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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8.20  통권 65호  필자 : 김중하  |  조회 : 3146   프린트   이메일 
[소수민족을 알자]
더앙족(德昻)족

더앙족(德昻)족

 

인구
15,462명(1990년 통계)


분포

주로 윈난(云南)성의 서남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 중 더홍저우(德宏州)의 루이시(潞西)와 란창지구(臨滄地區)의 전캉(鎭康)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더앙족의 분포 특징은 자기들 끼리만의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보다는 이웃의 다른 민족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포지역도 인구에 비해 매우 넓게 형성되어 있다.


언어

민족 고유의 언어가 있다. 더앙어는 남아어계(南亞語系) 맹고면어족(孟高棉語族) 와덕아어지(瓦德昻語支)에 속하고, 주로 크게 3가지 방언(뿌리에, 루징, 루마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傣語)를 함께 사용하며, 한어(漢語)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문자

본래는 본 민족의 문자가 있어서 역사를 기록하거나 도덕, 법규, 불경 등을 기록해 놓았으나 현재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중국 내에 있는 더앙족 중 고학력자는 다이문자를 더 많이 사용한다. 보편적으로 행정을 위해서나 학교에서는 한자를 사용한다.


민족의 이름

본래 더앙족은 자기들 스스로를 ‘앙(昻)’이라고 불렀다. 더홍지역에서는 ‘더앙’, 전캉과 껑마지역에서는 ‘니앙’ 또는 ‘나앙’이라고 불렀다. ‘앙’은 ‘산바위’ 또는 ‘바위 동굴’이라는 뜻이다. ‘앙’자 앞에 ‘더’는 존경의 의미로 덧붙인 말이다.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은 이 민족의 조상이 산 동굴에서 살았던 데서 유래된다. 이전에는 미얀마에서 불리는 ‘뻥롱’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1985년 9월 21일 중국에서는 정식 민족명을 ‘더앙’으로 결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지계(支係)

3개의 지계로 루부례(汝不列), 량(梁), 루마이아(汝買阿)가 있다. 미얀마에는 20여 개의 지계가 있다.


역사적 배경

더앙족은 한(漢)나라와 진(晉)나라 시기에 “푸런(僕人)”, 당(唐)나라 때는 “망만(茫蠻)”이라고 불리웠다. 현재 윈난의 서남지역에 살던 민족이 더앙족의 오랜 조상이라고 본다. 그리고 복장이나 언어, 또는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더앙족과 비슷한 뿌랑족(佈朗族)과 와족(佤族)을 변천과정에서의 더앙족 조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에 더앙족은 푸런의 줄기에서 나뉘어져 나와 하나의 민족을 이루어 청나라 역사기록에 ‘뻥롱’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더앙족은 역사 속에서 다른 민족의 지배를 많이 받아왔고, 다른 민족을 지배하거나 영향을 준 시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곧 주동적이기보다는 피동적인 모습이 많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방식

한 곳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넓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 생활방식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어떤 지역에서는 논농사를 주로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밭농사를 주로 하여 지역마다 음식문화에도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인근의 여러 민족과 어우러져 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생활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더앙족의 주요 경제는 농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논농사 위주이다. 더앙족은 인근의 다른 민족들보다 농사기술이 좋아 더 많은 수확을 올리고 있다. 논농사 외에 밭벼, 조, 옥수수, 감자 등을 생산한다.


건축

더앙족의 주택은 대부분 대나무로 지은 2층이고, 일반적으로 집에 뜰이 있다. 2층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아래층은 가축을 기르거나 창고로 사용한다. 대가족이 함께 지내던 시절에는 집을 크게 지어 여러 가정이 함께 거주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거의 독립된 집을 지어 사용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아직도 대가족을 형성하고 있는 집들이 많이 있다.


