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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3  통권 246호  필자 : 강진구  |  조회 : 2313   프린트   이메일 
[중국 사회와 문화 이야기]
춘제에 증명된 인구의 힘

춘제(春節)를 알면 중국이 보인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Haley Joel Osment)가 할리우드 아역 배우로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찍은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2002)는 미국 7학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서 새 학기를 맞아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길 것!’
아이들은 별별 희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그 가운데서 너무 웃겨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아이디어는 바로 중국과 관련된 것이었다.

“중국어 웹사이트를 열어 중국 애들이 제자리에서 동시에 뛰도록 할래요.”
 수억 명의 인구가 동시에 뛴다면 지축이 흔들릴 것이란 어린애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국 인구의 거대함에서 오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예가 2023년도 춘제 기간에도 일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자유로운 이동이 막힌 지 3년 만에 재개된 춘제 기간에 벌어진 중국 인구의 대이동과 그에 따른 경제 회생은 마치 다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는 화타(華陀)의 처방에 비견될 만한 일이었다. 경제봉쇄로 인해 분노하던 민심은 수그러들었고, 고향을 찾고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꽁꽁 싸매고 있었던 지갑을 열어 마음껏 ‘보복 소비’를 일삼는 바람에 막혔던 경제의 혈맥마저 뚫릴 기미를 보여서 그야말로 이번 춘제 대이동은 중국을 살리는 화타의 비법에 비견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당국은 매년 춘제 전 15일과 춘제 후 25일, 총 40일간을 ‘춘윈(春運)’ 기간으로 정하고 중국 인민의 이동을 특별 관리해 왔다.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농촌인구를 대거 도시와 그 주변으로 이주시킴으로써 중국인들에게는 생존을 넘어 잘살아보려는 한편의 기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타지생활에서 오는 설움이 공존하는 타향살이가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단박에 날려주는 것이 바로 춘제의 고향 방문이다. 단순히 집안사람들을 만나는 명절을 넘어서 춘제는 결혼 상대자를 만나거나 새로운 직업과 직장을 얻는 계기도 되는 까닭에 춘제에 거는 기대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억대 인구의 목숨을 거는 이동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위드 코로나 시기를 맞이한 올해 춘윈으로 설정된 기간은 1월 7일부터 오는 2월 15일까지다. 한마디로 중국 대륙이 들썩일 만큼 인구의 세계적인 규모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중국 교통운수부가 밝힌 예상 이동객은 총 20억9500만 명에 이른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춘제의 29억8000만 명에는 미치지 못하는 숫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이 통제되던 지난해의 10억6000만 명에는 두 배에 이르는 숫자다.

코로나19 보복 소비
지난 1월 25일 인민일보는 전 세계가 중국 춘제를 주목하며,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 회복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중국의 아이들이 뛰면 지구의 지축이 흔들릴 것이라는 영화 속 발상은 적어도 경제 영역에서는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만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소비감축과 국제 정세의 변화는 대중국 수출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2023년 1월 무역수지 적자액이 10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서며 역대 최대 적자 폭을 기록했다. 적자 기간도 사상 처음으로 1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춘제를 맞아 중국인들이 지갑을 여는 일은 한국 경제에 다소나마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비록 코로나19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단기비자를 제한하고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2월 안에 비자 제한이 풀릴 가능성이 높고, 중국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지면 춘제의 특수와 같은 보복 소비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춘제 움직임은 가히 폭발적이라 보는 것이 맞다. 지난 1월 27일 중앙TV는 고향 대신 주요 관광지를 찾는 중국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관광지의 식당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방송했다. 온라인에 올라온 인증샷 가운데는 샤오롱샤(小龙虾, 민물가재)를 먹기 위해 찾은 관광지의 한 식당에 줄을 선 손님의 대기 번호가 4,800번인 것도 있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자신 앞에 4,800테이블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인데, 번호표를 배부한 식당이나 번호표를 받아든 손님이나 모두 웬만한 숫자에는 놀라지 않는 대륙의 정서를 엿보게 한다.

멀리 가지 못한 중국인들이 춘제에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영화관이었다. 이 역시 인구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준다. 춘제에 몰려든 중국 관람객 덕분에 중국은 전 세계 영화매출 1위를 달성했다. 춘제 연휴 8일 동안에만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영화표가 팔렸다. 일단 위드 코로나 선언으로 인해 거리 두기가 없어지면서 3년 만에 극장가가 활짝 열린 것도 한몫했지만, 3년 7개월 만에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2》와 《앤트맨3》를 개봉한 것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요인이었다. 미중 간의 갈등과 상관없는 액션 히어로물로서 해외로 나가지 못한 중국인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춘제가 중국의 전통 명절인 까닭에 시진핑 정부가 문화정책으로 삼고 있는 애국주의적인 콘텐츠가 중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도 예상된 일이었다. 춘제 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는 금나라 침입에 맞선 남송 무장의 이야기를 다룬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만강홍》(满江红)이었고, 2위는 중국인 우주 비행사의 활약상을 그린 《유랑지구2》(流浪地球2)였다.  

영화 《만강홍》은 ‘붉은 피로 물든 강’이란 뜻으로 남송 초기의 장수 악비(岳飛)가 지은 시사(詩詞, 송 때의 시, 시가) ‘만강홍(满江红· 怒发冲冠)’을 소재로 악비의 저항정신과 중원 수복 통일에 대한 의지를 조명했다. 흉노(금나라) 침략자에 의한 중원 함락에 비분강개하면서 강산을 수복해 황제의 은덕에 보답할 것을 결의하고 있다. 만강홍에서 악비는 ‘적의 살로 주린 배를 채우고 그 피로 갈증을 풀겠다’는 섬뜻한 문구를 사용하며 외세 흉노에 대해 무서운 적개심을 표출했다.

장이머우 감독은 1987년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다양한 인생을 중국의 독특한 예술을 입혀서 잘 표현했다는 칭찬을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시진핑 정부의 입맛에 맛는 애국영화를 만드는 친정부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만강홍》만 하더라도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 문예영화가 아니라 현대의 중국과 시진핑 정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힐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즉 금나라의 중원 함락은 미국과 같은 외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대만의 상황에 대한 비유이고, 흉노 침략자는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미국이며, 황제에 대한 승리 보답은 시진핑과 공산당에 대한 충성에 비유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춘제의 위기
춘제가 보여주는 중국 인구의 위력이 과연 얼마나 계속될지 의문을 가지는 통계가 춘제 기간에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0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는 베이징에 본부를 둔 인구·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유와인구연구소(YuWa Population Research Institute)’가 전날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인구 감소 위험을 강하게 경고했다. 지난해 중국 인구는 14억 1180만 명으로 전년보다 85만 명 감소했으며 이는 문화혁명 이후 처음 발생한 일이다. 또한 지난해 중국의 출생률은 1천명당 6.77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총 신생아 수는 956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으로 신생아 수가 천만 명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인구 1위 자리를 인도에 내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고민이 깊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생각 전환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공산당은 인구 전체를 생각하는 규모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개인의 가치와 행복을 중시하는 생명 중심의 사고로 바꿀 기회를 얻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많은 인구의 힘을 빌려서 존경받을 수는 없는 노릇인 까닭이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마 16:26, 막 8:36) 기독교 사상을 생각볼 때인 것이다.







사진 출처 | (위) 연합뉴스 (아래) 신화망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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