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분류보기 > 전체보기 
북쇼핑
2003.2.20  통권 80호  필자 : 장쯔화(張子華)  |  조회 : 2941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중국 교회의 현재와 미래

이 글에서 말하는 중국 교회란 중국 대륙에 있는 교회뿐 아니라, 홍콩, 마카오, 타이완, 동남아, 미주, 유럽, 호주 등 세계 속의 모든 중국인 교회, 즉 해외의 화인 교회(華人敎會)를 포함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해외에 있는 화인 교회와 중국 대륙에 있는 교회들을 목회학적 관점으로 비교해 봄으로써 중국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특히 화인 교회가 세계 교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봄으로써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가길 희망한다.
 

21세기의 특징
그 어떤 정의로도 이 시대상을 분명하게 표현해내기는 어렵다. 가령 ‘e시대’ 니 ‘전자정보시대’ 니 하는 말도 과학기술 갱신을 그 본질까지 형용하기는 어렵다. 인류 역사가 세기를 뛰어 넘는 지금, 20세기 이전의 모든 인류 문화, 문명, 과학기술, 네트워크, 정보 등의 누적된 사항들이 21세기를 발사 직전의 로켓트처럼 더 이상 통제할 길이 없게 만들고 있다. 과학기술은 컴퓨터, 핸드폰, 전자메일, 전자 상거래 등으로 나타나 표면적으로는 번영의 상승가도를 달리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심도 있게 내면을 들여다보면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의 격차, 점점 더 광범위해져 가는 군비경쟁, 날로 격화되어 가는 중동지역의 갈등과 전쟁,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로 이어지는 일련의 재난들(예를 들면 세계적인 경제 대란부터 2001년 9·11 테러까지)로부터 우리는 온갖 천재와 인재를 다 느낄 수 있다. 성경 속의 말세 장면이 분명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변혁과 사건들이 목회 사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신한다. 모든 목회자들은 이제 세계를 품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당신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일꾼을 세우시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그들에게 부어주셔서 세계의 영적 구성을 변화시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만약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영적 전쟁을 보았다면, 우리는 깨어서 영적 전신갑주를 입고(엡 6장) 마음과 뜻을 합하여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완성해 가야 할 것이다.

비교적 보수적인 자료에 의하면 중국 대륙의 기독교인수는 이미 5천만 명을 넘었다. 여기에 홍콩, 마카오, 타이완 등 세계 각지의 화인 신도를 더하면 그 규모는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륙의 신도를 제외한 기타 지역의 신도와 교회는 서구의 신학과 교회 전통과 목회 방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세계 교회의 기독교 발전 추세에 발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교회가 교회사에서 가지는 특수한 지위와 오늘날의 거대한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 대륙의 신도의 경우 자원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목양이 극도로 결핍되어 있으며 건전한 교회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화대혁명과 전후 10여 년간의 좌경운동은 중국 교회로 하여금 온갖 고초를 겪게 했다.

오늘날 성직에 있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이미 늙고 병들어 하나님의 신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 중국 교회 전도인의 결핍을 묵은 곡식이 다 떨어졌는데 햇곡식이 아직 수확되지 않은 보릿고개에 비유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적절한 시기에 한 무리의 젊은 일꾼들을 일으키셨다. 이들은 비록 엄격하고 체계적인 신학 훈련은 받지 못했지만 헌신과 뜨거운 열정으로 전도지를 개척하고 복음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러나 소양과 신학 훈련의 부족으로 이단과 타종교의 영향과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성도들이 진리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 지식 수준과 영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반하여 해외에 있는 화인 교회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지리와 역사적 혜택으로 인하여 풍부한 물질, 자유로운 전도 환경, 각종 영적 자료, 기독교 발전과 네트워크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우수한 신학원을 비롯하여 학문과 소양을 갖춘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중산층의 신도들과 세계적인 기독교 조직의 후원 그리고 충분한 목회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물질문명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서 특히 청년층에게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었고 해외의 화인 교회도 영성의 열악함을 드러내게 되었다. 주일예배는 단지 형식이 되어 버렸고, 진리 추구와 복음에 대한 열정도 미지근하게 식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텅 빈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술한 모든 현상은 21세기 초 화인 교회의 영적 모습이다. 전 세계 화인 동역자들과 세계교회의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중국 교회의 문제와 대책을 파악하고, 화인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들로 하여금 미래를 향하여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몇 가지 착안점

훈련:
훈련은 목회적 소양을 갖추게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 중국으로 파송되는 해외 선교사의 수는 증가하였고, 각종 훈련과정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러나 교과 과정의 체계성이나 일관성이 결여되고 훈련기간과 방식에도 질서나 규범이 없다. 중국 방문길에 그저 책 한 권 훑어주고 황급히 떠나버리는 강사가 있는가 하면, 한동안 후속 과정이 없다가 느닷없이 누군가가 와서 아무 과목이나 가르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체계 없이 훈련 받은 성도들은 배부르지 않고 늘 식은 밥만 먹는 꼴이다.

