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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4  통권 236호  필자 : 김한중  |  조회 : 4358   프린트   이메일 
[특별 기고]
전호진 박사의 토착화와 자립선교 정신

서언 
전호진 박사는 한국인 최초의 선교학자이다. 그는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이며 탁월한 ‘행정가’이다. 특히 ‘연구가’로서 성경과 교회역사, 인문학과 문화인류학, 이슬람연구와 아시아의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많은 저술과 논문을 남겼다. 필자가 신학도 시절에 전호진 박사님의 ‘선교학’ 강의를 들으며 고려신학대학원에 ‘선교학회’를 조직하여 지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특권이었다. 그는 선교학자와 지도자로서 현대선교 이론의 변화와 시대적 선교이슈에 대한 정책을 때마다 적극 제시하였다. 이는 한국교회가 성경의 원리와 역사적 기초 위에서 바른 전략으로 선교할 수 있도록 기여한 바가 크다.1) 특히 교회의 역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독교가 서양 종교가 아니라 아시아 종교라는 것을 강조하며, 한국교회의 역사와 전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분변(分辨)하는 혜안을 갖도록 충고하면서 ‘선교 방법론의 변화’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제기하였다.2)

“오늘날 제2의 선교대국으로 세계교회와 함께 170여 개국에서 일하고 있는 2만 7천5백여 명 이상의 한국선교사들과 한국 선교단체들이 바른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선교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하고, 돈과 프로젝트성의 선교가 아닌 사람을 세우는 데 집중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제안은 우리가 깊이 새겨 들어야 하는 말이다. 최근 발행한 그의 한 저서에서 선교지의 시급한 이슈 가운데 가장 먼저 ‘선교지의 재산권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교회가 서구 선교단체에서 학교, 병원, 복지기관 등 재산을 이양받으면서 여러 분쟁을 겪었던 것을 지적하며, 앞으로 선교 현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쟁 가능성에 대해 경고를 한 것이다. 이는 선교지에 과시적 교회당과 선교센터를 세우는 것이 선교를 잘하는 것이라는 한국교회의 오해를 지적하고, 현지인지도자를 세우고 토착적 자립교회로 세워가도록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간곡히 충고하였다.3) 

‘자립·자치·자전’의 삼자원리로 요약되는 현지인 중심의 자립선교 방법론은 선교의 최종 목표인 ‘토착화한 자립교회 설립’을 이루는 핵심전략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초기 한국교회를 그 중심 모델로 삼고 있는 이 원리는 어느 선교지에서도 가장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전략적 방향이다. 그의 방대한 저서와 논문은 300여 권 이상에 달한다. 그중 주요 자료를 중심으로 ‘전호진 박사의 토착화와 자립선교 정신’에 대해 요약 정리하였다. 그리고 필자는 이 주제를 ‘기본적 성경원리’, ‘역사적 경험원리’, ‘시대적 전략원리’ 세 영역으로 나누어 정리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1. 선교의 목표로서 ‘토착화’ 문제 

‘기본적 성경원리’
선교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비전과 선교방법을 제시하여 주셨음을 우리는 믿는다. 이는 ‘선교의 성경원리’이다. 선교의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인 사람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다. 그 방법은 다른 문화권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고, 대상은 “온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족속”이다(막 1:15, 딤전 2:4, 요일 2:2, 마 28:19-20). 구약성경의 예언은 이러한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그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가벼운 것이라 내가 또 그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그리고 신약교회가 시작되면서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 증거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각각 자신들의 “난 곳 방언으로”(행 2:8, 11)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백성을 취하시려고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방인 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사 45:21)는 말씀의 성취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전 박사는 한국교회 선교 초기인 1980년대 초에 <월간고신>에 ‘한국교회 토착화 어디까지 왔나?’라는 기고를 통하여 한국교회에 ‘선교 목표로서 토착화’를 주요 전략 원리로 소개하면서 토착화의 정의와 성경원리를 바울의 예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4) 

