 생태의식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27) 그는 한국교회 안에 반생태적인 성향이 발생한 원인으로 생태계를 포괄하는 기독교 종말론 의식을 지목한다. 교회는 생태학적 종말론적 지향을 수용함으로써 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에 기여하고 지구와 지구의 모든 주민을 돌보겠다는 헌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5) 선교의 다섯 가지 표지: 1990년 성공회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는 선교의 다섯 가지 표지(The Five Marks of Mission)로 알려진 선교의 정의를 확장하여 선교 모델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 표지에는 “창조세계의 완전성을 보호하고 지구의 생명을 유지하고 갱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선교에 포함시켰다.28) 이러한 선교의 정의는 기존의 복음 선포에 새로운 차원을 포함시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환경보전을 위한 복음적 선포와 그에 따르는 책임 있는 행동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였다. 이제 복음 선포는 개인의 영혼구원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연약한 이웃인 생태환경까지도 포괄하는 새로운 모델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6) 선교의 다섯 가지 최전방: 지난 2023년 5월 새문안교회의 초청으로 제14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의 주강사로 내한한 보스턴대학교의 선교학 교수인 데이나 로버트(Dana L. Robert)는 “우리의 땅 끝은 어디인가?”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그의 강의 중에서 보스턴대학교 신학부에 속한 글로벌 기독교와 선교센터(Center for Global Christianity and Mission)에서 북미 전 지역에 진행한 선교 관련 리처치를 통해서 얻은 오늘 세계선교에 필요한 ‘최전방’의 우선순위 5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지역 안에서 세계로(The Global in Local); 지리적에서 세대적으로(From Geography to Generations), 주변으로부터 선교(Mission from the Margins); 초문화적을 넘어 상호 문화적으로 (Intercultural over Cross-Cultural; 창조세계 돌봄(Creation Care).29)

마지막 다섯 번째 최전방인 ‘창조세계 돌봄’에서 로버트는 전 세계로 선교의 최전방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세계를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30) 특히 창조세계의 돌봄의 사명은 창조세계인 지구의 파괴로 인하여 자신들의 황폐해진 고향 땅을 등지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포함하는 것임을 확인한다. 이는 선교의 영역에서 창조세계를 돌보는 사역이 새로운 선교적인 최전방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 생태계와의 조화로운 삶의 추구와 생명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선교적 적용 사례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론적이며 개괄적인 설명과 함께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로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생명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생태계와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행하는 선교현장의 사례들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 이번 세계선교전략회의에서 유용한 적용이 될 것이다.

1) 중앙 아프리카 니제르에서의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FMNR) 사례: 1980년대 사역한 호주 출신 SIM(Serving in Mission) 선교사 토니 리나우도(Tony Rinaudo)는 니제르에서 조림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리나우도는 척박한 환경과 지역 주민들의 경계심과 무관심으로 인해 자신의 조림 사역에 큰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었다. 리나우도가 경험한 도전은 아프리카인들이 가진 산림 자원에 대한 태도와 전통이다.31) 이는 땅의 소유권과 무관하게 지역민 중 그 누구도 산림자원의 이용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원리로 아프리카만의 독특한 전통이 아니라 한국의 왕조시대에도 있었던 전통이다.32) 이런 전통은 산림자원이 풍부할 때는 무난하게 작동하는 원리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발생했을 때는 심각한 부조화가 따른다. 문제는 이런 부조화가 발생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수급불균형의 악순환 고리를 깰 수 있느냐이다.

그는 한 마을을 지나가는 도중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서 차를 세우는 동안 예전에 그 지역에 심었던 묘목들이 죽어가는 황량한 풍경을 보며 절망적인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게 되었다.

