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대째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어머니는 매일 아홉 시간씩 기도하는 분이셨다. 신학생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거짓 크리스천이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일예배를 건성으로 드렸고, 5대째 신앙이었지만 이도 소용없었고, 어머니가 아홉 시간 기도하셔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스물다섯 살에 진심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새 생명을 얻었을 뿐 아니라 사명도 얻었다. 새 생명을 얻은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었다. 사명을 받은 뒤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했다. 우리가 모두 새 생명을 얻은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이다. 곧 우리도 목숨을 걸고 사명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목숨을 거는 사명을 이루어가는 것을 기꺼이 누리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처음 선교지로 나간 곳은 중국 시안(西安)이다. 중국어를 배워야 했고, 중국 문화를 배워야 했다.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쳐 준 시안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었고, 내 신앙의 예루살렘은 한국이었다. 이는 같은 동방 문화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명을 따라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은 나에게 타문화권 선교지였다. 나는 처음에 중국에 갈 때 유서를 쓰고 가려고 했고, 중국에서 뼈를 묻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교만이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2008년 태국 치앙마이에 갔을 때 중국 공안이 나를 찾아와 차를 마시자고 했다. 사실 나는 차를 마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 커피숍도 운영하고 있다. 중국 공안이 찾아와서 부득불 중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우리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러므로 나도 문화를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고, 내 생각을 초월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선교지의 종착역이 중국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태국에서 태국 청년들을 섬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태국이 나의 종착역이 된 것은 아니다.
나의 종착역은 중국도 아니고, 태국도 아닌 ‘땅끝’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 세계의 영혼들이 바로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중국을 떠날 때 이미 나의 중국인 사역은 중국과 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 경험과 학습으로 굳어진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초월해야 했다. 어떤 이들은 “왕부장, 당신은 어느 나라 선교사입니까? 한국선교사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다시 “중국선교사입니까?”라고 물을 때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태국선교사입니까?”라고 물을 때도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나는 ‘천국선교사’이다. 내가 섬길 대상은 중국과 태국뿐만 아니다. 주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주님이 나에게 이 민족을 주신다면, 무조건 순종할 것이다. 이전에는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였다면 지금은 나라를 초월한다. 이전에는 중국선교만을 지향하였다면 지금은 중국을 초월하여 선교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우리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온 유대도, 사마리아도 아닌 땅끝까지 이르러 선교해야 한다.
둘째, 최근에 나는 미국과 캐나다 등 약 12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선교사역을 하였다. 특히 인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인도뿐 아니라 남미에서 온 분들도 많았다. 이전에 우리는 미전도 지역으로 가서 선교를 하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그들 스스로가 우리에게로 다가왔고 온 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념도 바뀌었다. 선교할 지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할 대상을 찾아 그들 곁으로 가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에 들어가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밖에서 선교하는 것이다. 전 세계 화교는 약 5천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중 이곳 동남아에 3천만 명이 있다. 2013년 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 본토의 이민자 수는 930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서 비자발적 철수, 입국 거부 등 추방을 당한 많은 한국선교사가 있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이민을 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 중국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 이전에는 중국으로 입국하였다면 이제는 탈중국을 해야 한다.
태국에서 중국선교사를 훈련하는 목적은 복음이 중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이제는 복음이 중국 밖에서 전해지게 하는 데 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49명의 새끼 호랑이를 키웠다. 그중 21명이 현재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새끼 호랑이는 새끼 고양이가 아니다. 새끼 고양이는 새끼 호랑이가 아니듯이 고양이는 호랑이가 될 수 없다. 고양이는 고양이일 뿐이다. 새끼 호랑이는 호랑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새끼 호랑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21명이 선교사역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왜 태국에서 선교훈련을 하고 있는가? 여기 태국에는 160여 개의 세계 선교기구들이 있고, 중국인촌과 소수민족촌이 있고, 국제공항도 있다. 많은 대학과 미얀마, 라오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물가가 싸고 안전하며 도둑이 없다. 나는 태국이 참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불교를 믿고 있으니, 거짓을 믿고 있는 것인데 그들의 삶은 참된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의 신앙은 참되나 삶은 거짓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종종 혼란스럽다. 이들의 삶 속에 도적이 없다. 상대방을 존중해준다.
