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크라이나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러시아 편에 완전히 서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을 인정하고, 유엔(UN) 투표에서 기권하며 평화적으로 위기를 해결할 것을 주장했다. 1990년대부터 우크라이나 방산업체와 인재는 중국 군사력 도약의 일등공신이었고, 양국은 긴밀한 무역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중국인유학생이 많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왕훙(网红, 인터넷 스타)은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전 세계는 중국의 입장에 주목했다.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국가의 외교 보이콧 속에서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시진핑(习近平) 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8백억 달러에 달하는 15개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그 핵심은 ‘탈달러화’거래였다. 푸틴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여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중국과 러시아 양국이 우크라이나 침범 문제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전쟁이 시작된 뒤 백악관은 줄곧 중국 정부가 물러설 것을 강요했고, 미국 주요 언론은 중국이 러시아를 암암리에 지지하고 있다고 부정적인 정보를 폭로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새로운 축으로 묘사했다. 전쟁 발발 후 입장이 난처해진 중국은 러시아의 국가안보 검토와 지정학적 관계를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국가의 영토주권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지해야 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중립’을 선택했다.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지 않았고, 서방국가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기권표를 던졌다.
그러나 중국은 크리미아(크림반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와 동티모르 양국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영토 보존을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오랫동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여 대만과 상호 사무소를 설치하지 않았다(오히려 러시아는 대만과 상호 사무소가 있다). 중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협상을 통하여 이견을 해결하고, 평화를 회복할 것’을 강조하였다.
서방의 일부 언론은 중국이 러시아에 의해 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결국 중국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시아계 미국 정치학 교수이자 소련 전 지도자 흐루쇼프(Khrushchev)의 증손녀 흐루쇼바(Khrushcheva)는 논평을 통해 푸틴이 서방의 제재를 받아 중국에 더 의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전란의 참상이 확대되고, 러시아에 대한 글로벌 보이콧이 급증하면서 중국 정부의 대외 입장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이는 전쟁으로 중국과 우크라이나 사이 해군 협력을 포함한 모든 협력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외 우크라이나인과 중국인의 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이며 중국 개혁개방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역할이 남달랐다는 점도 크게 고려됐다.
우크라이나의 공헌 냉전 이후 중국은 1992년 1월 우크라이나와 수교를 맺었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시진핑 주석과 젤렌스키(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로 축전을 보내 양국은 동반자 관계임을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 더할 나위 없이 큰 공을 세웠다. 우크라이나의 세계적인 방위산업 설비와 인재는 중국 국방력 강화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원래 구소련의 핵 군사력과 군사중공업의 기지였다. 냉전 종식 후 우크라이나는 한때 세계 3위의 군사력과 핵보유국이 되었는데, 이는 구소련 군사력의 35%를 우크라이나가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기계 제조업, 연료 동력업과 첨단 기술 부문을 포함하여 주로 로켓장치, 우주 항해장치, 군용 함선, 비행기와 미사일 등을 생산했다. 우크라이나가 평화 독립 시기에 접어들면서 핵무기 체계가 해체되었고, 수많은 고급 인재들이 활로를 찾아 헤맸다. 그중에서 수천 명의 고급 인재를 중국이 초빙하는 이른바 쌍인공정(双引工程, 기술, 인재 인입공정)을 통해 중국 방산 업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중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쇄빙선(破冰船)인 설용(雪龙)호와 대형 보급함 청해호(青海湖)호와 항공모함 요녕(辽宁)호는 모두 우크라이나에서 온 것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을 자랑스럽게 하는 항공모함, 만 톤(t) 대구축함, 은신 5대기, 함재기, 상조진 레이더, 방공미사일, 99A 주전탱크 등의 성과는 모두 우크라이나 전문가들의 도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중국은 전문가들과 가족들에게 안정적인 생활조건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우크라이나에 민생과 관련된 경공업과 상품을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옥수수 수출의 최대국이 되었다.