사도 바울의 선교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처신했는데 이것은 토착화와 유사한 동일화(Identification)원리이다. 사도 바울이 풍속 문제(custom)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푼 것(행 16:3)과 서원하여 머리를 깎은 행위(행 18:18)에서 잘 나타난다. 할례와 머리깎음은 율법에 속하여 더 이상 시행할 필요가 없었지만 유대인의 오랜 전통이었기에 잠시 이것을 시행했다. 이 외에도 바울은 이방인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그들의 세속적 직업에 그대로 머물게 한 것(고전 7:20-21), 고린도교회의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고전 11:4-5), 예루살렘 총회(행 15장) 등은 토착화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유대인의 습관과 의식을 이방인들에게 무조건 강요하지 않고 이방인들의 문화와 풍속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복음을 증거했다. 

또한 그의 저서 《선교학》(개혁주의신행협회, 2000년)에서 “토착화(Indigenization)란 기독교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자기 고유의 좋은 전통과 문화 등의 토양에서 받아들여 기독교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주체적 행동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하면서 토착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5)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교회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재정적, 행정적 완전 독립을 의미한다. 한국교회에 처음부터 적용된 소위 네비우스 원리인 자립(Self-Support), 자치(Self-Government), 자력 전파(자전, Self-propagation)는 널리 소개된 토착화 원리이다. 이것은 네비우스가 이 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해외선교회(ABCFM)의 루퍼스 앤더슨(Rufus T. Anderson)과 영국교회 해외선교회(CMS) 헨리 벤(Henry Venn)이 먼저 주장한 선교원리로 피선교회의 자립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자립은 재정이나 행정, 전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회 구조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복음이 전파될 때 자기 문화가 아닌 수용자의 문화적 바탕 위에 복음이 심어지는 원리이다. 어쩌면 피선교지교회(younger churches)는 재정과 행정 등을 선교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이는 토착화라고 볼 수 없다. 한마디로 피선교지교회의 독립이다. 둘째로는, 기독교는 피선교지역의 비기독교적 문화 유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즉 복음과 전통문화와 관계를 의미한다. 


2. 네비우스의 토착화 원리 

‘역사적 경험원리’
전 박사는 1983년에 간행한 그의 저서 《한국교회의 선교 1》 서언에서 “특히 19세기 서구교회의 선교를 지배한 이론은 자립원리였다.”고 소개하면서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를 논술하고 있다. 특히 “네비우스는 토착화의 창시자라고 불릴 만하다”고 하면서 9장에서 ‘네비우스 고유원리’를 매우 자세히 소개하였다.6) 1890년 1월 네비우스 박사는 서울을 방문하여 두 주일간 체류했는데 이것은 한국 선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영국의 헨리 벤이 서아프리카교회에 그리고 미국의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이 하와이교회에 각각 공헌한 것처럼 초기 한국교회가 네버우스의 덕택을 크게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미국장로교회 외국선교위원회의 서기인 스피어(R. E. Speer)가 그에 대해 말하기를, “네비우스 박사는 이 세계 온 선교지역에 ‘개인을 위한 직접 전도 사업의 대변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선교를 가장 단순한 신약 형태(the simplest New Testament form)로 줄이는 일의 창시자’로 따라다녔다.”고 했다. (…) 앤더슨은 서구 민주주의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심한 잘못을 범하였다. 그것은 복음이 소개되는 지역의 토착문화에 대한 무지의 결과였다. 그러나 벤과 네비우스는 그것에 대한 무지보다는 그 토착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임으로써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네비우스는 자립을 강조했지만 그는 항상 ‘원래 정신에 적절한 복음을 만드는 것’을 시도했다. 이런 면에서 네비우스는 ‘토착화의 창시자’라고 불릴 만하다. 

