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감독 종멍훙(钟孟宏)이 연출한 이 영화는 제78회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Orizzonti·지평선) 부문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제58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马奖)에서 작품상, 각본상, 영화음악상,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영화는 2020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를 배경으로 한다. 워킹맘 뤄핀원(罗品文, 贾静雯 분)과 고3 딸 왕징(王净, 王静 분)의 자가격리를 통하여 겪게 되는 가족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 모녀관계는 평소에도 덜커덩 소리를 내다가 온종일 함께 지내면서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게 된다.
예상치 못한 시대의 도래와 회복 코로나19는 지구의 어느 한 지역에서 온 세계로 퍼지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갑작스럽게 시간과 지역을 초월하여 전 세계 인류에게 미증유의 위기를 가져왔다.
이런 갑작스러운 충격은 영화의 도입부부터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마 뤄핀원는 평소처럼 딸 왕징이 학교에 늦지 않도록 닦달한다. 하지만 뤄핀원은 직장에서 회의 도중 같은 반 친구가 확진이 되어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딸의 전화를 받는다. 결국 자신도 집에서 격리하며 출근하지 말라는 직장의 통보를 받는다.
뤄핀원은 딸 왕징을 전남편 왕치원(王奇文, 李李仁 분)에게 맡기려고 한다. 하지만 왕징은 왕치원의 집에서 초등학생 이복동생을 보고 3년 전에 이혼한 아버지가 오랫동안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새엄마와 이복동생이 있는 아버지의 집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왕징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뤄핀원이 밥을 먹으라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방 안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왕징은 일 없으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지라는 쪽지를 엄마에게 건넨다. 모녀는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휴대폰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 긴장 국면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뤄핀원은 왕징이 식사하고 난 뒤 카레라이스를 담은 쟁반 위에 자신에 대한 욕설을 썼다고 전남편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뤄핀원은 비가 오지도 않는데 비가 오는 줄 알고 딸을 찾으러 나갔다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왕징은 외국인 회사의 중견 간부인 엄마 뤄핀원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왕징은 자신의 반항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엄마와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코로나19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또 우렁찬 소리를 내는 폭포수처럼 우리를 엄습했다. 그러나 도둑처럼 다가온 코로나19는 사람들을 영화 속 모녀처럼 갈등의 극한으로 치닫게 하다가도 때로는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길을 모색하게 한다.
잠재적인 불안과 불편함 바이러스는 잠복기를 거쳐서 발병한다. 우리나라 정치계는 적폐라는 말이 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사회나 질병뿐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도 억눌린 감정은 잠복기를 지나면 폭발하기 마련이다.
코로나19로 바뀐 일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마스크 쓰기이다. 마스크 쓰기는 코로나19 시기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파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모녀가 사는 아파트는 외부 공사로 파란색 플라스틱 비닐 가림막이 처져 있다. 마스크와 가림막의 파란색은 어둠의 그림자로 정신적인 우울감을 상징한다. 마스크는 병원균 등을 막기 위해 입과 코를 가리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입은 병균이 침투하고 전파하는 매개체이다. 또한 말은 바이러스처럼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영화 속 가족은 자신도 모르게 말로써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왕징은 “아이는 알지 못하는 어른의 세계가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강하게 반발했다. 왕징은 외도를 둘러대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뤄핀원은 딸이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고 전남편에게 하소연했지만, 자신이 욕을 한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뤄핀원은 직장에서 저조한 실적으로 감봉을 강요당하고, 아파트는 거액의 대출금 때문에 법원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고, 아파트 관리비와 가사 도우미비도 몇 개월씩 밀려 있다. 뤄핀원은 난간이 없는 위험한 곳으로 달려가는 아이를 구하려다 오히려 어떤 엄마가 멈추지 못하고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자식과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고 고군분투하는 암울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였다. 또 뤄핀원은 주방에서 주전자가 폭발할 지경까지 끓어도 알아차리지 못해 화재까지 발생한다.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달해 뤄핀원이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왕징은 반항하는 청소년에서 가정을 돌보는 성숙한 딸로 성장한다. 왕징은 뤄핀원의 퇴직 절차, 아파트 처분, 밀린 청구서들을 하나씩 해결하려고 나섰다.
