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들과 선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자신들을 택했다는 사실과 자민족중심주의적인 교만에 찬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이 떠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아모스와 예레미야와 이사야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백성의 허식에 채찍을 가하였고, 하나님의 실제 의도를 왜곡하는 그들을 책망하였다.
선지자들은 사회악, 도덕적 부패, 종교적 무관심을 질타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이들의 입장은 비타협적이었다. 그들은 메시지를 선포함에 분명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방법론에 있어서는 모범을 통해 제시해 주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점차로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분깃을 받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였다.
하나님은 전 세계 만민에 대해 그의 주(主) 됨을 회복하기 위해 간섭하셨다. 영적인 삶은 백성들 사이에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인 사회에 대한 책임의 준행으로 표현되었으며, 진정한 믿음은 만민을 선교하기 위한 선행조건이 되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는 그들의 선교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려는 목적에서 온 것이었으며, 이를 망각했을 때 선지자들은 이를 다시 일깨우는 일을 행하였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선교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와 열방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요, 온 나라들의 주관자요, 모든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이방나라들과 그들이 믿고 있는 이방신들도 다스리고 심판하는 분이시다. 허버트 케인(J. Herbert Kane)에 따르면 하나님은 물리적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보존자이시며, 도덕적 우주의 통치자시며, 재판관이시고, 열국의 왕이시며, 통치자이시고,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며, 구속주이시다. 이것은 이사야서가 보여주고 있는 선교적 주제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구약성경에서도 신약성경이 말하는 소위 원심적(centrifugal) 선교를 찾아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며, 그 대답으로 이스라엘에 맡겨진 선교에 대한 ‘종의 노래(Servant Songs)’를 제시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담당한 선교는 신약시대 교회의 선교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여호와의 빛을 이방에게 전하는 데 있어서 활동적인 증거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이스라엘은 선교의 목표가 아니라 선교를 위한 기지이다.
구약성경의 선교적 정점으로 볼 수 있는 이사야 40-55장에 나오는 ‘종의 노래’를 살펴보면 이사야서에 나타난 선교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종(servant)’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첫째로 ‘종’은 선교적 공동체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종은 이스라엘 민족 그 이상이다. 둘째로 종은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임무를 자기 자신들의 임무로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로 종은 선교를 친히 구현하실 장차 오실 메시아이다. 이 종의 임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구심적 선교와는 달리 종의 노래에서는 원심적인 선교를 발견할 수 있다.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어 주고, 너를 지켜 주어서,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이사야 42:6) 이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방을 향해 나아가는 선교가 나타나 있다.1) 이스라엘에게 종-고난 받는 종-으로서 메시아는 수용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는 고난의 가치를 그들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의 유일한 속죄의 죽음으로 고난의 종과 인자의 메시아적 개념이 합하여지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고난 받는 종으로 지칭되는 ‘메시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선교적 원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만민 가운데서 메시아의 선교사역을 행하려 한다면,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종으로서 역할을 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교회도 열방 중에 선교하는 종의 길을 걸어가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민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선택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속성을 민족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배운 존재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배우고 체험한 하나님을 이방인들에게 나타나 보임으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미치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불러 복주시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복을 얻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도 같은 것이다. 이사야서 전체에서 원심적인 선교의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온 열방에 퍼지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요나를 통한 선교 이사야서의 종의 노래가 선교의 첫 번째 정점이라고 한다면, 요나서는 그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요나서의 극적인 사건을 통하여 성경은 몇 가지 심오한 선교적 교훈을 주고 있다. 선지자인 요나는 선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선교에 완전히 부정적이었고, 그 결과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신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뒤로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다시스로 향하게 되었다.
요나서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요나가 하나님께 받은 명령은 과연 선교적 명령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로서 요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요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사상처럼 이스라엘 백성 외의 모든 이방인은 멸망의 대상인가? 인간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구원은 멈추는 것인가? 요나서는 하나님이 친히 선교의 계획을 세우시고 선교지와 선교대상과 선포할 메시지와 선교사로 파송할 사람을 정하여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즉 이방인도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임을 볼 수 있다.
요나서에서 선지자요, 하나님이 보내는 선지자로서 요나를 통해서 던지시는 경고는 이스라엘 백성의 자민족, 자문화우월주의에 대한 직접적이고 신학적인 경고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나서의 선교적 주제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요나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였으며, 또한 좁은 마음을 가진 편협되고 전형적인 유대인의 배타성과 선민이라는 특권의식과 자민족중심주의를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선교는 한 백성의 문화와 종교적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니느웨는 앗시리아의 수도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선교는 그 나라의 문명과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 니느웨의 문화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셋째,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들에게도 구속의 기회를 주셨고 타락한 자들의 상징이었던 니느웨는 선교의 대상이었으며 구원의 대상이었다. 요나서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다.
함께 생각해보기 구약의 이스라엘은 능동적으로 선교사역을 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구약성경도 분명히 선교를 말하고 있다. 데이비드 보쉬도 구약은 신약의 선교 이해의 기초가 된다고 구약성경의 선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는 선교라는 주제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나 자기계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구약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선교를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선교를 말하고 있는가?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우리의 생각은 무엇인가?
미주 1) 중요한 선교적 본문으로는 이사야 42;1-7, 45: 22-23, 49:1-6, 50:4-9, 52:7, 52:13-53:12 등이 있다.
※참고문헌 J. HERBERT KANE. CHRISTIAN MISSIONS IN BIBLICAL PERSPECTIVE. 이재범 역.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4. Roger E. Hedlund. Biblical Theology of Mission, 송용조 역. 서울: 서울성경학교 출판부, 1991. 이동주. 《현대선교신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김학유. 《변하지 않는 성경적 선교》. 경기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2019. 전호진. 《선교학》.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9. 김종구. 선교신학, 선교학 개론 강의안.
김종구 | 빌리온선교회 대표, Ph.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