좀 더 나아가 자립선교 정신은 기독교의 빠른 한국 전파에 도움이 되었다. 네비우스의 방법에 의해 영향을 받은 선교정책은 교회건물을 지을 때(선교의 동기가 비록 경제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원래 한국의 건축 양식을 사용할 것을 추천하였다. 불행하게도 이 추천은 결코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네비우스는 ‘고유문화를 서구화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서 높이 칭찬을 받아야만 한다. 그는 말하기를 “선교는 기계와 토목공학이나 외국어 혹은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군가 명백히 단언한 것처럼 그들을 개화시킴으로써 이교도의 땅을 기독교화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기독교화하고 그들 문명의 채택과 교회와 선교 형태를 그들이 개발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7) 그러나 후에 상황은 변하는 것 같았다. 토착화의 시도는 같은 초기 선교사들 즉 언더우드, 클라크(Charlse A. Clark, 곽안련[郭安連]), 게일(J. C. Gale), 헐버트((Homer B. Hulbert) 등에게만 제한되었다. 이후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한국에 서구 문화를 소개했다. 

네비우스의 새로운 선교방법은 대게 ‘10가지의 원리’로 요약되어 소개되고 있다.8)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는데, 첫째, 그는 자립선교의 기본을 성경공부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선교지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굳게 세워지면 그들 스스로 전도하는 자립교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하여 모든 초신자들이 먼저 성경을 읽고 학습함으로 복음의 진리 위에 그들의 신앙을 정립할 수 있게 하였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일정 기간 ‘원입(願入)과 학습’ 과정을 거쳐 세례를 받도록 교육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확실히 알고, 믿는 바를 공교회 앞에 고백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교회의 지도력을 세워 ‘전도인과 설교자’로 세우는 성경학교(또는 주일학교) 교육에 중점을 두어 ‘조직 교회’를 설립하게 하였다.

이렇게 선교지교회가 조직되었을 때 선교사들은 현지교회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동반자 관계에서 조력하는 역할자’로 섬기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지의 선교적 교회들이 ‘자력 전도(자전)’로 지역의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돕고, 설교자와 전도인(영수)을 세우고, 선교사 공의회가 신학교육을 감당하며 목사와 장로를 세워 ‘스스로 자치’하는 현지교회가 설립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비우스가 주장하는 바는 선교사역을 현지인들에게 이양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들이 자력 전도하는 선교적 교회의 역할을 스스로 감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최초의 중국선교사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er)는 선교사의 역할을 이렇게 표현했다. “선교사의 역할은 건축에서 거푸집과 같은 것이다. 집이 형태를 갖추면 거푸집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교사가 떠나는 것은 양자(兩者)를 위해서 좋은 것이다. 한편은 빠른 이양을 받아서 좋고, 다른 한편은 기다리는 곳으로 빨리 갈 수 있어서 좋다.” 

네비우스의 토착화 두 번째 원리는, 삼자원리라 불려지는 자립‧자치‧자전 선교방법이다. 위 의 책에서 전호진 박사가 소개한 ‘네비우스 선교전략 삼자원리’를 약술해 본다. 네비우스는 중국에 도착한 수년 후에 먼저 온 선교사들의 종래의 방법(즉 현지인 고용대리인을 통한 선교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토착화와 자립선교의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는 물질에 관심이 있는 ‘기독신자들(Rice Christians)’에게 커다란 적의심을 나타냈다. 네비우스는 경제적 성장이 어린 교회의 성장을 위협하며 불구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자치라는 면에서뿐만 아니라 전도하는 의무감이라는 전체적인 면에서도 그러했다. 네비우스는 이 새로운 원리를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실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로 인해 초기 한국선교사들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1891년 네비우스 박사 방문의 영향으로 한국에 온 장로교선교부가 채택한 선교방법으로써 규칙들은 그 후 해가 거듭됨에 따라 틀을 갖추며 그 진가를 더해갔다. 그러면 그 핵심인 삼자원리는 어떻게 그 원칙들이 실행되고 적용되었는지 알아보자. 