팬데믹 패닉(pandemic panic) 코로나19로 사람 간의 접촉이 제한되고 ‘거리 두기’와 같은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였다. 익숙했던 평범한 일상들은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 영화는 가정극이지만 마치 서스펜스 공포물로 비춰진다. 어쩌면 무리한 설정이라고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사람을 공황상태에 이르게 한다. 코로나19의 종국적인 공포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늘 언제나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절대적인 안정과 안전은 존재하지 않고 수시로 상황은 변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폐쇄 공간에서 모녀의 관계는 긴장을 초월한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뤄핀원은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도 매일 출근해 고객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귀가한다. 뤄핀원은 출근복 차림을 하고 밤새 침대 곁에 앉아서 딸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이혼, 실직, 딸과 불화 등 연이은 충격의 여파로 폭포 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앓게 된다. 실직한 뤄핀원은 금전적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딸이 자기 방에서 금과 예금통장을 훔쳤다는 망상을 하기에 이른다. 믿음의 연대는 희망이다 인간의 선한 의지를 믿으려 노력하며 햇살 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의사 선생님은 왕징에게 엄마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엄마의 말을 부정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뤄핀원이 집 문밖에서 경비병이 서성인다고 말하자 왕징은 밖으로 나가 경비병을 쫓아내는 연기를 하였다. 뤄핀원이 응접실에 뱀이 들어왔다고 하자 왕징은 119구조대를 호출하였다. 남들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비웃었지만, 구조대원이 가구 밑에서 뱀을 발견한다.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 세태를 꼬집는 대목이다.
엄마 뤄핀원은 딸 왕징에게 “괜찮아요?”라고 묻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뤄핀원은 “빨리 회복해서 너와 함께 잘 살거야.”라고 다짐했다. 뤄핀원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해서 마트 직원채용에 지원했다. 외도하고 재혼한 남편이 돌아와 함께 살 터전으로 여겼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빌라로 이사하였다.
아파트 외부 공사가 끝나고 외벽을 둘러쌌던 가림막이 걷히자 창문에 햇빛이 비치며 모녀의 얼굴에 생기와 미소가 다시 살아났다. 이는 종멍훙 감독의 전작 《아호, 나의 아들(阳光普照, A Sun)》(2019)에서 나무숲 사이로 햇살이 자전거를 탄 아들과 어머니의 눈가에 비치는 장면과 오버랩한다. 두 영화의 모녀와 모자를 비추는 햇살은 갈등의 그늘을 걷어내는 관계의 회복이며 화해를 말한다.
환우 루쉬안(如萱, 魏如萱 분)은 뤄핀원에게 병원에 걸려 있는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그림 <풍경 속의 경주마(Racehorses in a Landscape)>는 오랫동안 햇볕으로 색이 바래서 파란색만 남았다고 말했다. 작열하는 태양은 사람들을 숨게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은 사람들에게 평온함과 온유함을 가져다준다.
영화는 사람들을 비현실적으로 선하게 묘사했다. 월급을 3개월 치나 못 받은 가사 도우미는 배고픈 왕징에게 밥을 사주고, 화재로 어수선한 집도 청소해주고 빨래까지 해준다. 뤄핀원이 입원한 병원의 의사는 친절하고, 루쉬안은 뤄핀원의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부동산중개소 직원이 아파트 화재를 구실로 매수자에게 수수료를 받고 시가보다 헐값에 계약을 체결하려고 한 사실을 확인한 상사는 그 직원을 호되게 질책하고 뤄핀원에게 2주 내 좋은 가격에 매도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마트 점장은 뤄핀원의 과거 이력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발 벗고 나서서 직장 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모녀의 이사도 적극 도와준다. 코로나19 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의 헌신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영화는 이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선한 의지로 연대하면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실 세계보다 세상과 사람을 따뜻하게 그려내 냉혹한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었다.
왕징은 친구들과 계곡으로 소풍을 가서 물놀이를 하다가 상류 댐에서 방출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구급대원이 학생들을 한 명씩 구출하는 장면이 TV 속보로 생중계되었다. 뤄핀원은 물놀이 사고 소식을 접하고 충격 속에서 ‘걱정하지 마세요(don't sweat it)’라는 문장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이 구조되는 장면을 지켜본다. 급류로 잃어버릴 뻔한 딸의 생환을 암시했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위로와 희망을 전하였다.
감독은 이 영화는 가족영화일 뿐 아니라 코로나19로 격리되고 억압된 사람들 간의 소원해진 거리감을 강력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泽明)의 그림자가 종종 나타난다. 그래서 누구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도데스카덴 (どですかでん)》(1970)을 떠오르게 한다고도 말한다. 도쿄 빈민가에서 사는 주인공 로쿠찬(六ちゃん)은 ‘전차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다. 비가 내려도 해가 기울어도 매일 전차를 운전하는 상상을 하면서 살아간다.
뤄핀원은 정신병원에서 만난 환우 루쉬안이 부르는 ‘선택(抉择)’이라는 제목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 희망은 선택이 아니라 결정해야 하는 의무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위드(WITH)코로나와 결별을 선언하고, 이것저것 중에 선택하는 것이 아닌 중차대한 상황에서 희망을 붙들기로 결행한다. 꽃필 봄을 앞두고 우직하게 매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