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오늘, 중국에서 1989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门) 유혈사태 이래 서방의 지속적인 대중국 인권 압박과 경제제재, 소련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 등으로 인해 더 이상 개혁개방을 추진할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보수파를 중심으로 팽배했다. 그리고 이를 한 순간에 뒤집는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 1월 1일 당 중앙 판공청이 광둥(广东)성 위원회에 극비 전보를 보냈다. “덩샤오핑(邓小平) 동지가 남쪽에서 쉬려 한다. 준비하기 바란다.” 단 두 줄의 전보가 중국의 미래를 바꿀지는 당시 그 누구도 몰랐다.
생산력 신장, 국력 증진, 인민의 삶 향상 여부가 정책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과감하게 실행하되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는 이렇게 등장했다
88세의 덩샤오핑은 1월 18일부터 2월 21일까지 우한(武汉),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상하이(上海) 등 주요 경제도시들을 시찰하면서 개혁개방 확대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역설했다. “혁명은 생산력을 해방하는 것이며 개혁도 생산력을 해방하는 것이다. 개혁개방은 담력을 크게 갖고 과감하게 실험해야 한다.” “옳다고 생각한 것은 대담하게 시험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의 생산력을 신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사회주의 국가의 종합국력을 증강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 “계획 요소가 많은지, 시장 요소가 많은지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차이가 아니다. 계획과 시장은 모두 경제수단이다.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의 해방, 생산력의 발전, 착취의 소멸, 양극화 해소, 궁극적으로 공동부유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인류사회가 만든 모든 문명 성과를 과감히 흡수하고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자본주의 선진국의 경영방식 등을 배워야 한다. 기본노선은 100년 동안 관리해야 하며, 흔들려서는 안 된다.” 생산력 신장, 국력 증진, 인민의 삶 향상 여부가 정책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과감하게 실행하되 100년 동안 흔들림 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讲话)’는 이렇게 등장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년인 2049년까지 내다본 덩샤오핑의 사자후는 1987년 중국공산당 13기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식 채택된 ‘1개 중심(一个中心), 2개 기본점(两个基本点)’을 보다 확고히 했다. 여기서 1개 중심은 경제건설, 2개 기본점은 개혁개방과 4개항 기본원칙을 의미한다. 4개항 기본원칙은 사회주의 노선, 인민민주주의 독재, 중국공산당의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泽东)사상을 포함한다. 즉, 경제건설을 목적으로 하되 이를 위해 개혁개방과 4개항 기본원칙을 지킨다는 것이다. 남순강화, 평당원 덩샤오핑의 메시지는 언론매체를 통해 전 인민들에게 널리 각인됐고 보수파의 목소리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장쩌민(江泽民) 당 총서기가 이끈 중국 지도부는 개혁개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현재 중국이 미국을 대응할 수 있는 G2국가로 우뚝 서게 된 데는 30년 전 남순강화와 장쩌민, 후진타오(胡锦涛), 시진핑(习近平) 등 중국 최고 지도부의 중단 없는 실천과 국내외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진핑 총서기는 22번 거론된 반면 마오쩌둥은 18번, 덩샤오핑은 6번,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각각 1번만 거론된 세 번째 ‘역사결의’
하지만 남순강화 30년이 흐른 지금, 덩샤오핑에 대한 당과 정부 주도의 기념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시진핑 총서기에 대한 이른바 우상화는 수년간 확대되고 있는 반면 덩샤오핑 등 전임자에 대한 언급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전임자의 공(功)을 언급하지만 과하지 않으며 과(过)는 문맥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지난해 11월 16일 중국공산당이 발표한 3만6000여 자 분량의 세 번째 역사결의, 즉 ‘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22번 거론된 반면 마오쩌둥은 18번, 덩샤오핑은 6번,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각각 1번만 거론됐다. 이번 세 번째 역사결의를 통해 중국공산당 100년 당사(党史)가 마오쩌둥이 이끈 ‘신민주주의 혁명기’와 ‘사회주의 혁명건설기’,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의 새 시기’, 시진핑 집권 후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새 시대’ 등 세 시기로 구분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이번 역사결의에서 톈안먼사태에 대한 서술은 97자에 불과했지만 ‘정치 풍파’, ‘동란’ 등으로 최초 평가를 내렸다는 점에서 그나마 유의미했다. “국제사회 반(反)공산주의·반사회주의 적대 세력의 지지와 선동으로 인해 국제적인 큰 기류와 국내의 작은 기류는 1989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기에 우리나라에 엄중한 ‘정치 풍파’를 초래했다. 당과 정부는 인민을 의지해 동란(动乱)에 선명하게 반대하는 것을 기치로 삼고 사회주의국가 정권과 인민의 근본이익을 수호했다.” 훗날 덩샤오핑에 대해 보다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확고히 한 1981년의 역사결의는 마오쩌둥의 역사적 기여를 서술하되 문화대혁명 등을 통해 당과 나라와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겪게 했다면서 마오쩌둥 사상과 개인 마오쩌둥을 분리해 평가하고 각각 살리는 묘미를 거뒀다. 사실상 덩샤오핑에 대한 언급 이상 조짐은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한 2018년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공식 문헌이나 관영 매체의 달라진 논조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연시됐던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덩샤오핑’ 공식 호칭이 사라진 것이다. 