그나마 몇 년 전까지는 이런 상황이라도 환영 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젊은 전도자들의 자질이 향상되고, 특히 도시의 지식인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겉치레 식의 얄팍한 훈련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제 새로운 신학 훈련은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이에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1) 신학훈련이 하루속히 궤도에 올라야 한다.
훈련과정은 신학원의 교과 과정에 따르고 학생들의 문화적 수준과 사역 경력에 따라 다양한 신학 훈련과정을 개설하는 등 신학 훈련을 속히 규범화, 계통화해야 한다.

2) 신학훈련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광범위한 농촌 대신에 도시를 선택한 까닭은 도시에는 비교적 높은 문화 수준을 갖춘 신도들이 많은데다 진리에 대한 이해력이나 전달 능력도 농촌 신도들에 비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에는 젊고 유능한 형제 자매들이 전도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농촌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일에 해외에서 온 사역자들보다 유리하다.

3) 신학 과정(특히 목회신학)은 토착화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측면에서나 선교의 역사로부터 볼 때 교회의 토착화는 매우 중요하다.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지 교회를 이해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현지 교회 실정에 맞추어 적절한 대책을 세워 훈련할 수 있다.

4) 교사 훈련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는 교사양성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여 유능한 교사들을 많이 배출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후에는 영성서적과 중보기도를 통해 끊임없는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양성된 교사들은 또다시 다른 많은 교사를 양성해 낼 것이다.
 

연합기도운동
2001년은 미국과 많은 국가들에게는 재난의 해였지만 중국에게는 행운의 해였다. 베이징의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 선정, 10월 상하이에서 거행된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기구)의 큰 성공, 11월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장차 중국에 더 많은 개방과 여유 있는 환경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또한 해외의 이단과 타종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여러 차례 입국이 거부되었던 몰몬교와 여호와의 증인에게 문이 열렸다. 이러한 이단과 타종교는 든든한 재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젊고 혈기왕성한 신도들과 잘 훈련된 전도자들이 있다. 이러한 세력들은 아직 뿌리가 견고하지 못한 중국 교회, 특히 농촌 교회에 큰 타격을 안겨 주고 있다. 게다가 중국에서 자생한 현지의 이단들, 예를 들어 동방번개(東方閃電)의 ‘양 약탈 계획(기존 교회의 신도들을 돈, 이성 등으로 미혹하고 폭력을 행사하여 신앙을 포기하게 함)’ 같은 것까지 가세하여 더욱 거대하고 복잡한 영적 전쟁이 눈 앞에 임박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모든 화인 교회의 지도자들과 세계 모든 교회의 형제 자매들은 연합하여 함께 싸워야 한다. 세계적인 기도운동을 일으키고 지역을 초월하는 연합기도회와 세미나 개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연합기도회와 세미나 개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최전방에 나가 있는 전도자와 형제 자매를 위해 기도하고, 힘닿는 데까지 구체적으로 지원해 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 안에서 아름다운 승리를 거둘 때까지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금세기 초에 함께 연합하여 중국 교회를 부흥시켜야 하는 이 시기를 놓친다면 나중에는 많은 노력을 들이고도 성과는 적은 쓰디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 교회의 세계선교 헌신
이 점에 대한 설명은 짧은 예화로 대신하겠다. 어느 홍콩 목사가 남아프리카의 한 소도시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오후에 한가로이 거리를 걷다가 거리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행상을 하고 있는 중국인 두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는 호기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중국어로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이 두 사람은 정말로 중국인이었다. 비록 멀리 남아프리카에 있는 작은 마을일지라도 사람 사는 곳이면 중국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목사에게 자신들은 중국에서 왔으며 어렵게 행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고 하였다.

목사는 또 그들에게 물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기독교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목사는 몸에 지니고 있던 자신의 성경책을 그들에게 건네주면서 “제가 한 가지 일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잘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부디 마음속에 잘 기억해 두십시오. 당신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로 결심했다면 힘들더라도 열심히 생활하십시오. 그리고 하루속히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장차 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에 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장사꾼도 아니고 유학생도 아닐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당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이 목사는 중국인의 해외선교를 내다보는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것이었다. 중국이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할 위대한 시기가 이제 곧 도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우리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원한다.
 