(1) 자립
한국교회는 그 시작부터 자립의 원칙에 의해 설립되었다. ‘소래’와 ‘제물포’에서 한국 기독신자들의 헌금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9) 대부분의 교회건물들은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나 외국의 도움없이 세워졌다. 자립의 원리는 학교, 성경 배포,병원사역까지 확산되었다. 선교 회가 주는 경제적인 도움은 단지 회중의 비용을 위한 교회 기부금에 지나지 않았다. 300여 개 국민학교의 90% 이상이 지역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10) “그 시작 때부터 한국교회 토착화의 기반인 자립이 제도적인 사업에 있어서 커다란 강조점의 하나였다” 장로교회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자립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영적인 양상으로 생각되었다. 그들은 어떤 한 지역에서 시작 때부터 교회 자체가 지니는 자립의 능력을 믿었다. 가난과 자립이라는 문제와는 관련이 없었다. 자립이 타당하다고 믿었으므로 그들은 보다 연약한 교회(young church)에 전도 명령을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11) 그러면 어떤 기초 위에 네비우스는 자립을 설정했는가? 앤더슨과 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립교회가 생겨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실히 믿었으나 네비우스는 성경에 보다 강조점을 두었다. 그는 “봉사하던 교회를 떠날 때 하나님과 그의 은혜의 역사에 새 신자들을 맡겼던”(행 20:32) 바울의 형태를 따랐다. 초기 선교사들은 ‘교회 성장의 가장 큰 비결이 이 성경공부반 제도’라고 믿었다. 시작 때부터 한국교회는 성경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네비우스는 한국교회의 모든 성공은 성경공부를 강조한 것이 그 기초가 되었다고 믿었다. 만약 이것이 잘 진행된다면 자립·자전·자치에 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잘 양육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있어서 성경은 ‘정확무오한 언어로 된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정확무오한 책’이다. 

(2) 자전
한국교회에서 자전(自傳)은 자립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이루어졌다. 무보수의 지도자들은 실제적으로 시골지역(Sub-stations)에서 지교회들을 담당했다. 이러한 지교회들은 전도를 할 수 있는 한두 명의 사람을 따로 세워 개종하지 않은 이웃을 가르치거나 또는 순회 방문을 하기 위해 파송한다. 그래서 그 출발부터 한국교회는 ‘적어도 다른 사람을 전도하려고 애쓰는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져 왔다.’ 자전의 방법은 다양하다. 선교사들의 심방, 시장전도, 사랑방운동, 주막전도, 전도지 배부, 신앙부흥 전도집회, 성경공부반 등이다. 1907년 한국장로회가 장로교회 선교회 대표자들이 조심스레 세운 계획에 따라 조직되었을 때 장로회는 이기풍 목사를 한국 남해에 위치한 제주도에 전도자로 보냈다.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회는 직접적인 전도운동에 강조점을 두었다. 교육과 의료사업이 중요하게 생각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12) 

(3) 자치
네비우스는 그의 논문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에서 교회가 자치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상주하는 지도자가 교회에 임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은 지도자는 조력자(Helper)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며, 조수(助手)도 지도자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도자는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을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것도 자기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비우스 원리에 따르면 한국교회는 목사, 전도사, 조수, 통치장로 그리고 영수라고 불리는 대리자의 직분을 세움으로 해서 토착화한 교회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 선교평의회의 정책에 따르면 1907년 한국장로교 장로회가 처음 조직되었을 때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장로교회들은 이 장로회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 인정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그리스도교회의 역사적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의 관계에 있어서 선교사역이라는 것은 한국교회와 완전하게 상호 작용을 해왔다. 그래서 때때로 선교사들은 원주민교회에서 회원임을 즐거워했다.13) 


3. 네비우스 선교방식의 적용: 한국교회의 토착화와 자립선교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팔머(Spencer J. Palmer) 교수는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토착화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중국에서는 서양선교사들이 서구의 문화와 사상을 중국에 강요함으로 선교에 실패했지만, 한국에서는 선교사들이 한국 문화와 생활양식에 우호적 자세를 취하였기 때문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어느 점에서 그의 견해는 타당하다. 한국교회는 재정, 행정, 전도에 있어서 선교사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자립교회로 출발하였다. 이것이 토착화의 제1 단계이다. 다음 교회건축 양식도 서구의 것이 아닌 한국 고유의 기와집을 그대로 채택했다. 언더우드는 한국식으로 건축할 것을 강조하였다.
              ▲평양 장대현교회(1900년)