“환경 파괴가 고통과 굶주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창조세계를 파괴한 것을 용서해 주옵시고,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바로 그때 리나우도는 근처에 자라는 작은 덤불을 자세히 살펴보니 주민들에 의해 잘라진 나무둥치에 다시 싹이 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리나우도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FMNR) 운동을 새롭게 전개하였다.33)
 
리나우도가 시작한 FMNR은 운동을 전개하면서 선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생태운동의 중요한 원리들을 발견하였다. 그 첫 번째 관건은 산림녹화 프로젝트에 있어서 현지 주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산림녹화 프로젝트가 현지 주민들에게 실제적인 혜택이 주어졌을 때 가능함을 발견한 것이다. 리나우도의 FMNR은 생태자원의 재생과 보전을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주민들에 대한 인센티브와 환경교육과 주민들의 자체 거버넌스를 적극 활용하였다. 

두 번째로 FMNR의 주목할 점은 외부 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작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서구 주도 생태 보전 프로그램이 다수세계 지역에서 결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지속적인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경제규모가 열악한 아프리카 국가와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사막화를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임이 증명되었다. 외부의 재정적인 도움 없이도 아프리카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가능한 생태 보전 프로젝트의 시행은 또다른 정서적인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현지 주민의 자긍심이다. 함께 동역하는 주민들에게 자긍심이 생겼을 때 비로서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리나우도의 새로운 접근방식이 아프리카에서도 자체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FMNR은 환경운동에 기독교 영성을 접맥한 점이다. 그동안 일반 생태 관련 운동이나 학술활동이 기독교의 기도 영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그간 현대의 생태운동은 기독교적 영향을 일부러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리나우도의 FMNR에서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창조세계와 인간사회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 영성이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주장했던 생태영성과 맥을 같이 한다.34) 이는 하늘과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했던 아프리카와 동양적 생태 사고방식과도 잘 조화를 이룬다.35)

2)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Earth Keeping Movement’의 사례: 네덜란드 개혁교회 선교사 마르티누스 대닐(Marthinus Daneel)은 짐바브웨(구 로디지아)에서 성장하여 현지어인 쇼나어에 능통하였다. 대닐은 1965년대 로디지아가 영국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나서 15년간의 독립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함께 협력하여 현지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돈독한 신뢰를 얻었다. 특히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쇼나 공유지에 3년간 들어가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쇼나 전통종교인들과 우의를 다졌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내전 중인 1972년에 그의 아프리카 독립교회 동료들과 더불어 아프리카독립교회협의회(Fambizano yamaKerke avaTema)를 결성하였다.36)

독립전쟁 이후 무분별한 벌목과 농지확보를 위한 산림파괴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환경은 독립된 짐바브웨 국가에 커다란 짐이 되었다. 대닐이 현지 교회지도자들과 연합하여 세운 아프리카독립교회는 전후 생태환경 회복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조림사역을 하면서 생태환경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기독교의 성찬식(Eucharest)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생태환경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한 것이다. 이는 그의 스승 헤르만 바빙크의 성례신학을 적용한 것이라고 대닐은 밝혔다.37)

대닐이 세운 비정부기구 Earth Keeper Movement는 이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는 독립운동의 상흔을 치유하고 그 에너지를 생태환경 회복으로 전환한 좋은 예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생태환경 회복 운동은 이후 현지인에게 리더십 전환하는 이양과정에서 순조롭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그의 후임자가 재정비리와 비합리적인 조직 운영, 친인척 고용 등으로 조직을 와해하고 그 결과 후원자들이 지원을 중지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선한 동기에서 시작한 환경운동과 생태보존 활동이라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이기심과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 운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실례라 하겠다.

3) 동아프리카 케냐 ‘Care of Creation Kenya’ 사례: 동아프리카 국가에서 의료선교사 부모 밑에서 성장한 크레이그 소얼리(Craig Sorley)는 케냐에서 ‘케냐 창조보호(Care of Creation Kenya, CCK)’를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복음적인 선교단체로 환경과 농업 분야에서의 청지적 사명을 확인하고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사역에 눈을 뜨게 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소얼리에 의하면 1973부터 2003년 30여년 동안 케냐의 전체 조림지와 산림의 55%가 헐벗은 상태가 되었다. 이는 급속한 인구증가로 인한 나무의 수요증가와 가뭄에 기인한 것이었다. 산림이 줄어들자 표토층의 유실은 더 가속화되었으며 농업용수와 식수의 부족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케냐 주변 동아프리카 국가들에 나타나는 유사한 경향이기도 했다.38)