복장

루부례와 량 지계에서는 부녀들이 머리를 기르지 않았고, 루마이아는 결혼 후에 머리를 길렀다. 머리에 검은 천이나 푸른 천으로 ‘바오터우(包頭: 머리에 감아 쓰는 두건 같은 천)’을 만들어서 바오터우의 끝을 뒤로 길게 늘어뜨리는 습관이 있었으나, 지금 젊은 사람들은 머리를 기르는 추세이다. 부녀자들의 전통적인 복장은 진한 남색 혹은 검은색으로 된 맞섶의 짧은 상의와 긴 치마이다.
더앙족 남자는 몸에 문신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문신을 볼 수 있으며 젊은 사람들 중에도 문신을 하는 이들이 있다. 전통복장으로 검은 천이나 흰 천으로 만든 바오터우를 머리에 쓰고, 검은 남색의 섶이 큰 상의와 짧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었는데, 지금은 전통 절기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인 복장을 즐겨 입는다. 더운 지역에 사는 더앙족들은 다이족과 마찬가지로 슬리퍼를 많이 신는다.


음식

쌀을 주식으로 하지만 수확량이 그리 풍부한 편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는 옥수수 등 밭에서 나는 것들이 주식을 이룬다. 또한 진한 차를 즐기는데, 차는 더앙족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차가 있는 곳에 예의가 있고 도덕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선물로도 차를 애용한다.


사회제도

더앙족은 오래 전에 다이족의 투스(土司) 아래 자기 마을의 지도자를 갖고 있었다. 투스의 지배 아래 여러 마을을 돌보는 지도자는 ‘따깡’이라고 불렀고, 한 마을을 책임지는 지도자는 ‘따지깡’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따지깡’을 도와 마을의 일을 함께 보는 ‘따푸롱’과 ‘따지거’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형태가 사라지긴 했으나, 마을 전체에 그 당시 사용하던 관습법의 영향이 남아 있다.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관습법은 다음과 같다.
◇ 마을 사람 중에 누구든지 사용하기 전에 마을 지도자에게 이야기하고 동의를 얻어 공유지를 개간하여 사용할 수 있다. 나무를 베어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매매를 통해서나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마을의 공동묘지에 묻어야 하고, 아무 곳에나 묘지를 만들 수 없다.
◇ 자녀가 결혼하며 장남이나 차남은 방을 새로 지어 분가를 하고, 막내아들이 남아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재산도 막내아들이 물려받는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분가할 경우 재산은 함께 나누어 갖되, 집에 남아서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이 갖는다.
◇ 남의 물건을 훔친 자가 잡히면 반드시 배상한다. 도둑질한 자에 대해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경우,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그의 평상시의 생활태도나 도덕적인 삶의 모습을 근거로 판단한다. 만약 도둑질을 한 것으로 판명이 났으나 본인이 거부할 경우 더 큰 벌을 내리거나 마을에서 쫓아낸다. 하지만 더앙족 사회에서 도둑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더앙족 사회가 도둑질을 가장 부도덕한 일로 보기 때문이다.
◇ 남편이 있는 여자가 간통한 사실이 발견되면 공개적으로 벌금을 내게 한다. 만약 부인이 남편에 불만이 있어 이혼하고자 할 때에는 배상을 한 후에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
◇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임신을 했을 경우 남녀가 함께 동의하면 결혼을 할 수 있으나, 마을을 깨끗게 한다는 의미에서 벌금을 내고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

이러한 관습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가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거의 유지하고 있다. 미얀마 지역에 사는 더앙족은 아직도 거의 이 관습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

더앙족은 일부일처제의 소가족 제도를 갖고 있으나, 예전에는 대부분 대가족 또는 몇 가정이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래서 지금도 약간은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남녀는 자유로운 연애로 배우자를 선택하며, 부모는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이 때 여자쪽의 결정이 더욱 중요하다. 남녀가 서로 마음이 있어 교제한 후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찻잎이 담긴 작은 가방을 선물한다. 선물을 받은 여자가 남자의 청혼에 동의할 때, 여자는 결혼을 허락하는 의미에서 찻잎이 담긴 가방을 자기의 침대 머리맡에 걸어 놓음으로 자기가 결혼상대가 있음을 집안 식구들에게 알린다. 이 때부터 여자의 부모는 그 상대를 유심히 살펴서 좋다고 생각되면 딸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찻잎이 담김 가방을 가져간다. 그러면 이때부터 결혼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시작된다.