그러나 20세기 초반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미국 문화의 우월감을 가지고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으며, 특히 신문화의 수입으로 한국교회는 서구 지식 수용에 급급한 나머지 토착화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또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보수신학은 교리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문화 문제는 도외시하였다. 이러한 서구화에 가장 강한 반발을 드러낸 사람은 《천로역정》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또한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한 게일 선교사이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서양 지식 흡수에 급급한 나머지 고대 문학 지식은 전혀 무지하다고 비판하고 교육과 문서 사업을 통한 민족정신 함양을 고취하였다.14) 


제발 돈 선교 그만 합시다 
전호진 박사는 2004년 KWMA 선교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제발 돈 선교 그만합시다’라고 단호한 표제어로 한국교회 선교전략의 수정을 요구했다.15) 최근 미국의 한 선교학자는 ‘현대주의의 도전을 받는 선교’라는 주제에서 자본주의적 선교를 걸림돌로 지적하였다. 즉 달러로 영혼을 사는 선교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인도 등지에서는 원주민이 기독교로 개종하면 얼마를 받았냐고 물어와 동네 사람들에게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한국교회도 역시 거품경제를 타고 돈을 앞세운 것은 사실이다. 

선교의 목표는 선교지에서 헌신적인 지도자와 평신도를 먼저 얻는 것이다. 한 영혼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일부 선교사들은 아기를 임신하기도 전에 기저귀부터 먼저 만들어 주려고 한다. 건물 위주의 프로젝트는 그들이 계획하고 그들이 어느 정도 자구력을 갖추었을 때 우리는 조력자나 조연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에서도 과감하게 ‘edifice complex(건물강박관념)’를 탈피해야 한다. 국내 일부 교회들도 과도한 건물투자로 어려움을 겪는데 선교지에서 이를 반복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선교는 자립원리를 신축성 있게 실천하고 가르쳐야 한다. 

또 그는 <월간목회>에 특집 글로 기고한 ‘한국선교 25주년에 대한 평가’에서 선교대국의 위상을 이야기하는 한국교회가 이제 자신을 돌아보며, 장점만 아니라 약함을 보완하고 반성하며 전략적인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적시하였다. 서구선교는 1792년 윌리엄 캐리가 인도에 간 것을 개신교선교의 효시로 본다. 그리고 50년이 지나서 대대적 반성과 더불어 방향전환을 하였다. 즉 ‘선 문화 후 복음화’에서 ‘선 복음화 후 문화’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여기에는 헨리 벤과 루퍼스 앤드슨의 3자 원리가 중요한 전략으로 서구선교의 합의(consensus)를 이뤄낸다. 우리도 선교 25년의 방향 전환은 아니지만 적어도 합의점을 찾아 힘차게 전진하여야 할 것이다. (…) 한국선교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성도 해야 한다. 그동안 들어온 충고와 자성을 요약하면 선교전략 부재, 돈 선교, 협력부족, 한국 문화 중심주의, 중복 투자, 언어 능력 부족 등이 있다.16) 


4. 아시아 기독교의 현재와 미래

‘시대적 전략원리’
하나님의 선교를 ‘토착화와 자립선교’의 관점에서 전호진 박사의 선교신학과 정신을 세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제 세 번째로 ‘시대적 전략원리’를 살펴볼 차례이다. 전호진 박사는 3라운드(3rd Round) 시기의 인생을 선교지 동남아에서 십수 년 동안 보내면서 열정적인 연구와 교육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2014년에 출판한 저서 《아시아선교: 과거 현재 미래》는 탁월한 혜안으로 현장의 경험을 더한 생생한 역작이다. 아시아 기독교의 현재와 미래를 중심으로 ‘전호진 박사의 토착화와 자립선교 정신’을 시대적 전략원리의 관점에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책의 서언에서 저자는 아시아선교의 불안한 미래 과제를 열거하면서 먼저 ‘성경적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라’고 방향성에 대한 화두를 꺼냈다.17)

