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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통권 79호  필자 : 강드보라  |  조회 : 2457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날마다 행복을 꿈꾸며∙∙∙

도대체 내가 뭐하는 사람이지?
올 여름은 오십 년만에 최고로 기온이 올라갔다고 했다. 연일 42도를 웃도는 불볕더위와 잦은 정전, 그야말로 화로 속을 연상케 하는 날들이었다. 그 맹렬했던 더위도 이젠 가을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이번 여름은 여름방학 시작부터 단기 팀들, 조카들, 며칠씩 묵고 가는 시골에서 온 형제 자매들을 비롯해서 거쳐가는 손님들이 특별히 많았다. 모처럼 여름방학에 쉬고 싶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한 팀 한 팀, 어떻게 해서 오게 되었든지 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우리네의 삶이다. 아이들은 한국에 보내놓고, 이리저리 숨가쁘게 뛰어다녔다. “도대체 내가 뭐하는 사람이지?” 그렇게 반문하면서, “내년 여름엔 어디로 도망가야지” 이렇게 아무 의미 없는 말까지 해가며∙∙∙∙∙∙. 올 여름은 그렇게 휑하니, 썰물처럼 밀려 가버렸다.

이제 정상궤도로 돌아와서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쉬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더위에 지치고, 사람에 지치고 일에 지쳤다. 특히 남편이 얼마나 지쳤는지, 건드리면 툭 터져 버릴 것 같은 풍선처럼 예민해져 있어서, 나는 남편 눈치만을 살피며, 가능하면 부딪히지 않으려 애를 써야 했다.

그 동안 청년, 대학생들을 전도해서 그들과 씨름한지 6년째로 접어든다. 그 형제 자매들 중에서는 열심당원 7-8명이 있는데, 우리 집에서 갖는 금요기도회에 늘 참석한다.

오늘도 기도회 시간이 되어 내가 피아노를 치면서 찬양 인도를 끝냈는데, 다음 순서로 하나님 말씀을 나눠야 할 남편은 아직도 무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형제 자매들이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남편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너무 지쳐 있다.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다. 다음주에 오 형제 설교하고, 그 다음주에 장 형제 설교해라.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라.”

그 동안 남편이 다른 곳에 사역하러 갔었을 때, 두 형제가 돌아가며 설교한 적은 있었지만, 남편이 집에 있으면서 형제들에게 설교시키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기도 제목을 몇 가지 더 나누고, 나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다같이 기도가 시작되었다. 기도가 시작되자마자, 장 형제가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참석한 형제 자매 모두가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 소리는 점점 커졌다.

“하나님,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도와주세요. 우리 선생님 힘주세요.”

그리고 이내 온 방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조용히 눈감고 앉아 있던 남편도 기도소리에 힘입어,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 높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광경에,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눈앞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 악보를 애써 들여다보며, 기도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봐 피아노를 부서져라 더 세게 더 세게 두들겨댔다.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폭우가 지나간 듯 잠잠해졌다. 그러나 장 형제는 아직도 계속 흐느끼며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옆에 있는 오 형제가 끌어 안아 주며 진정시켜서 겨우 조용하기에 이르렀다.


장 형제와 만남

장 형제는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전도하러 갔다가 첫 번째로 데리고 온 형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시에 와서 그 동안 20여 군데의 직장을 옮겼다고 했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쫓겨 나오기를 계속하다가, 그 날은 갈 곳도 없고 돈도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 형제를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아침엔 붙잡고 기도해 주고, 약간의 교통비와 점심 값을 주어 직장을 찾게 해 주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나자, 군대에서 운영하는 차 수리공장 전기파트의 도제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부 밑에서 일을 배우는데 다른 도제공들은 보통 17, 18세이었고, 사부들은 군인들로 21, 22세 정도 되었다. 당시 이 형제가 22세이었으니, 그 공장에서 견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이 형제의 사부가 다른 성에서 온 사람인지라, 사부의 말을 잘못 알아들어서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한번은 사부가 가져오라는 공구 이름을 잘못 알아듣고, 가져갔다가 사부가 욕을 하며 꺼져 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단다. 그 때 한쪽 구석에서 처량하게 울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셔서 그 집에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이 형제가 들려주었다.

어느 날은 기운이 쏙 빠진 채 찾아왔다. 사부의 점심을 도제공이 사줘야 하는데 200원 받는 것으로 자기 밥 값도 모자란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부 점심값을 헌금해 주기로 하였다. 일이 없는 시간에 공장 직공들은 마작을 하며 VCD 빌려다 보는 게 일상이었지만, 그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장 형제는 성경을 열심히 보며 착실히 신앙생활을 해 왔다.

어떤 때는 차가 문이 열리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차문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다시 시도했더니 문이 열렸다고 했다. 또 차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을 때도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찾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은 여러 형제 중에서 그 형제만 토요일에 오게 해서, 성경을 더 많이 가르쳤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열심히 일을 해서, 2년 뒤에는 사부가 되어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200원 받던 도제공이 하루 아침에 1,000원 받는 사부가 되었다. 그리고 첫 월급을 타서 십일조 헌금을 들고 뛰어 왔다. 우리도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가 세차장을 같이 하자고 했단다. 세차도 하며 그 옆에서 차도 고치겠다고 했다. 남편이 말렸다.

