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8월 정식으로 한국과 중국의 국교가 수립된 이후, 국내의 많은 선교단체 및 교회들이 중국 대륙선교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교단 또는 교회가 단독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고, 선교사를 지망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선교현장에서 그 소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역자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열정만으로 선교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물의를 빚고 오류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되는 후자의 경우는 선교 대상지인 중국의 실체와 현상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많은 인구와 넓은 땅을 지닌 중국은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특성-전통문화를 자부하는 중국인,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체제, 실용주의적인 국민성 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중국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행 정치·사회·경제·군사 등에 대한 이해는 물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이에 중국 역사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나 개념을 중심으로 “중국사의 한 장면” 코너를 마련하여 중국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돕고자 한다. 그들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복음사역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 주】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중국문화의 다양성과 다원성이다. 중국의 고대 황하문명사를 보면 북부 황하(黃河) 유역의 비옥한 지역에서 먼저 농경과 정착이 이루어졌음을 잘 알 수 있다. 이 농경문화는 종래의 조잡한 석기 대신에 잘 다듬어진 석기를 사용한 신석기 문화를 형성하는데, 그것은 ‘앙소(仰韶)문화’와 ‘용산(龍山)문화’로 대표되고 있다.
1921년 허난(河南)성 민츠(澠池)현 앙소(仰韶)촌에서 많은 채색토기와 더불어 농구용의 마제석기와 기타 일상용품이 발견된 이후 붙여진 ‘앙소문화’는 황하 중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허난성, 산시(陝西), 간쑤(甘肅)성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이 문화는 대체로 B.C 5000년 경~B.C 3000년 경에 걸쳐 존속하였는데, 유적으로는 각종 타제석기, 마제석기 및 골재 생활도구(돌도끼, 돌칼, 돌괭이, 화살촉, 뼈바늘, 송곳 등), 토기, 곡식의 화석, 동물 뼈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들 유적들은 신석기 문화의 특징인 토기제작, 농경생활, 가축사육, 정착생활 등 획득경제에서 생산경제로의 전환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후 1930~31년 산둥(山東)성 롱산(龍山)진에서 발견된 용산문화는 앙소문화 유적에서 발견된 것보다 섬세하고 예리한 석기, 토기, 골각기 및 패각기 등이 대량 발견되었다. 특히 채색토기 대신에 얇고 검은 빛의 광택이 나는 토기가 발견되어 ‘흑도(黑陶)문화’라고도 불리워진다. 이 용산 문화는 대체로 B.C 2300년경~B.C 1800년경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역적으로는 산둥 반도를 중심으로 허난성, 요동지방, 장쑤(江蘇)성 북부까지 미치고 있고, 점을 치는 데 사용한 동물 어깨뼈의 발견은 상대(商代)의 갑골문자와도 관련이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유물 유적의 발굴로 중국의 신석기 문화는 황화 유역을 중심으로 한 앙소문화가 다시 용산문화로 발전하였으며, 이 용산문화는 바로 상대의 역사시대로 이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대대적으로 추진된 고고학적 발굴로 말미암아,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황하 유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장강(長江) 유역까지 출현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곧 장강 및 회수(淮水) 유역과 그 지류의 지역에서도 앙소 · 용산문화와 병행하여 별도로 신석기 문화권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문화가 이루어졌으며, 장강 · 한수 지구의 굴가령(屈家嶺)문화, 장강 · 회수지구의 청련강(靑蓮岡)문화, 저장(浙江)성 북부와 장쑤성 남부의 양저(良渚)문화, 장강 하류 지구의 호숙(濠熟)문화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1973~74년 장강 하류 저장성 여요현 하모도촌(河母渡村)에서 발견된 ‘하모도문화’ 유적은 방사성 탄소 측정으로 기원전 5천년 경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화북지방과는 다른 그 지역만의 독자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골기 중에 땅을 일구는 뼈보습[骨耦]이 대량 출토되어 강남지역에 일찍이 논농사[水稻作]가 이루어졌음이 화북지방과 크게 다른 점이고, 가옥도 앙소문화에서 보이는 반지하의 수혈식 가옥과는 달리 대들보와 서까래를 이용하고 마루도 설치한 건축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시기도 황화 중류의 앙소문화보다 앞서고 있어 장강 유역을 무대로 한 신석기 문화가 독자적으로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는 춘추 전국시대에 ‘오월동주(吳越同舟)’라 하는 오 · 월 문화의 기초가 되었다. 월(越)은 항저우(杭州) 지방을 중심으로, 오(吳)는 쑤저우(蘇州) 지방을 중심으로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형성하였는데, 강남지방의 이와 같은 신석기문화의 발전은 중국 선사시대의 문화가 황하에 국한되지 않고 이미 신석기 시대에 각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 신석기 문화는 앙소 · 용산문화로만 일원화 할 수 없으며 이와 성격이 다른 별도의 신석기 문화가 중국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되었고, 그 수준도 황하 유역의 신석기 문화에 결코 뒤지지 않은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황화유역 뿐만이 아니라 장강 유역, 남중국의 주강(珠江) 유역 등에서도 독자적 형태의 신석기 문화가 존재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고대문화의 다양성, 다원성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중국의 신석기 문화는 황화 유역의 선진 중원 문화와 그 영향을 받은 주변문화의 형태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그 성격에 있어서 기원과 계통을 달리한 여러 문화가 병행 발전하여 온 이른바 고대문화의 다원적 발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앙소문화를 중심으로 한 중원 중심적 황하문명 기원론이 비판되고, 중국문화의 명칭도 황하문명이 아닌 황하와 장강을 아우른 ‘하강문명(河江文明)’이라 함이 옳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로 중국은 땅이 넓고 역사가 깊으며, 각 지역마다 나름대로의 특수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다양성’ , ‘다원성’의 사회임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중국 각지의 이러한 상황은 21세기의 현재까지도 각양 각색으로 남아 있으며, 그리이스 · 로마 문명에 기원을 둔 단선적인 유럽문화와도 크게 다르다. 중국선교를 위한 중국 이해에 있어서도 ‘중국은 이렇다.’ 하는 막연하고 일반적인 중국관을 버리고, 선교 대상지역을 중심으로 한 보다 구체적인 지역접근의 방법이 요청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중국’에 다가갈 것이 아니라, ‘중국의 지역’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전순동 / 충북대 역사교육과(중국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