1) 아시아기독교: 과거와 현재 상황 
저자는 “아시아에서 기독교는 이제 튼튼히 뿌리를 내릴지 혹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A. 스캇 모로우(A. Scott Moreau)가 편집한 《복음주의 선교학 사전(Evangelical Dictionary of World Missions)》에 기재된 아시아 기독교의 7가지 주요 이슈를 소개한다. (1) 아직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서 더 전도되어야 한다. (2) 지도자와 지도력 부족 (3) 평신도운동 강화 (4) 토착화와 상황화의 요구 (5) 아시아 신학 종교대화, 종교다원주의, 인권사상 등 신학의 혼돈 (6) 전도와 봉사의 통전적 선교 요구 (7) 기존교회의 부흥과 갱신이다.18) 

저자는 이는 “아시아의 상황을 비교적 잘 설명하고 있지만 성경적 기독교가 전파되고 세워지는지, 서구선교의 이론이나 자금이나 기술과 정보 없이 아시아교회 스스로 수준 높은 선교 이론과 기술, 정보와 자금이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서구선교는 이론, 자금, 조직관리 분야에서 아직도 서구에 의존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였다.19) 또한 저자는 아시아 개신교선교의 역부족을 허버트 케인 박사의 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위대한 세기인 19세기는 서구 개신교회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확대되는 시기였다. 개신교선교는 많은 영웅적 선교사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는 어느 정도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을 뿐 전체 아시안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허버트 케인 박사는 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다섯 가지를 든다. (1) 기독교보다 오래된 문명과 조우 (2) 기독교보다 오래된 종교와 대결 (3) 사회,종교적 인습과 편견 (4) 서구 식민주의와 기독교의 동일시 (5) 기독교의 배타적 교리이다.20) 케인 박사의 지적대로 아시아선교는 종교의 저항을 너무 많이 받았다. 그만큼 수용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을 만큼 혼합의 가능성 역시 크다. 서구 식민주의로 인한 반서구 감정은 기독교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아시아의 기독교선교는 주로 샤머니즘의 사람들에게 즉 지배계급이 아닌 소수부족이나 변두리 사람들에게 전도가 되고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각 나라의 주류 인종들에게 기독교는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이점에서 태평양 시대의 선교는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런데 인도에서 최근 브라만 계층 개종자가 일어난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직은 극소수이다.21) 저자는 아시아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으로는 “기독교는 아직도 변두리 세력으로 머물고 있으며, 인종적으로는 소수인종을 중심으로 교회가 성장하여 주류 세력은 아직 복음화가 멀었다. 따라서 신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이 많아서 사회적 영향력이 적다”는 사실을 태국,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베트남, 캄보디아, 중동의 몇 나라 등 각 나라의 예로 자세히 열거하면서 “대부분 아시아 나라에서 중산층, 지식인들이 기독교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교회가 현재의 약점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지도력의 소요가 있음을 깨우치고 있다.

저자는 현재 아시아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7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 그 목록만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소수민족에게 집중된 기독교 (2) 하층민과 가난한 교회 (3) 신학의 위기 (4) 지도력 위기: 폐쇄주의와 권위주의 (5) 목회자의 자질 (6) 신학교육의 문제 (7) 맹목적 신자-하나님의 자손22) 

2) 한국선교의 미래 방향 
전호진 박사는 그의 책 《기독교 박해시대: 한국교회의 선교방향》에서 이제 선교 2위 국가인 한국이 가야 할 미래 방향을 제안한다. 저자는 선교지의 시급한 이슈 몇 가지를 적시하고 있다. 

