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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  통권 67호  필자 : 배다니엘  |  조회 : 3959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추억이 있을 때 인간은 외롭지 않다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추억으로의 초대
우리는 많은 것을 추억하며 살아간다. 과거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를 이루고 있는 기억을 추억하기 위한 회상까지 하면서···. 우리가 사는 곳에 추억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곳을 삶이라 부르랴. 중국의 장이모우(張藝謀) 감독이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 이어 만든 「집으로 가는 길(원제: 나의 아버지, 어머니(我的父親母親), 1999년)」은 “아날로그 시대의 청순한 사랑과 잊어버린 인간의 냄새를 만끽할 수 있는, 실로 오랜만에 대하는 순수 무공해 영화”라는 평어가 암시하듯, 우리네의 순수한 사랑과 기다림, 추억 등을 잔잔한 분위기를 통해 그려낸 영화이다. 18세 시골 처녀가 새로 부임한 마을 선생님에게 빠져들고 죽을 때까지 그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담은 이야기. 흔한 소재를 다루었지만 영화가 주는 매력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소담스럽고 청초한 러브스토리, 젊은 날을 반추하는 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억, 아련한 그 무언가를 또 다시 추구하게 만드는 잔상 등 이 영화가 주는 정경은 아름다운 추억으로의 초대이다.
 

길, 사랑을 잇는 매개체
영화는 도시로 간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고 장례식에 참석하러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아들은, 하얀 눈이 산과 들판을 덮고 있는 길을 걸어가며 전통장례로 상을 치를 것을 고집하는 어머니와의 의견차로 고심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님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아들은 어머니의 고집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소중한 지킴이며, 평생 남편에 대해 간직해온 그녀의 마지막 정의 서사임을 알게 된다. 영상은 현실 상황을 이야기하는 초반과 후반에서는 흑백으로 옛 시절의 사랑을 그리는 데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으로 우리 시선을 잡는다. 마치 물질주의와 편의주의에 빠져 감성과 순수함을 잊고 사는 우리네의 거꾸로 된 삶에 대해 경계를 가하듯이···.

마을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에게 주인공 자오디(章子怡 분)는 설레임 어린 첫사랑을 느낀다. 학교가 없던 시골에서 선생님과 남자들이 힘을 모아 교사(校舍)를 지을 때 마을 아낙들은 그들을 위한 점심을 준비하고, 자오디는 먼발치에서 선생님이 자기가 만든 음식을 선택하기를 기대한다. 그 사랑에 잠 못 이루던 수많은 밤, 그와 우연이라도 마주치면 하는 바람으로 먼 우물까지 와 선생님의 시야에서 어른거려보기도 하고, 그가 자주 다니는 길목을 서성이면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집집마다 다니며 밥을 대접받는 선생님이 자오디의 집에 차례가 되어 왔을 때, 눈이 잘 안 보이는 엄마는 딸의 가슴 아련한 사랑을 눈치채게 된다.

영화 속에서 자세한 언급은 없었으나,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1957년 많은 지식인이 비판을 받은 반우파(反右派) 사건으로 여겨짐) 선생님은 마을을 떠나게 된다. 자오디는 마음 속 첫사랑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식사도 들지 못한 채 멀어져만 간다. 자오디는 그의 뒷모습을 쫓아가다 ‘사랑의 만두’가 담긴 그릇을 엎어 깨뜨린다. 이러한 일련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회한으로 남게 된다. 사랑을 확인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듯한 그의 선물인 빨간 머리핀과 그를 위한 음식이 담겼던 조각난 그릇. 그릇이 길가에 깨어져 흩어지고 머리핀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자오디에게 더 이상 사랑의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잃어버렸던 머리핀이 집 울타리 옆에서 다시 자오디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가, 그것은 그가 꼭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우리 가슴에 비쳐진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 그녀의 사랑은 더욱 다듬어지고 완성되어 간다. 그가 떠난 학교를 꾸미며 잔손질을 하는 그녀의 손끝에서 가녀린 희망과 추억, 기다림 등이 차곡차곡 피어오른다. 딸을 안쓰러워 하는 어머니가 깨어진 그릇을 바느질하듯 붙여 준 장면은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를 위해 말없이 밤새도록 바느질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금가고 땜질 자국으로 볼품 없는 그릇, 그러나 그 상처는 사랑의 재결합이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결국 이 믿음은 재회라는 기쁨으로 부활한다. 그러한 과정이 아름다운 피날레를 향하여 달려갈 때 우리의 시선을 따뜻한 설렘으로 이끄는 것은 그가 떠나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 길과 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듯 ‘길’은 그리움이 마음 속에 깃든 사랑의 통로요, 오랜 기간 동안 겪는 이별 속에서 다시금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를 의미한다. 스산한 가을을 지내면서, 또 눈썹에 쌓이는 눈을 맞으면서 꿋꿋하게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고 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하던 공간. 그녀가 길을 걸어가는 전통 장례를 치르겠다고 고집하는 이유, 그것은 아마도 길에서의 기다림을 통해 그녀의 마음 속에 쌓아 온 사랑의 마지막 확인이 아니었을까?
 

동양적 서정 속의 순수함
동화적 영상과 몽환적인 배경, 그곳에 수놓인 순백색의 첫사랑. 아들이 장례식을 무사히 끝낸 후,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글자와 희망을 가르치는 마지막 장면은 장이모우 감독의 계몽주의적 시각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평생 사랑을 간직해 온 자오디가 보고자 했던 남편의 재현이었다. 나무와 우물과 눈과 바람과 길. 이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시 찾기를 원하는 순수의 시대이다. 영화를 접하면서부터 하얀 도화지 위에 깨끗하게 그려낸 듯한 동양적 서정이 주인공 자오디의 수줍으면서도 환한 웃음과 함께 가슴속에 내내 파고든다.

영화를 본 후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 아다지오의 선율과 이백(李白)의 「장간행(長 干行)」의 몇 구절이 떠올랐다.
 

내 앞머리가 겨우 이마를 덮게 된 소녀시절
나는 꽃 꺾으며 문 앞에서 무심히 놀고 있었지요
당신이 죽마(竹馬)를 타고 와서는
함께 침상 가에서 푸른 매실 열매를 갖고 놀았었지요
우리는 장간 이 마을에서 함께 살았고
둘 다 천진난만한 날을 보냈답니다
열 네 살 때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어
부끄럼움에 한 번도 웃지를 못했지요
머리 숙여 컴컴한 벽 쪽을 향한 채로
천 번 불러도 한 번 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환한 낯이 되었고
티끌과 재가 될 때까지 당신과 함께 했으면 했지요.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을 때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그 애조 띤 순수함을 찾기 위해 밤을 하얗게 보내고 싶음은 사치일까?


 

배다니엘 / 남서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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