예를 들어 2018년 11월 13일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개막된 ‘위대한 변혁-개혁개방 40주년 경축 대형 전람회’의 주연은 덩샤오핑이 아닌 시진핑 총서기였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초기 부분은 간략하게 처리되고 전시 면적의 3분의 2를 개혁 심화, 군 개혁, 의법치국 등 2012년 집권한 시진핑 총서기의 업적으로 채워졌다. 덩의 결단으로 개혁개방이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만 덩의 업적과 공헌에 대한 평가에 할애된 비중은 과거에 비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또 다른 예로 2018년 12월 17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보도와 12월 18일 관영 신화통신 보도를 꼽을 수 있다. 인민일보는 6개의 면에 걸쳐 1978년 12월 18일의 11기 3중전회 개막에서부터 2018년 11월까지 40년간 일어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개혁개방 40년 대사기(大事记)’라는 이름으로 날짜별로 소상히 소개했다. 이 연표에서 덩샤오핑은 60차례 언급됐지만 시진핑은 125차례나 등장했다. 2012년 11월 15일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매년 평균 21건씩의 대사(大事)에 언급됐다.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은 1978년부터 1997년 2월 19일 사망할 때까지 매년 평균 3건 남짓 등장했다. 이 같은 인민일보의 편집은 40주년 당일인 12월 18일에도 마찬가지였다. 5면 전체를 통틀어 개혁개방에 대한 시 총서기의 어록을 실었다. 반면 덩샤오핑은 사진 1장도 게재되지 않았다. 신화통신은 ‘신시대 개혁의 리더 시진핑’이라는 제목으로 A4 용지로 인쇄하면 19장에 이를 정도의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신화통신은 “중국의 개혁은 6년 전 시진핑이 집권했을 때 수심이 깊은 구역으로 들어갔다”며 “지난 6년간 영국 인구보다 많은 700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중국의 중산층은 4억 명으로 늘어났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习仲勋) 전 광둥성 서기가 1978년 덩샤오핑에게 경제특구 설립 조치를 허락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개혁개방 단행에 큰 역할을 했다며 “이는 시진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라고 했다.
중국 중앙TV(CCTV)가 방송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제목의 7부작 특집 다큐멘터리도 동일한 기류를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2018년 신년사로 시작됐다. “200년 전인 1818년,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났다. 중국공산당원은 개혁개방 40년의 성취와 실천을 마르크스에게 바친다”는 내레이션이 이어진 뒤 시 주석의 연설이 또다시 등장했다. 7부까지 이어진 프로그램 전체 구성에서도 덩샤오핑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광둥성 선전시 롄화산(莲花山) 공원 정상에 오르면 덩샤오핑 동상을 만나게 된다. 동상 뒤편에는 “선전의 발전은 경제특구정책이 옳았음을 증명한다”는 내용의 덩샤오핑 연설 한 구절이 대형 벽면에 조각돼 있다. 개혁개방의 방향의 옳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각종 부패와 불평등, 빈부격차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부유를 실현한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로 부각되려는 시진핑 총서기가 2012년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뒤 첫 방문지 선전에서 기념식수한 나무, 가오산룽(高山榕)이 덩샤오핑 동상에서 100m쯤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 동전의 한 면이 아닐까.
‘새장 속 종교 관리’만을 위해 종교의 본질과 역사 자체를 부인하고 강도 높게 통제하려는 것은 또 다른 부정과 역설을, 반작용을 가져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감안해 현재의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진핑 총서기는 올해 가을 중국공산당 20기 전국대표대회에서 세 번째 연임과 함께 장기집권의 토대를 공고히 할 뿐 아니라 종교의 중국화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은 고려하면 어떨까. 성경은 지난한 정경 과정을 거쳤고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시장주의 등과 관계없이 만들어졌음을 존중하면 어떨까. 찬송가는 각 시대 크리스천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간증이 내재돼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크리스천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크리스천들이 더 이상 부르지 않고 심지어 저항의식만 갖게 하지 않을지 따져 보면 어떨까.
‘새장 속 종교 관리’만을 위해 종교의 본질과 역사 자체를 부인하고 강도 높게 통제하려는 것은 또 다른 부정과 역설을, 반작용을 가져온다는 역사의 교훈을 감안해 현재의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종교 지도자들이 부패에 연류됐거나 반사회적 활동을 했다면 응분의 조치를 하면 된다. 중국공산당은 덩샤오핑과 같은 전임자가 꿈꾸었던 종교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중국 사회를 만드는 데 더욱 일조해야 한다. 인간의 무지와 사회의 소외계층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종교가 완전 소멸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제화, 실용주의 관점에서 다루었던 덩샤오핑의 종교정책을 계승하되 중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의 경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지역 사회와 이웃을 위해 기여하기를 바라고 애국심으로 충만하다는 점을 믿어 주면 좋겠다. 중국교회와 크리스천들을 찬찬히 관찰하다 보면 존재론적으로 결코 중국공산당에 반하는 행동을 할 주체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할 것이다.
사진 출처 | CHINA LAB(네이버 블로그)→베이징/AFP 연합뉴스→픽사베이(위에서부터) 바이톈 | 중국인사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