첫째, 재산 문제이다. 많은 경우 건물을 지어주고 재산권 법률등기에 실패하여 현지인에게 재산을 빼앗기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제 선교사나 후원교회도 건물 지어주는 선교는 신중해야 할 때가 왔다. 교회당(건물)과 교회를 동일시하는 교회관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둘째, 자립 가망이 없는 교회: 언제까지 후원해야 하는가? 자문하고 있다. “많은 선교사들은 고용 사역자(paid workers)와 함께 교회를 개척하여 생활비도 주고 교회 운영비도 지원한다. 이렇게 시작한 지 10년, 20년이 되어도 자립 가망이 없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만약 현 상태에서 지원을 중단하면 문을 닫는 교회가 많다.” 이는 애초 선교사가 토착화와 자립선교를 목표로 하지 않은 전략의 실패라고 보아야 한다. 많은 서구선교사들의 관리형 선교방식을 비판없이 답습한 결과인 것이다. 어떤 한 나라는 서양선교사가 떠난 뒤 문 닫은 교회가 90% 이상이라는 통계도 이미 나와 있다 

셋째, 한국선교사가 개척한 교회들 중에 “현지교회에 가입하거나 연대하지 않은 독립교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넷째, “이양할 현지인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적 이슈라는 것이다. 

그는 그의 책 결론에서 ‘미래 한국선교의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모델로 회귀를 제안한다. 초기 한국교회가 선교의 모델이다. 1900년 ‘뉴욕선교대회’는 19세기 후반 선교지에서 성공한 선교의 모델로 한국교회를 소개하였다. 100년 전 최초의 세계선교대회인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도 한국교회 성장을 경이적인 것으로 표현하였다. 20세기 초기 한국교회의 특징에 대하여 달비 풀톤은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기도하는 교회, 주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 성경을 연구하는 교회”라고 칭찬하였다. 그는  또 “초기 한국교회 선교의 모델을 6가지로 정리한 후 이상과 같이 초기 서양선교사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한국교회가 실천한 토착화와 자립선교의 원리와 전략은 지금도 선교지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확신하면서 미래 한국선교의 방향을 제안한다.”고 하였다.

그가 12가지로 제안하고 있는 내용의 제목을 소개한다.23) (1) 자립, 자치, 자전하는 토착적 자립교회 설립 (2) 현지교회 기구를 통한 선교재정 후원의 모범적인 사례 추구 (3) 초대 신약교회 같은 가정교회 모델 구현 (4) 주도권을 갖지 않는 바람직한 교회당 지원 (5) 선교지의 최우선 과제인 지도자 양성 (6) 신유목민 시대, 지역보다 사람 중심의 선교로 전환 (7) 선교지교회와 파트너십 강화 (8)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선교 전략적 집중 (9) 평신도 전문인선교 시대 (10) 시니어선교 시대 (11) 비즈니스 자비량선교 강화 (12) 기타 통전적 선교 개발 


결론 
전호진 박사는 가장 최근 그의 책 《기독교 박해시대 한국선교의 방향》(선교횃불, 2018)에서 19세기 자립 모델의 교회로 미얀마, 태국의 카렌족교회와 한국교회를 소개하면서 “한국교회는 자립선교로 성공한 대표적 경우이다. 19세기 후반 한국교회가 급성장한 선교전략적 요인은 네비우스 원리, 즉 성경공부와 자립원리”였다고 요약하였다. 그리고 독일의 한 신학자가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두고 논평한 흥미로운 글을 소개하고 있다. “초기 한국교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pulling factor)이 있었고, 교회 밖에서는 미는(pushing factor) 힘이 있었다. 당시 교회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점이 있었고, 사회도 자신들은 교회에 안 가면서도 교회에 가라고 등을 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한국교회는 그러한 요소가 이미 사라졌다고 평하였다.”24) 진정한 복음화는 사회·문화적인 변혁을 동반한 교회 즉 땅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다. 신약성경의 예수 공동체는 이웃과 사회에서 칭송을 받으며 질적, 양적, 지리적으로 성장한 ‘선교적 교회’의 모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 하신 그 설계도는 성경에 있는 바로 ‘그 교회’이다. 