CCK가 케냐 키자베(Kijabe)지역에 속한 음바우-이니(Mbau-ini)마을에서 주최한 ‘하나님과 창조(God and Creation)’에서 있었던 일이다. 워크숍 강연 중에 한 케냐 강사가 우리가 창조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행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 기초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통해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지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그러자 강연을 듣던 한 키쿠유(Kikuyu) 부족 출신의 참여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수십 년간 이곳에 왔던 선교사들은 우리가 삼림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습니까? 왜 그들은 이 땅에서 환경 파괴가 일어나는 동안 그저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까?”39)

이 사례는 선교지에서 생태환경 보전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지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4) 서아프리카 가나 불법 금채굴과 가나 교회의 선교적 대응 사례: 거대한 산업네트워크와 정부 조직 간의 밀월관계는 쉽게 무너뜨리기 어려운 카르텔이다. 선교지 국가들의 빈곤의 원인도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광물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영구적인 환경오염도 선교지역에 사는 저소득층 사람들의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하고 삶을 황폐케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40)

서부 아프리카 기니만과 적도 상에 위치한 가나(Ghana)는 일찍이 유럽 국가에 황금해안(Gold Coast)로 알려졌을 정도로 금과 같은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이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해외 광물자원 확보에 열중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기조로 인해 가나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약 5만 명가량의 중국인들이 유입되어 소규모 불법 금채굴(현지인들에 의해서 galamasey로 불리는)이 성행하여 반영구적인 환경 문제와 사회 문제를 동시에 발생시키고 있다.41) 불법 채굴 과정에서 오용 또는 남용되는 수은이나 납 같은 중금속은 그 지역의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항구적인 환경재앙으로 남는다. 이러한 불법 금채굴은 코코농장 같은 기존 농업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서 취약한 아프리카 국가의 경제와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이러한 불법 금채굴이 번성할 수 있는 이유는 불명확한 땅의 소유권과 정부의 비효율적 채굴권 관리, 세계 경제 패권을 가지고 오려는 중국 정부와의 카르텔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기축통화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부 차원에서 금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개발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부와 지방 토착 지도자들 간의 개발 이익의 배분은 미래 세대가 누릴 환경을 담보로 현재 세대가 무분별하게 환경자원을 소모하고 파괴하는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42)

불법 금채굴이 장기적으로 환경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을 감지한 가나교회는 교단 지도자들이 불법 금채굴 현장에 방문하여 신구교와 교단이 연합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43) 오순절교회 총회장인 은냐메체(Nyamekye) 목사는 다음과 역설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법을 집행할 것이고, 모든 곳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솔선수범을 촉구합니다. 누군가는 갈람시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을 통제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 리더십이 없는 곳에서는 일이 잘못됩니다.44)

거대 다국적 기업과 패권국과 그리고 권력기관인 정부기관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이 같은 형태에도 교회의 선지자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5) 아시아 몽골 Green Asia의 ‘사막화 방지 사업’ 사례: 지금의 환경 문제는 한 국가나 일부 지역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가 선교적으로 개교회적인 접근방식보다는 국제적인 공동협력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비정부 기구 환경단체가 하는 ‘몽골 사막화 방지사업’에 한국 교회가 참여하여 협력하는 것은 좋은 사례이다.45) 이는 한국교회의 역할이 교회중심적 선교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은 사막화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로이드 팀버레이크(Lloyd Timberlake)가 지적하듯이 “사막화는 사막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막화는 지구의 피부가 잘못 관리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발진이다.”46) 하지만 팀버레이크 사막화 자체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제방을 구축하고, 관개시설과 바람에 의한 침식방지 시설과 같은 대응에만 치중한다면 이는 마치 한센씨병 환자에게 피부연고만 바르는 것처럼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현지 농부들이 결코 그러한 사막화 방지와 같은 노력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팀버레이크의 지적은 환경과 생태 문제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정확한 원인 진단이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중요한 예라 하겠다.

