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台湾)’의 올림픽 시련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만 정부의 고민은 깊어갔다.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미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인 데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대립각을 높이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 참가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묘수를 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정신에 동조하고 세계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참가는 하지만 공산당 중심의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 정부의 전략에 말리지 않는 묘수가 필요했다. 올림픽이 중국의 안방에서 열리는 만큼 중국 정부는 이를 십분 활용하여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공산당 정부가 일궈 놓은 중국의 발전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대만으로서는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일이 자칫 중국 정부의 의도에 휘말려서 대만이 마치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인식되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대만 정부는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을 따르는 가운데 고위직 관료로 구성된 정부의 대표단 파견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개폐회식 참여 여부와 국기(国旗)와 국호(国号) 사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남아 있었다.
동계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1월 29일, 대만 교육부 산하 체육서 관계자는 선수단의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많은 선수가 모이는 개폐회식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이유로 들었지만 속사정은 다른 데 있었다. 첫째는 선수단의 규모가 왜소했기 때문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대만 선수단은 선수 4명을 포함해 15명으로 구성됐다. 동계올림픽이 부자나라의 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아프리카나 남미, 태평양지역 국가들의 선수단 규모가 매우 작고 참가 자체를 하지 않는 국가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갈등관계에 있는 중국의 시선으로 보자면 대만 선수단은 마치 거대한 중국 대륙과 그 앞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한 대만의 지리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대만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개폐회식의 순서에서 대만은 마치 중국 대륙에 예속된 성(省)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 되는 사항이었다. 지난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에서 대만은 ‘중화 타이베이(中华台北, Chinese Taipei)’란 명칭을 사용하여 24번째로 입장했고, 홍콩은 ‘중국 홍콩(中国香港, Hong Kong)’이란 이름으로 26번째 입장 순서에 배정이 되었었다. 25번째 순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中非共和国)이었다. 그런데 이번 동계올림픽에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불참하는 바람에 대만은 홍콩과 함께 앞뒤 순서로 연이어 입장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대만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대만이 홍콩처럼 대륙의 공산당의 정치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올림픽 개폐회식 불참을 선언한 뒤 불과 사흘이 지나서 대만올림픽조직위원회는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 선수단을 보내기로 했다며 입장을 바꿨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헌장을 준수해 개폐회식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대만의 개폐회식 참여는 감정보다는 실익을 챙기려는 대만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일단 올림픽 정신을 준수한다는 점을 부각해 대만에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올림픽은 정치가 없는 곳이 아니라 다만 스포츠 앞세워 정치를 하는 곳이라서 정치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대신, 정치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결의를 매우 환영한다. 또 한 가지는 대만은 거대한 중국의 위협 속에 존재한다는 약자 코스프레를 보여줌으로써 세계인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9일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일에 중국은 52대에 이르는 중국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대만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진입하여 무력시위를 벌인 일이 있었다. 이것은 대만을 향한 사상 최대의 위협으로써 현재 대만 국방부는 징병제를 검토할 만큼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대만의 올림픽 설움의 역사 지난해 2020년 도쿄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전에는 대만과 중국이 만났었다. 결과는 대만의 승리. 그러나 시상식에는 대만의 국기가 아닌 ‘차이니즈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기’가 올라갔다. 시상식에 사용된 노래 역시 국가가 아니라 ‘차이니즈 타이베이’라는 국제대회용 노래가 나왔고, 시상대에 올라간 대만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영문으로 ‘Chinese Taipei’가 새겨져 있었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 정부가 오직 자신만이 중국을 대표할 수 있음을 외교적으로 승인받은 결과였으며 그 연유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닉슨행정부 시절 미중 간의 핑퐁외교는 중화인민공화국(中共)을 세계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1971년 10월, 유엔총회는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지금의 대만, 즉 중화민국(中华民国) 자리를 대체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자리 역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유엔과 세계 외교계에서 장제스(蒋介石)로 대표되던 중화민국이 쫓겨나고 만 것이다. 세계 각국은 중화민국과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단절하기 시작했고, 중공은 스포츠 무대에서조차 중화민국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썼다.
한국의 경우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할 때까지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지속하였으나, 중국의 거대한 영향력과 시장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실리외교를 이유로 들어 대만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중단했다. 반공사상이 여전히 팽배했던 당시의 한국 국민들은 이를 비판했고, 한국과 대만 간의 정기항공노선을 중단할 만큼 대만 정부의 원성도 높았었다. 당시만 해도 중화민국의 주한국대사 자리는 외교부장(외교부장관)으로 승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1975년 중공(中共)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중화민국의 올림픽 참가를 배제하는 요청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정치적 불간섭 원칙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이유로 들어 대만은 계속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단 국호와 국기 사용은 거부되었다. 두 개의 중국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중공의 이유가 수용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만의 올림픽 참가를 견제한 중공은 이미 1958년에 IOC를 탈퇴한 전력이 있고,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인해 1979년까지는 올림픽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은 곧 벌어졌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 참가한 대만은 ‘중화민국, Republic of China’ 명의로 참가를 거부당하자 선수단을 철수시킨 데 이어서 IOC를 탈퇴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냉담했다. 더 나아가서 1979년 10월 나고야에서 열린 올림픽 집행위원회에서는 중화민국의 명칭, 국기, 국가의 사용을 일방적으로 금지했다. 대만은 즉시 스위스 로잔 법원에 제소했고 IOC는 올림픽 참가에 따른 국호와 국기, 국가 사용 문제를 ‘국가(National)’가 아닌 ‘대표단(Delegation)’이라는 용어를 바꿈으로써 타협을 보았다. 대만은 1981년 IOC에 복귀했고 지금과 같은 차이니즈 타이베이를 사용하는 데 이르렀다. 민족주의를 넘는 세계 발전의 기회로 대만이나 중국 정부는 모두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있다. 대만에는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의원들이 있고 양안관계(两岸关系)가 선거의 주요 이슈로 올라오고 있지만, 국민당과 상당수의 국민들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있다. 다만 그 중심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는 대만과 중국 간의 생각의 차이가 다를 뿐이다. 2018년 11월 25일 대만에서는 지방선거와 함께 “대만(Taiwan) 이름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항목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찬성한 사람은 전체 유권자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476만여 명에 그쳤다.
참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대만이 올림픽에서 국호를 되찾고 정체성을 살리는 일에 국민들이 별로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대만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찍이 장제스는 한적불양립(汉贼不两立, 한은 중화민국, 적은 중공이다.) 즉 ‘중공과는 같이 설 수 없다’ 정책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킨다는 고집을 지켜왔다. 중국인들은 이념과 관계없이 두 개의 중국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대만이 명칭을 바꿀 경우 그에 따른 중국의 보복을 염려한 것이 투표에 반영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아서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은 2020 도쿄하계올림픽에 이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가운데서 벌어지는 세계인의 축제의 장이다. 자국과 자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또한 자랑거리를 세계에 알리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인류의 지혜와 약자를 품는 인류애가 빛나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올림픽이 정치와 종교,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한마음이 되는 자리라고 말하지만 정말 올림픽이 지향해야 할 사상은 성경 안에 있다. 미국 뉴욕의 UN 빌딩 안에도 새겨진 말씀이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중국인이 올림픽을 통해 정말 우수한 민족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 이 말씀을 실천할 일이다.
사진 | 바이두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