결혼식은 3일 동안 치르는데, 이 3일동안 모든 마을 사람들은 축하객이 된다. 첫째 날 저녁, 신랑은 노래하는 친구들을 동반하고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한다. 신랑이 도착하면 중매자(연애결혼이지만 가정과 가정의 만남이므로 양가 부모의 동의를 위해 중간에서 소개하는 사람을 필요로 함)가 사람들이 앞에 있는 거실에서 신부 부모와 친지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뒤에 있는 거실에서는 마을의 젊은 남녀들이 모여서 신부의 ‘청춘 고별의식’을 행한다. 그리고 신랑을 동반했던 노래하는 친구들이 신랑과 신부를 둘러싼 채, 신랑의 집으로 돌아와서 신랑 부모와 친지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가 끝나면 젊은이들은 신랑과 신부를 데리고 나가 제3일 아침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뚜이꺼(對歌: 서로 화답하는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3일째 아침이 되면 젊은이들은 다시 신랑과 신부를 둘러싸고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의 부모와 친지에게 선물을 한다. 이 때 신부의 집에서는 백년해로하고 집안이 화목하라는 의미로 신랑의 머리에 바오터우를 만들어 씌어준다. 이렇게 하여 모든 결혼의 절차가 끝난다.


장례

일반적으로 토장(土葬)을 행하는데, 마을마다 공동묘지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은전(銀錢) 하나를 입에 물린다. 이것은 더앙족의 관념상 죽은 사람이 강을 건너갈 때 필요한 비용일가고 한다. 몸을 깨끗이 씻긴 후 입관을 하고, ‘부처(종교 부분을 참고)’를 청해 장례 날짜를 정하는데 보통 3~5일을 넘기지 않는다. 입관 후 장례를 하는 시간까지 청함을 받은 부처는 계속해서 경을 읽는다. 장례 방식은 한족(漢族)과 비슷한데, 단지 매장 후 7일째 되는 날 가족들이 사찰을 찾아가 부처를 청해 경을 읽게 한다. 이는 죽은 사람의 혼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집안 사람을 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전염병이나 오랜 병 끝에 죽었거나 산모가 난산으로 죽은 경우는 화장(火葬)을 행한다. 화장을 한 후 에는 남은 잔해를 깨끗한 물로 씻어서 다시 매장한다. 더앙족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한 사람의 몸에는 악귀가 붙어있는데, 화장을 해야만 이 악귀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토장 외에 화장을 하는 습관이 있게 된 것이다.


절기

더앙족의 절기로는 사간제(沙甘節)-다이족의 포수이제(潑水節), 아오와싸제(奧瓦薩節)-다이족의 관먼제(關門節), 하오와싸제(豪瓦薩節)-다이족의 카이먼제(開門節) 등으로, 다이족의 절기와 거의 유사하다(이 절기에 대해서는 본지 1998 5/6월호, pp.89~93에 있는 다이족의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금기
◇ 모든 마을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평상시에는 묘지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묘지의 물건을 만져서도 안 된다.
◇ 더앙족은 뱀을 숭배하는 민족으로 모든 마을의 부근에 커다란 뱀나무가 있다. 이 뱀나무 주위에는 담을 쳐놓았고, 1년에 한번씩 제사를 드린다. 이 뱀나무를 꺾어서도 안 되고, 나무에 가까이 접근해도 안 된다.
◇ 더앙족의 집은 일반적으로 앞문과 뒷문이 있는데, 방문하는 손님들은 앞문을 이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주인의 침대에 걸터앉는 것을 금한다.
◇ 손님이 더앙인의 집을 방문하여 잠을 잘 경우, 부부일지라도 따로 자야 한다.
◇ 실내에서 함부로 침을 뱉어서는 안 되며, 발로 훠탕(火塘: 발바닥에 흙을 파서 만든 화로)의 나무들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종교