한국교회와 사회단체들의 사막화 방지 사업의 선례는 이제 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공동체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또한 인류가 사는 지구 공동체를 지역이나 인종 또는 문화적으로 분리해서 이해하던 기존의 선교 관점을 탈피해서, 지구 공동체 전체가 서로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6)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사례: 평소 일본은 평소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4,235개의 지진계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지진의 예후를 잡아낼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최신 지진 시스템으로는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주요 국가 기반시설의 파괴를 막지 못했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ABC47)의 도쿄 특파원(2008~2013년)이었던 마크 윌라시(Mark Willacy)48)는 2011년 일본의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취재하면서 혼슈섬의 북동쪽 해안선을 따라 산재한 ‘수백 년 된’ 쓰나미 스톤을 “계명에 귀 기울이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성경의 돌판”이라고 묘사했다.49) 윌라시는 고립된 반도의 작은 마을인 아네요시가 일본에서 18,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진도 9의 후쿠시마 지진과 쓰나미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것을 목격했다. 주민들은 산악 마을 바로 아래에 세워진 석판에 새겨진 “이 지점 아래에는 집을 짓지 말라!”는 조상들의 경고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로서 선진기술과 지식을 더 신봉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던 사라들의 지혜가 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인들은 습한 물가보다는 말라리아 모기가 덜 서식하는 건조한 곳을 집터로 잡고 사는 지혜가 있었다. 매일 아침 님트리 조각으로 이를 닦았던 것도 그 나무에 천연 항말라리아 성분인 클로로퀸이 들어 있어서 예방 효과가 있었던 것을 조상들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이를 무시한 서구선교사들이 말라리아로 많이 희생되었다. 선교 현지에서 그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생태적 지혜에 선교사가 경청하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8. 나가는 글: 창조세계 돌봄이 사명
우리 한국교회의 선교가 이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선교의 최전방 영역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의 주인으로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책무를 지니게 하셨다. ‘창조세계 돌봄이(Creation Care)’의 사명이다. 지금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선교지의 가장 취약한 형제자매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이 제일 큰 고통을 당한다. 그들의 호소를 하나님은 흘려듣지 않으신다. 우리가 이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지켜 보신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 되실 뿐 아니라 인간사회를 포함하여 그가 창조하신 생명 모두의 참 주인 되심을 고백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온 세상이 지속가능하도록 보전하시며 이를 위해 살아 역사하시는 분임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교회의 선교는 창조세계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새롭게 조명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더 풍성하고도 균형 있는 이해와 실천을 하는 선교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의 선교는 기존의 인간중심적인 선교 관점에서 창조세계 전반으로 그 신학적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선교가 생태선교적 관점으로 바르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인들로 하여금 우리의 삶의 터전이 직면한 생태환경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생태의식을 교육해야 한다. 선교지에서 환경과 공해 또는 이상기후 문제로 발생하는 재난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자기중심적 소비주의에서 창조세계 돌봄이의 책임을 다하도록 삶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또한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촉진하는 동기부여를 통해 교인들의 적극적으로 생태보호에 참여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해야 한다.