또 그는 사려 깊은 선교 연구가로서 “아시아는 영적으로 척박한 땅이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의 신학자 오오키 히데오(大木英夫)가 한 말을 인용한다.25) “환태평양 시대의 앵글로색슨의 개신교선교는 어떤 점에서는 패배, 혹은 고전하고 있다. 환태평양 시대 기독교선교는 과거 어느 때에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개신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직면한다.” 한국교회가 21세기 선교적 미래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질문하고 있다. 또 전호진 박사는 그의 저술과 논문 여러 곳에서 계속해서 한국교회에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제라도 성경적 기독교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필자의 33년 선교사역을 돌이켜 보니 건물보다 사람에게 집중하고 또 지도자 양성에 초심을 잃지 않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나름 진력하며 달려오게 된 것은 스승의 큰 영향이었음을 떠오르게 한다. 사도 바울이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4)라고 교훈 한 것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나 또한 바른 삶으로 아름다운 스승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미주  
1) 전호진, “선교, 제대로 알고 바르게 합시다”, 월간고신: (1999년, vol.12), p.40.
2) 전호진, 《한국교회의 선교 1》, (고신선교개발연구원 발행, 논문집), 정음출판사, 1983. 
3) 전호진, 《기독교 박해시대 -한국 선교의 방향-》, 선교횃불, 2018. 
4) 전호진, “한국교회 토착화 어디까지 왔나”, 월간고신, 1982, vol.1(6권), pp.23-24. 
5) 전호진, 《선교학》, 개혁주의신행협회, 2000, pp.155-164. 저자는 토착화의 성경원리와 방법론의 4가지 학설(순응설, 소유설, 적응설, 변형설), 한국교회에서 적용한 것을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6) 전호진, 《한국교회의 선교 1》(고신선교개발연구원 발행, 논문집), 정음출판사, 1983, pp.157-190. 
7) J. Nevius, China, p.336. 
8) John L. Nevius, The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Nutley: Presbyterian). 그의 논문에는 서구교회와 선교사들의 종래의 선교방식 6가지를 지적하고, 새로운 전략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네비우스는 이 새로운 원리를 중국 산둥성에서 실천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로 인해 초기 한국선교사들의 초대를 받았다. 
9) George Paik,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Pyeong Yang: Union Christian College Press, 1929), p.152. 
10) Arthur J. Brown, One Hu dred Years(New York:Fleming H. Revel Com, 1936), Vol.1, p.425. 
11) Brown, pp.425-426. 
12) 전호진, 《한국교회의 선교 1》, (네비우스의 고유원리), pp.167-168.
13) 위의 책, p.169.
14) 전호진, “한국교회 토착화 어디까지 왔나”, (월간고신: 1982, vol.1), pp.23-24.
15) 전호진, “아시아 기독교와 선교의 방향”, (한국선교 KMQ: 2004년, vol.3), pp.22-23. 
16) 전호진, “한국교회 선교 25년 평가”, (월간목회: 2006년 vol.7), (359권). 
17) 전호진, 《아시아 기독교: 과거 현재 미래》, 영문, 2016.
18) A Scott Moreau, ed., Evangelical Dictionary of World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2000), p.83. 
19) 전호진, 위의 책, p.85.
20) J. Herbert Kane, 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 Grand Rapids: Baker Book, 1974), 199-204. 
21) 전호진, 앞의 책, p.90. 더 연구가 필요한 분은 저자의 각 나라의 자세한 예를 참조하시라. 
22) 위의 책, p.140. 
23) 위의 제목들은 필자가 내용을 고려하여 부분적으로 용어를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24) 전호진, 《기독교 박해시대 한국선교의 방향》, (선교횃불, 2018), p.128. 
25) 전호진, “아시아의 기독교와 선교의 방향”, (KMQ: 2004년, vol.3), p.23. 






김한중 | 중국선교사, KPM 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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