더앙족은 소승불교와 원시종교를 믿는다. 특히 불교신앙이 모든 더앙족에게서 매우 활발한데 각 지계마다 종파가 다르다. ‘루마이아’ 지계는 ‘룬’ 종파를, ‘루부례’ 지계와 ‘량’ 지계는 ‘주워띠’, ‘뚜워례’ 종파를 신봉한다. ‘룬’ 종파는 닭이나 돼지를 기를 수 있고, 젊은이들이 살생하는 것도 허락한다. 그러나 ‘주워띠’, ‘뚜워례’ 종파는 닭이나 돼지를 키우거나 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이는 것을 보거나 소리를 들으면 먹을 수도 없도록 금하고 있다. 비교적 큰 마을에는 거의 모두 절이 있고, 부처와 승려들이 있다. 부처는 십 몇 년 동안 승려생활을 한 후 비로소 승급하게 되는데, 다이원(傣文)을 알고, 다이원징(傣文經)에 능통해야 한다. 부처가 되면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고, 결혼은 할 수 없다. 더앙족은 무릇 집안에 경사나 상(喪)이 있을 경우 부처 혹은 승려를 청하여 경을 읽게 한다.


기독교

기록에 의하면 선교사의 사역은 있었으나 별 효과가 없었던 미전도종족이다.


인근 민족과의 관계

더앙족은 비교적 일찍 중원지역의 문명과 접하게 된 민족이다. 당나라 시기에는 난자오(南召)국의 지배를 받았고, 원나라 시기에는 따리(大理)국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 중원지역의 문명을 접하게 되었다.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갖거나 싫어 하지 않는 더앙족은 이웃민족과의 관계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다이족과의 관계가 가장 밀접하다. 다이족으로부터 소승불교를 전래 받았고, 자신들의 물건을 파는 시장이 주로 다이족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연고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다이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승려들은 다이족 문자까지 배워야 했다. 기록에 의하면 어떤 마을들은 마을 사람 전체가 다이족화하여 오늘날 다이족으로 바뀌기도 했다고 한다. 다이족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독교를 전함에도 다이족을 통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더앙족의 이웃에는 징포족(景頗族)도 있다. 한때 다이족의 투스가 양 민족간에 서로 싸우도록 한 일도 있었으나, 워낙 선량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잘 하는 더앙족인지라 지금은 그런 문제가 없고 징포족과도 잘 지내는 편으로 서로 작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인근국가에 있는 동일한 민족

더앙족은 중국의 윈난성에 살고 있지만 미얀마에 더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선교전략을 위해서는 미얀마에 있는 더앙족(미얀마에서는 뻥롱족[鵬龍族]이라고 부른다)들도 함께 조사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고, 또 미얀마에서 뻥롱족을 위해 일하는 사역자와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미얀마의 뻥롱족은 많은 지계가 나뉘어져서 중국에 있는 더앙족과 모습이 많이 다르다. 현재 미얀마에 있는 뻥롱족의 인구는 25만 명이다. 미얀마에서는 이 민족이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더앙족 거주 지역에 가려면

한국에서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홍콩, 칭다오 등지를 경유하여 윈난성 쿤밍(昆明)에 도착, 쿤밍에서 버스로 각 지역의 중심지(루이시: 22시간, 린창: 20시간)로 이동한 후, 다시 더앙족이 사는 마을로 이동해 가야 한다. 더앙족이 사는 곳은 작은 마을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여러 마을들을 살펴보고야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도제목

1. 선교사의 사역이 있었던 민족이지만 별로 열매가 없었던 불교의 세력이 강한 더앙족 사회가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통해 불교를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2. 이 민족을 입양하기 위해서 사랑으로 기도하는 교회가 생겨나도록.
3. 이 민족을 위한 선교사들이 헌신하여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참고서적

1. 德昻族簡史, 云南敎育出版社
2. 德宏傣族景族自治州槪況, 德宏 民族出版社
3. 云南簡史, 云南人民出版社
4. 中華民族, 華夏出版社
5. 中國少數民族槪觀, 天津古籍出版社
6. 中國少數民族禁忌大觀, 廣西民族出版社
7. 中國少數民族宗敎槪覽, 中央民族出版社
8. 中國少數民族節會大觀, 江西敎育出版社
9. 云南宗敎槪況, 云南大學出版社
10. 中國跨界民族, 民族出版社




김중하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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