미주  
1) 2009년 세계 5대륙 38개국에서 온 회원들이 케냐의 리무루(Limuru)에서 모인 미가 네트워크 대회의 주제로 “창조세계 청지기 선언과 기후 변화(Declaration on Creation Stewardship and Climate Change)”를 설정하고 전 지구적인 환경위기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Micah Network, “Declaration on Creation Stewardship and Climate Change,” IBMR, Vol 33, No. 4, (April, 2009), 182; 2022년 7월 7-11일 동안 호주 시드니 열린 제15회 세계선교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Mission Studies)의 대회 주제는 “권력, 불평등, 취약성: 상처입은 세상속에서의 선교”이었으며 환경과 생태에 대한 주제들도 포괄적으로 다뤄졌다. 2023년 6월 23-24일까지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열리는 Yale-Edinburgh Group on World Christianity and the History of Mission의 대회 주제는 “Creation, Climate Change, and World Christianity”로 창조와 기후변화 그리고 세계 기독교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2) 보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필자의 이전 글, 이명석, “생태학적 신학의 발전에 대한 탐구와 선교적 적용,” 「복음과 선교」제50집 (2020): 245-273을 참조하라. 
3)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Science, 155/3767(1967): 1205-1207. 
4) White,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1205. 
5) “Since the roots of our trouble are so largely religious, the remedy must also be essentially religious, whether we call it that or not.” White,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1207.
6) White,'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 1207. 
7) David Ehrenfeld and Philp J. Bentley, 'Judaism and the Practice of Stewardship', In Earthcare, ed. David Clowney et al (Plymouth: Rowman & Littlefield, 2009), 70. 
8) Ehrenfeld and Philp J. Bentley, 'Judaism and the Practice of Stewardship', 70.
9) 네스는 1973년 ‘심층생태학’, ‘표층생태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Arne Naess, 'The Shallow and the Deep, Long‐Range Ecology Movement. a Summary,' Inquiry, 16/1 (1973): 99; Arne Naess, 'The Deep Ecological Movement: Some Philosophical Aspects', In Environment Philosophy, ed. Michael Zimmerma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93), 402. 
10) Naess, 'The Deep Ecological Movement: Some Philosophical Aspects', 95-99.
11) 백운철, “환경신학과 성서”, 「Catholic Theology and Thought」 25(1998): 8. 
12) Rosemary Radford Ruether, 'Ecofeminist Philosophy, Theology, and Ethics: A Comparative View', in Ecospirit, eds. Laurel Kearns and Catherine Kell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7), 85. 
13) Timothy Chun-In Song, “A Theological-Ethical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co-Justice and Economic Growth in the Context of the Social Transformation of Modern Korea”,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Stellenbosch, 1999: 5, 91, 252-318. 
14) 이현모, “피조세계도 선교의 대상인가?”, 302.
15) 이현모, “피조세계도 선교의 대상인가?”, 303.
16) 대표적 환경운동단체에는 〈한국공해문제연구소〉, 〈공해추방운동연합〉, 〈공해반대시민운동연합회〉, 〈반공해운동협의회〉, 〈한국반핵반공해평화연구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등이 있다.
17)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현대생태신학자의 신학과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조명래, 이정배, 《기후붕괴시대, 아주 불편한 진실 조금 불편한 삶》 (서울: 동연, 2010);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편, 《녹색교회와 생명목회》, (서울: 동연, 2013). 
18) 이현모, “피조세계도 선교의 대상인가?”, 〈복음과 선교〉 49(2020): 280-82. 
19) 박보경, “르네 파딜라(Rene Padilla)의 총체적 선교 연구”, 〈복음과 선교〉 46(2019): 217-18. 
20) Micah Network, “Declaration on Creation Stewardship and Climate Change”, 182. 
21) 박보경, “르네 파딜라(Rene Padilla)의 총체적 선교 연구”, 18.
22) IPCC는 세계 기상 기구(WMO)와 국제 연합 환경 계획(UNEP)에 의해 구성된 독특한 기관으로, 195개 정부 대표로 이루어져 있다. IPCC는 매 6~7년 주기로 정책을 결정자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과학적 자료와 잠재적인 선택지를 평가해 제공하고 있다.
23) J. Baird Callicott and James McRae, Environmental Philosophy in Asian Traditions of Thought (Albany: SUNY Press, 2014), xx. 
