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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쇼핑
2003.4.20  통권 81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645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화교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캄보디아에 며칠 다녀왔습니다.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방글라데시에 교회당을 하나 설립하였는데 그 봉헌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현지에 다녀오는 길에 들린 것입니다.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생활을 한 두 분이 그곳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어서 그 분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였고, 또 최근 캄보디아에서 성령의 역사가 활발하다는 소식을 계속 듣고 있어 현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밤에 프놈펜 공항에 내려 현지에서 수고하고 있는 선교사의 안내로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뜻밖에도 중국어 채널이 두엇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고 또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중국어 채널 가운데 하나는 별로 건전하지 못한 내용이 화면을 채우고 있더군요.

이튿날 아침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한자로 된 간판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번자로 되어 있고 일부만 간자였습니다. 선교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수도인 프놈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방 곳곳에서도 화교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튿날에는 한국으로 말하면 대전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꽁뽕쟘이라는 지방엘 갔는데 거기서 화교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습니다. 화교들은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의 자녀도 화교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 가정과 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로 나가면서 어디가 좋겠느냐고 했더니 좋은 중국음식점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갔습니다. 제가 “캄보디아에서 선교가 잘 되고 있는 것은 화교 덕인 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 중국인데 이곳의 화교들을 보고 성령의 파편이 틘 것이지요”라고 농담하여 같이 웃었습니다.

돌아와서 캄보디아의 화교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화교들은 캄보디아에 오래 전부터 이주하였고, 13세기말부터는 공식적인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이주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976년 폴포트 공사정권이 수립되기 이전에는 35만 명의 화교가 있어서 숫자가 제일 많은 소수민족으로서 금융 ∙ 경제의 실권을 쥐고 있었고 미곡의 중개운수업은 거의 화교가 장악하였다고 합니다. 폴포트 공산정권이 무서운 학살을 감행할 때 캄보디아인을 동화되지 않은 화교들이 많이 희생당했다고 합니다.

전부터 해외기독화인(海外基督華人)들이 중국선교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중국선교에 관심 있는 분들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캄보디아에서의 이 체험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 잡지에서도 언젠가는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 땅에 살고 있는 화교들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나, 그들을 얼마나 따뜻하게 대하고 있나, 그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나, 한국에 있는 화교교회들과 어떤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나, 이런 점들을 한 번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반성해 보았습니다.

이번 호는 “왜 중국선교는 여전히 해야 하는가?”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중국선교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유관지 |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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