세계선교와 중국 교회의 합일운동
중국인이 세계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더 이상 헛된 꿈이 아니다. 이미 많은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를 밟았고, 이슬람 지역을 비롯하여 척박한 미전도 종족들에게까지 다가가 주님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바치고 있다. 그동안 중국 교회의 선교사역은 정책과 환경의 한계로 인하여 중국 내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역은 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미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전도자들의 피땀 어린 헌신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고, 많은 변경 지역에 복음의 불꽃이 일어났다. 21세기에 들어선 중국 교회는 해외선교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세계복음화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해외 성도들의 기도
화인 교회나 외국 교회의 성도들은 중국 교회가 점진적으로 성숙되기를 기대하면서, 중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선교는 선교대상에게도 복될 뿐 아니라 또한 자신에게도 복된 일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이러한 간구를 들으시고 친히 길을 열어 주셨다. 중국의 WTO 가입과 서부대개발 정책의 추진은 중국 성도들이 쉽게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오랫 동안 몽상에 지나지 않았던 일이 이 세대의 성도들에게서 실현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력한 말세 신학의 영향
수많은 화인 교회 지도자들과 중국의 성도들은 장차 중국의 성도들이 세계 복음화의 마지막 주자가 되어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세계 복음화를 가로막는 최후의 장벽이자 최후의 전도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중국 성도들에게 세계선교의 중책을 맡기신 것은 중국과 이슬람 국가 사이에 있는 광활한 접경선 때문만이 아니라, 중국인과 그 인근 국가 사람들과의 전통적이 우의관계 때문이다. 중국이 개척해 나가야 할 루트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과 이라크를 통과하고, 터키를 경유해 예루살렘을 종착지로 한다. 만일 이 믿음의 길이 열린다면 그 길을 따라 선교의 용사들이 온갖 어려움과 장애를 무릅쓰고 용감히 앞으로 진군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말세적 신학 관점에 대해 어떤 평가나 정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런 비전과 열정은 확실히 흠모할 만하다. 세계 교회는 중국의 선교적 잠재력에 대해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중국 교회가 세계선교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교회가 하루속히 성숙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선교에 대한 비전

교회의 배경, 지역, 교리, 전략 등이 중국 교회를 여러 갈래로 갈라놓고 상호 폐쇄적으로 만들었다면 선교에 대한 비전은 중국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열쇠가 되었다. 혹자는 중국인을 쟁반에 흩어진 모래처럼 단결력이 없다고 지적하지만, 반면에 중화민족이 일치단결하면 그 거대한 응집력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교는 언어, 문화, 교파, 지역의 여러 가지 제한을 극복해야 한다. 크고 작은 교회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자원과 재력과 인력을 집중하여 하나님이 부탁하신 대사명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선교는 합일(合一)을 필요로 한다. 교회가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합일은 더욱 필요하다. 중국 교회가 삼자교회와 가정교회라는 두 유형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고, 그 원인과 내력을 밝히는 역사학자의 몫이다. 그러나 삼자교회와 가정교회는 서로 대항하면서 접촉하고, 서로 의심하면서 또한 대화하고 있다. 지역마다 역사적 배경과 종교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그 양상은 매우 복잡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두 교회 사이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21세기 중국 교회의 발전은 커다란 장애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쓸데없는 인력과 정력의 소모로 중국 교회는 사분오열될 것이다.

‘신신학(新神學) 건설’ 로 조성된 삼자교회 내부의 불안요소와 선악의 혼재로 조성된 가정교회 내의 분열은 지난 세기가 남겨준 아픈 상처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중국 교회가 어떻게 과거를 계승하고 미래를 맞이해야 할지, 어떻게 대립과 분열의 장벽을 뛰어 넘어 융합과 합일로 나아갈 것인지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놓여진 진지한 기도 제목이다. 필자는 일부 중국의 신세대 전도자들이 제3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삼자와 가정교회 내의 형제 자매들이 연합하여 성경을 출발점으로 삼고, 주님의 지상명령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위해 선입견을 버리고 함께 걸어 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 요청일 뿐 아니라, 중국 교회 합일운동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자 아름다운 시작이다.



 

출처 | ‘中國敎會的現況與未來’ , 基督敎神州網(www.21sz.org)
번역 | 김현주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