24) Mercy Amba Oduyoye, Hearing and Knowing: Theological Reflections on Christianity in Africa (New York: Orbis Books, 1986), 75.에서 재인용.
25) 한국일, "생명선교 (Life Mission)", 〈장신논단〉27(2006): 335-67.
26) 한국일, "생명선교 (Life Mission)", 338.
27) Seung Gap Lee, “The Hope of the Earth: A Process Ecoeschatology for South Korea,” in Ecospirit: Religions and Philosophies for the Earth, eds. Laurel Kearns and Catherine Kell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7), 392–411.
28) Jesse Zink, “The Five Marks of Mission,” Journal of Anglican Studies 15, no. 2 (June 2017): 145. 
29) Dana Robert,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제14회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 미간행 자료집, 2023년 5월 27일-28일, 새문안교회, 51-52.
30) Robert,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51-52. 
31) Tony Rinaudo, “The Development of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Leisa Magazine, 23/2. (June 2007) 33.
32) 조선 시대의 “산림천택” 정책은 특정계층이나 개인이 공유자원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이상저온 현상이 지속되자 산림자원에 대한 사점이 횡행하여 사회취약층에 고통이 가중되었다: 김선경, “조선후기 山林川澤 私占에 관한 연구”, 경희대학교대학원 박사논문 (1999), 14-61. 
33) Tony Rinaudo, “The Development of Farmer Managed Natural Regeneration”, Leisa Magazine, 23/2. June (2007) 32-34(33). 
34) Johannes Jörgensen, T O'conor Sloane (tr), St. Francis of Assisi (New York: Longman, Green and Co., 1957), 314-15. 
35) Yo Han Bae, The Divine-Human Relationship in Korean Religious Traditions (Saarbrücken: VDM Verlag Dr. Müller Gmbh & Co. KG, 2010), 63-77.
36) Dana Robert, “우리의 땅끝은 어디인가?”, 75.
37) 필자는 2014년 생태신학으로 박사과정 리서치를 하던 중에 뉴욕 메리놀 수도원에서 열린 미국선교신학회에서 보스턴신학교의 대닐 교수를 만나 그가 짐바브웨에서 행한 생태선교에 대해서 직접 듣는 기회가 있었다. 
38) Craig Sorley, “Christ, Creation, Stewardship and Missions: How Discipleship into a Biblical Worldview on Environmental Stewardship Can Transform People and Their Land,”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35/3(2011): 137-43. https://doi.org/10.1177/239693931103500306. 
39) Sorley, “Christ, Creation, Stewardship and Missions,” 137.
40) 서지현은 페부 북부에서 다국적 금광 채굴업자들이 페루 정부로부터 수자원 이용권을 획득한 후 지역 농부들이 농업용수를 쓰는 것에 대한 제한을 가하는 경우에 대해서 연구했다: 서지현, “공동자원 거버넌스와 자원의 신자유주의화: 페루 북부 안데스의 경험을 중심으로,” 〈아태연구〉, 27/2 (2020): 94-98. 
41) James Boafo, Sebastian Angzoorokuu Paalo, and Senyo Dotsey, “Illicit Chinese Small-Scale Mining in Ghana: Beyond Institutional Weakness?”, Sustainability, 11, no. 5943 (2019), 1-18. 
42) Boafo, Paalo, and Senyo Dotsey, “Illicit Chinese Small-Scale Mining in Ghana,” 9. 
44) Benjamin A. Commey, ‘Galamsey’: Leadership of Christian groups call for collaboration to fight canker, Ghana News Agency, October 16, 2022. www.gna.org.gh. 
45) 임희모, “몽골 ‘은총의 숲’ 생태선교: 북한 산림녹화 생태선교에 주는 함의”, 〈선교와 신학〉 27(2011): 47–77. 
46) “Desertification is not about spreading deserts. It is a rash which breaks out in patches wherever the planet's skin is mis treated.” Lloyd Timberlake, Africa Is Crisis: The Causes, the Cures of Environmental Bankruptcy. Edited by John Tinker (London and Washington: Earthscan, 1985), 60. 
47)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48) Mark Willacy won the Walkley Award for his coverage of Japan's 2011 tsunami and Fukushima meltdowns. Mark Willacy, ‘Japan Earthquake: Fukushima Nuclear Plant Remains the Gap in a Wall of Disaster Defences’, ABC News, 22nd November 2016. Accessed 29th May 2023,
https://www.abc.net.au/news/2016-11-22/fukushima-nuclear-plant-gap-in-japans-wall-of-disaster-defences/8045894. 
49) Willacy, ‘Japan Earthquake’.






이명석 | 아신대학교 교수, 전 아프리카 가나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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