우리 신학생들이 졸업전도여행을 할 때 두 주 동안 돈 없이 4-5개 도시를 돌았다. 한편으로 복음을 전하고 한편으로 생존훈련을 했다. 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왕 원장님, 저희들이 조금 늦게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즉 학교보다 먹는 것이 더 좋았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오성급 호텔에 투숙하였고, 어떤 학생은 비행기를 탔고, 어떤 학생은 헌금을 가지고 돌아왔다. 태국은 공덕(功德)사상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한다. 선한 일을 많이 하면 다음 생에 국왕이 될 수도 있고, 도적질을 하면 다음 생에 개 혹은 벌레로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사람들을 돕는 일을 좋아하지만 마음이 강퍅하여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복음전파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새끼 호랑이는 어떻게 정의할까요? 새끼 호랑이는 구원의 확신이 있고, 사명과 책무가 중차대함을 명심하며, 심신이 건강하고, 품성이 온화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자로서 설교의 은사가 있거나 혹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직분을 가지고 3년 이상 교회를 섬겼으며, 또 개인적인 은사를 소유한 자를 말한다. 이러한 사람은 많을까요? 우리가 훈련하고자 하는 것은 타문화훈련, 생존훈련, 주님과 동행, 영적훈련, 믿음훈련, 언어훈련, 인간관계훈련이 있다. 특히 수영을 배우는 체육훈련이 있다.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불합격하면 졸업할 수 없다. 한 가지 더 단기선교도 포함된다. 졸업식을 거행할 때는 중국 본토의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선교대회를 함께 진행한다. 이미 일곱 번의 졸업식을 마쳤다. 그리고 졸업한 새끼 호랑이들을 그들에게 소개한다.
재밌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해 보면, 나의 중매 성공률은 0%이지만 선교사와 교회 사이의 중매 성공률은 70-80%이다. 이미 졸업한 학생들 가운데 21명이 가정교회,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튀르키예(터키), 이란, 태국 등지에서 사역하고 있다. 어떤 자매님은 N 국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고, 또 한 부부는 일본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현재 치앙마이선교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대다수 학생은 선교회와 교회 두 단체에서 동시에 파송하려고 한다. 어떤 분들은 목사의 신분으로 혹은 장사, 중국어 교사, 한의사, 여행사, 농업 고문 등의 신분으로 나아간다. 졸업할 때 그들에게 십 년 내에는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선교는 기도의 탄약, 재정의 탄약, 은사의 탄약이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총도 필요하다. 총은 선교의 환경을 말한다. 탄약이 있고 총이 없으면 소용없고 탄약이 없고 총이 없어도 소용없으며 총이 있으나 군사가 없어도 소용없다. 만약 군사가 적을 분별하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사령부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탄약과 총, 군사와 사령부 모두 필요하다. 사령부는 선교회를 말한다. 건강한 선교회는 건강한 교회에서 나오고 건강한 선교사는 건강한 선교회에서 훈련된다. 그러나 이상의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지라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선교환경은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광야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교회는 1950년 남북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었다. 성도들은 오로지 기도와 성경읽기와 복음전파에 힘썼다. 장막 안에서 예배드렸고 비 올 때 빗물이 흘렀고 겨울에는 죽을 듯이 추웠고, 여름에는 더워서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도들은 목숨 걸고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은 마음이 순수하였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주께 온전히 드리기를 원했다. 나는 장자이다. 우리 집에 아무것도 없었고 매우 가난했다. 어느 날 어머님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젊고 건강하니 어머니는 나와 의논하지 않고 나를 하나님께 바쳤다. 그때 어머님은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기쁨으로 자식을 하나님께 드렸다.
선교는 광야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온전히 예수님을 의지하며 시작한 것이 한국교회의 출발점이었다. 수많은 부모가 자녀들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기뻐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기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다. 어느 날 보니 새끼 호랑이가 자라서 교회 지도자, 성도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자, 선교사가 되었다. 광야에서 출발하였는데 어느덧 건강한 선교환경이 형성되었다. 뚱보는 한입에 된 것이 아니다. 선교는 건강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교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경건한 삶을 보고 따라 배우는 것처럼 선교는 교회학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모습을 따라 하게 된다. 선교사가 “누가 주를 위해 갈까?”라고 물으면 저마다 “저요, 저요!” 하며 손들었던 것이 그렇게 살아온 삶의 모습을 배운 것이 아닐까. 중국도 이러한 건전한 선교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중국선교사를 섬기고 있는데 지난해 치앙마이에서 ‘복음 카페’를 오픈했다. 나는 이 카페의 사장이다. 사람들은 이 카페가 교회인 줄 모르고 들어온다. 카페를 통해 태국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립적인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다. 주일날은 복음 카페에서 예배를 드린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고 본질이다. 복음 카페는 단지 복음을 전하는 통로이다. 그리고 카페에서 중국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이는 복음전도에 좋은 접촉점이 되고 있다. 핵심적인 전략은 커피를 통해 우정을 쌓고, 우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카페에 오는 사람 중에 70%는 태국 사람이고 아직 수익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중국 사람은 5%밖에 되지 않는다. 더 많은 중국 사람이 이 복음 카페를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마시기를 원한다.
왕부장 | 태국 번역 | 장요한·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