양국의 밀접한 경제무역 관계 2013년 당시 유시첸코(Yushchenko)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중국을 정식 방문하면서 양국의 무역 협력관계는 급 물살을 타게 된다. 그해 중국의 우크라이나 차관 규모는 80억 달러에 달했다. 그 전 10여 년간 중국의 우크라이나 차관 총액은 100억 달러였다. 2019년 중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우크라이나의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수교 초기 양국의 무역액은 겨우 2억여 달러에 불과했다. 2021년에 이르러 우크라이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중국의 제3위 무역국, 중국은 우크라이나의 제1위 무역국이 되었다. 2020년 양국의 무역액은 146억 6천만 달러로 2019년보다 23% 증가했다. 2021년 양국의 무역 총액은 189억 8천만 달러에 이르러 2013년에 비해 80%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1년 우크라이나가 중국에 수출한 철광석, 옥수수, 해바라기씨 기름 등 상품은 80억 달러에 달하지만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수출한 상품은 주로 기계와 소비 물품이었다.
우크라이나와 중국은 2011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2017년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one belt on road)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중국의 중량그룹(中粮集团), 중국태평양건설그룹(中国太平洋建设集团), 중국항만엔지니어링회사(中国港湾工程公司)와 화웨이(华为) 등 대기업들이 우크라이나의 투자를 이끌어내 우크라이나에 부두(니콜라예프[Nikolayev] 항구), 지하철 키이우(Kyiv), 대형 풍력발전소 등을 건설했다. 화웨이는 미국과 유럽의 제재 속에서도 2019년 키이우 지하철에 4G 네트워크를 설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2020년 우크라이나의 네트워크 안전을 확보하고 개선하는 사업에 선정되었다. 중국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도급제 엔지니어링시장(工程市场)에서 이미 2년 연속 20억 달러 이상의 신규 계약을 맺고 있다. 2021년 11월 일대일로의 우크라이나–중국-유럽을 잇는 열차가 일부 차질 끝에 마침내 개통되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는‘신실크로드’의 중요한 교통 중심지가 되었다.
경제무역 협력을 제외하고 중국과 우크라이나는 문화와 인적교류가 매우 빈번하다. 중국의 민간기업, 특히 원저우(温州) 기업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양국의 다문화 결혼도 해마다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대학교육, 특히 의학교육 수준이 양호하고, 유럽과 미국의 다른 국가에 비해 학비가 연 6천~8천 달러로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인유학생 수도 약 5천 명에 이른다. 2017년 우크라이나의 67개 대학과 중국의 200여 개 대학은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2021년 양국의 대학연맹이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젊은 세대의 교류는 양국관계에 전례 없는 ‘세계화의 기본 요소’로 작용했다.
‘중국위협론’ 타파한 우크라이나 색깔혁명(颜色革命)의 물결 속에서 우크라이나도 한때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일환이 되었다. 2014년 크로아티아 파동 이후 러시아와 대립이 심해지자 우크라이나 포로셴코(Proshenko) 정부는 서방국가들을 더욱 의지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소리가 컸는데 이는 중국과 우크라이나 관계에 큰 도전을 가져왔다. 젤렌스키는 취임 후 가입신청한 유럽연합(EU)과 나토에 번번히 거절을 당했다. 우크라이나는 ‘작은 러시아’라고 불렸던 자국을 이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미국과 중국 사이 균형정책을 펼쳤다. 러시아를 견제하고 앞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전쟁 발생 시 중국의 경제적 지지를 얻기 위한 복선을 긋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도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경우였다.
코로나19 기간 미국과 유럽이 방역에 실패하자 우크라이나는 중국과 경제무역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2021년 여름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캐나다에서 선언한 ‘신장 인권 상황에 관한 공동성명(新疆人权状况的联合声明)’을 철회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중시하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상호 주권과 영토를 존중하는 원칙을 이행하여 양국관계의 발전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조치에 미국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중국 정부는 양국의 인프라 시설과 건설 분야 협력을 심화할 것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南华早报)는 중국과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협정 체결은 의외라고 보도했다.
더 주목할 것은 미국 퓨(PEW, 皮尤)리서치센터의 전 세계 중국 이미지 조사에 대한 결과이다.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이 동맹을 맺은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 인구의 57%가 중국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전쟁에서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의 편을 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젤렌스키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부와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은 여전히 중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출처 | <아주주간(亞洲週刊)> 2022年10期(2022/3/7-3/13) 번역 | 하늘브릿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