“이제 도제공을 면했는데, 네가 사부로서 경험도 쌓아야 하고, 또 그것은 경영인데 시간을 두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장 형제는 우리의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엇이든지 우리와 상의하던 형제가, 우리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데 때마침 멀리서 우리 집에 잠깐 와 계신 선생님이 계셨다. 장 형제가 그 선생님에게 자기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그 선생님이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한번 해 볼래.” 라고 말했었단다. 그 선생님은 그렇게 떠났고, 우리는 그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 공장에서 나온 후 며칠 지나니 돈도 없고 오고 갈 곳도 없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이 형제가 인간적으로 우리를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 같아서, 공안이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왔다 갔다는 사실을 핑계로,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것은 좀 어렵다.” 고 말하고는 조용히 돌려보냈다.

그 때 우리 집 일을 도와주던 자매가 멀지 않은 곳에 허름한 방 한 칸 얻어서 남편하고 살고 있었다. 나는 그 자매를 불러서, 장 형제가 갈 때가 없으니 미안하지만 며칠 좀 같이 있으라고 부탁했다. 그 형제는 부부가 침대 하나 놓고 사는 조그만 방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자고, 그 자매에게 얻어 먹는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그 형제는 무위도식하면서 “그 사람들(우리 부부)이 지난번 손님이 세차장 차리라고 돈을 주고 갔는데 그 사람들이 그 돈을 안 준다” 는 등, “그 사람들은 정말 사기꾼이다. 너도 그 사람들 믿다가 큰코 다친다” 는 등 갖은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게 사람 사는 거냐? 이게 집이야? 는 등 불평을 하면서 그들 부부에게 상처를 줘서, 그 자매가 아침마다 와서 울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히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형제도 내 아들이다. 내게 맡겨라. 내가 저를 인도하리라.”

나는 눈물을 닦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저녁이 되어 그 형제가 찾아 왔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용서해 달라고 했다. 나도 그 형제를 붙잡고 같이 울었다. 그리고 돌아갈 땐 약간의 돈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다.

그 형제는 돌아가서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리고는 내가 준 돈으로 과일을 사서, 처음 기술을 배우던 공장의 사부를 찾아갔다. 마침 사부는 전역을 해서 공장을 떠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원래가 다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동안 이 형제를 쓸만하게 봤던 사부가 이 형제를 추천했다. 그리고는 “이 형제를 쓰지 않으면, 이 곳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 안오겠다” 고 했단다. 그래서 처음 기술 배우던 공장에 사부로 취직이 되었다. “할렐루야!”

장 형제는 “이번 일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며 더욱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다. 그리고 자기 밑에서 일을 배우는 3명의 도제공들에게도, 신앙인으로 삶의 본이 되려고 무척 애를 쓰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몇 번 공장을 옮겼다. 그 이유는 주일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달 전에 또 일자리를 옮겼다.

두 개의 일자리가 났었다고 했다. 두 곳 다 주일은 지킬 수 있는데, 한 곳은 12시간 일하는데 돈을 많이 주고, 숙소에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틀어 놓는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 가면 성경 읽을 시간도 없고, 신앙생활하기 어렵다면서 안 가겠다고 했다. 지금 간 공장은 일이 거의 없어서 두 달째 월급도 못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요, 시간이 많아서 성경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결혼하면 소수민족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미리 물질 훈련시켜 주시니 감사해요.”

몇 달 전부터, 가장 소외된 지역에 있는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그 민족을 품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역자는 늘 겸손해야 한다
며칠 전 내 생일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몇몇 형제 자매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자기들이 저녁을 해 주겠다며 식단을 벌써 다 짜 놓았다고 했다. 그래서 예전처럼 식구끼리 조용히 지내려고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렇게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라.” 고 했더니, 꽃이랑 케이크를 사들고 왔다. 나는 부끄럽게도 우리 형제 자매들의 생일을 한 번도 챙겨 줘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닭을 세 마리 사고, 약재를 좀 사서 큰 솥에 넣고, 찹쌀을 넣어 삼계탕을 팔팔 끓였다. 그리고 그 동안 생일 한 번 못 챙겨준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는 듯, 큰 냉면 그릇에 한 사발씩 안겼다. 모두가 맛있게 먹어 주었다. 한 그릇 더 청하는 장형제에게 내 몫의 고기까지 얹어 주었다.

그날 나는 비록 유명 제과점에서 산 비싼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맛보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다음주부터 학생들과 직장인을 나눠서 예배 드리는데, 장 형제가 직장인 모임을 인도하게 되었다. 장 형제는 요즘 그 일을 위해 기도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직장인 모임은 기존 모임보다 30분 더 일찍 시작해서, 예배 끝나고 한쪽에서 점심식사 준비하는 동안 성경 공부하겠다” 며 의욕이 대단하다. 나는 노파심에서 “사역자는 늘 겸손해야 한다.” 장형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리 집에서 5년 가까이 일을 도와주던 자매가, 임신 6개월까지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 주다가 시골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제 딸을 순산했다고 연락을 해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기 이름을 지어 달래서, 기쁠 희, 은혜 은, 희은(喜恩)이라고 내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정말로 기쁨과 은혜가 풍성한 가을이다. 장 형제가 애타게 기도하고 있는, 행복한 신부가 될 자매가 빨리 나타나서, 더더욱 풍성한 가을이었으면 하는 지나친(?) 바램으로 오늘도 조용히 두 손 모은다.




강 드보라 |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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