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집중호우로 인한 재해가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혹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주> 가족 여러분의 안전과 평안을 지켜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번 장마는 돌출성(突出性)이 강해서 ‘홍길동 장마’라고 부르는 분도 있습니다. 홍길동은 원래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의적(義賊)이었는데 8월에는 기후나 여러 일이 본래의 홍길동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홍대 앞 이야기 <중주>의 7월호 특집 ‘국내 이주민 선교현장’의 글들 가운데, 다하나국제교회 이해동 목사님의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홍대는 최근에 외국인 사역자라면 꼭 가 보아야 하는 곳이다. 밤 12시가 지나야 홍대의 불야성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야밤의 홍대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많아서 한국인들이 위축될 정도다. 지난 카타르월드컵 오프닝에서 BTS 정국이 하이라이트 시간에 주제가를 불렀다. 그러한 힘은 홍대 클럽문화에서 표출되고 저변이 되며, 또한 한국의 클럽 밤 문화를 보려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의 홍대로 모여든다. 여기서도 우리는 젊은 감성에 복음의 그릇을 바꾸어서 진리는 동일하게 전도해야 한다. 해외 단기선교를 가는 것처럼 홍대 외국인 전도를 가야 한다. 외국인을 위한 예배와 교회가 홍대에 세워져야 한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홍대 앞이 외국인 거리가 되었다니 놀랍구먼!’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밤에, 그것도 심야에 홍대 부근에 가 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촌스러운 소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홍대 앞에 외국인을 위한 예배와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고? 아마 세워질 거야!’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반세기 이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홍대 앞을 오갔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극동방송이 그 무렵에 인천에서 홍대 밑으로 이전했는데 극동방송에 대학 방송국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 교육방송국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 관계로 극동방송에 출입하느라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일대는 밭이 많았고 정말 황량했습니다. 버스 노선은 하나뿐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홍대 밑에 있는 극동방송으로 가 주세요” 하면 기사가 얼굴을 찡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외진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 생활을 몇 해 하고 있는데 아세아방송이 그때 용어로 ‘공산권 선교’를 위해 개국했습니다. 그 방송의 PD로 일하게 되었는데 당시 아세아방송의 서울 연주소(演奏所)는 태평로 대한일보 빌딩 3층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세아방송의 설립 모체인 미국 FEBC가 극동방송의 설립 모체인 미국 TEAM 선교부로부터 극동방송을 인수받고 홍대 밑 상수동에 있는 건물로 사무실을 합하게 되어 1978년부터 다시 매일 홍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20여 년을 그렇게 했으니까 홍대 주변의 변화를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겪게 된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홍대 앞이 젊은이의 거리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이거 참 놀랍네!’ 했습니다.
근 30년 전에 목회를 위해 그곳을 떠났는데 이번에 이해동 목사님의 글을 통해 홍대 앞이 외국인들이 넘치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 지역은 원래 외국인들과 관계가 많은 곳입니다. 홍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양화진이 있는데 그곳의 정식 이름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입니다. 양화진과 홍대 사이에 당인동(唐人洞)이 있는데 ‘당인’은 중국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임진왜란 때 그곳에 명나라 이여송(李如松)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극동방송 옆 골목에는 ‘왜우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물이 있는데 임오군란 때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이 사용한 우물이라고 합니다. 홍대 앞이 그렇게 변할 줄은 정말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곳이 외국인 전도의 중심지로 변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는 것이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도 이야기 다시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1960년대 중반에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공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앞에서 ‘황량’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의 그 지역 역시 그랬습니다. 아세아방송은 송신소를 제주도 애월에 세웠는데 1970년대 초반부터 그곳에 종종 출장을 갈 때도 역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제주본부에서 일할 때 저는 제주 시내에 있는 한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주일은 물론 수요일 밤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는데 그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직원에게 “아니에요. 제주시에 가야 네온사인을 볼 수 있지 않아요? 교회 출석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기는 하지만 도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랍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제주는 이렇게 환경이 크게 변했지만, 선교에서의 비중은 더욱 크게 변했습니다.
“제주도는 삼다도면서 동시에 선다도예요!” “아니 선다도라니요?”
제주도에서 사역하고 있는 어느 목사님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선다도가 무슨 뜻이냐고 하자 그 목사님은 “선교기관이 많이 있다는 뜻이지요. 우선 중국어문선교회가 제주도에 있지 않아요? 한번 들어보실래요?” 하면서 제주도에 있는 선교기관들의 이름을 신나게 열거해 주었는데 과연 선다도(宣多島)라는 이름을 들을 만했습니다. 저는 제주도가 이렇게 변할 줄을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무엇보다 중국 사역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중국 사람이 제주에 머무르고 있고, 또 오가고 있습니다. 중국 사역의 중요한 모임도 제주도에서 여러 번 열렸습니다. 제주도가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중국어문선교회 가족들 가운데에서도 선교회가 제주도로 이전하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보고 겪으면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 중국 사역과 관련된 소식들 가운데는 밝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앞으로의 전망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할 변화가 언제, 어떻게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우리는 소망의 별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호의 특집은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를 통해 세계선교를 읽다’라는 제목 밑에 지난 6월 평창에서 열린 제8차 세계선교전략회의(NCOWE Ⅷ)에서 발표된 주제 강의 중 세 편을 소개하였습니다. 새로운 선교에 대한 소망, 한국선교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글들이고 또 생생한 현장 사례들입니다. <중주> 가족들에게 큰 도전과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 특집은 다음 달에도 계속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늘 감사합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감사합니다!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홍문관 거리공연 사진 (시정일보) → (아래) 극동방송(서울 상수동) (뉴스앤조이)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